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정 展

 

" Gaze & Trace "

 

 

 

OCI 갤러리

 

2018. 7. 18(수) ▶ 2018. 8. 18(토)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45-14 | T.02-734-0440

 

https://ocimuseum.org

  

 

물건 말고, ‘사건’에도 생김새가 있을까? 한윤정은 세상을 가득 채운 무형의 것들을 빤히 바라보면(gaze) 각도에 따라 실루엣도 비치고 색상도 들어오며 언뜻언뜻 그 결마저 엿볼 수 있음(trace)을 귀띔한다.

평생 머리 위에 이고 살면서도 깨닫지 못할 뿐, 별이 서로 부둥켜안고, 부풀고, 터지고, 흩날리는 저 밤하늘만 해도 이미 ‘사건의 생김새’이다. 있는 대로 부릅떠도 시커먼 허공에 희끗한 점 몇 개가 고작이라면 가시광선의 한계, 보는 방법의 문제에 불과하다. 감마선, X선, 자외선, 중성자선, 자기장, 중력장⋯ 갖은 각도로 뜯어보고 색을 입힌 게 바탕화면 단골 테마인 천문 사진들이다. 수채물감처럼 번진 성운, 긴 팔 휘날리는 나선은하, 그 귀퉁이 어느 한편의 ‘지구’라는 약간의 부스러기마저 서사의 궤적이며 동시에 내용이다. 이렇듯 물건과 사건의 경계는 칼 같지 않다. 사건의 아주 짧은 단위, 극히 좁은 구간의 스냅샷을 편의상 ‘물건’으로 부를 따름이다.
그 부스러기 지구에도 숱한 사건이 들끓는다.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들고, 베스트셀러와 유행어가 뜨고 번지며, 갖은 군상이 피고 진다. 데이터가 모이고 쌓일수록 그 판세는 제법 해상도를 차리고 점차 모양새가 읽히기 시작한다. 한윤정은 이 모양새를 추슬러,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작품을 빚는다. 홍채의 색상 값은 입체의 요철로, 지문의 흐름은 음파의 고저로, 가뭄에 신음하는 땅은 그 가쁜 심박을 도형으로 치환한다. 말하자면 자연의 문맥, 사회의 줄거리, 인류의 사연을 장노출로 담은 디지털 초상이다.
‘데이터’는 각지고 건조하고 단단할 것만 같은데, 그의 작업은 촉촉하고 말랑말랑하다. 사건은 정착할 줄 모르며, 변덕이 끓어넘치는 때문이다. 감상자의 홍채와 지문은 서로 겹칠 겨를 없이 저마다 뜻밖의 모양, 갖은 색상, 판이한 소리로 화답한다. 다이얼을 돌리면 수온이 오르내리고, 시간이 뒷걸음질 친다. 툭툭 밀친 돌멩이를 타고 멜로디는 늘 새로이 출렁인다. 보여 주는 방법 또한 시시각각 자란다. 버전업을 거쳐 모델은 거듭 성숙하고, 새로운 기술의 접목은 이 내러티브의 싱싱한 새 단면을 또 한 꺼풀 들춘다.


김영기 (OCI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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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719-한윤정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