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미술관 20주년:대전미술아카이브

 

대전현대미술의 태동-시대정신

 

 

 

대전시립미술관 1~4전시실

 

2018. 1. 19(금) ▶ 2018. 3. 11(일)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대로 155(만년동) | T.042-270-7370

부문 | 4그룹 20작가 회화, 설치, 재현 작품30점, 자료 100여점, 이미지 재현 800여점, 인터뷰 동영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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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대미술의 태동_시대정신

- 기록이 사라진 역사는 지속되지 않는다 -

 

대전시립미술관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대전미술아카이브전인 <대전현대미술의 태동_시대정신>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대전현대미술의 전개와 발전을 주도하였던 <19751225>, <르뽀동인회>, <대전‘78세대>, <금강현대미술제> 등 4개 그룹의 활동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그룹들의 미술운동은 자생력을 갖추기 시작한 1970년대 대전지역미술에 대한 인식의 틀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평면, 입체, 설치미술, 퍼포먼스를 포괄하는 이들의 다양한 작업을 리플렛, 사진, 활동자료, 인터뷰, 현장 재현을 통해 입체적으로 선보임으로써 당시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대전은 경부선 철도의 건설을 계기로 도시형성과 발전이 이뤄진 곳으로 미술역사 역시 그리 길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도시의 팽창과 함께 학교가 늘어나고 미술교사들이 유입되면서 시작된 대전지역은 광복 전후로 미술활동이 있었지만 그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 1970년에 이르러서야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경제 성장과 함께 대전미술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다. 전후 1세대를 스승으로 하여 육성된 2세대는 서울의 미술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다시 대전에 정착하게 되고, 신진작가들과 함께 종전과 다른 활동을 펼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또한 1971년 출범한 <충청남도미술대전>은 ‘신인등용문’으로서 많은 미술작가들을 배출하여 대전미술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1973년 목원대와 숭전대(현 한남대)에 미술과가 신설됨에 따라 자체적으로 미술 인구를 교육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오랫동안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던 대전미술이 자생력을 갖추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번 대전미술아카이브전시는 대전미술이 현대적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점에 있던 미술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소개하는 4개 그룹은 자생력을 갖기 시작한 대전미술에 급진적 양상의 미술운동을 전개하며 현대적 면모를 갖추는 전환점이 된다. 이들은 대전지역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오브제 사용, 설치미술, 해프닝과 이벤트, 퍼포먼스, 영상, 그리고 실험성 짙은 야외 현장 미술들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전통적인 미술방식에 저항하며 시대정신에 입각한 물음을 던지고, 사유와 당위성을 행위로 표현하는 미술작업을 통해 대전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혀나가게 된다. 당시 시민들이 보내는 이들 작업에 대한 당혹감과 무관심,  냉대에도 불구하고 이 그룹들은 시대변화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일련의 미술활동을 전개해 간다. 60, 70년대 실험미술 혹은 탈평면미술의 등장은 한국 모더니즘의 새로운 전개에 주요한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개인적, 집단적, 혹은 지역적인 발생에 따라 이들 미술은 개별의 논리와 독자성을 갖추고 진행되었다. 대전에서 발생된 이 4개의 그룹이 독자성을 띈 세대의 발언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대전현대미술의 태동이라 조심스런 설정으로 이 전시를 시작하려 한다.       

 

1998년 개관한 대전 시립미술관은 작품 수집, 보존, 연구, 전시, 교육이라는 큰 틀의 운영 방식을 유지하면서 대전미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자 그것을 대변할 자료 수집과 더불어 연구하고 보존, 정리하는 <대전미술아카이브>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의 특징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2011년, 2012년, 2013년 전시도 이와 같이 진행하여 많은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대전지역 미술사를 뒷받침할 층위가 한층 두텁게 되었다.

이제 모아진 자료를 토대로 한국미술사내의 커다란 범주에서 종으로 횡으로 엮어서 대전미술사를 기술할 시점에 와있다. ‘기록이 사라진 역사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때 기록된 자료는 한 지역의 미술사를 조명할 수 있는 주요한 단서가 되는 가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시대의 기록과 정신을 기억할 수 있다.

