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스페이스선+ 추천작가전

 

고윤숙 展

 

<화석의 여름-김시종 시에 부쳐>

 

화석의 여름_130.3x97cm

 

 

삼청동 스페이스선+ 갤러리

 

2017. 3. 1(수) ▶ 2017. 3. 14(화)

Opening 2017. 3. 1 오후 5시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삼청로 75-1 | 02-732-0732

 

 

 

화신(化身)_100x72.7cm

 

화신(化身)

 

가령 번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비가 있어

나뭇가지 그대로 말라 버렸다 한들

날개는 서서히 절반의 몸인 채로 바람과 어우러지고

주변에 비상(飛翔)을 꽃가루처럼 흩트리며

잎새 깊숙이 스러지겠지

(‘화신’ 1연)

 

 

 

<화석의 여름-김시종 시에 부쳐>

2016년 10월, 이진경 선생님을 통하여 한 시인을 알게 된다. 그리고 2017년 1월 김시종 시에 관한 강연을 들으며 작업의 주제를 급히 변경하게 되었다. 시인의 시가 그의 삶의 궤적이듯이, 그림 또한 당시의 작가의 삶의 고민과 그가 접하는 세계를 담는 것이기에, 늘상 그랬듯이 나의 작업 또한 당시 나를 가장 매료시켰던 것들을 회화적 언어로 소화시키고 생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어록을 주제로 한 작업의 전시는 나중으로 미루게 되었다.

 

어찌보면 이번 작품들은 시인 김시종의 시의 세계로 다가가려는 노력, 그 황홀하면서도 두렵기도 한 ‘심연’의 세계를 ‘마주하겠다’는 기쁜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속 머뭇거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는 것일까. 시를 읽고 또 읽으며 시어 하나 하나를 테이프로 감은 검지 손가락으로 밑줄 그어가며 감촉하는 것일 게다. 점자를 읽듯, 지금의 시력과 시야로는 감지하지 못할 시인 김시종의 눈길을 따라 가고자 다른 감각들을 불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화폭을 향하여 수직으로 엎드려, 기어가다시피 작업하는 나날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 여름에 그는 오노 도자부로의 추천으로 ‘오사카문학학교’ 강사 생활을 시작했고, 내가 4살 되던 해, 나의 생월인 8월에 그는 세 번째 시집인 <장편시집 니이가타>를 발간했다. 내가 화가로서의 자질과 꿈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고민하던 초등학교 시절은 1980년 광주에서 대학살이 자행되던 때였다. ‘거기에는 언제나 내가 없다’(1983년 <광주시편> ‘바래지는 시간 속’) 라고 하는 그와 같이, 나 또한 스무 살이 되기까지 거기에 없었다. 그 끔찍한 사태와 마주치고서야, 식민과 분단과 휴전의 상처를 여전히 앓고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내가 없는 ‘여기’를 발견하게 된다.

 

 

산_90.9x65.1cm

 

 

들썩이는 깊은 이 밤

수백 수천의 뱀을 품어

물어뜯긴 대지의 독(毒)은 없는가

산이여

(‘산’ 5연)

 

 

1949년 제주 4.3 항재 이후 일본으로 밀항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은, “내가 일본어로 시를 쓰는 일에 매달리는 것도 다시 일본어로 되돌아온 자신을 의심하는 내 안의 응시가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며, “회천을 목격했던 ‘8.15’와 아직 당도하지 못한 ‘해방’이 양면의 거울처럼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어눌한 일본어에 어디까지나 투철하고, 유창한 일본어에 길들여지지 않는 자신일 것”,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일본어에 대한 그의 보복이라고 한다.

그는 결국, 자신이 어디에 살든, 자신이 살아내야 하는 시간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여,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로서나 혹은 현재로 불러내어 동일화하고 계열화해 버리는 기억으로서가 아닌, 여전히 응축되어 가라앉은 시간으로서 자신의 부재를 시어로서 창작해낸 것이 아닐까.

