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 展

 

COSMOS-시간을 달리다Ⅱ_91x60.8cm_캔버스위에 아크릴릭_2017

 

 

갤러리 고도

GALLERY GODO

 

2017. 9. 20(수) ▶ 2017. 9. 26(화)

서울 종로구 수송동 12번지 | T.02-720-2223

   

www.gallerygodo.com

 

 

COSMOS-항해_116.8x91cm_캔버스위에 아크릴릭_2017

 

 

차이와 반복을 통한 공간의 생산, ‘지금 여기’서 다른 세상을 보다

 

박승규(춘천교육대학교)

1.  그림을 본다. 그림을 보며 상상한다. 그림 너머에 있을 화가를, 그림을 통해 화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세상을. 하지만, 쓸데없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사라지고, 화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세상도 신기루가 된다. 남아있는 것은 나와 우리들뿐이다. 그림이 관람자와 마주하는 순간에 화가는 죽었다고 말하는 리오타르의 주장을 상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화가가 아닌 나와 우리의 세상을 이미지화(imagination)한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결국 나를 보는 것이고, 내가 꿈꾸는 세상을 확인하는 셈이다. 그림을 매개로 잊고 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고, 반복된 일상 속에 존재하는 작은 차이에 주목한다. 그림이란 매일같이 흐려지는 우리의 마음 속 거울을 닦게 만들어주는 세상을 비추는 창문이기 때문이다. 다마스쿠스의 사울이 자신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금 인식하였듯이 나 역시도 그림을 대하면서 내 눈에 덧씌워져 있는 비늘을 벗겨내고자 한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박동진의 그림을 본다. 그리고 상상한다. 그의 그림 속에 담겨져 있을 나를.

 

2.  공간. 박동진의 그림을 보며 생각한다. 비어있지만, 비어있지 않은 역설적인 개념. 그곳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곳이지만,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공간은 공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아르키타스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공간 안에 있다’고 말한다. 아르키타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가 공간인지 모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어느 공간을 점유한다. 그럼으로써 세상에 존재한다. 인간이 누구이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은 내가,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담론을 넘어 구체적인 공간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공간은 자아의 연장이다.

몇 년 전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지진과 해일은 사람들의 삶터를 폐허로 만들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집과 일터만을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니다. 그 공간에 담겨있던 개인의 기억마저 앗아갔다. 그 공간을 토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마저 황폐하게 했다. 지진과 해일로 잃어버린 것은 삶터가 아니다. 그 공간에 거주하고 있었던 인간 존재 자체이다. 공간은 인간의 삶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터가 파괴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곳에 있던 나도, 우리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내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그곳에 있던 공간도, 시간도, 세계도 모두 무너졌다. 공간의 소멸은 인간 삶의 소멸을 의미한다.

공간에 대한 관심은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을 넘어, 세상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공간은 나란 존재의 기반이지만, 우리 모두의 삶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박동진의 그림에 등장하는 말은 다양한 공간을 전유한다. 일상적인 공간과 일상적이지 않는 공간을 유영한다. 어쩌면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고 싶고, 다양한 공간을 생산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지 모른다. 아름다움이 감각을 통해 이념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박동진은 말의 유영을 통해 다양한 공간의 생산을 도모한다. 말이라는 동일한 형상의 반복적인 재현.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반복되는 부조리함이 넘쳐나는 일상공간을 넘어, 새로운 공간을 지향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작은 차이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반복적인 우리의 삶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새로운 공간을 생산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진화하고 있음을 말한다. 매일같이 다르지는 않지만, 그런 삶의 과정에서 담겨있는, 보이지 않았던 삶의 의미를 말의 유영을 통해 말하려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임무임을 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heaven-여행_50x40cm_캔버스위에 아크릴릭_2017

 

 

3.  차이와 반복을 생산하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니다. 박동진은 다양한 장치로 이를 표현한다. 색깔, 표현방식, 재료 등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말의 형상은 우리가 머무는 공간의 차이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이다. 바로크 미술에서처럼 말은 배경에서 솟아오르고, 색들은 우리의 다양한 본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다양한 차원의 세상이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다양한 세계 속에 거주하는 우리의 삶은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서로의 삶에 의지해 우리 삶을 살아간다. 말의 겹침은 그런 우리 삶의 표현이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천착은 내가 혼자가 아님을, 나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나 혼자만의 삶으로는 불가능함을 말한다.  

