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미 展

 

" 바다에서 만날까 "

 

 

 

서울예술치유허브 갤러리 맺음

 

2018. 7. 3(화) ▶ 2018. 7. 17(화)

서울시 성북구 회기로 3길 17 | T.02-943-9300

 

https://cafe.naver.com/sbartspace

 

 

찰스 다윈은 “따뜻한 작은 연못에서 암모니아와 인산염, 빛, 열, 전기등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태동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따뜻한 작은 연못 가설’은 생화학자 알렉산드르 오파린을 감명시켰다. 오파린은 최초의 생명체가 원시 해양의 수프에서 들끓는 유기물질들을 이용해 살아가는 형태였을 것이라 주장했다. 다윈의 따뜻한 작은 연못과 오파린의 원시 해양 수프는 시카고 대학의 한 실험실에서 재현됐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스탠리 밀러는 물이 담긴 플라스크, 램프, 메탄과 암모니아 등의 기체, 전기스파크 장치만으로 아미노산과 같은 생체분자를 만들어냈다. 다윈은 1800년대 영국 사람이고 오파린은 1900년대 구소련 사람이며 밀러의 실험은 1951년 미국에서 일어났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 과학자를 매혹시킨 것은 모두 바다였다.
40억 년 전, 그 따뜻한 바다의 온기는 피 속에 녹아있다. 그것은 내내 남아 심장을 움직이고 양수를 덥히며 역사를 만들었다. 푸르게 식어버린 바다가 거대한 식량창고나 휴양지 정도로 취급받게 되었다하더라도 우리는 바다의 온기를 기억한다. 삶이 따뜻한 바다에 대해 상상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바다는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를 불러낸다. 바다가 손짓하면 신열이 오른다. 열병은 증명할 수 없는 머나먼 세계를 향하게 만든다.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게 한다. 열광하고 추구하고 숭배하고 꿈꾸는 영원한 미아.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부터 떨어져 나온 존재의 숙명이다. 시인은 노래하고, 과학자는 상상했다. 순례자는 길을 걷고 철학자는 탐구했다. 따뜻한 바다의 열병은 믿음이 되었고 학문을 쌓았으며, 예술을 낳았다.
신열이 끓어오르는 몸으로 헤매고 헤매다, 다시 원점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출구 없는 삶 앞에서 평생을 괴로워한 사람도 있다. 카프카가 그렇다. 그에게 존재는 원죄이고 삶은 유배이며 시간은 형벌이다. 그의 모든 언어는 따뜻한 바다의 숙명 앞에 좌절한다. 온 생을 다해 절망하는 카프카만큼은 아닐지언정, 우리도 불현듯 슬픔에 빠질 때가 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무엇을 믿어야 할까. 어디를 보고 어느 곳을 향해야 할까. 왜 살아야 하는가. 걷고 또 걸으며 묻고 또 물어도 바다는 결코 대답해주지 않는다. 여전히 부드럽게 손짓할 뿐.
따뜻한 바다의 부름에 몸은 갈라지고 물결친다. 노래는 흘러내리고 집은 위태롭다. 출구에 성큼 다가선 듯싶은데도 도통 다다르지 못한다. 슬픔이 발작적으로 찾아와도 바다를 향해 걷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이란 서로 눈짓하며 애도하는 것뿐이다. 따뜻한 바다의 온기는 피 속에 녹아있다. 또다시 바다의 부름에 신열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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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703-박유미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