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피 展

 

여-불천위제례(女-不遷位祭禮)

 

 

 

자하미술관

 

2018. 8. 30(목) ▶ 2018. 9. 23(일)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5가길 46 | T.02-395-3222

 

https://www.zahamuseum.com/

  

 

이피의 ‘여불천위제례(女不遷位祭禮)’

여불천위제례(女不遷位祭禮)? ‘불천위제례’는 들어봤어도 ‘여불천위제례’는 처음 듣는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불천위제례’는 4대를 넘긴 신주(神主)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모시면서 지내는 제례를 뜻한다. 그런데 불천위제사는 아무나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불천위’는 덕망이 높고 국가에 큰 공로가 있는 인물을 영원히 사당(祠堂)에 모시도록 국가에서 허가한 신위(神位)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천위는 국가에서 임금의 명이나 조정의 논의로 예조의 심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지만, 이후 지역 유림에서 자체적으로 학행과 덕망을 지닌 향촌의 인물도 불천위로 정한 향(향천, 향촌, 유림) 불천위란 말도 나타났다. 따라서 불천위제사는 조상의 덕을 기리고 혈족의 정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문중 성원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불천위제사는 다른 문중에게 자기 문중의 위세를 과시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자, 이제 ‘여불천위제례’가 무엇을 뜻하는지 감 잡으셨을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불천위제사에 배제된 여자를 위한 새로운 제례를 뜻한다. 따라서 이번 자하미술관의 이피 개인전 <여불천위제례>는 지난 6월 아트플레이스(ARTPLACE)에서 열린 그녀의 개인전 <피미니즘 프노시즘(Fiminism Fnositicism)>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자하미술관의 이피 개인전 <여불천위제례>에는 드로잉 21점(2016-2018)과 회화 6점(2017-2018) 그리고 조각 19점(2017-2018)이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자, 우선 이피의 드로잉부터 보도록 하자. 흥미롭게도 이피의 드로잉은 그녀의 회화나 조각과 ‘닮은 꼴’이란 점이다. 닮은 꼴? ‘닮은 꼴’에 대한 사례를 직접 들어 언급해 보겠다.
일단 종이에 펜으로 그린 드로잉 <20170509>(2017)를 보자. 그것은 마치 꽃들로 만발한 식물정원에 놓여진 2층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오잉? 꽃들이 만발한 식물은 다름아닌 인물들 몸에서 자라난 것이 아닌가! 도대체 그들이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기에 그들의 몸에서 식물들이 자라는 것조차 모르고 자고 있단 말인가? 당 필자, 그 드로잉이 ‘식물인간’을 그린 것이냐고 이피에게 물었다. 이피의 답변이다.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는 최소 8.5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그 문제를 우주비행사의 인공동면을 해결방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기간 인공동면에 든 우주여행객의 모습을 그려보았지요.”
흥미롭게도 이피는 드로잉 <20170509>를 모델로 회화작품을 제작했다. 이피의 <300년 만에 다시 태어난 순간>(2018)이 그것이다. 그것은 장지에 먹과 수채 그리고 금분으로 제작된 회화작품이다. 그런데 이피의 드로잉과 회화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를테면 이피의 회화는 그녀의 드로잉을 착실하게 재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이다. 물론 디테일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서로 ‘닮은 꼴’이다.
드로잉은 흔히 회화와 조각의 ‘보조’ 혹은 ‘밑그림’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드로잉은 ‘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피는 바로 그 ‘날 것’의 드로잉을 그대로 회화나 조각에 적용시킨다. 와이? 왜 이피는 ‘날 것’에 주목하는 것일까? 하나의 개념이 되기 이전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피에게 회화와 드로잉을 일종의 ‘A컷/B컷’으로 구분하려는 이분법은 무의미하다. 문득 “나의 사고가 그림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들이 내 사고를 결정해간다”는 김홍주의 진술이 떠오른다.
