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윤 展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 귀향(歸向)

 

 

 

류가헌

 

2018. 10. 2(화) ▶ 2018. 10. 14(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4 | T.02-720-1020

 

https://www.ryugaheon.com/

  

 

비전향.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신이 믿는 사상이나 이념을 그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와 격리되어 감옥에 장기간 수감된 사람들이 있다. 우리 는 그들을 ‘비전향 장기수’라 부른다.

류기진, 김동섭, 문일승, 김교영, 이두화, 서옥렬, 허찬형, 양원진, 최일헌, 박정덕, 박수분, 오기태, 박종린, 김영식, 강담, 박희성, 양희철, 이광근, 그리고 김동수. 평균 나이 87세.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37년까지, 이 19명의 복역기간을 모두 합치면 384년이 된다.

수감생활을 마쳤지만, 생활고에 묶이고 병에 묶여 감옥 밖에서도 영어의 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복역하는 동안 얻은 지병들로 인해 일상생활조차 힘들었다. 대부분이 생계급여와 노령연금에 의지해 궁핍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1930년대에 시행된 ‘사상전환제도’라는 폭력적인 제도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희망하던 사람들의 인권을 묵살했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하는 악제였다. 일본의 경우 패전과 함께 제도가 사라졌으니, 사실상 한국에만 존재한 셈이다.

이승만, 박정희를 거치며 절정에 달한 폭압은 ‘비전향장기수’라는 군(群)을 만들어냈다.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이 제도가 폐지되고, 2000년 6.15공동선언으로 이들 가운데 63명은 그리던 북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러나 1차 송환 당시 미처 신청을 못했거나,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로 제외된 30여명은 이곳에 남아야 했다. 올 여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병마와 싸우던 김동수 어른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2차 송환을 희망하는 비전향장기수는 18명만 생존해 있다.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나 그들의 구술을 기록하고 초상과 일상을 사진에 담은 이는 사진가 정지윤(경향신문 기자)이다. 사진가는 짧은 만남으로 비전향장기수들의 길고 긴 고통의 역사를 표현하는 것을 염려했지만, 이만큼의 기록조차도 전무한 상황이었다.

초상 사진 속에서 노인들은 검은 막 앞에 서거나 앉은 채다. 더러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로, 또는 환자복을 입고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로. 하지만 검은 막과 흰 머리칼, 형형한 눈빛의 대비는 그저 ‘노인’이 아니라 비전향장기수로서 끝내 ‘전향하지 않은’ 신념과 자존을 뚜렷이 드러낸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리워지고 잊혀진 이들이, 검은 장막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귀향(歸向) _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이분들 중에서 북으로 가기를 원하는 분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강제전향제도의 악령을 떨쳐버리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라는 한홍구 교수(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의 말처럼, 한 평생 고통과 고독 속에서 버텨온 이들을 우리는 이제 하루 빨리 보내주어야 한다. 태어난 고향이든 사상적 고향이든 ‘단 하루를 살더라도’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이들의 귀향(歸鄕)을 도와야 한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귀향(歸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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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1002-정지윤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