 

“시란 소통의 공간으로부터, 그 공간을 채우는 언어로부터 빠져나온 말들이다. 그 말들에 실려 공유된 양식의 세계로부터 빠져나온 사물들의 흔적이다. 그래서 시는 본질적으로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다. 시는 소통의 언어가 아니라 그것을 교란시키는 언어고, 소통하기 위해 발화된 말들이 아니라, 그것을 정지시키는 침묵이기 때문이다. 그 말들을 잠식하며 지워가는 공백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은 시가 아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인 것이 사유가 아닌 것처럼. 사유가 양식을 파괴하는 것처럼, 시는 공유된 의미를 밀쳐내고 공유된 감각을 마비시킨다.”(이진경 2017년 1월 <김시종:어긋남의 존재론 혹은 잃어버린 존재를 찾아서> 6강 중 1강 강의록 2~3쪽)

 

 

붉은 혓바닥(산)_72.7x53cm

 

붉은 혓바닥

 

이런 밤 뱀은 어찌 지내려나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울적한 날

뱀은 어디서

어떤 품새로 뾰족한 대가리 쳐들고 있으려나

 

도시가 무너진 날

화염에 쫓기던 날

마음이 허기져

기어코 벗이 미쳐 버린 날

책상 한 귀퉁이에서 해도(解雇)를 견딜 때

잠자코 놓인 어머니의 얇다란 편지에 눈길 머물 때

아내가 말문을 닫고

괜스레 고향이 멀어질 때

 

뱀은 어찌 지내려나

번득이는 눈알은 어딜 응시하고

낌새의 무엇을 붉은 혓바닥은 더듬으려나

(‘산’ 1, 2, 3, 4연)

 

 

철학자 이진경은 김시종의 시를 만남 감동을 ‘밀물로 덮쳐오는 파도라기 보다는, 오는 건지 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아련한 잔향’으로 묘사하며, ‘시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있다. ‘공유된 의미를 밀쳐내고 공유된 감각을 마비’시키는 시가 쓰여질 수 있는 것은 ‘시가 시인에게 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인이란 저 빠져나온 말들이 덮쳐오는 이 두려운 순간을 아름다움으로 오인하는 자들이다. 그 오인 속에서 두려움을 잊게 되는 자들이다. 혹은 그 두려움을 안간힘으로 견디며 자기에게 온 그 말들을 맏아 적는 자들이다”(위와 동일한 강의록 3쪽 중에서)

 

이러한 시는 어디서 오는가? 시는 “필경 그 시인이 만나고 부딪치는 것들로부터 생겨나 오는 것이다. 그가 사랑한 사람들과 그와 다툰 사람들, 그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생겨나는 줄 모르는 채 싹이 트고 발생하여 오는 것이다. 시인 자신이 살았고 또 살고 있는 삶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먼 곳을 떠돌다 뜻밖의 시간에 뜻하지 않은 곳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요컨대 시란 시인의 삶이 시인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다”(위와 동일한 강의록 5쪽 중에서)

시인 김시종 또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려는 나의 편력은 식민지 조선의 넓은 역사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보이지 않는 헐떡거림의 흔적입니다. 누구에게 가닿을지 모르지만 병에 담아 편지를 띄웁니다” (2016년 3월 8일, <조선과 일본에 살다, 재일시인 김시종 자전> 한국어판 간행에 부쳐 중에서)라고 말한다.

한 시인이 만난 세계 속에서 ‘헐떡거림의 흔적’으로서의 시를, 그와 같은 강도의 특이성으로 철학자 이진경의 목소리로 만났다면, 그 음성으로 전해진 시는 어떻게 ‘그림’이 되는가?

 

시인 김시종과 그 시를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흔적으로 읽어내는 철학자 이진경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그 세계를 마주하게 된 자의 목격은 어떻게 기록되는 것인가? 살아내고, 기록되고, 말해지고, 그려지는 것들은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누구에게 가닿을지 모르’는 편지를 연이어 띄우는 것일까.

