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칭, 유모나 展

 

Sediment, Patina, Displacement

 

 

 

OCI 미술관

 

2018. 9. 6(목) ▶ 2018. 10. 13(토)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45-14 | T.02-734-0440

 

https://ocimuseum.org/

  

 

오랜만에 찍은 증명사진이 꽤 괜찮게 나왔다. 몇 장 오리고 있자니 “이력서 쓰냐?”, 남의 지갑에 넣으니 “무슨 사이냐?”, 밋밋한 액자에 크게 하나 끼우니 “영정사진이냐?” 한다. 손끝 말고 달을, 그냥 사진을 봐 주는 곳은 없을까?
화이트큐브는 참 특이한 공간이다. 시간, 장소, 맥락에서 가장 멀찍이 물러나 달만 보는 공간. 그 희디흰 벽은 ‘흰색으로 열심히 채운, 단단한 벽면’인 동시에, ‘그림 걸기 전,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를 지시한다. 즉 물리적 한계를 지니면서도 그러한 주변 맥락에서 유리된, 일종의 주술적 합의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화이트큐브의 멱살을 끌고 현실과 삼자대면을 시키면 어떨까? 신상과 사연과 맥락을 탈탈 털어 그 조서를 만천하에 까발리는 것이다. 마한칭, 유모나는 화이트큐브의 인상과 생김새와 이야기를 사진과 설치 등 그들의 언어로 솎아, 다시 화이트큐브에 풀어낸다. 전시에서 OCI미술관은 본래의 배역을 다하는 동시에, 전시 기물,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러니까 사진과 설치 사이사이 흰 벽은 단지 여백이 아니다. 캡션을 잠깐 생략했을 뿐.
그들의 화법은 느리고 신중하고 꾸준하고 덤덤하며 여유롭다. OCI미술관 건물은 그들의 주된 작업 제재이지만, 또 순순히, 성급히, 고분고분히 등장하는 주인공이 어디 있을까. 호흡을 길게 잡아 땅부터 일구자. 편평한 수면을 비집고 뭍이 융기, 침식, 침강, 퇴적을 되풀이한다. 터를 닦고, 기둥이 서고, 벽돌을 포개어 공간은 모양새를 갖춘다. 이끼가 끼고 먼지가 쌓일 시간 내내 숱한 사연이 차오른다. 문짝만 밀어도 그 집의 숨이 물씬 와닿을 만치 이야기가 넉넉히 어릴 무렵에야 비로소 장소로 거듭난다. 얌전 느긋한 선비 걸음 같아도 그 집의 입장에선 수천 배속 황급한 주마등일 것이다.
OCI미술관 건물 온몸에 두른 조적 형태, 벽돌과 나무틀의 노르고 발간 빛깔, 기둥과 보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주선하는 독특한 꾸밈 양식, 1:1.5로 수렴하는 곳곳의 사선 요소들. 헨젤과 그레텔이 빵조각 따라가듯, 슬쩍슬쩍 엿보이는 실마리를 따라가며 자신만의 공간을 몽타주 하자. 겁먹을 건 없다. 뜯고 있는 빵 덩어리는 어디까지나 지금 디딘 ‘OCI미술관’이니까.


김영기 (OCI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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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906-마한칭 | 유모나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