 

 

전시개최 의미

‘아카이브(archive)’ 영단어 뜻 그대로 ‘특정 분야의 자료를 모으는 일’ 또는 ‘자료의 수장고’, 보관되어 있는 ‘기록’을 뜻합니다.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기록화하며 최종에는 디지털화하여 자료의 영구성을 지님과 동시에 그 정보를 대중과 공유화하는 것은 미술의 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프트웨어적인 또 하나의 미술관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기에 미술관에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귀중한 미술자료가 분산되거나 인멸되는 현상이 심각한 시점에서 아카이브사업은 대전미술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큰 사명과도 같다.

  

 

 

 

 

해프닝 《19751225 그룹결성 전초전》, 1975,(대전역광장)

 

 

야외작업 <환경에의 역습>, 1976, (대평리 금강백사장)

 

 

야외작업 <1~11에의 상황>의 야외작업, 1976, (내탑)

 

 

야외작업 <계획적인 흔적>의 야외작업, 1976, (내탑)

 

 

《19751225 그룹전》의 리플렛 겉 표지, 1976

 

 

《제2회 19751225그룹전》의 전시회사진, 1977

 

 

《르뽀동인회 창립전》의 리플렛 표지, 1976

 

 

르뽀동인회 좌담회 사진, 1981,(신동주 화실)

 

 

《제2회 르뽀동인전》의 리플렛 속지, 1977

 

 

《르뽀동인초대전》의 리플렛 겉 표지, 1982

 

 

《르뽀동인초대전》의 리플렛 속지, 1982(근대화랑)

 

 

《대전‘78세대전》의 리플렛 겉 표지, 1978

 

 

《제2회 대전‘78세대 서울전》의 리플렛 속지, 1979

 

 

세미나 <오늘의 미술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진, 1978(강사:김복영)

 

 

대전‘78세대전 전시회장 사진, 1978

 

 

<대전‘78세대 현장전>의 사진, 1981 (안치인의 작업과정)

 

 

<대전‘78세대 현장전>의 안내장 안쪽, 1981

 

 

《금강현대미술제 창립 야외현장전》의 리플렛 표지, 1980

 

 

《금강현대미술제 창립 야외현장전》의 리플렛 속지, 1980

 

 

《금강현대미술제(대전전)》의 리프렛 속지, 1981

 

 

《금강현대미술제 창립 야외현장전》의 포스터, 1980

 

 

 

 

 

 
 

참가 그룹

 

19751225그룹(1975)

대전권에서 현대미술 그룹이 자생적인 씨앗을 터트린 것은 서양화비구상그룹인 19751225이다. 당시 대학 4학년이자 3인조 동인이었던 이종협, 정장직, 정길호 등은 “현대미술운동을 흥미롭게 전개해보자”라는 슬로건으로 1975년 12월 25일 대전역 광장에서 오후 사이렌 소리와 함게 해프닝(Happening)을 시작으로 창립하게 된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단속과 통제가 심한 제4공화국 시기에 현실부정이 강한 다다와 저항에 관심이 많았고 미술적 실험을 감행하였다.

19751225그룹은 1976년 5월 7일 홍명미술관에서 1회 창립전을 개최한다. 이들은 이벤트(EVENT)라 명명한 2건의 야외행위미술을 팜프릿에서 소개했는데 대평리(76‘1.18)와 내탑(76’ 2.15)에서 현장 작업을 기록한 사진 등이었다. 이들은 1992년 마지막 전시를 치르고 해체될 때까지 14회의 전시를 가졌고 주요멤버로는 신동국, 유병호, 이종협, 정길호, 정장직 등이 활동하였다. 19751225 그룹은 해프닝, 이벤트를 통해 탈평면화 된 다양한 방법론으로 전통의 재료와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후 금강현대미술제 등에 핵심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르뽀동인회(1976)

