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호 展

 

" 실체라는 부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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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23(수) ▶ 2016. 1. 3(일)

여수시 예울마루로100 | T.061-808-7000

 

www.yeulmar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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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토르소들.

박치호의 회화적 관심은 토르소(torso)에 집중되어 있다. 일면 수구적이고 단편적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이 입장이 새롭고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의 토르소 회화를 대면하는 순간, 그 주변으로 몰려드는 몽상적인 파편들 때문이다. 때로 그 파편들은 부조리한 환영으로, 생소한 위기감으로, 실존의 파기된 코드로 현현(顯現)한다. 지엽적인 것들, 실은 인간의 태도, 사유를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들이 사라져버린 토르소가 이렇게 예기치 못하게 환기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메타포(metaphor)가 된다. 이 메타포는 기원적 존재와의 관계를 이끄는 담론을 예비케 하는데, 도대체 팔, 다리, 머리 부분이 없어 실천적 흔적을 가늠할 수 없는 토르소가 존재의 기원을 모방하는 대리물이기라도 한 것이라는 말인가?

(중략)

박치호가 그 회화에 토르소를 등장시킨 배경에는 현대사회의 부가적이고 현혹적이며, 순수한 상상력의 발현을 억제하는 온갖 수식들에 대한 통찰이 놓여있다. 이런 관점은 현대사회의 가치체계에 대한 의문과 연결된다. 현대사회의 모습은 위계가 동일한 지배질서에서 벗어나 있다. 정합성과도 부딪힌다. 지엽적이고 단기적인 전망에 몰두한 결과, 실존의 원칙과 상관없는 뜬금없는 존재와 가치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무질서하고 체계적으로 통합되지 않는 상황은 대상의 진정한 실체를 불식한다. 나아가 임의의 환상을 가공해낸다. 박치호가 바라보는 현대사회는 이처럼 가공의 미장센들이 본질을 호도하는 삼류무대로 나타난다. 이런 상태의 세계란 진정한 헤게모니의 결핍으로, 정체가 불분명한 흔적들의 과잉으로 표상된다. 어떤 경우에도 실존을 반영해내지 못하는 형국으로 치닫는다. 따라서 그 결과, 박치호의 토르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수식을 억제하고 태도를 멈춘 정지상태가 되며 그 행간을 따라 예술적 상상력이 복원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박치호의 토르소는 발생기원과 목적은 다르지만 환원적인 입장에서, 전제한 벨베데레의 토르소가 도출한 상상력의 궤적을 따르고 있다. 그 토르소들은 현실적으로 약화된 기표로써의 현전이지만 그 배후에 폭넓은 여백을 둠으로써 오히려 지평이 확장된다. 즉 박치호의 토르소들은 그 배후의 지평 위에서 감춰져 있거나 사라져 간 흔적들을 쫓아가는 과정이 하나의 큰 맥락이 이루어질 수 있게 구성된 셈이다. 따라서 각각의 토르소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박치호의 진술과 같이 삶의 부조리한 총체적 덩어리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치호의 토르소에 깃들어 있는 진의는 맥락들 사이에서 떠돌다가, 관찰하는 입장의 예술적 상상력에 힘입어 비로소 좌표를 확정짓게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 사실은 박치호의 토르소가 임의의 회화적 오브제로써 선택된 것이 아니라 갖은 수식과 형용들을 감추거나 버림으로서 나타난 고도의 상징을 담지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 홍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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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내부

 
 

 

 
 

vol.20151223-박치호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