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순 展

 

모순적 공간-빗살 Contradictory space-Bitsal

 

Contradictory space-Bitsal-02_65.2x50cm_wood, acrylic on canvas_2019

 

 

Booth No. B22

 

2019. 10. 8(화) ▶ 2019. 10. 13(일)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 T.02-580-1300

 

www.sacticket.co.kr

 

 

Contradictory space-Bitsal-03_239x145cm_wood, acrylic, oil on canvas_2019

 

 

모순적 공간을 허용하는 빗살

Contradictory space-Bitsal

 

임광순 작품의 프레임은 빗살이다. 빗살은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인데 일반적으로 경제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임광순의 빗살 의미는 역사적인 평가를 넘어서 빗살이 가지는 의미를 햇살 또는 빛살과 비로 확장시켜 생명으로까지 상징화시킨다. 빛살과 비는 인간이 살아가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모든 생명체는 비가 오지 않고 빛살이 비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생명과 삶에 깊은 관련성을 가진다. 빛살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생명을 상징적 동기화시키는데 역동적이다. 빛살은 임광순이 사용하는 캔버스의  '빈 공간'을 다양한 색감으로 '공간'으로 채운다. 여기에서 공간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햇살에 채워진 공간이고 공간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Contradictory space-Bitsal-11_84x60cm_wood, acrylic, oil on canvas_2019

 

 

이와 같은 예술적 통찰력은 마치 신플라톤주의자(Neo-Platonism)인 플로티누스(Plotinos)가 그의 저서 『Enneads』에서 존재와 생명의 발생을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할 때 중심개념인 일자(The One)를 연상시킨다. 일자는 가장 충만하고 우선적인 존재이며 분할되지 않는 통일적인 빛이며 존재이다. 빛인 일자로부터 누스(Nous)와 지성(Intellect)와 질료(Matter)가 유출(流出)되는데 일자가 존재들을 생성시키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지만 존재의 충만함으로 통해 존재와 생명들이 존재하게 되듯이, 임광순의 빛살은 공간을 통해 생명을 존재하게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지 않지만 생명을 유출시키고 색감을 입힌다. 이런 의미에서 빛살은 존재와 생명의 운동인(Cause of motion)이 되는 것이며, 빛살에 의해 채워진 공간은 가능태적 생명을 현실태적 생명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Contradictory space-Bitsal-14_61x41cm_wood, acrylic, oil on canvas_2019

 

 

빛살에 의해서 채워진 공간에서 유출되고 확장된 생명은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무규정성을 가진다. 생명은 그것 자체가 가치며 변화되기 때문에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규정적인 생명을 규정한 순간 그 생명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생명은 규정되는 순간 이미 언어와 사고로 규정된 생명과는 다른 생명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은 인식되거나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고 직면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 규정성을 내재화하는 생명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화해 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규정성에 직면한다. 빛살에 의해서 채색되어진 공간과 시간은 생명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지만 유한하고 규정적으로 제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ca』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것들은 생성과 소멸을 하며,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과 공간에 의해 조건화되어 생명이 유한하게 되고 규정되는 것은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그 자체로서의 (in itself) 생명'은 유한성과 규정성으로 인해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동행할 수 있고 생명을 인식할 수 있는 '우리에게 있어(for us) 생명'으로 구체화 시켜 주기 때문이다.

규정성과 무 규정성의 모순적 공존 이외에도 임광순의 빗살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삼중적이지만 일체된 면모를 보인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임광순의 빗살은 다양한 예술적 상상력과 철학적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현재 의미를 지닌다. 동시에 현재 우리에게 드러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임광순의 빗살은 신석기 사람들에게 경제적이고 예술·종교적인 가치를 가진다는과거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탐색하게 한다. 또다시 현재 우리 앞에 보이는 임광순의 빗살은 비와 햇살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연속성을 가지면서 결국 미래를 지향하는 생명을 궁극적인 예술적 목적지로 삼게 되는 것이다.

 

 

Contradictory space-Bitsal-07_192x85cm_wood, acrylic, oil on canvas_2019

 

 

임광순의 빗살은 우리의 삶을 매우 닮아있다. 우리의 삶은 희극과 비극이, 희망과 절망이, 선과 악과 같이 모순적인 것들이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듯이 임광순의 빗살에는 무규정성과 규정성, 현재와 과거와 미래, 가능태와 현실태처럼 동시에 공존할 수 없는 의미가 공존한다. 또 임광순 작품의 재질과 방법도 우리의 삶을 닮아있다. 임광순의 작품은 소나무를 재료로 하는데 우리 조상들에게 소나무는 뒷산에서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다. 일상성(日常性)은 곧 생활을 의미하고 생활은 삶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빗살이 삶과 동일한 질료와 형상을 지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Contradictory space-Bitsal-04_227x90cm_wood, acrylic, oil on canvas_2019

 

 

그렇다면 빗살을 통해 어떻게 우리 삶을 조형하는가? 임광순은 작품작업을 할 때 상감기법을 사용한다. 임광순의 작품들은 소나무에 홈을 파고 물감을 칠하고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서 걷어내고 파내어 완성된다. 이런 방법을 상감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면 상감기법은 채우는 더함이 아니라 비워내는 덜어냄의 방법이다. 덜어내면 부족하고 동질적일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재료의 본질을 통하여 다양한 색감을 표현하고 예술적 다양성을 확보한다. 결국 임광순의 빗살은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덜어냄으로 더 풍요롭고 더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김현경(철학박사/경민대학교 교수)

 

 

 

 

 
 

임광순 | Rim kwang-soon | 任光淳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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