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7(금) ▶ 2015. 12. 7(월)

Opening 2015. 11. 27(금) PM 2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83 | T.02-732-3777

 

 

마음으로 그리다.

 

  “마음으로 그리다”展은 월전미술문화재단 동방예술연구회 12기 회원 가운데 10인의 작품을 선별하여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이들은 2013, 2014의 2년 동안 동방예술연구회의 강좌를 통해 미술사를 비롯한 다양한 인문학 제분야의 소양을 쌓은 바 있다. 이번 전시는 10인 작가들이 2년의 연구회 과정을 거친 이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박병옥과 권민경은 복고적 태도를 보여주는 작가들이다. 박병옥은 출품작가들 중 유일한 서예가로서 가장 전통적인 화면을 선보인다. 서예 <침묵>은 한글 서예에 빼어난 그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비백의 거친 필치의 글자와 부드러운 필치의 글자의 대비 및 조화가 압권이다. <建蘭> 또한 박병옥의 능숙한 필묵법을 보여준다. 먹으로만 그려진 난과 화병이지만, 부족함 없는 재현력을 보여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또한 화면에 쓰여 있는 제발과 그 내용은 작품이 형식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전통시대 문인화를 계승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권민경의 작업 <先人의 화분>, <先人의 화분을 위한 연습>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장르를 정의하기 힘든 작품이다. 전통시대 산수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나무와 둥근 화분을 융합시켰다. 그렇지만 이 화분은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화분이다. 나무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과 화분의 심플하고 기하학적인 느낌은 대비됨과 동시에 조화롭다. <선인의 화분을 위한 연습>에 보이는 나무는 14세기 중국의 화가 盛懋의 <秋江待渡圖>의 전경에 배치된 나무의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성무가 자신의 산수화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나무를 활용한 반면, 권민경은 마치 분재처럼 이를 화분에 옮겼다. 작가가 ‘전통의 계승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동양예술론의 핵심이념을 잘 따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현대적 ‘倣作’의 사례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윤양숙, 윤경미, 임미자는 산수와 풍경을 화면에 담았다. 윤양숙은 수묵과 먹을 이용해 평온하기 그지없는 논밭의 풍경을 담았다. 고답적인 산수화가 아니라, 일점투시에 의한 원근법이 가미된 생생한 주변의 풍경이다. 이 때문에 그녀의 화면은 관람자에게 시원한 화면을 선사한다. <흘러가다1>에 보이는 가옥 지붕의 색상, <흘러가다2>의 전경에 배치된 자주색의 꽃은 각각의 점경인물과 함께 화면에 풍부한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흘러가다’라는 제목에 잘 어울리는 편안한 화면이다.

 

  윤경미의 작업은 수채의 풍경화다. 필묵의 운율감이 보인 윤양숙의 화면과는 대조적이다. 윤경미의 화면은 고요하여,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어느 오후, 주택가의 모습을 그려낸 화면은 사진과도 같다. 아니 사진보다도 더 고요하다. 그만큼 일상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그림 속 주택가를 보면 색색의 다양한 지붕들이 밀집해 있지만, 복잡하다는 느낌은 없다. 작가의 눈과 손에 의해 정갈하게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임미자는 표현성이 강한 산수화를 선보인다. 사실성이 강한 윤양숙, 윤경미의 산수, 풍경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출품작인 <알프스>와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을 보면 작가의 의도가 산의 형태를 충실히 표현해내는 데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알프스의 청신하면서도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이 그녀의 의도이다. 화면에 보이는 과감한 붓의 흔적도 이러한 시각적 효과에 일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알프스 산 자체의 묘사가 완전히 배제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시각적 사실성’이라는 고정 관념을 잠시 내려놓는 다면 어떤 면에서는 더욱 실감나는 알프스의 풍경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진경은 출품작가 가운데 유일하게 인물화를 다루었다. 그의 화면은 일상의 단편으로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몽환적인 느낌이 강하다. 출품작 <세상을 엿보다>, <시선> 모두 주인공은 소녀이다. 또 소녀 옆에는 고양이, 파랑새와 같은 동물들이 함께한다. 소녀를 통해 작가 자신을 말하고자 한 듯하다. <시선>의 벽돌 위로 입체적으로 돌출된 얼굴의 이미지는 작가의 내면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꿈과도 같은 내면의 이야기를 장르 특성상 묘사가 쉽지 않은 인물과 동물을 통해 묘사해낸 탄탄한 데생력이 돋보인다.

