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성 작가의 방파제 풍선

 

 

 

여수 웅천 친수공원

 

2015. 5. 31(일) ▶ 2015. 6. 6(토)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1692 | T.061-690-2114

 

 

회화를 작업한 작가가 풍선 방파제를 전시를 하였을 때 약간 의문시 되었다. 하지만 작가와의 대화 속에 고향이 여수였으며 바닷가에서 유년을 보냈던 기억속에 남아 있던 방파제는 태풍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는 담장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성장해서 방파제를 작품으로 내놓은 것은 국가의 위기를 막아 달라는 의미도 첨가 되었다.

금보성 작가는 눈으로 보여 주는 회화가 아니라 만져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술이란 추상적 공간에 물리적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려서 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그림이 보였기에 작업하였다고 한다. 처음 화집 제목이 설계 도라고 붙였듯이 그림을 설계하듯  그렸다고 한다. 설계란 사람들이 사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생각을 먼저 주문하고 제작할수 있도록 실험하는 것이 작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회화이면서 조각이나 설치할 수 있는 물리적 형태를 갖추는 것은 결국 작가의 작품은 자서전과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르의 경계를 만들지 않고 재료에 대해 논하지 않고 작업 그 자체에 의미를 둔 것이 금작가의 예술론이다.

풍선 방파제는 빈 공간에 푯대같은 이정표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그곳으로 찾아 가는 것은 길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정표 때문에 힘든 길을 만들어 가면서 찾아 간다고 한다. 풍선 방파제라는 것을 사람들이 찾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빈 공간에 설치하는 순간 없던 길이 생긴 것이다. 예술은 길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바라보고 찾아 올수 있도록 나침반과 같은 이끌림이 있어야 한다.

 

서양 미술은 공간을 채운다면 동양의 미술은 공간을 드러내는 것이다. 자칫 여백을 많이 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동양의 미술은 정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색과 재료. 표현과 형태를 가지고 작가가 추구하는 미학은 과거의 역사 속에 묻힌 미술을 반복으로 교육하는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파제는 이제 개인과 국가의 위기를 막아 줄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작품으로서 해피한 시선으로 다가가기를 바랜다.

 

 

 

 

 

 

 

 

 

 

 

 

 

 

 

 

 

 

 

 
 

 

 
 

vol.20150531-금보성 작가의 방파제 풍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