르뽀동인회은 대전의 ‘추상화 1세대’ 작가들이다. 1976년 5월 19일 대전문화원 제2전시실에서 창립전을 개최하였고 당시 회원은 권영우, 박명규, 박봉춘, 신동주, 유근영 등 5명이었다. 대전에서는 처음으로 추상회화를 시작한 이들은 연필, 붕대, 풀, 색연필, 탁본 등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등 신선한 미의식을 심어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식의 구상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대전지역에서 이들의 작업은 관객과 주변 작가들에게는 냉소적으로 비쳐졌다. 르뽀는 ‘르포르타쥬’의 준말로 ‘현지 또는 현장’이란 뜻으로 ‘대전의 구상현장에 새로운 물결을 넣어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르뽀동인회는 1976년 창립전을 가진 이후 1990년 《15주년 기념 100호전(MBC문화공간)》까지 15회의 전시를 개최하였고,  1982년 대전의 전위그룹들을 망라한 《르뽀+19751225+대전78세대와의 연합전》을 대전시민회관에서 열었으며 이후 여타 그룹(광주 에뽀끄)과의 연합전, 남부현대미술제 등에 참여하며 작품활동을 확장해 나갔다.

 

대전 ‘78세대(1978)

1978년 목원대학교 선후배를 중심으로 한 미술인 12명에 의해 ‘대전 78세대’라고 하는 토탈 아트 그룹이 태동되었다. 당시 AG 그룹 멤버였던 김한(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와 1세대 로지컬-이벤트의 창시자인 이건용, 해프너 였던 성능경 그리고 미술평론가 김복영이 대전 78세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건용은 학생들을 조직하여 언어분석철학과 현상학, 조셉코숫의 미술이론 등 60-70년대의 실험미술과 개념미술의 이론과 논리를 학습해 갔다. 새로운 미술이론을 접한 ‘78세대는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여 행위 이벤트와 설치작품을 발표하고 지역내 젊은 작가들과 연계하여 서울과 또 다른 지역의 광범위한 동세대의식을 확장하여 갔다. 대전’78세대는 행위와 설치의 이론적 고찰 및 이에 대한 방법론을 탐색하며 나무, 노끈, 합판, 못, 거울, 천 등 광범위한 오브제와 실천으로 자신들의 사유를 현실화시켰다.

대전‘78세대 창립전 참여작가로는 강정헌, 김익규, 김철겸, 송일영, 신현태, 안치인, 이종봉, 장금자, 정상희, 지석철, 최덕희, 최병규였으며 해가 바뀌면서(1979) 이두한, 이재우, 김영호, 홍현표, 임근우, 진정식 등이 동참하게 된다. 대전 ‘78세대의 활동을 보면 78년부터 86년까지 정기적인 전시회 9회 세미나 4회, 야외작업 3회, 타그룹과의 연합전 1회, 타지역 초대전 3회 등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금강현대미술제(1980~1981)

1980년 11월 16일부터 22일까지(6박7일) 작은 시골 공주의 금강 백사장에서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이삼십대 젊은 작가들이 모여 《금강현대미술제》(총감독 임동식)를 개최한 후 1981년 4월 18일부터 30일까지(4.18~23 입체전, 4,24~30 평면전) 대전전(총감독 홍명섭)이 대전문화원에서 열렸다. 임동식과 홍명섭, 유근영 등이 주도한 《금강현대미술제》는 탈평면화된 야외현장미술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임동식의 한국청년미술작가회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금강현대미술제》는 전위적인 움직임의 큰 개념을 ‘작가가 자연의 질서와 현상, 흐름에 합류해 이루어내는 작품제작과정 즉 ‘야외현장미술’이라 명명하여 산, 바다, 강변, 등 야외작업을 채택하여 활동’하는 것을 강령으로 삼았다. 중력, 시간, 불과 바람, 온도, 물의 흐름, 빛 등을 광범위하게 작품에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공주전) 평면과 이벤트 등 토탈아트적 성향으로 소통을 이루는 작품(대전전)을 제시하였다. 19751225그룹과 대전‘78세대 등 새로운 시대정신을 표방하며 활동했던 대전과 공주의 젊은 작가들이 《금강현대미술제》를 운영하거나 전시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2회전을 끝으로 막을 내린 《금강현대미술제》는 대전현대미술에 정신적이 자양분이 되어 이후 다양한 활동들이 펼쳐지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vol.20180119-대전현대미술의 태동-시대정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