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규 초대展

 

" Blurry Scene "

 

동강2015-3

 

 

2015. 9. 11(금) ▶ 2015. 9. 19(토)

서울 종로구 평창동 111-16 | T.02-396-8744

 

 

동강2015-4

 

 

임태규의 겨울풍경

 

동강과 아우라지가 감싸 흐르는 아라리의 고장 정선의 겨울풍경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면 두견새는 왜 우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위의 가사는 정선 사람들의 사랑과 애환이 담긴 정선아라리의 구성진 가락의 일부이다. 오랜 옛날부터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응어리를 풀어가며 신명을 내고 한을 삭이던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영원한 18번이다. 그 가운데 슬픔과 기쁨을 넘나들며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소리 정선아라리는 가장 한국적인 아리랑의 혼을 담아 동강과 아우라지가 정선을 구비쳐 흐르듯 질기디 질긴 아리랑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하게 펼쳐지는 삶의 모습들을 자연에 비유하면서 체념 뒤에 우러나온 여유, 또는 애절한 슬픔을 운명으로 승화시켜 받아들인 삶에 대한 달관이 가슴 속 찡하게 느껴지는 정선아라리의 가락은 길게 여운을 남기며 우리의 몸과 마음속을 구비쳐 흐른다.

 

우리의 삶과 우리 땅의 속내를 아직 잘 간직하고 있는 정선의 산수를 통해 작가의 마음의 고향인 정선의 삶과 가락을 마음으로 끌어안으며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작가가 바로 임태규이다. 정선과 가까운 강원도 횡성을 고향으로 둔 한국화가 임태규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정선의 겨울풍경을 통해 자신의 작가적 삶의 숨결을 토해내듯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멋스럽게 꾸밀 줄 모르는 촌스러움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임태규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발 비껴 선 채 외롭지 않은 호젓함을 느낄 수 있는 정선의 겨울풍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여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림은 작가를 닮는다고 한다. 따라서 임태규가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에서는 화려한 겉멋이나 기교적인 재치 등은 눈에 띄지 않으며 태를 부리지 않는 순박함을 고집하며 자신의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드러날 뿐이다. 삶의 애환과 정감을 자연과 화해하며 풀어내고 있는 정선아라리의 가락처럼 쓸쓸하면서도 따사롭고 부드러운 고향의 모습과 분위기를 노래하는 작가 임태규는 마음의 고향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확인하듯 섬세하고 꼼꼼한 붓질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언뜻 내보인다. 작가가 수줍은 듯 이야기하고 있는 자기주장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잊혀지고 소외된 고향 및 물신주의에 밀려 파괴되고 훼손되는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하며 이를 지키고 간직하고자 하는 다짐이라고 할 수 있다.

 

 

동강-연하리

 

 

작가의 이러한 노력은 창작에 소용되는 재료의 선택이나 표현기법 등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강원도 가평에서 재래의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되는 닥나무 순수 한지와 갈대 속으로 시험삼아 만든 갈대지, 전통적 제지기술 가운데 하나인 도침으로 처리한 날종이 등을 활용하며 우리의 자연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실험적 모색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또 임태규의 그림에서 주조를 이루고 있는 담묵의 은은하고 깊이 있는 바탕 위에 부분적으로 차용한 담채의 부드러움을 적절하게 어우러지도록 함으로써 자칫 을씨년스럽거나 삭막해지기 쉬운 겨울의 풍경을 어머니의 품처럼 정감 있고 푸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도 작가의 녹록치 않은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전통적인 관념산수가 아닌 발로 찾아낸 실경산수의 모습을 억세고 강한 준법(皴法)이 아닌 부드럽고 섬세한 수많은 태점(苔點)들의 반복과 쌓임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데, 겨울의 낮게 드리워진 가라앉은 풍경들이 하늘과 산세 및 굽이쳐 흐르는 강물의 부드러운 조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자칫 아무런 특징도 없고 힘이 없어 보이는 이런 표현기법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모나거나 튀지 않는 안온한 자연의 품속에서 평범하게 사는 것에 익숙했던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어 그림과의 거리감을 좁혀준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우직하리만치 고집하고 있는 실경산수의 구도와 기법들에는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라는 동양적 사유구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평범한 것이 최고의 진리(平常心是道)」라고 하는 선종의 가르침을 이미 체득하여 구현하고 있는 것이 임태규 그림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기질과 특성은 중국 수묵화의 정초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당말의 화가 장조(張璪)의 「밖으로는 천지자연의 조화를 스승삼고,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을 터득한다(外師造化,中得心源)」는 가르침도 떠올릴 수 있는데, 임태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항상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작가 임태규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는 작가로서 자기의 색깔을 갖고 자신의 정직한 역사성에서 우러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민중들의 정직한 삶의 애환들이 녹아들어 있는 구성진 정선아라리의 가락이 오늘날에도 많은 공감을 얻으며 동강과 아우라지처럼 우리의 가슴속에 휘돌아 흐르듯이 지킬 것을 굳게 지키는 작가로서의 우직한 고집이 아름다운 삶과 예술로 승화될 때 평범한 비범이 더욱 돋보일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평범함을 뛰어넘는 이 비범한 정선아라리의 가락처럼……

 

사발그릇 깨어지면 두세 쪽이 나지만

삼팔선 깨어지면 한 덩어리로 뭉치지요

 

                                                                 안 영 길 (동양미학)

 

 

 

흐린풍경2015-孟冬

 

 

이 전시의 주제는 ‘흐린 풍경Blurry Scene’이다.

