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희 展

 

" BOOK "

 

between #2_Archive Pigment Print_2014

 

 

갤러리 라메르

 

2015. 1. 21(수) ▶ 2015. 1. 27(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94 홍익빌딩 | T.02-730-5454

 

www.gallerylamer.com

 

 

silent reading #8_Archive Pigment Print_2014

 

 

일정한 두께의 종이로 이루어진 책은 수많은 문자를 탑재하고 있다. 그 문자는 읽는 이들의 것으로 완성된다. 그러니 책은 늘 불안정하고 미완의 것으로 머문다. 누군가의 망막에 박혀 가독성의 것이 되기 전까지 책은 아직 미흡해 보이는 것이다. 모든 책은 유예된 문자이고 이야기이다. 온기를 지닌 한 사람의 손이 그 얇은 종이를 넘기면서 인쇄된 활자를 공들여 읽어나갈 때 비로소 책은 책이 된다. 책이 인간적인 이유는 그것이 내 살을 통해야 분명히 확인되며 눈으로 읽어나가야 내 것이 되고, 이후 기억이 되고 종래에는 내 몸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다는 것은 철저히 내 몸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다. 공들여 읽고 조심스레 밑줄을 치고 행간 사이에 혹은 여백의 문자를 기입하는 일은 경건한 의식과도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늘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그래서 지난 시절에 읽었던 책을 문득 조우할 때면 강렬한 추억에 사로잡히고 그 책을 읽었던 한 순간이 생생하게 부감된다. 물론 모든 사물은 그렇게 기억을 내장하고 있지만 책은 단일한 물체에 깃든 사물의 추억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한다.

 

안경희는 책을 소재로 사진촬영을 했다. 책이 오브제가 되었으며 자신의 의도에 따라 설치, 연출한 것이 사진으로 보여 진다. 책은 흡사 수조에 잠긴 것처럼 느리고 무겁게 가라앉은 후 마지못해 내지를 펼쳐 보인다. 흰 종이의 표면에 인쇄된 문자들은 망실되거나 드문드문 남아있다. 따라서 그 책은 온전히 읽을 수 없는 책이 되었다. 물살에 의해 혹은 바람에 따라 책장은 펼쳐지고 천천히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보는 영상과도 같다. 그 장면이 어딘지 애틋하고 슬프다. 책에 담긴 내용과 그것을 읽었던 이들의 기억이 함께 서서히 소멸되고 있는 것 같다. 원근이 사라진 적막한 평면의 공간에 책과 물고기 몇 마리만이 묘한 흐름과 운동성을 부여한다. 느리고 나른하다. 현실계와는 다른 차원에서 시간과 움직임이 펼쳐지는 것 같다. 그래서 보는 이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 자리한 책장을 펼치는 환영에 사로잡힌다. 저 풍경은 무의식의 풍경, 추억 속의 풍경이다. 그래서 이질적인 두 개의 존재가 한 공간에 겹쳐있으며 사물의 윤곽은 물에 불었으며 이미지는 흐릿하다.

 

 

silent reading #3_Archive Pigment Print_2014

 

 

