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5(수) ▶ 2018. 12. 10(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88 | T.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김용기_시장의 인물들_72.7×60.6cm_Oil on canvas_2002

 

 

서로 다른 형상과 질량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섭리

신미술회는 자연계의 다양한 형상을 파악하고 특질을 그려 낸다

 

미술평론가 박 명 인(朴 明 仁)

 

미술사 또는 미학에서는 구상미술과 추상화를 구분하고 있다.

추상미술은 잘못된 언어이며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어서 추상화를 단순히 picture(그림)라고 말하고 행위자는 painter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구상미술은 art라고 해서 서유럽 모든 나라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미술(美術)이란 언어와 같은 의미이다. 따라서 picture와 art, 그리고 painter와 artist의 편차는 큰 것이다. 그러나 현대미술가들은 추상이던 구상이던 모두 art라고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색의 표현이나 형체의 표현없이 어떻게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미술이 지닌 사명은 바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근본을 벗어날 수 없으며 구상미술에 있어서 기본적인 개념은 본질적인 미를 창조하는 기반을 사유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구상미술은 본질적인 미를 창조하는데 있어서 기교가 너무 앞서서도 안 되겠지만 사실성이 결여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아직도 추상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구상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사실성과 추상성이 혼재(混在)하는 표현경향을 선호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향을 볼 때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신개념 즉, 신미술이란 어떠한 의미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원초적인 미술표현 양식은 실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면서 물체조형성을 충실하게 나타냈다. 그러나 점차 시각표상의 과정을 연상(連想)하는 방법으로 대상의 시각상(視覺像)에서 기억상(記憶像)으로 변천했다. 또한 농사일은 천기(天氣)에 좌우되기 때문에 하늘에 위대한 힘이 있다고 믿었고 하늘을 신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농경사회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물체를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최초의 상상력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생활주변의 물상표현을 풍경화라고 한다. 풍경화의 어원인 landscape는 ‘땅과 인간’을 의미하는 합성어이며 따라서 풍경화는 산과 물과, 나무와 같은 자연의 물상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포함되어 있어서 가족이 들에 모여 피크닉을 즐기는 것도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김호걸_인물 80'_90.9x65cm_Oil on canvas_1980

 

 

오늘날 많은 변천으로 점철되어 온 미술이 새로운 개념을 표방하는 것은 사실성의 배제도 아니고 추상성의 추구도 아니다. 사실성에도 추상성이 있고 추상성에도 사실성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미술에 있어서의 새로운 경향은 구상미술이면서 대중적 보편성을 벗어나 독창성을 발현(發顯)해 보자는 의도가 있다. 이러한 경향, 즉 새로운 형식표현을 추구하려는 의지는 창조적 의지로 확산되면서 남다른 장르를 개척하려는데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신미술회의 작품들이 대동소이 하다면 원시적인 표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미술가들의 고뇌이다. 따라서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고심하게 된다.

신미술회의 미술가들은 사실성을 미술형식으로 고수하면서 개개인의 독창성을 추구함으로써 신미술회 자체의 차별화된 특성을 안주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자연계는 변화가 많다.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만큼 변화무쌍하다. 산에 오르면 곧게 뻗은 나무, 옆으로 기울어진 나무, 죽어서도 버티고 있는 나무, 지표 위에 누워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나무, 실로 다양한 나무들이 있다. 이러한 자연계의 물질들은 불안전함과 불확실성을 보이면서도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 다른 형상과 질량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인간의 형체도 오묘하게도 모두 다르면서 공존공생하고 있다. 그러한 자연계의 서로 다른 형상성을 파악하고 특성과 특질을 그려 내지 않으면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

 

 

구자승_남미의 추억_103.3x97cm_Oil on canvas_2017

 

 

바로 여기에 신미술의 해법이 있다. 수십 세기를 변천하면서 유지되어 온 미술의 그 자체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표현방법은 수도 없이 변천해 왔다. 그러면서 오늘 날에 이른 미술이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틈새에서 신미술회가 짊어지고 있는 사명은 변하지 않는 미술에서 변화하는 표현방법을 찾아내어 개개인의 독창성과 개성을 표출함으로써 신미술회만의 색깔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가는 하나의 찻잔처럼 생각의 그릇이 작으면 안 된다. 마음에 잔은 많은 사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 생각의 차이에 따라 변천을 유도해 낼 수 있다. 그러니까 미술가는 많은 생각이 변화하는 시대적 표상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르브랑(Charles Le Brun)은 ‘표현이란 자기발견의 도정(道程)이다’고 말했다. 정말 예술에 있어서의 표현은 외적세계와의 접촉이 개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양자가 만나서 표현이 이루어진다. 결국 과거경험의 총체가 인격에서 발하는 잠재적인 표현의지에 따라 구체적인 형(形)을 만들기 위한 표상을 결정지으면서 성립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작품이 어느 장르에 국한된다고 해도 이러한 이론과 자신의 표상이 접목하게 되면 독창적인 자기의 미술세계를 열게 된다. 이것이 의식과 개념이 접목된 심상표현(心象表現)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물에 대한 창조적 성과는 수동적인 결과인가 능동적인 결과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창조적 결과는 능동적인 데서 얻어진다. 미술이야말로 능동적인 창조정신이 없이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수 없는 것이다.

