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展

 

 

 

갤러리 소소

 

2018. 4. 28(토) ▶ 2018. 5. 27(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92 | T.031-949-8154

 

 

약 이십여 년 전에 제작한 드로잉을 펼치는 작가는 무척 상기된 모습이었다. 둥글게 말려 있던 작품에 쌓인 시간을 거스르면서 다시 평면으로 펼치는 일은 작가가 프랑스에서 보낸 청춘의 시간으로 되돌아 가 보는 것이었고, 이것은 또한 그가 그간 구축한 작품 세계의 근간을 되짚어 보는 일이었다. 작업실과 수장고에서 침묵하고 있던 드로잉은 양호한 상태였고, 목탄과 픽사티브 그리고 유화와 밀랍의 냄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꾸준함과 성실함을 미덕으로 서른 살의 작가는 매일 교문이 열릴 때 학교로 들어갔다가 교문이 닫힐 때 집으로 돌아왔다. 프랑스어를 완전히 습득하지 못한 채 시작한 학교 생활은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순진한 영혼에게 들이닥친 혹독한 전쟁터였고, 흔들린 자존감의 끈을 애써 부여 잡은 작가 앞에 우뚝 솟은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왔다.

생물학적으로 프랑스 사회에 이방인이었던 작가는 당시 미술학교에서 지양하던 평면 작업을 계속해 나가기로 결정하면서 예술적으로 ‘스스로 추방된 자’가 되기로 한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중세 도시의 풍경은 자기화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타자들이 사는 세상의 풍경이었다. 돌로 된 아름다운 오래된 건물의 창은 내부가 들여다 보이지 않는 검은 빛이었고, 창은 곧 벽이었다.

작가는 학교 작업실에 버려져 있던 구겨진 크라프트 포장지 위에 검은 목탄으로 창을 그렸다. 창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그는 창의 형태에 집중하기 보다 창의 어두움에 주목하였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올려다 본 창이 내포하는 단절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크라프트 지의 온화한 베이지 색과 목탄의 검은색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아슬아슬하게 사각거리는 크라프트 지에 묵직하고 진중하게 얹은 검은 목탄. 수평하지 않게 자른 종이에 어긋나게 그려지거나 온전하지 않은 모습으로 어둡게 표현된 창. 종이의 양쪽 끝에서 끊긴 비연속적인 창문은 작품에서 작품으로 이어졌다. 욕망이 단절되고 거부된 불투명한 창은 외롭고 고독한 이방인의 산책길을 따라 다녔다. 구체적으로 방향성과 진행을 지시하는 신호등, 길 안내판과 거리의 가로등들도 그의 시선에는 방향을 잃은 도시의 영혼이 난파되어 떠다니는 유령 섬과 같았다. 페인팅에 종속되지 않은 주체적인 그림이며 습작이 아닌 완성작으로서의 이들 드로잉은 이후 보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파사드(façade)’로 발전하게 된다.

작가는 매끈하되 거칠거나 흘러내린 것, 이어지되 비연속적인 것 혹은 어긋나되 연결되는 것 등에 끌린다. 달의 뒷면을 궁금해 하듯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나 물체나 현상의 외형이 생성해 내는 그림자를 눈 여겨 보는 것이다. 이러한 상반된 경향성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충돌 없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 ‘양가감정’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비롯된 멜랑콜리는 그가 사랑하는 상태이자 존재 자체로서 작품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작업실에서 쌓인 감정의 피로를 떨쳐내기 위해 킬링 타임용 액션 영화를 즐겨 보는 작가는 그 스스로가 작품을 구성하는 가장 큰 중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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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18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