필자는 지나가면서 이피의 <300년 만에 다시 태어난 순간>은 장지에 먹과 수채 그리고 금분으로 제작된 회화라고 중얼거렸다. 이를테면 그것은 탱화(幀畵)를 접목한 일명 ‘금빛’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탱화’는 어려운 불교 교리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탱화들을 보면 석가의 설법 내용을 담은 경전들 중에서 특히 <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과 <법화경(妙法蓮華經)>의 내용을 도설화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법화경의 ‘묘법(妙法)’이 오늘날 말하는 ‘미묘하다’라는 의미를 넘어 수준이 높아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땡화를 그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떻게 미국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피가 자신의 작품에 탱화를 접목시킨 것일까? 이피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중국 둔황에 갔다가 막고굴(莫高窟)에 그려진 탱화를 보게 됐어요. 정말 멋지더라고요. 그전부터 제 그림에 불교적인 색채가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던 차에 천년을 간다는 탱화의 안료를 배워서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소문해서 만봉스님의 제자인 원미희 선생님에게 2010년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정말 깊이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전에는 두껍고 거칠었던 선이 간결해지고 밀도가 높아졌어요.”
자,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여불천위제례’ 말이다. 우선 탱화를 접목한 이피의 ‘금빛’ 시리즈 중의 하나인 <모든 종교의 천사>(2017)를 그 사례로 들어보자. 그것은 장지에 먹과 수채 그리고 금분으로 그려진 회화이다. 이피는 화면 중앙에 날개를 가진 거대한 형상을, 주변에 각종 화살들과 폭탄들 그리고 각종 사물들과 인물들을 그려놓았다.
이미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날개를 가진 거대한 형상은 ‘천사’를 암시한다. 그런데 그 천사가 ‘모든 종교’의 천사란다. 그러고 보니 천사의 날개에 묘한 기호 같은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묘한 기호 이미지들 중에 십자가도 보인다.
서양의 종교화는 대부분 중앙에 신을 위치시키고 주변에 천사들을 배치한다. 탱화 역시 주존(主尊)을 중심으로 군상들이 배치된다. 그러나 이피는 그 중심(신)/주변(천사)을 뒤집어 놓는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기존 이분법 뒤집기가 단지 기존 이분법에 대한 반대만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이분법 뒤집기는 천사를 통해 최근 국내에서 죽어간 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그 ‘불씨’는 이피의 <난 자의 난자>(2018)으로 불붙는다. 그것은 마치 교회에서 제단에 올리는 세 폭짜리 그림을 일컫는 ‘트립틱(Triptych)’처럼 보인다. ‘세폭 제단화’는 세 부분으로 구획되어 중앙의 한 폭에 좌/우 폭들을 포개지도록 하기위해 경첩을 설치해 놓았다. 따라서 세폭 제단화는 접었다-펼쳤다 할 수 있다. 물론 이피의 <난 자의 난자>는 모두 같은 크기로 제작된 세폭의 장지에 먹과 수채 그리고 색연필과 금분으로 그린 ‘삼면화(三面畵)’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폭 제단화’는 중앙 패널에 그리스도나 성모 혹은 성인 등 중심 주제를 안치하고 양 날개 패널에는 부차적인 주제를 묘사해 놓는다. 그런데 이피의 <난 자의 난자> 중앙에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위치해 놓고 양 날개에는 각종 이미지를 그려놓은 풍선 같은 것들이 부유하고 있다. 물론 그 풍선 같은 이미지는 중앙 상단과 여자의 드레스 안에도 등장한다.
머시라? ‘난 자의 난자’가 무슨 뜻이냐고요? 전자의 ‘난 자’는 태어난 자를 뜻하는 반면, 후자의 ‘난자’는 암컷의 생식 세포인 ‘알(卵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피의 ‘삼면화’에 부유하는 풍선 같은 이미지가 바로 ‘난자(ovum)’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머시라? 여성의 ‘알’ 안에 그려진 각종 이미지들은 무엇을 의미하느냐고요? 그 점에 관해 이피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성의 ‘알’ 속엔 여성이 키우지 못한 무수한 생명들이 들어 있다. 여성의 몸에 가해진 시선들, 금들, 억울한 누명들, 폭력들, 폭언들과 마음을 다치게 하는 무수한 차별들이 여성으로 하여금 제 알의 보따리들을 열어보지도 못하게 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떠나보낸 무수한 알들을 여자인 나의 제단에 평등하게 배치하고 싶었다.”
이번 자하미술관에 전시될 이피의 작품들 중에서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8폭 병풍 작품도 있다.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 진열대>(2017)가 그것이다. 그것은 행거에 걸어놓은 8벌의 기괴한 ‘신체’들을 표현한 것이다. 이피는 그 그림들을 흥미롭게도 8폭 병풍으로 제작해 놓았다. 네? 행거에 걸린 것이 무슨 ‘신체’냐고요? 그 점에 관해 이피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 진열대>는 여성의 몸이라는 것을 벗고 입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하고 상상해 보았다. 마치 한 생 안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우리처럼 말이다. 내 한 몸이지만 여러 몸들인 진열장을 상상해 보았다. 8쪽의 몸들을 걸어두는 공간을 상상하자 병풍이 되었다. 나는 병풍 안에 내 몸 8개를 걸어놓고 날마다 바꿔 입는 상상을 했다. 누가 나를 다치게 하면 나는 또 다른 몸을 입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피의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 진열대>는 ‘여성의 몸에 가해진 시선들, 금들, 억울한 누명들, 폭력들, 폭언들과 마음을 다치게 하는 무수한 차별들’에 대응하기위해 ‘변신(metamorphosis)’을 택한 것이 아닌가? 