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연 展

 

지난 밤

 

 

 

갤러리 도올

 

2018. 11. 21(수) ▶ 2018. 12.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87 | T.02-739-1405

 

https://www.gallerydoll.com/

  

 

검은색이 주를 일는 방수연의 회화에서 형태의 드러남은 사실을 전달하는 목적의 구상일까 아니면 행위의 흔적이 물감층으로 표현되는 추상일까! 동시대 두 분류로 그림의 성격을 나눈다는 게 별 의미 없는 것을 알지만 캔버스의 공간 안에서 관찰되는 형태도 잘 보이면서 겹침이 흔적처럼 나타나는 것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명확하지만 동시에 흐려진 느낌이란 걸 받으며 다양한 생각을 갖게 한다. 회화의 조건 이란 게 작가가 작품을 무사히 마치는 것도 있겠지만 생각이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감정 또한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새삼 알게 했다. 한마디로 사각형 안에 잘 안착된 조형은 묘한 매력이 있다. 패널에 그린 Liminal zone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서사구조가 보이지만 시점은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다. 시선은 사방으로 분산되고 중첩된 대상은 공간으로 잘 어울리며 조형 안에서 만이 힘을 받는 듯하다. Shallow signals 시리즈는 여러 개의 면 안에 빛과 어둠을 부분적으로 자유롭게 분산시켜 있다 없다 확인을 보여준다. 각각의 유기적 관계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명과 암의 구별로 빛을 받는 대상과의 관계 실험 이기도 하다.

빛의 의해 드러난 대상은 이제 풍경으로 자연스레 흡수된다. 어느 부분으로 집과 들판의 형태로 무채색과 섞인 소재는 평범하지만 흔들리는 집 또는 들판과 하늘의 경계를 아우르며 바람 같은 흔적이 된다.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일상의 풍경이 아닌 작가 자신의 감정 찾기의 매개체로서 작용된다.

눈앞에 사실이 있으나 우연히 발견된 장소로 캔버스의 옮겨짐은 완벽한 조형 추구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타인에게 설득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최대한 충실한 것으로 대상은 나열된다. 실체가 없는 느낌을 알기 위해 회화로 그려진 대상은 밀도감이 높지만 원근법 보다 대상이 중첩되고 단번에 그려진 것이 아닌 작가가 생각하고 캔버스로 그려내는 과정은 긴 시간을 갖고 완성해 나아간다.
느낌의 따라 드러난 집, 나무 등 일상의 소재란 생생하지만 아련한 것으로 원인의 따른 트라우마 아닌 문득 떠오른 감정선은 무채색을 볼 때 기쁨 아닌 우울함으로 강한 표출보다 적절히 형태를 걷어내고 화려함도 자제시킨 마치 지난밤을 떠올리는 것처럼 정확한 것은 표현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알았지만 다시 현실에서 또 다른 감정으로 찾아오는 순간처럼 고정되지 못하는 시선과 대상은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같은 것이다. 검은색 형태의 집과 작게 표현된 빛은 함메르 쇠이의 무표정한 초상도 스치고 명확한 서사 없는 재현의 구조는 유기적 관계가 있으나 목적 없이 드러난 자코메티의 인물 조각과 흡사하다. 태어남으로 이미 얻어진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는 생명체로 인간과 자연의 이야기로 다 가늠될 수 없는 공간으로 왜 라는 물음은 여기서 구체적이지 않다. 원인에 따른 결과를 위해 어떠한 전제를 세우고 노력이 현실이 되기까지 과학은 증명하고 사회와 문화는 많은 것들을 이룩했다. 본질이 없고 복제만 있을 뿐이다 말한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내가 사는 일상은 늘 완벽한 것인가. 작가의 그림은 원인의 따른 결론 내리기 이전의 불편한 느낌 같은 것으로 앞날을 알 수 없어 불안해하는 심정도 포함된다. 개인에게 문득 찾아오는 감정의 관한 이야기로 냉정하고 우울하다. 나와 다수 관계구조가 있으나 실존이 우선인 현실이 주는 문제들 속에 선택과 책임의 관한 이야기로 각자가 맹목적으로 삶을 진행하는 현실이 동반된다.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은 여기서 완벽한 극복이 아니다. 극복이 되면 또다시 찾아오는 정서로 나약하게 무기력하게 반항하며 삶을 영위하는 알베르 카뮈의 주인공 시지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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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1121-방수연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