이은주 展

 

하얀 거짓말

 

 

 

잇다스페이스

 

2020. 6. 23(화) ▶ 2020. 7. 7(화)

* 매주 월요일 휴무

인천광역시 중구 참외전로 172-41

 

기획 | 이영희, 정창이 | 주최, 주관 | 잇다스페이스

 

 

 

 

정직한 예술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거짓말 천국이 되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정직할 것이라 믿었던, 공중파 방송, 신문, 잡지 등 모두가 거짓말쟁이들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거짓과 참을 구분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거짓말이 참말 같고, 참말이 거짓말 같기도 하다. 무늬만 참일 때도 있고, 그것마저 거짓일 수도 있으니 헷갈린다.

 

그런데 거짓말이 예술에 들어오면 어떨까. 다른 분야와 달리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는커녕 기쁨도 선사하니 괜찮은 거짓말 아닌가? 하기는 본인도 모르고 하는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본인이 예술을 보는 수준 문제다. 그러나 시장 분위기나 유행 따라 그리는 그림들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볼 사람 얕잡아 보고 그리는 그림들이다. 병아리 암수 구분하는 감별사도 아니고, 어떻게 예술에서 거짓 예술을 골라낸다는 말인가. 그런데 거짓과 참을 구분할 때, 고려하는 나름의 잣대가 있다. 하나는 정체성이고 다음은 진정성이다.

 

이 두 가지가 빠지면 일단 눈속임 그림이다. 그것은 정신이나 마음으로 그린 것이 아니고, 가벼운 손재주의 부산물이다. 우선 정체성은 개인이나 사회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생긴다. 진정성은 정체성을 뿌리로 삼아, 그 속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때 생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갖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인천의 한 소금창고를 빌려 개인전을 한다기에,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작업실을 찾았다. 이런, 이번에는 흰 붕대를 캔버스에 붙이기도 하고, 캔버스를 칭칭 감싸기도 한 작업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그것들은 칼로나 뭉크의 그림처럼 통증을 호소하고, 화가는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 붕대로 여러 겹 감싸고 또 감싸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처음 봤다. ‘붕대 그림’

 

 

 

 

 

추상을 따르는 작가는 두 개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길을 택해야 한다. 시각 영역에서 추출물로서 추상을 할지 아니면 전적으로 화가 자신이 창조한 새로운 내적 구조로서 추상을 형상화해야 할지. 이은주의 추상은 후자를 따르고 있다. 밖으로부터 얻어 온 추상이 아니라 자기 충족의 세계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붕대라는 레디메이드를 아상블라주 형태로 캔버스에 붙여나감으로 그림의 평면성을 벗어나는데, 외상치료용인 붕대의 인덱스 요소를 내상 치료의 가능성으로 기호의 의미를 확대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추상의 기본 요건인 형상을 소거 시키고, 바탕 자체를 형상으로 삼아 또 다른 푸른색을 붕대 위에 뿌려가는 행위는 자신의 내상을 치유하는 또 다른 과정이랄 수 있겠다. 머큐름을 바르고 붕대를 감싸 상처를 치유하는 것처럼.   

 

아직도 많이 아프구나. 그러나 통증이 아픔으로 머물지 않고, 시인 장석주의 ‘붉은 대추 한 알’처럼 흰 붕대 그림으로 환생했으니, 됐다. 가을 대추 한 알에도 태풍 몇 개가, 천둥 몇 개가, 벼락 몇 개가 들어있지 않겠나. 어디 그뿐이랴. 땡볕도 무서리도 어김없이 오겠지만, 대추가 익어가는 것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한 알의 대추도 그러는데, 하물며 삶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나는 이 거짓 없는 붕대 그림 앞에서 듣기 좋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소금창고가 갤러리로 바뀌고, 붕대가 그림의 재료로 바뀌는 것처럼, 그녀의 작품들은 본인의 속내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면서 자신을 치유 중이었고, 보는 자의 아픔도 이 작업을 통해서 공유하고자 하는 몸짓이 아닌가.

