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조, 백태호, 그리고 격동기의 예술가 展

  

 

 

대구문화예술회관

 

2018. 11. 9(금) ▶ 2018. 12. 8(토)

대구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201 | T.053-606-6152

 

https://artcenter.daegu.go.kr/

  

 

<김우조, 백태호, 그리고 격동기의 예술가展>

1945년부터 1950년대까지 대구화단은 지금까지 해방공간의 혼란과 전쟁으로 인해 남겨진 유산이 거의 없다고 생각되는, 아직 제대로 기억하지 않은 시기로 남아있었다. 이 기간은 해방의 기쁨도 잠시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자신의 자유의지나 신념이 국가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 희생당할 수도 있었으며, 전쟁과 갈등의 위험을 피하고 가난으로부터 목숨을 유지해야하는 생존의 문제가 더 중요했던 시기이다. 그런 만큼 많은 예술가들의 의지가 좌절되기도 했고, 타의에 의해 자신을 감추어야 했던, 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 자취를 소거해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을 구축하고 만들어간 이들도 있다.
그러한 격동기를 부딪혀간 작가의 전형을 백태호(1923-1988)와 김우조(1923-2010)를 통해 보고자 한다. 그들은 1941년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화가의 꿈을 꾼 친구이자 대구화단에서 학교 미술교육을 통해 화가로 진입한 첫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같은 학교 동년배로 자웅을 다투면서 화가의 꿈을 키웠고, 격동하는 시대를 지나면서 화가로 성장하였다. 김우조는 정규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개인적 환경의 한계와 경제적인 문제로 물자의 제약을 받았다. 그는 이러한 한계를 판화 매체를 발견하면서 극복하였고, 스스로 개척한 표현과 조형실험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로 구축해나갔다. 백태호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해방공간의 이념 갈등 속에서 탄압을 겪었고, 만년에 들어서는 건강 이상으로 다시 시련을 겪었다. 시대적 고통에 그는 평범함 가운데 자신을 감추었지만, 말년의 명태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고통과 좌절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거친 파란의 시대, 식민지 시기와 전쟁을 겪으면서도 이들은 예술가로서 도전을 시작해 스스로 예술의 본령을 지키고자 했던 작가들이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한 예술가와 이들의 시대를 주목하게 되었고, 잊혀진 시대인 1950년대 전후(前後)를 걸어간 이들의 활동과 면면을 ‘격동기의 예술가’ 주제로 살펴본다.
「격동기의 예술가 Ⅰ」에서는 해방 전후 미술교육자로 1940년대 작가 탄생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서진달과 계성학교 제자들을 살펴본다. 한국 근대화와 함께 일제강점기 서양화 형식이 도입된 이래 한 세대가 지나서야 예술 교육을 받은 교육자가 나타나고 이들을 통해 다시 예술가가 성장하게 되었다. 서진달(은 짧은 기간 재직하였지만 당시 제자들을 자극하였고 계성학교에서는 김우조, 백태호, 추연근, 김창락, 변종하 등 제자들이 기라성 같은 화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격동기의 예술가 Ⅱ」에서는 1950년대 대구 화단을 살펴본다. 이 시기는 전쟁을 피해 월남, 피란 예술가들의 이동으로 대구 화단의 작가들과 교류와 자극이 있었고, 피폐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갈망한 대구화단 작가들의 왕성한 움직임이 있었다. 더불어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세대교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1950년대의 기록과 작품을 전시하여 감춰졌던 1950년대 대구 화단의 역사를 복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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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1109-김우조, 백태호, 그리고 격동기의 예술가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