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 展

 

사색 종이가방 : 마음을 담다

 

 

 

갤러리도스 신관

 

2020. 2. 19(수) ▶ 2020. 3. 3(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길 28 | T.02-737-4679

 

www.gallerydos.com

 

 

Paper Bag of Thought C13_33.4x24.2cm_Ceramic on canvas_2018

 

 

신혜선의 종이 가방: 사색하는 여백의 공간

 

모노톤의 배경을 뒤로 한 채 종이 가방이 공중에서 부유하듯 그려져 있다. 작품의 제목들은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사색종이가방 (Paper Bag of Thoughts)’으로 불린다. 멀리서 보면 종이가방인지 아닌지도 파악하기 어렵지만 무엇인가 흰 색 위에 또 다른 흰 색이 중첩되어 있는 듯한 착시효과를 전달한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이 그림들을 보면 우리가 보는 모노톤의 색은 여러 가지의 색감과 기운을 지니고 있고 빛의 위치에 따라서, 내가 서 있는 방향과 눈높이에 따라서 모노톤의 컬러는 다양한 톤의 색채를 발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면의 중앙에 있는 ‘종이 상자’는 미세 플라스틱의 재난 이후 우리가 동시대의 시공간에서 쉽게 경험하는 ‘종이 쇼핑 백’의 모티프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종이 쇼핑백은 삼차원적 대상으로서의 종이가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심플하고 2차원의 회화적 공간에 부유하듯, 무심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유하듯’ ‘무심하듯’... 이러한 느낌은 신혜선 화가의 종이가방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이었다. 의식적인 듯, 무의식적인 듯, 현실적인 듯, 비현실적인 듯... 이러한 상반되는 요소들이 서로 충돌하는 느낌 또한 신혜선이 지난 10년간 걸어온 회화적 궤적들을 살펴보았을 때 연상되는 비평적 요소이다. 그의 작업은 우리가 그림을 볼 때 일차적으로 느낄 수 있는 회화적 감성이외에 ‘사색’과 관찰을 유도한다. 이는 회화의 표면이 아주 섬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의 말대로 2011년부터 시작되었는데, Take Out, Paper Bag이라는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서 서서히, 점진적으로 변화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태도가 바뀌어 온 실제적인 ‘변화’와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작가는 그러한 설명을 말한 바는 없지만, 이러한 변화는 가정을 꾸리면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전업 작가로서 여러 맥락의 삶의 변화와 태도의 변화와 함께 이어지는 여정을 거친 것이다. 현실적인 삶의 변화는 이러한 회화적 변화와도 긴밀하게 연관이 있어 보인다.

 

신혜선의 초기 작업은 1999년 도자 오브제의 설치작업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탄’을 모티프로 하되 이것을 도자로 빚었는데 손으로 직접 만진 과정을 거쳐서 라이팅을 이용해서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학부에서 도자를 전공했지만, 그에게 도자는 실용성과 기능성을 담보로 한 매체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흙을 통해서 자신의 상상력을 표현하는 ‘매개체’로서의 매체적 역할을 충실하게 해 주었다. 흙은 불과의 우연적 만남을 통해서 작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우연성에 좌우될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일상적으로 느끼는 통제불가능성, 그리고 삶의 우연적 요소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흙’을 통해 그는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현실을 표현하였는데, 점차 이를 하이퍼리얼하게 표현하는 회화적 세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도자의 작업이 현실을 바라보는 ‘응시’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면, 2009년도에 제작된 회화 작업인 <See &#8211; Self Portrait>, <See &#8211; Between You and I>, <See - Between Calm and Passion>은 작가의 말대로 극사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표현한다. 작가는 자화상에서 블랙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데 그 안에는 다시 작가를 찍는 낯선 이가 등장한다. 이 작업들은 <See &#8211; The NatureⅡ>(2011) 등을 거치면서 Take Out 이라는 주제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사실, 테이크 아웃은 빠르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인 레스토랑에 앉아서 여유롭게 식사하지 못하고 배달용으로 집에 가져가게 되는 ‘포장’ 행위이다. 스피드와 모빌러티를 상징하는 이러한 테이크 아웃은 현대인들의 삶을 반영하지만, 신혜선은 테이크 아웃 형식 안에 ‘또 다른 극사실적 풍경화’를 표현한다. 그러니까, 현실 속의 또 다른 하이퍼리얼한 풍경 세계인 것이다. 빠름을 의미하는 타이크 아웃에는 스틸 이미지들이 정지되고, 카메라에 포착되는 듯한 시간이 멈추어지는 인위적 공간인 셈이다. 이것은 리얼리티 속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회화적 시공간에서 시간은 멈추어지고 이미지는 새로운 생성 공간으로 변화되는 속성을 보여준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은 회화적 시간 속에서 잠시 정지하고 방해를 받으며 현실의 시간성은 탈색된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동안 잠들지 않는 ‘온라인’ 문화 속에 우리의 일상적 시간은 이미 밤과 낮의 경계가 사라지고 빠르게, 더 빠르게, 경쟁하는 글로벌한 시간성을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성을 잠시 정지시키듯, 신혜선의 ‘테이크 아웃’은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회화적 공간 안에서 ‘무심히’ 생각에 빠질 것을 권유하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는 2009년의 회화에서 보여주었던 형상성과 극사실성이 점차 사라지고 추상적 회화 공간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The Paper Bag of thought(L.SB)_90.9x72.7cm_Oil on canvas_2020