 

예술이, 그리고 그림이 무엇인가?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 지고 평가받는 일은 나중 일이고 그녀의 몫이 아니다. 예술가라면 자신의 그림 앞에서 정직할 수 있는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은주는 그 점에서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엇을 그리던, 자신에게 거짓말 하지 않은 작가라는 점에서 변한 것이 없고, 나 또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작품은 그녀가 아직도 많이 아프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해서 나의 아픔도 볼 수 있었다.   

 

최 건수(이미지 평론가)

 

 

 

 

 

뜬금없이 2020년 1월 새해 아침 날 위한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전시장을 정하고 전시 준비를 하는 동안 내안에 나만 생각하며 작업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에서 우리 아니 모두의 의미로 바뀌어 가는 것이 삶이란 걸 또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살아가며 가끔은 스스로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 오면 잘될 거야, 넌 할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지 힘을 내어 볼까, 수많은 이유로 하얀 거짓말이 위로가 필요했다.

 

손가락을 다쳐 상처에 붕대를 감고 지낸 일이 있었다. 그냥 상쳐를 둘 때보다 빨리 나을 것 같고 상처가 아무는 동안 보호를 받는 안정적 느낌이 좋았다. 붕대로 마음에 상처도 치유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면서 5년 전부터 고민하던 터널 안 균열과 벽 바닥 상처 치유에 대한 해답인 붕대을 만나 생각에서 작업으로 이어져갔다.

 

작업실에 버려지듯 있었던 낡은 캠퍼스가 붕대를 감아주며 그동안 의미 없고 망치고 여러 이유로 작업실 귀퉁이를 지키고 있었던 시간을 붕대로 감아 위로하고 치유하며 그 안에서 나를 만나기도 하면서 첫 전시 시작은 상처에서 이유로 치유에서 희망으로 계속 변하면서 하얀 거짓말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가끔씩 하는 하얀 거짓말은 상처를 치유하는 강력 백신이 생각한다. 거짓말이 나쁜 건 알지만 검은 거짓말, 빨간 거짓말이 아니라서 하얀 거짓말은 넘어가 줄만 하다고 생각이 든다.

 

붕대속에 쌓인 상처는 새 살들로 채워지고 다시 다시 살아갈 힘을 남겨 준다. 상처로 남아 같은 상처를 피해 갈 수 있는 단단해지는 이유가 된다. 상처받고 치유하고 반복된 시간은 우리가 가진 어쩔 수 없는 뫼비우스 띠처럼 계속된 반복의 시간일 것이다.

전시 준비 동안 알아가고 배워가고 위로하고 하얀 거짓말 이란 명제를 찾았으니 더 바랄게 없는 전시 일 듯하다. 돌돌 붕대에 감겨 모처럼 자기 자리를 찾지하고 있을 캠퍼스와 함께 보낼 생각에 마음이 설래인다.

우리도 각자 필요한 자리에서 빛나고 사랑받기를 하얀 거짓말로 늘 무너지지 말고 꿈꾸며 살아가면 참 좋겠다.

 

 

 

 

 

 

 

 

 

 

 

 

 

 

 

 

 

 

이은주 작가

 

 

 

 

 
 

이은주 | Lee Eun Ju

 

2019 양평군립미술관, 어제와 다른 내일 | 2019 후쿠오카 미술관, Now&Future | 2019 갤러리 인덱스, 뫼비우스의 띠 (기획 초대전) | 2018 갤러리 인덱스, 채움과 비움 (기획 초대전) | 2016 보성 군립 미술관, 선으로 말하는 세상(초대전) | 2015 갤러리 인덱스, 현(玄) 기획 초대전 | 2014 본사랑 미술관, 새로운 바람전(기획 초대전) | 2013 이형 아트센터, 바람 (초대전) | 2011 서울 미술관, 부재중(초대전) | 2010 동덕 아트 갤러리, (부재중)

 

아트페어 | 10회

 

단체전 | 120회

 

한국미술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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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623-이은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