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10월19일 그로부터 70년...

 

여순항쟁기록 展

 

주철희 | 아튼포 | 갤러리노마드 기획

 

 

 

대안공간 갤러리노마드

 

2018. 9. 29(토) ▶ 2018. 10. 27(토)

Opening : 2018. 9. 29(토) pm 6

전남 여수시 새터로82(신기동) | T.061-921-7777

 

www.gallery-nomad.com

 

 

 

 

기획의도

흩어지고 은폐되었던 여수·순천 사건의 진실을 소환하여 그 의미와 본질을 재규명하는 본 전시는 과거와 현재의 관계에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통찰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맥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개인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면서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를 둘러싼 인간의 본성, 심리, 신념 등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며 여순항쟁과 관련된 노래 산동애가, 여수블루스, 여수야화 등은 당시 희생자 가 족의 상처와 참혹한 시대상을 애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 노래를 현 시점에서 다시 부르고 가사의 의미를 평가하는 일은 여순사건의 진실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의미있는 작업중의 하나이다.

또한 여수야화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 금지곡으로 반공체제 고착화의 중요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작동 되었고, 금지곡의 배경과 원인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평가하는 일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의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 김상현 -

 

 

 

 

 

1948년 10월 19일 제주 동포 학살을 거부한 국군 제14연대의 봉기로 발발한 여순항쟁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습니다. 1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순항쟁은 한국사회가 반공국가로 고착화되는 결정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념과 사상의 대립으로 여전히 수많은 희생을 낳고 있습니다.

과거사 청산은 근대 국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과거사 청산은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일로써 왜곡 · 은폐된 과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바로잡기 위한 과거사 청산 노력이 김대중 · 노무현 정부를 통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지만 이명박 · 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여 과거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계속되면서 그 성과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역사가 진실을 밝혔다고 해서 끝나 버려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역사의 진실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으면 역사의 정의는 없습니다. 진실은 공식 기록으로 표기되고, 교육되고, 기억되어야 합니다.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망각과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권력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과 테러, 의문사, 고문에 의한 조작등과 관련된 사건들을 되짚어 봄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자 합니다. 금번 기획된 전시는 분단으로 야기된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을 새롭게 인식하고 승화시키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발발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해결되지 않은 제주도 문제는 이승만 정권에게 골칫거리였다. 정부는 1948년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사령관 제5여단장 김상겸 대령 겸임)를 설치하면서, 기존 경찰중심의 진압작전에서 군 주도의 토벌작전으로 전환한다. 제주도 초토화 작전을 알리는 신호였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제14연대에 출동명령이 하달됐다. 제14연대 군인들은 제주도 출동명령을 거부하며 봉기했다. 제주도 출동명령은 국군의 사명에 부합하지 않은 부당한 반헌법적이며 반시대적인 명령이었다. 군인의 봉기는 미군정에서 이승만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치 · 사회적으로 불만이 고조됐던 지역 주민에게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특히 경제적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던 민중이 호응하고 지지하면서전남지역을 비롯한 전북 · 경남 일부지역까지 확산됐다. 이후 토벌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됐다.

이승만은 여순항쟁을 계기로 반공국가 건설과 장기집권을 위한 사회로 재조직했다. 국군은 좌익세력을 척결하는 ‘숙군’을 통해 반공 군대로 정화하고, 경찰은 인력을 증가하여 국민의 생활 속에 파고들었다. 교육계도 좌익 교사와 학생을 축출하고, 학도호국단을 결성했다. 현대사의 최대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제정됐고, 이듬해 계엄법을 제정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 헌법적 가치가 통치권자의 권력에 의해 제약되고 침해되는 반민주주의 유산을 남겼다.

- 주철희 -

 

 

 

 

 

 

 

 

 

 

 

 

 
 

주철희 | 朱哲希

 

전남 여수출신,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받았다. 여순항쟁을 비롯하여 국가폭력 반공문화에 대한 집중 연구하고 있으며, 지역의 근현대사에도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역사학자이다.

저서로 『불량국민들』(북랩),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흐름),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흐름)가 있으며 공저로 『주암호의 기억』(흐름), 『인물로 본 전라도 역사이야기』(선인), 『지리산의 저항운동』(선인), 『여순사건 자료집I-IV』(선인) 둥이 있다.

논문으로는 「예술작품으로 통해 본 여순사건 연구」, 「여순사건 주도인물 연구」, 「여순사건과 지역의 기억」, 「빨치산 사령관 '이영회'의 삶과 투쟁」, 「한국전쟁 전후 반공문화의 형성과 그 의미」, 「여순항쟁의 왜곡과 반공문화」 등이 있다.

 

e-mail | kor0301@daum.net

 

 
 

*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vol.20180929-여순항쟁기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