마음이 아프다. 그녀에게 닥친 ‘난관(차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변신’을 택했을까. 물론 그 ‘난관’은 이피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 대한민국에의 대부분 여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이피는 자하미술관의 제1전시실에 드로잉과 회화를 전시하는 반면, 그녀는 제2전시실을 아예 자연사박물관으로 전환시키겠다고 한다. 이름 하여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 프로젝트’이다. 신생대 이피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신생대(新生代)’는 지질 시대의 구분(시생대→고생대→중생대→신생대) 중 가장 최근의 시대이다.
2000년 네덜란드의 화학자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폴 크뤼천(Paul Crutzen)이 지금까지 계속되던 충적세가 끝나고, 과거의 충적세와는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에서 ‘인류세(Anthropocene)’를 제안했다. 그런데 인류세의 ‘인류’라는 이름은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도래한 것이란 점에서 붙은 것이란 점이다. 따라서 인류세는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단다. 뭬야? ‘이피세’는 무엇을 뜻하느냐고요? 이피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폴 크뤼첸이 말한 대로 우리의 지구가 신생대 제4기 충적세(Holocene) 이후 자연 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는 인류세를 지난다고 주장한 견해를 나의 ‘일기적 형상’들로 감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형상들은 가시적인 것들과 비가시적인 것들 사이에서 생겨난 에이리언들 같았다. 나는 그 형상들에 이름을 붙여 주면서 나 또한 ‘이피세(LeeFicene)’라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관객이 이피의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선다면, 흔히 자연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진열장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피의 ‘신생대 이피세 자연사 박물관’에 진열된 진열장 안에는 기괴한 생물종(biospecies)들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여러분께서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아니 ‘세상에 없는 생물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여성들이 가사 노동으로 음식을 만들 듯, 옷을 만들 듯 이피가 손으로 찰흙을 주물럭거려 만든 조각작품이기 때문이다.
이피는 ‘금빛 피부’의 기괴한 생물종들에게 기괴한 이름들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금빛 피부’의 기괴한 조각들을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 대백과’ 시리즈로 부른다. 머시라? 이파가 만든 ‘세상에 없는 생물종’에 대해 좀 더 언급해 달라고요? 이피는 육성을 직접 들려주겠다.
“이 생물은 상상 동물이라기보다는 정치사회경제의 모습으로 나의 현상적 삶에 닥쳐온 어떤 시간의 단면도이며 그것의 의인화(personification), 의동물화(anthropomorphize)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생물 대백과, 자연사 박물관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나는 그것에 대해 <현생누대 신생계 이피세 대백과>라고 이름 붙인다. 일상적 시간의 진화의 고비마다에서 살아남아 나의 감정이 되고 사유가 되며 언어가 된 형상을 조각 설치한다.”
만약 당신이 이피의 전작을 모조리 조회한다면, 그녀의 작품들이 각종 ‘차별’에 대한 일종의 ‘똥침’이라는 것을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이피는 아트링크(Gallery Artlink)에서 귀국 전 <나의 서유기(Monkey to the West)>를 개최했다. 이피의 작품세계는 마치 ‘81가지 어려운 고난(八十一難)’의 여정처럼 보인다. 물론 그녀는 아직 ‘서역’에 도착하지 못했다/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난’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언제 ‘서역’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주어질 또 다른 위험천만한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분신술’을 쓰기도 할 것이고, 오징어 냄새와 같은 독특한 ‘향기권법’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탱화를 그린다는 게 불가에서는 수양의 의미도 있다”고 이피가 말했듯이, 그녀의 ‘서유기’는 ‘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류병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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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830-이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