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호, 이연석 展

 

Vera Verto

 

 

 

위켄드

 

2020. 1. 17(금) ▶ 2020. 2. 16(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8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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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다른 수많은 매체 중에서, 회화는 어떻게 계속되는 걸까.

모더니즘 회화가 염원했던 것은 회화 매체의 내적 완결성이었다. 개념 미술 이후, 예술 실천은 그것을 설계하는 작가의 아이디어로 무게가 옮겨가며 모더니즘적 매체 특정성은 무화되는 것으로 보였다. 이제 회화는 포스트 매체 조건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많은 매체들 중 하나일 뿐인 매체가 된다. 미술비평가 얀 베르워트(Jan Verwoert)는 Why are conceptual artists painting again? Because They Think It’s a Good Idea에서 매체 특정성과 개념성(conceptuality)의 대립하에 놓인 동시대의 회화를 다룬다. 요약하자면, 회화는 더이상 단지 회화일 수 없다. 회화는 다른 많은 매체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고려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 속에서 회화는 역으로 매체로써의 자기 역사와 끊임없이 대화할 것을 요청받는다. 회화가 다른 매체들 사이에서 자기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물질적 특성과 상징적 문법, 형식적 언어를 표현할 때, 회화는 필연적으로 개념적인 것이 된다. 매체 특정성과 개념성 사이 긴장감이 캔버스 위에 올려지는 것이다.

회화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이어나간다. 전시 《Vera Verto》의 두 작가 박제호와 이연석은 이러한 회화의 상황을 각자의 방식으로 말한다. 언뜻 보기에 추상 형식 실험으로 보이는 이들의 작업에는 사회적 징후들이 잠재되어 있다. 이 캔버스들은 자본주의 상품 논리나 물신 숭배, 물질주의의 광고 언어 문법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고 다시 바깥으로 내보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택(tag)이 달린 캔버스와 광학 장치의 언급, 산업 재료를 사용하는 브라켓에 매달린 캔버스들은 회화를 다른 많은 것들 중 하나인 상품으로 보이게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흐릿한 종교적 이미지들과 트립티크(triptych) 형식으로 나열된 캔버스들은 미술사의 오래된 전통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참조한다. 긁혀지거나 어딘가에 찍힌 표면, 완전히 균일한 질감을 지닌 표면, 악어 가죽 같은 표면들은 회화를 통하여 회화의 물질성을 이야기한다.

이들 회화의 복합성은 전시의 제목으로 집결된다. ’Vera Verto’는 쥐를 유리잔으로 변형시키는 마법 주문이다. 주문 발동 중 멈추어 반은 쥐, 반은 유리에 멈추어 버렸던 잔을 떠올려 본다. 이 잔이 지닌 양가성이야말로 이들 회화의 미적 차원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자기 역사의 정밀 조사를 통해 존재의 타당성을 스스로 확보하고 다른 많은 것들이 이룩한 성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창출하는 것. 회화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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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117-박제호, 이연석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