 

 

추상성은 신혜선이 2020년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업에서 ‘사색 종이가방’에서 중요한 회화적 특징이다. 신혜선의 신작들은 사실 하얀 여백으로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캔바스의 표면을 끊임없이 덧칠하고 또 칠한다. 이는 연속해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색의 경계들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경계를 허물면서 다양한 그라데이션이 생겨나게 된다. 작가가 몇 시간이라도 ‘그리기’를 멈춘다면 시간의 축적과 흔적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손이 많이 가지 않은 단순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림의 표면은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동시대적’이다. 어느 한 곳에서 일관적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 한꺼번에 빛을 발하는 도시 거리의 네온처럼 환하고 밝으며 때로는 ‘형광 빛’의 효과를 드러낸다. 그의 회화적 공간에서 현실 속의 시간은 ‘정지’가 되며 캔버스 안에서 사색하게 하는 여백의 효과를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는 종이가방은 현실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쇼핑백이나 여타 종이가방을 삼차원적으로 묘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종이 가방의 끈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아서 공간 안에서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2011년 그가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을 담은 종이가방을 표현했던 부분과 상당히 다른 점이다. 작가는 가방 속의 풍경을 이번에는 ‘여백’의 빈 공간으로 바꿈으로써 사실은 많은 말보다는 몇 마디 말, 혹은 침묵의 언어를 택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사색종이가방이라고 했는데, 사색을 이끌어 내는 종이가방, 사색을 담아내는 종이가방 등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생각이 많은 현대인들은 복잡한 생각을 이 종이 가방을 통해 하나씩 걷어내게 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즉, 마음 속의 욕망과 욕심을 이 종이 가방을 통해서 하나씩 버려나가는 ‘사색’의 힘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약 10년 전 극사실로 출발했던 신혜선의 회화는 이제 여백과 침묵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일상성을 담아내려 한다. 이러한 추상적 회화공간은 단색화 화가들의 작업과 비교해볼 수 있겠지만, 그들의 작업에 표현된 무거운 존재론적 공간보다 신혜선은 자신이 경험한 동시대적 세대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진지한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소비문화와 대중문화를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표현하는 시공간이다. 또한 하나의 오브제를 극사실적으로 그린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한 오브제를 그리다 보면 그것은 현실 속의 모티프가 아니라 그 모티프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수행성’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하이퍼리얼하지만, 또 다른 추상성을 반영하는 부분이다. 또한 이번에 보여주는 모노톤의 단색조 회화는 현실의 종이가방을 보여주지만, 현실을 뛰어넘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종이가방은 현실과 비현실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경계에 있는 회화적 공간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인들의 시간을 ‘무시간성’으로 정지시켜주는 사색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혜선의 회화적 공간은 경계의 공간으로, 복잡한 생각의 보따리를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흡수하는 스펀지 역할을 하는 접촉지대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신혜선의 회화 작업에서 ‘(회화적) 표면’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회화적 표면을 통해서 종이가방은 우리의 시선과 관계를 맺으면서 존재하는데, 사실 표면 자체의 마티에르는 도자의 표면을 연상시킨다. 회화와 도자의 특별한 관계를 반영하듯 이번 전시에서 그는 손으로 하나씩 빚은 도자기 가방들을 캔버스에 반복, 배치하는데, 하얀 가방들은 선과 면의 단순한 조형을 통해서 음악적 울림을 전달하는 것 같다.

 

정연심(홍익대학교 교수, 비평/기획)

 

 

See-Paper Bag of thought. Purple A_116.8x91.0_Oil on canvas_2020

 

 

Take out the Heart 2_65.1x53.0cm_Oil on canvas_2019

 

 

The Paper Bag of thought (mind)_90.0x60.6cm_Oil on canvas_2019

 

 

The Paper Bag of thought (mind2)_90.0x60.6cm_Oil on canvas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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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219-신혜선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