여러 마리의 말이 생산하는 일상의 작은 차이가 생산하는 의미는 단지 근대적 주체로서 자신만의 삶을 지향하는 우리의 인식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한다. 생각하고 있는 나를 의심하지 않음으로써 지식의 기원이 개인에게 있음을 천명한 데카르트적인 근대적 인식이 옳은지에 대해서 묻는다. 적어도 진실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수긍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공공 을 담고 있어야 함을 말한다. 자본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이 전부가 아니라, 힘없고 평범한 시민이 생산한 진실 또한 소통되어야 함을 말한다. 하나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들이 전유하고 있는 다양한 공간의 차이가 다양한 목소리의 차이를 생산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임을 말한다. 그렇기에 박동진의 말은 혼자가 아니다. 여러 마리의 말이 함께 달린다. 지금 여기에 정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해, 새로운 공간을 생산하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달린다. 소리 높여 외치지만 들리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리꾀르(P. Ricoeur)는 파울로 우첼로가 그린 말 그림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의 말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은 추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말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말의 모습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말의 형상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첼로는 말에 대한 새로운 혁명적인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 말한다. 우첼로의 그림은 우리가 말이라 생각하고 있는 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말의 이미지를 그리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첼로의 말 그림은 단순하게 대상의 재현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하나의 기호라는 것이다. 리꾀르의 우첼로 해석을 토대로 한다면, 박동진의 말은 이미 혁명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박동진의 말은 우첼로의 말처럼 현실적이지 않다. 그의 말은 실루엣의 연속이다. 우리 삶의 일상이 얼마나 단순하고, 반복적인지 알기 때문에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반복을 통한 차이의 생산. 일상 공간을 넘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박동진이 그리고 싶었던 세상인지 모른다. 공간을 유영하는 말을 통해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일상의 겹침이 새로운 세상을 견인하는 혁명의 시작임을 말하는 것 같다. 혁명이나 변화는 거창하고, 대단하다. 하지만, 그런 거창함의 시작인 우리 일상적인 삶은 소박하다.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의 과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그런 거대한 물줄기 앞에 역사책에 기록되는 사람이 서있을 뿐임을 우리는 안다. 순수한 공간을 거닐고, 우주를 거닐고, 다양한 공간 여행을 떠나는 말을 통해 박동진은 그런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말하려 한다. 우리의 평범한 삶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며, 모든 혁명의 출발점임을. 매일의 반복되는 삶의 과정에서 생산되는 차이가 새로운 세상의 출발임을 말한다.

그의 말은 단지 일상적인 공간만을 유영하지 않는다. 때로는 천상을 거닐고, 우주를 거닐고, 순수한 공간을 거닌다. 천상과 우주와 순수한 공간은 어쩌면 인간이 도달하기 어려운 공간일지 모른다. 이런 공간은 개념적으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천상과 우주와 순수한 공간을 희망한다. 현재를 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간의 모습이다. 단테가 신곡에서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으면서 경험하는 천상의 공간은 현실 속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박동진은 천상의 공간을, 우주라는 공간을, 순수의 공간을 표현한다. 도달할 수 없지만, 도달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는 순간에 우리는 영원히 그런 공간을 생산할 수 없기에.  

 

 

violet space-run_65x53cm_캔버스위에 아크릴릭_2017

 

 

4.  박동진의 말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실루엣을 통해 보여 지는 말은 어딘가로 달려간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 잊으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다. 매일같이 반복적인 삶을 살지만, 정작 나는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공간을 생산해야하고, 그런 공간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는 나은 삶의 과정을 살아가길 희망한다. 하지만, 쉽지 않음을 박동진은 안다. 그렇기에 이 순간에 박동진은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말이 아닌 유니콘으로. 무한대의 힘을 갖고 있는 유니콘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생산하려 한다.

유니콘은 전설 속 동물이다. 유니콘이 갖고 있는 힘은 무한하다. 유니콘의 뿔은 적을 만나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수많은 상대를 제압한다. 그렇기에 유니콘을 잡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유니콘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순결한 처녀를 미끼로 사용하는 것이다. 유니콘은 순결한 처녀의 냄새를 맡으면 처녀 앞에 앉아 무릎을 베개 삼아 잠을 잔다. 그렇기에 유니콘은 정결과 청순의 상징이다. 때로는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기도 하고, 때로는 성모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예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유니콘의 등장은 또 다른 박동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유니콘이 그려져 있는 공간은 막혀있다. 유니콘은 벗어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유니콘을 가로막고 있는 기하학적 형상은 마치 순결한 처녀의 사랑 같다. 유니콘을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사랑의 힘이 유니콘을 제어하고 있는 것 같다. 청순한 사랑을 찾아 숲속을 헤매는 유니콘의 모습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남아있는 것이 희망이라 신화는 말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 마주하는 희망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힘든 현실을 견딘다.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모티브인 사랑의 힘은 우리가 꿈꾸는 혁명도, 우리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공간의 생산도 가능하게 한다.  

유니콘은 한 송이 백합꽃과 마주한다. 현실에서 순수한 사람과 순수한 사랑에 직면한 우리 역시도 유니콘처럼 그 자리에 머물 길 희망한다. 순수한 사람과 순수한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랑의 힘이 오늘같이 탁한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임을 우리는 안다. 박동진 역시도 안다.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유니콘이 갖고 있는 무한대의 힘이 그릇된 방식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정주 공간의 부재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현대인을 양산하고, 동네의 부재가 이웃에 살고 있는 아이의 죽음을 가능하게 하고, 익명성의 증가가 묻지마 범죄를 양산하고 있음을. 이런 부조리한 사회적인 문제가 유동하는 현대인들이 자신을 확인받을 수 있는 근원공간의 부재에서 초래되는 것임을 간파한다.

