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현 展

 

" 자기만의 방 "

 

 

 

서울예술치유허브 갤러리 맺음

 

2018. 6. 9(토) ▶ 2018. 6. 26(화)

서울시 성북구 회기로 3길 17 | T.02-943-9300

 

cafe.naver.com/sbartspace

 

 

작가노트
공유된 삶을 살아가며 여러 역할에 흩어진 나를 복원하는 공간으로써 ‘자기만의 방’은 시작되었다. 나의 공간이지만 가깝게는 나의 친구, 넓게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온전히 나로서의 삶이 유지되는 최소 공간으로써의 방. 그곳에서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조건으로 시간과 공간을 떠올렸고, 공간을 벗어나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나와 같이 결혼을 한, 혹은 (내가 아닌)다른 것들이 시간을 많이 사로잡고 있는 친구에게 가장 먼저 편지를 썼다. 질문자인 나는 발신자가 되고, 질문을 받는 친구들은 수신자가 되어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나만의 방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을 찾아 한 동안 자리 잡은 공간에서 완성 되었다. 그곳에서 완성된 채로 편지는 곧바로 보내졌는데, 그렇게 해서 나의 방에 초대된 상대가 곧 수신자가 되는 셈이었다. 편지가 한 동안 나를 떠나 있을 때, 나는 그들과 나누고 싶은 쉼의 형태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되돌아왔을 때 나는 그들의 수신자가 되어 그들이 말하는 방의 형태를 주변에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법으로 작업은 진행되었다. 곧, 수신자가 발신자가 되고, 발신자가 다시 수신자가 되는 네트워크의 순환(이후, 링크)의 형태는 내 방을 채우는 빛과 바람 같았다. 방 안에 적당한 시간에 찾아오는 빛처럼 다녀갔고, 창문을 열면 들이는 바람처럼 채워졌다.
나를 복원하는 최소 공간으로써 방을 정의내리고 시작된 이 과정 안에서 나는 적당한 것들이 곁에 있는 선택적 시간이 내게 쉼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친구들이 초대되는 형태의 최소 링크를 열어두고, 그들과 나의 시간이 선택적일 때 이 과정이 통과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편지는 각자의 시간에서 열어보는 여유 있는 시간을 공유한 것 같다. 적당한 시간에 열어둔 창문처럼 각자의 바람을 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자기만의 방’은 나보다 100여 년 앞서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의 저서 제목에서 차용해 왔다. 책에서는 시간이 흐른 뒤의 나도 여성으로서 와 닿는 부분들이 제법 있는데, 그 중에서 특히 가장 은유적이라고 느꼈던 ‘방’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여전히 역할을 부유하며 하루를 통과하는 나에게 온전히 나의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으로써 방이 있다. 그 의미는 이미 버지니아 울프를 떠나 변화했을 수 있지만,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한 조건의 하나라고 이야기되는 어떤 면에서 닮아있다.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작업의 과정이자 전시의 시작이 된다. 전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작가에게는 방이 되는 것이다. 전시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시간이 일정하게 공유되는 장소로써 나만의 방이 임시적으로 열리고, 그곳에서 조금 더 넓게 우리의 이야기들이 자리하는 형태로 채워지리라 기대해 본다. 마치, 창가에 다녀가는 빛처럼, 방안에 채워지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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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0609-유지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