 

  권지은, 김정은, 윤순원, 이윤희의 작업은 앞서 6명의 작업과 달리 추상성이 강한 화면을 보여준다. 권지은의 <Phobia#1>, <Phopia#2>는 화면 위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듯, 없을 듯 경계를 오가는 작품들이다. 제목 ‘Phobia’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의 주제는 ‘공포증’이다.  Phobia시리즈는 얼룩말에게 물렸던 작가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공포에 연원을 두고 있다. 말은 유년시절 누구나 흔히 좋아하는 동물이지만, 좋지 않은 경험과 함께 작가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를 숙지하고 화면을 보면 작가가 이러한 얼룩말의 기억을 화면의 구성요소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마리의 얼룩말이 등을 지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 듯한 화면 위의 모습은 꿈틀꿈틀 움직일 듯, 화면 앞으로 조여 올 듯한 느낌마저 준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작품의 구성요소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오히려 거기에서 벗어나는 작가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화면의 짜임새있는 구성과 적절한 채색은 이미 화면이 단지 트라우마의 표출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김정은이 그린 꽃은 화훼화나 정물화의 꽃들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작가는 꽃의 이미지를 통해 감정과 인생의 표현을 시도했다. 출품작 <忘我>, <夢夢>은 ‘꽃의 스펙트럼’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만한 화사한 화면을 선보인다. 꽃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기에, 화면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이다. 그녀에게 꽃은 꽃이 아니라, 화면 위에 인생과 감정을 녹여내는 하나의 도구로서 활용된 셈이다. 팔방으로 확산되는 듯하면서도 정적이고, 차분한 화면의 느낌은 작가의 독특한 감각을 잘 보여준다.

  윤순원의 ‘不二’ 시리즈는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달항아리는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자리매김해왔고, 자연스럽게 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주제로 활용하고 있다. 윤순원 역시 이러한 조류를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지만, 표현방식에 있어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녀는 동양화의 전통 소재인 한지를 새기고, 파낸 요철을 통해 달항아리의 풍부한 양감과 질감을 보여준다.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로 빚은 도자기와도 같은 인상도 준다. 그렇지만 작가가 단순히 달항아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작품의 제목 ‘불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작가는 작업의 과정을 통해 현실세계의 만물이 다른 것 같지만, 모두 근본은 하나라는 철학적 사유를 실천하고자 했다.

 

  이윤희의 작업은 출품 작가 10인 가운데 가장 추상성이 강하다. 알아볼 수 있을 듯한 형상도 있지만, 결국 무엇인지는 알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위안>은 꽃을 구성요소로 활용했다. 즐겁지만은 않은 삶 속에서도 꽃을 통해 희망을 얻고, 작은 행복도 느끼게 되는 일상의 잔잔한 감정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다. 화면의 색감과 표현, 구성은 제목이나 의미와 너무나도 잘 어우러지고 있다. <산책>, <모든 미래>, <그리기와 지우기> 역시 일상의 편린들을 특유의 감각으로 재구성한 이채로운 작업들이다.

 

  살펴보았듯이 10인의 작가들은 모두 다른 주제와 표현방식을 보여준다. 다만 익숙한 손놀림에 의지하여 그린 것이 아닌, 마음으로 그렸다는 점은 10인 작가의 공통점이 아닌가 한다. 작가가 손보다는 마음에 토대를 두어야함은 보편적 진리라고 할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현대미술에서 이는 점차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면에서 진솔함 가득한 10인 작가의 작품을 모은 이번 전시의 의의는 적지 않을 것이다. 추후 이들 각자의 작업이 보다 큰 결실을 맺으리라는 사실도 분명해 보인다. 언제고 진실함은 최상의 가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장준구 학예연구실장

 

 
 

 

 
 

vol.20151127-동방예술연구회 12기 회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