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복 展

 

0.013

 

 

 

갤러리한옥

 

2019. 11. 27(수) ▶ 2019. 12. 4(수)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11길 4 | T.02-3673-3426

 

https://galleryhanok.blog.me/

 

 

엄마의컵_광목에 먹_2019

 

 

part I. 찰나의 순간(0.013seconds)

 

유리컵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컵에는 물이 얼마나 담길지 알 수 없다. 단지 물방울과 유리컵의 관계만이 있다. 그 때 유리컵은 물을 담는 그릇으로가 아닌 단지 유리컵으로 존재한다. 마치 언어가 약속과 계약을 통해 언어로서 쓰임이 생기게 되는 것처럼 유리컵이라는 물건도 액체를 담는 쓰임으로 약속되어 만들어진 본래의 본질적 존재적 근원을 벗고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를 갖는 대상으로 재탄생 되는 순간으로 그려진다. 화면을 가득채운 하나하나의 대상들은 그 자체로 초상처럼 작품 속에 남는다. 그 속에는 작가의 추억과 취향과 기억이 담겨 순간을 기록하는 회화 본연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대상이 그 본연의 쓰임에서 벗어나 그 존재 자체로 존재하게 되는 순간을 포착하여 기록한다. 그 찰나의 이전도 이후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순간이다. 그 순간 대상의 존재는 유한하지만 유한의 존재는 무한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순간의 찰나이지만 영원한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은. 찰나는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단위를 나타내지만 또, 1찰나마다 모든 것이 생겼다 멸하고, 멸했다가 생겨나며 계속되어 나간다고 한다. 이는 즉 윤회이며 무한의 시간이다. 우리의 기억 속 또는 마음속에 추억의 작은 빛의 조각은 이러한 찰나의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part II. 반짝이는 것에 대한 동경

 

어쩌다 급하게 잡다한 물건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골목에 있는 문구사에 들어가면 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딱히 살 것이 없어도 기웃거리던 문방구가 생각난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진열 된 물건들은 내가 어릴 때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들이 꽤나 있다. 어두운 실내에 간간이 비치는 빛의 조각이 닿은 반짝이는 유리구슬은 나를 어릴 적 그 때로 잠깐이나마 데려다 준다. 아마 그 때 인 것 같다. 반짝이는 것에 매료 된 것이. 구슬치기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유리구슬을 좋아했다. 구슬 속 동그란 기포와 여러 가지 모양의 색 띠들은 구슬마다 비슷한 듯 모두 달랐다. 한가한 오후에 따뜻한 해가 드는 방에 엎드려 들여다보는 구슬에 비친 반짝임은 그 순간 황홀한 듯 즐거움을 준다. 그 즐거움의 연원은 작은 유리구슬 위에 내려앉은 빛이었을까, 구슬 속 소용돌이는 정지되어 있지만 거친 모래에서 용솟음치는 불꽃을 담아 녹아 흐르다 다시 굳어 투명하고 단단하게 되기까지의 역사였을까. 추억은 반짝인다. 마음속에 빛나는 과거의 기억을 추억이라고 한다. 유리구슬에 담긴 빛은 추억에 대한 빛바랜 반짝임과 닮은 데가 있다. 그리 특별하지 않지만 각자의 기억 속 추억의 조각들은 무엇보다 따뜻한 빛으로 마음에 남는다. 행복한 어제의 기억들을 붙잡고 오늘도 내일도 그 때 같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 책상 서랍 속 보잘 것 없는 상자에 넣어두고 어느새 잊어버린 유리구슬을 여러 해가 지나고 어른이 되어 꺼내 보고는 그 때의 순간,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의 충만감이 스친다. 찰나의 순간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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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91127-이재복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