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C 아트센터 2020 봄 기획전

 

김정범, 문기전, 이예승, 이지연, 왕지원

 

 

 

대전복합터미널 DTC 아트센터

d1(2층 연결통로), d2 (동관·하차장 1층)

 

2020. 3. 19(목) ▶ 2020. 6. 28(일)

대전광역시 동구 동서대로 1689 | T.042-620-0512

 

www.djbusterminal.co.kr/?module=Board&action=SiteBoard&iBrdNo=3&sMode=SELECT_FORM

 

 

 

 

김정범

 

김정범의 도조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백토 또는 화장토로 분장된 평면과 입체의 하얀 세라믹 위에서 눈이 시도록 빛나는 ‘푸른 코발트의 색채’와 누구에게도 구애 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양식’을 통해 ‘1/25초의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그의 ‘푸른 코발트의 색채’는 청화백자에서 계승된 신체 지각 너머의 순수한 심상의 세계를 지향하며, 그 순수한 심상의 세계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

 

그의 순수한 심상의 세계는 ‘구원을 요청하며 몸부림치는 창백한 하얀 손과 잠수 마스크, 장화를 받치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귀여운 작은 두상들, 시대상을 상징하는 한 여성의 두상과 고대의 피라미드로서 비유한 듣지 않는 귀’를 통해 표현된 <기억을 매개하는 감각물, 2015>을 통해 발언하고 있듯이 ‘나’와 ‘너’의 구분을 두지 않는 세상을 투영하고 있다.

 

 

 

 

문기전

 

문기전의 ‘인체산수’는 기존의 수묵화에서 표현하는 3원법이 아니라 양자물리학에서 양자들은 관찰자의 시각에 의해 움직인다는 상대론적인 관점으로 ‘나’와 ‘사회’와 자연 만물과의 관계를 재구성하여 그려내고 있다. 나의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양자들의 세계를 통해 보면 산이 되고, 개울이 되며, 자연을 이루는 그 모든 것들이 된다.

 

그가 표현한 인체산수는 육체와 무관한 정신세계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입자’이면서도 동시에 ‘파장’이 될 수 있는 성질을 지니며, 물질은 정신과 밀접하게 상호 작용하는 융합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인체 산수’는 자신의 시각에 투영된 ‘나’와 ‘타인’, ‘나’와 ‘사회’, ‘나’와 ‘자연’의 물질과의 상호 관계를 인체와 자연의 사물들이 서로 융합하여 산수화 풍경과 같이 그려내고 있다.

 

 

 

 

이예승

 

1/25초는 인간 신체가 지각하는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1/25초의 사이는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 자연의 모든 것들과 연결하게 하는 입구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컴퓨터 디지털로 작동하는 0과 1로서 만나게 되는 이예승의 Human (Un)limited: 변수풍경(Variable Scape)이나, 또는 동중동(動中動) 정중동(靜中動)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그의 시각이미지는 고대 동양 신화에서 이어지는 숨결을 첨단기술과 조우하여 구현하는 이미지이지만 그것은 우리 머리의 계산을 통해 만나는 시각이미지가 아니라 공기를, 그 모든 것들을 자신 안에 가두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들숨과 날숨의 순환을 통해 체험함으로써 알게 되는 시각이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이지연

 

이지연의 사진과 설치미술은 ‘1/25초의 사이’를 넘나들며, 우리가 구축한 일상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사진은 수목한계선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좌우로, 앞뒤로, 위 아래로 조금의 빈공간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원통형의 엘리베이터들을 통해 고도성장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사회의 시대상을 함축하여 그려내고 있다.

 

돈이라는 것은 종이에 새겨진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물건을 교환하기 위한 하나의 약속체계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며, 사용하고 있는가. 이지연의 설치미술은 실제 지폐를 소재로 하여 전시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그가 폐기된 화폐를 이용하여 작품을 하는 것은 우리의 머리에 새겨진 돈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해체하는 행위와도 같다. 돈의 가치는 지폐가 아니라 지폐를 매개로 하여 서로가 그 약속을 지킬 때 정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왕지원

 

왕지원의 키네틱 조각은 두뇌의 신경절세포를 끊임없이 자극시키며 ‘1/25초의 사이’의 경계를 배회하게 한다. 늙고 병들어 가는 몸이 아니라 생각을 할 수 있는 뇌만이 ‘나’의 실체가 아닐까. 나는 부처와 같이 영원 속에서 존재할 수 없을까. 그 순간 우리의 시선은 왕지원의 키네틱 조각과 조우하게 된다. 왕지원의 키네틱 인체 조각은 AI처럼 보이지만 AI가 아니라 과학의 발전과 함께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되는 미래의 인간, 즉 뇌를 제외하고 나머지 신체들을 기계로 대체되는 사이보그를 상징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사이보그에 천수관음이나 부처와 같은 이미지를 투영함으로써 우리에게 존재론적인 질문을 자연스럽게 제기하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를 기계로 보완한다고 천수관음이나 부처가 말하는 세계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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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319-DTC 아트센터 2020 봄 기획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