그렇기에 박동진에게 말은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만, 유니콘은 정주한다. 새벽빛이 내리쬐는 숲에, 나뭇잎이 하늘거리는 자연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형상 속에. 유동성이 증가하고, 한 공간에 정주하지 못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에 대한 연민이다. 정주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생산하는 부조리한 모습들에 대한 비판이자, 대안인 셈이다. 나를 확인받을 수 있는 근원적인 공간의 부재가 불러오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희망이다.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무한대의 힘을 가진 유니콘을 막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사랑이다. 연약하고, 유약해보이지만 순수한 처녀가 갖고 있는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무한대의 힘을 가진 유니콘을 막아 세울 수 있고, 부유하는 현대인을 정주하게 한다.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순수한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다. 유약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힘을 지닌 순수한 존재의 출현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초인의 모습인지 모른다. 그런 초인의 모습을 박동진은 유니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벽-광야에서_116.8x91cm_캔버스위에 아크릴릭_2017

 

 

5.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다. 아이들은 크레용이나 연필 등을 쥐면 대담해진다.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거침없이 그린다. 성장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욕구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화가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런 욕구를 잊지 않고, 아이들이 그리고자 했던 세상을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화가가 아닐까? 그렇기에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우리와는 다르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다른 공간을 동경한다. 그들은 감각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이념을 담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전달하고, 관람자와 소통하기 원한다.

박동진의 그림을 본다. 데이비드 호크니(D. Hockney)가 브리들링턴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작업을 이어갔던 것처럼 그의 그림을 열심히 본다. 오랫동안 본다. 나는 감각적인 아름다움 속에 담겨있는 박동진의 이념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를 통해 내 눈에 씌워있던 비늘을 걷어낼 수 있었다. 세태에 흐려져 가던 양심의 거울을 닦을 수 있었다. 화가 박동진이 고맙다.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박승규

 

 

천상을 거닐다_151x91cm_캔버스위에 아크릴릭_2017

 

 

 

 

 
 

박동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30회(뉴욕, 상해, 이스탄불, 서울, 인천, 대구, 춘천) | 1989 윤갤러리(서울) | 1990 태백화랑(대구) | 1993 인데코화랑(서울) | 1996 동아갤러리(인천) | 1998 신세계미술관(인천) | 1999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 2000 신세계갤러리(인천) | 여의도종합전시장 한국예술관 | 2001 연수구청 전시관 | 예술의 전당(서울) | 2003 세종문화회관(서울) | 2004 신세계갤러리(인천) | 2005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전시실 | 2006 춘천 아트 플라자(춘천) | 2007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 PG 갤러리(이스탄불) | 2008 연정갤러리 | 춘천문화예술회관(GAF) | 상해 전청화랑(상해) | 평생학습교육관 (인천) | 갤러리고도 (서울) | 2009 Park dong jin NY(아트게이트 갤러리) | 2010 구암갤러리 (춘천) | 박동진 개인전(부산롯데백화점갤러리) | 이노갤러리 (서울) | 모노갤러리 (천안)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인천) | 2011 갤러리고도 (서울) | 2012 싸이먼갤러리(서울) | 줌갤러리(서울) | 송암아트리움(춘천) | 2013 세종문화회관(서울) | Houston fine art fair(Goorge R. Brown convention Center, Houston, TX) | 2014 박동진 작품전(동인천고등학교 오동나무갤러리) | 박동진 작품전(서울 코엑스 Hall B) | The13th Korea international Art Fair(코엑스) | 박동진 개인전(지오갤러리) | Bank Art Fair(Pan Pacific Hotel) | 2015 박동진 개인전(비앙갤러리) | INSPIRING LIFESTYLE WITH ACCESSIBLE ART:박동진 작품전(두바이 월드트레이드센터) | 박동진 개인전(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 2016 The Solo Exhibition PARK DONGJIN(미국 MK gallerry) | 2017 The Solo Exhibition PARK DONGJIN(LA western gallerry) 

 

수상 | 1987 1987 제 10회 중앙미술대전 특선 (호암미술관)중앙일보사 | 1988 1988제 11회 중앙미술대전 대상 (호암미술관)중앙일보사 | 1994 1994제 1회 공산미술제 특선 (동아미술관) | 1995 1995대한민국 청년미술제 본상 (대한민국청년미 제 운영위) | 2012 올해의 미술작가상(세종문화회관) 광화문아트포럼

 

작품소장 | 국립 현대 미술관 미술은행 | 인천 문화 재단 | 인천광역시 부평구청사 | 인천 터미널 공사 | 춘천교육대학교 | 춘천 이마트 | 권진규 미술관   

 

현재 | 춘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교수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앙가주망 회원 | 인천시 초대작가 | 나혜석 미술대전심사 | 환경영상미술제 실행위원장 | 인천시 미술대전 심사, 운영위원역임 | 강원도문예기금 심의위원 역임 | 터키-인천 현대미술 국제교류전 운영위원장 역임 | 신사임당 미술대전 심사 | 인천아트페어 운영위원장 | 인천시미술대전심사

 

 
 

vol.20170920-박동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