 

여전히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를 되물으며, 어떻게 ‘소통의 언어’가 아닌 새로운 감각을 창출하는 것으로서, 기존의 편견과 오랜 습속을 깨는 활달한 생명으로서의 회화적 언어를 만들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카이노 다리_72.7x53cm

 

이카이노 다리

 

아버지는 손에 이끌려 건넜다

여덟 살 때.

나무 향 풋풋한 다리

강물 위에는 무수한 별이 떨어져 있었다.

전등불 환히 눈부신 끝자락 일본이었다.

 

스물둘에 징용당한

아버지는 이카이노 다리를 지나 끌려갔다.

나는 갓 태어난 젖먹이로

밤낮을 뒤바꾸어 셋방살이 엄마를 골탕 먹였다.

소개(疎開) 난리도 오사카 변두리 이곳까진 오지 않고

저 멀리 도시는 하늘을 태우며 불타올랐다.

나는 지금 손자의 손을 잡고 이 다리를 건넌다.

이카이노 다리에서 늙어 대를 이어도

아직도 이 개골창 그 흐름을 알 수 없다.

어디 오수가 이곳에 썩어

어느 출구에서 거품 물고 있는지

가 닿는 바다를 알지 못한다.

오직 이카이노를 빠져나가는 것이 꿈이었던

두 딸도 이젠 엄마다.

나도 바로 예서 마중 나올 배를 기다려 늙었다.

그래도 머잖아 운하를 거슬러 하얀 배는 다가오리.

사랑해 오사카

모두가 사랑하는 오사카, 변두리의 끝 이카이노.

(‘이카이노 다리’ 1, 2, 3연)

 

 

곧 한국어로 번역되어 발간될 김시종의 시집들과 더불어, 김시종 시인의 시에 담긴 시인의 철학적이고 사상적인 보고를 감동적이고도 새로운 언어로 풀어준 이진경 선생님의 강의록 출간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곱번째 개인전은 2008년 번역된 김시종 시선집 <경계의 시>에 실린 <화석의 여름> 시집 중에서 11편의 시를 주제로 작업하였다. 좋은 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미지, 색채를 지니고 있다.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하나의 이름으로 지칭하여 만들기 어려운 형상을 마주치게 한다.

시적인 세계 뿐만이 아니라, 그 시를 읽는 이들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접하고 창작할 수 있는 ‘심연’의 장을 열어 주신 것에 대하여 김시종 시인에게 부끄럽지만 이 자리를 그림으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시인 김시종의 약력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조선과 일본에 살다, 재일시인 김시종 자전>에 실린 연보 참조)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원산, 제주, 광주 등지에서 자랐다. 조선어를 모르는 황국소년으로서 1945년 제주도에서 해방을 맞이한다. 1948년 ‘우편국 사건’ 실패 후 제주도를 탈출해 일본으로 밀항, 이후로 일본에서 시 창작 및 [진달래] 창간 등의 활동을 한다.

 

1955년 시집 <지평선> 발간 이후, 1957년 <일본풍토기>, 1970년 <장편시집 니이가타>, 1978년 <이카이노 시집>, 1983년 <광주시편>, 1986년 <재일의 틈에서>, 1992년 <원야의 시>, 1999년 <화석의 여름>, 2001년 김석범과 함께 <왜 계속 써왔는가, 왜 침묵했는가: 제주도 4.3 사건의 기억과 문학>, 2004년 윤동주 시를 번역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출간, <내 삶과 시>를 발간한다. 2005년 <경계의 시>, 2007년 <재역 조선시집>, 2010년 <잃어버린 계절>, 2015년 <조선과 일본에 살다>를 발간한다.

 

1986년에는 제 40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1992년 제25회 오구마 히데오 상 특별상, 2011년 제41회 다카미 준 상, 2015년 제42회 오사라기 지로 상을 수상한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특별조치로 1949년 이후 49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제주도에서 부모님의 묘소를 성묘한다. 2000년 4.3 특별법이 통과되고 2003년 김시종은 한국적을 취득한다.