 

우리의 감성 기억은 지나고 나면 언제나 분명하게 떠오르질 않는다. 나이 듦에 비례하듯 점점 더 기억이 흐릿해져서일까? 그렇다고 슬퍼할 일은 못된다. 기억에 남겨진 일들만을 가지고도 우리의 삶은 지치도록 바쁘니까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의 뇌에 불필요한 기억을 지우는 첨단 기능이 자리하고 있나보다.

 

이 전시의 주제가 된 ‘흐린’이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비 내리고 눈보라 몰아치는 일기를 우리는 흐린 날이라고 한다.

새벽안개 자욱한 강가에 언뜻언뜻 드러내는 버드나무 가지와 갈대를 보며 우리는 시야가 흐리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과거 일상들을 회상하며 떠올리는 기억들이 가물가물할 때도 우리는 흐릿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오락가락할 때에도 우리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게 흐려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흐린 풍경’이 되었다.

 

‘흐린 풍경’으로 그려진 이번 그림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보았던 구체적 자연의 흐릿한 기억과 흐릿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들이 투영된 현실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날은 눈보라치는 맹동孟冬의 한기에 맞서는 소나무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푸릇하게 밝아오는 하늘의 새벽달에 취해보기도 한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도원桃源을 꿈꾸는 나룻배가 되어보기도 한다.

 

흐린 풍경 속에 자리한 농묵 표현의 나무와 배와 같은 사물들은 그림 속에서 내가되기도 하고, 그림을 대하는 익명의 누구이기도 하다. 왜 그것만 유독 진하게 그렸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그렇게 그렸다. 굳이 미학적 해석에 관심을 둔 누군가 묻는다면 ‘허실상생虛實相生’의 표현이라고 해야겠다.

 

작은 그림들에서 바라다 보이는 주변 세상은 내 마음과 다르게 혼자 고요하다. 그래서 고요함을 주변에 그려 넣으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 밖에 세상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원인이 되어서인지 모르게 항상 이리저리 흔들린다. 장자의 표현에 의하면 몸은 앉아 있지만 마음은 밖으로 내달리는 ‘좌치座馳’쯤 되겠다. 때로는 거센 눈보라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하고, 물가에 고요히 기대어 있지만 마음은 거센 물길을 헤치고 어디든 떠나려 한다.

그래서 흐린 풍경 속에 내게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 고요함과 어디론가 내달리려는 마음을 달래려 애쓰는 내 모습을 함께 그려 넣었다.    

 

 

 

흐린풍경2015-맹동1

 

 

 

흐린풍경-桃源境

 

 

 

흐린풍경-雨後春曉

 

 

 

동강2015-1

 

 

 

동강2015-2

 

 

 

정선-농가의 겨울

 

 

 

임태규 작가

 

 
 

임태규 | 林太圭 | Lim TaeGyu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예술철학 박사과정 졸업

 

개인전 20회(1991-2015) | 몽유도원 2인전(2014, 한옥갤러리 초대) | 몽유도원 초대전(2015, 대한민국 국회 주최, 국회의원회관 제2로비) | 힘 있는 강원전(2015, 국립춘천박물관) | 동양화 새 천년전 (2000-2006. 서울시립미술관, 공평아트센터, 예술의 전당) | 한.중 수묵화전 (1990-2004. 세종문화회관, 대북 국부기념관) | 산수풍경의 시간 (2004. 월전미술관. 제비울미술관 기획) | 전통의 힘-한지와 모필의 조형- (2004, 전북예술회관) | 한국현대미술의 진단과 제언 2004전 (공평아트센터 기획)

 

수상 |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수상(1993. 국립현대미술관) |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수상(199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 논문 | 「『장자』에 나타난 미(美)의 상대성 인식에 관한 연구-덕(德)과 기(氣) 개념을 중심으로,」 | 『예술철학연구』, 제1집 | 한국예술철학회, 2009 | 「장자 덕(德) 개념의 미학적 해석-예술 주체의 관점을 중심으로,」 『미학ㆍ예술학연구』, 제31집, 한국미학예술학회, 2010

 

저서 | 『장자 미학 사상』, 도서출판 문사철: 서울, 2013 | 『의경(意境),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 신정근ㆍ임태규ㆍ서동신 공역,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3

 

현재 | 성균관대학교 미술학부 겸임교수 | 인문예술연구소 이사 | 한국미학예술학회 회원 | 배돋 문화공간 대표

 

 
 

vol.20150911-임태규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