미술가는 인간이라는 존재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예술을 승화시키고 인간의 정신을 아름답게 치유하는 의무를 갖고 탄생한 것이다. 이를 각성하면 미덕을 갖춘 훌륭한 미술가가 될 수 있지만 단지 인간으로서의 존재만을 생각한다면 결코 훌륭한 미술가는 될 수 없다.

 

 

박연도_아이리스 꽃의 합창_72.7x60.6cm_Oil on canvas

 

 

난세를 극복해내고 열악한 역사적 환경을 이겨낸 신미술회는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서양미술이 도입된 것이 1세기에 불과하지만 초창기 선전(鮮展)에서 국전(國展)시대를 거쳐 변천의 100년을 힘들게 왔고, 일제강점기와 6·25사변이라는 격동기를 제외하고 나면 대한민국 서양화의 활동이 현실화된 것은 불과 70여 년뿐이다. 이러한 열악한 시기에 활동한 선배들의 노고와 업적은 말할 필요도 없이 고뇌의 세월이었다. 때문에 올해 67회를 맞는 신미술회는 구상미술발전을 위해 장구한 세월을 노력해 왔다고 할 수 있으며, 명실공히 대한민국 미술발전에 업적을 쌓고 있는 단체인 것이다.

박득순 선생을 창립회장으로 시작한 신미술회는 2대 김창락 선생, 3대 김숙진 선생, 4대 김영재 선생, 5대 구자승 선생 그리고 당회 이승환 선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구상미술을 대표하는 김인승, 김형구, 나건파, 박영선, 손일봉, 이동훈, 이의주, 이종무, 임직순, 장두건, 이종우, 조병덕, 김영창, 신창호, 조덕환 샌생, 그리고 현재 고문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김용기, 박연도, 김호걸, 김종복 선생이 있다.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신미술회가 대한민국 구상미술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미술회는 활동영역을 국제무대로 확산하면서 프랑스 쇼몽미술관 초대전, 일본 동경도 미술관 초대전, 캐나다 토론토 전람회가 성황리에 있었다.

그러나 구상미술의 난관은 계속되었다. 창립 이듬해 6·25사변이 발발했고, 기아에 허덕이던 가난을 극복하는가 했더니 추상화가 밀려 들어와 범람하면서 구상미술을 강타했다. 혼돈의 시기였다. 1974년부터 경제개발계획 성공으로 국가경제가 활기를 찾았지만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되어 미술계는 어둠 속에서 헤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어려운 역사 속에서 흔들림없이 구상미술을 지켜 온 미술단체 중 한 그룹이 신미술회인 것이다. 아직도 국립이나 시립미술관은 추상화와 설치만을 고집하고 있지만 미술이라는 개념을 저버리고 있어서 이미 기세는 기울어져 있다. 이또한 신미술회와 같은 구상미술가들의 인내와 지조가 지켜 낸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국립이나 시립미술관에 구상미술이 설치되도록 위정자들의 개안을 이끄는 단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강석진_미지의 산마을로 찾아가는 길_80.3x116.8cm_Oil on canvas_2018

 

 

“급속도로 움직이는 시대적 변천은 정보에 의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가적 색깔을 잃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래서 우리 신미술회는 세계적 미술성향을 공유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서적 성향이나 국가적 색깔을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독창성을 발휘하려고 합니다.”

이승환 회장의 발언이다.

여기에서 정보의 범람 속에서 국가적 색깔이나 개개인의 독창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는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 내는 미술가가 브랜드화되어 가는 것이다.

매년 신미술회를 관람하면서 신미술만의 개성표출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 보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대한민국의 색깔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소재나 내용이나 색채 자체에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적 특징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풍경은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고 대한민국의 인물은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미술적으로 구성되었을 때 국가적 또는 개인적인 독창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67회를 맞은 신미술회전에서 또 한 번 도약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

 

 

장 완_은혜의 빛_91.0x91.0cm_Oil on canvas_2018

 

 

이승환_북한강_116.8x80.3cm_Oil on canvas_2018

 

 

김보연_삶_90.9x72.7cm_Oil on canvas_2016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vol.20181205-신미술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