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근 展

 

꽃, 잎

 

 

 

서학동사진관

 

2019. 4. 3(수) ▶ 2019. 4. 28(일)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 | T.063-905-2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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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편한 이름, 꽃이고 잎이다. 그런데 장용근의 ‘꽃’은 아스라하고 아련하고 그런가하면 또 찬란하다. ‘잎’은 묵언 수행하는 승처럼 단정하고 과묵하다. 이것을 꼭 꽃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막연해진다. 우주의 빅뱅을 연상시키는 흩어지는 파편은 대기를 뚫고 뻗어가는 운석처럼 궤적을 벗어난다.
그의 초창기 작업 <도시채집>에서 그토록 집요했던 대상에 대한 ‘짜깁기’ 방식은 한 도시의 정체성을 그의 방식으로 직조해 나갔다. 한 치의 정신적 나태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은 삶에 대한 고집이 드러난다. 모텔 가림 막의 키치적인 색과 외설적인 의미는 그의 사진에서 아무런 감정 없이 시치미를 뚝 때고 필통속의 색연필처럼 알록달록하다. 대구 지하철사고의 근조 현수막은 ‘삼가 고인의 명복’이라는 슬픔의 무채색 아이콘으로 도시를 누비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은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웃는다.
연이은 작업으로는 우연히 도시의 길을 가로막는 구역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시작한 ‘불편하고 낫선’ 모습 <보이지 않는 노동>은 집창촌의 실내풍경이다. 그의 제목에서 드러나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아닌지 의문을 제기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방관자의 시선이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삶의 의미에서라면 어떨까. 다시 그는 그 ‘분홍색 방’에 놓여 진 물건들을 채집 한다. 그 속에는 가그린, 빗, 물티슈, 립 밤 등 애달픈 소지품등이 보인다.
그의 표현대로 길이 가로 막혀서 늘 돌아다녀야했던 ‘금기’의 구역을 하나의 도시의 색깔로 본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아픔’이나 ‘욕망의 상처’가 없었던 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세상사는 어려움이다.
다시 꽃으로 돌아가자. 꽃은 꽃 그자체가 바로 절정이다. 더 이상 덧붙이거나 치장할 형용사가 없다. 장용근은 그런 대상에 과감한 행동을 부여한다. 플로리스트에게 선택받지 못한 꽃을 드라이아이스에 급 냉동시키고 그것이 부서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그는 단지 플로리스트와 수년간 작업 파트너로 일하다보니 꽃과 잎을 더 자주 알게 되고, 확장된 미를 ‘생산’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시들어가는 꽃이 억압된 자아를 통해서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부서지면서 순간적으로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한다. 그의 사진작업은 생물의 주어진 형태를 넘어선 꽃과 잎에 대한 최대의 헌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학동사진관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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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90403-장용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