 

 

뜨거운 숨결(축복)_53x45.5cm

 

뜨거운 숨결

 

얼어붙은 나무 둥치의 뜨거운 숨결을

거품 부글거리는 언어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축복’ 4연)

 

 

 
 

고윤숙

 

선화예고 졸업 |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졸업.

 

단체전 | 2017 신사임당, 이율곡 서예대전 서예 한문부문(예서) 입선, 예술의 전당, 서울. | 2016 의난현예술학회대만한국미술교류전(宜蘭縣藝術學會臺韓美術交流展), 의난현, 대만. | 2016 제8회 샤샤전 갤러리이앙, 서울. | 2016 제2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서예대전 전각부문 입선. | 2016 제2회 열림 조고관금(照古觀今)전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아트센터, 서울. | 2015 제7회 샤샤전 동국아트갤러리, 서울. | 2014 의난현예술학회대만한국미술교류전(宜蘭縣藝術學會臺韓美術交流展), 의난현, 대만. | 2014 제6회 샤샤전 갤러리이앙, 서울. | 2014 제43회 이서전(이화여대 서양화과 동문전) 인사아트스페이스, 서울. | 2014 제1회 열림필가묵무(筆歌墨舞)전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아트센터, 서울. | 2013 제5회 샤샤전 선화예술고등학교 솔거관, 서울. | 2011 세계평화미술대전 서예 한문부문(금문) 특선, 전각 입선, 안산단원전시관, 안산. | 2010 제14회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한문서예(금문) 입선, 한국미술관, 서울. | 2010 제13회 신사임당, 이율곡 서예대전 전각 부문 입선,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서울. | 2010 제7회 서예문화대전 한문서예(금문) 특선,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서울. | 2009 제7회 한국서화명인대전 출품, 전각 부문 입선, 세종문화회관 별관 광화문갤러리, 서울. | 2009 제1회 경향미술협회전 서예 한문부문(전서)출품, 경향갤러리, 서울. | 2009 제13회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서예 한문부문(전서)대련 동상. 한국미술관, 서울. | 2009 제6회 서예문화대전 서예 한문부문(전서) 입선.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서울. | 2009 제4회 경향미술대전 서예 한문부문(전서) 입선, 경향갤러리, 서울 | 2008 제12회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서예 한문부문(예서)대련 특선,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서울. | 2008 제11회 신사임당, 이율곡 서예대전 서예 한문부문(예서) 입선,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서울. | 2008 “한국미술의 빛” 초대전 서양화 부문 출품, 밀라노 브레라아트센터, 이탈리아. | 2008 “한국미술의 빛” 초대전 서양화 부문 출품, 갤러리타블로, 서울. | 2008 제3회 경향미술대전 서예 한문부문(예서) 입선, 경향갤러리, 서울. | 2007 제10회 안견미술대전 서예 한문부문(예서) 입선, 서산시문화회관, 충청남도 서산시. | 2007 아트엑스포말레이시아, 서양화 부문 출품, 갤러리미즈, MECC, 말레이시아.

 

개인전 | 2017 제7회 화석의 여름-김시종 시에 부쳐, 2017 스페이스선+ 추천작가전 (갤러리 스페이스선+, 서울) | 2016 제6회 마음자리_말도끊기고생각도끊긴 (한옥갤러리, 서울) | 2015 제5회 변이의 여백, "존재의 기억의 말을 걸다" (갤러리 M, 서울) | 2014 제4회 하나의 꽃 (한옥갤러리, 서울) | 2014 제3회 花開華謝, 꽃은 피고 지고 (가나아트스페이스, 서울) | 2006 제2회 北冥有漁(북명 어) (토포하우스, 서울) | 2004 제1회 거듭나기 (경인미술관, 서울)

 

동묵헌 자암 김장현 선생님께 서예와 전각을 사사 받고 있음 | 열림서예연구회 회원 | 수유너머S 회원 | 법보신문 2017년 <철학자 이진경 선어록을 읽다> 그림 연재중.

 

email | purple2233@hanmail.net

 

 
 

vol.20170301-고윤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