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섭 展

 

토폴로지컬 플레인(topological plane)

 

 

 

UM갤러리

 

2020. 4. 9(목) ▶ 2020. 5. 9(토)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12길 25, 3층 | T.02-515-3970

 

www.umgallery.co.kr

 

 

토폴로지컬 플레인(topological plane)_UM갤러리 전시광경_2020

 

 

on the meta - pattern

 

meta의 뜻은 다층적이다. 우선, 시간적 변화(change, 易)의 의미와 공간적으로 앞을 가리키는(before, 前) 위상과 뒤(after, 後)라는 방향성과 또는 그것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beyond, 超) 의미작용을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공간적인 <전/후, 위/아래>라는 위상이 시간적 차원에서 볼 때는 뒤집혀 져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10년 전’이라는 말에서 보듯 <앞, 前>의 의미는 과거의 시간, 즉 뒤의 시간으로 변하고, ‘10년 후’라는 말에서 쓰여지는 <뒤, 後>라는 위상은 시간 속에서 미래라는 앞의 세월을 가리키는 것으로 뒤바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meta의 시간과 공간은 전도되거나 역류하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것은 meta-morphosis(변태)의 단계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meta의 공간적 위상만을 염두해 둔 개념으로 발전시킨 서구의 철학적 진리는 항상 절대 공간 속에서만 진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심취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진리’는 살아있는 진리로 실현되는 것 같지가 않다. 살아있는 진리의 작동은 시간, 즉 체험의 여러 속도들과 반영-이탈의 단계 속에서 어떻게든 변하고 미끄러지고 뒤집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금세기 여러 분야의 새로운 사고 유형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었던 소설가 보르헤스는 <카프카와 그 선구자들>이라는 짤막한 에세이 속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카프카적 특질들은 이미 카프카가 나오기 전의 선구적 테스트들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없었더라면 그것을 인지할 수 없었을 것이니, 나아가서 차라리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카프카 덕택에 그 선구자들을 상당히 다른 방법으로 세련되게 읽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각자의 선구자들을 다른 방법으로 ‘창조’해낸다. 그 작업은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키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 개념까지 변화시킨다.

 

과거가 미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과거를 변화시킨다. 이렇게 ‘창조적’ 시간은 얼마든지 거꾸로 흐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문화적 시간의 흐름도 간혹 역류하면서 창조적 과거나 타문화의 선구적 단계를 ‘창조’ 하는 시간을 살려낸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meta의 시간과 공간의 가역성들이 동시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내가 곧잘 사용해온 <meta-form/meta-mind>나 <meta-sculpture>라는 말들은, 가령 조각이라면 조각의 단계라는 개념의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반전, 전도, 변태와 같은 흐름과 역류를 생명적 주기(생태, 생리) 속에서 더불어 파악하고 체험된다는 점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 홍명섭의 ‘작가노트’

 

 

de·veloping_hard board_80x80cm_1978

 

 

square operation_paper, pannel, vinyl tape_60x60cm each_1979

 

 

topological surface_folding paper black lead_45x45cm_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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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409-홍명섭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