언젠가 내가 읽었던 책의 어느 한 페이지, 기억하고자 밑줄을 쳤던 문장, 지금은 가물가물해진 기억 속에 흘러 다니는 문자들, 그와 함께 그 책을 읽었던 시간 등이 서서히 사라져 버렸음을 문득 깨닫는다. 사진 속 책들은 대부분 누워있고 더러 서서 책등과 앞면을 보여준다. 책은 편안하게 누워서 자신을 이루는 낱낱의 종이들을 부드럽게 펼쳐준다. 사실 모든 책은 책상의 표면, 수평면과 일체가 되어야 자기 속살을 보여준다. 우리가 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책을 눕혀야 한다. 그제야 수평이 된 책이 비로소 한 눈에 들어온다. 흐릿한 윤곽으로 인해 책장은 한 장씩 넘겨지고 있는 듯하다. 그 위로 주황색의 물고기가 유영하고 있다. 흰색의 종이(책)와 물고기의 붉은 색은 강한 대조를 이룬다. 모든 장면은 사뭇 몽환적이며 꿈속의 장면 또는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면 전체는 축축하고 무겁고 투명한 질료인 물을 암시하며 그 안에 잠긴, 펼쳐진 책과 무심하게 떠다니는 물고기 몇 마리는 책과 관련된 개인적인 추억, ‘불안하게 떠도는 자아’(작가노트), 책과 자신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사진은 지식과 사유의 무기력함, 책으로 대변되는 온갖 지식의 덧없음을 암시하는 듯도 하다. 책은 깊은 바닥에 처연하게 가라앉아 있고 물고기들은 책을 등지고 무심하게 떠돌 뿐이다. 물고기에게 인간의 문자로 쓴 책은 무의미하다. 더구나 지워진 글자들, 숨 쉴 수 없는 물속, 부재하는 인간 등은 마치 모든 책이 사라지고 문자가 박탈되고 책에 관한 추억들이 사라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안경희는 사진이 주는 재현, 인증성과 선명함을 대신해서 흐릿하고 모호하게 대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불분명한 재현, 의도적인 은폐나 지우기다. 보이는 것보다는 비가시적인 것을 떠올려보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아울러 책에 바짝 다가간, 붙어나간 시선은 자신의 작업이 오로지 그 책이란 대상, 오브제로부터 연유하는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려주고자 하는 그런 거리다. 근접한 시선은 또한 책이란 대상을 물질적인 존재로, 물성적 차원에서 감촉시킨다. 작가에게 책은 항상 관찰과 영감을 주는 대상이라고 한다. 종이라는 물성을 간직한 책만이 지닌 매력, 그리고 책은 평면과 입체를 동시에 간직한 공간이라는 사실, 아울러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등이 책을 오브제로 선택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작가의 사진은 특정 책에 대한 아련한 기억 및 책이 지닌 아우라, 책을 통한 다양한 상상력이 가능한 공간을 가시화하기 위한 전략에서 출현한다. 결국 이 사진은 책에 대한 개인적 경험, 그에 대한 영감 등을 보여주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작업이고 여기서 책과 물고기는 자신의 자아, 기억 등을 대신하는 상징이 된다. 무엇보다도 사라져버린 모든 것들에 대한 애도의 시선이 저 흔들리는 책의 낱장에 가득 서려있는 안경희의 사진은 인간에게 책이란 존재는 무엇인가를, 무엇이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silent reading #10_Archive Pigment Print_2014

 

 
 

안경희 | An Kyunghee

 

개인전 | 2015. 01 갤러리 라메르 초대기획전 'BOOK', 서울, 갤러리 라메르 | 2013. 10 Another Story, 서울, 갤러리 썬 | 2012. 11 편지-아빠로부터(1966-1971), 서울, 이랜드스페이스 | 2012. 08 안경희 초대전 (책: 울림), 서울, 더 스트릿 갤러리(GS타워) | 2011. 10 안경희의 책冊.상想 展, 서울, 신당창작아케이드 | 2011. 03 2011 KCAF,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 2011. 03 the BOOK 展, 서울, 진선북카페 프로젝트 | 2011. 01 BEYOND the BOOKS 展, 서울, 서교예술실험센터 | 2010. 06 BOOK & BOOKs 展, 서울, 갤러리 라메르

 

단체전 | 2014. 05 Clunes Book Festival May 2014, Australia, Clune | 2014. 05 서울오픈아트페어2013, 서울, 코엑스 | 2013. 05 서울오픈아트페어2013, 서울, 코엑스 | 2012. 02 1 o'clock herd of juggling, Seoul, Insa Art Space | 2011. 07 Chacgado, Seoul, Yaesong art museum | 2011. 05 SPRING STORY 展, 서울, 박영덕화랑 | 2011. 04 2011 SEOUL PHOTO FAIR, 서울,코엑스

 

수상 | 2010 캐논서바이벌사진콘테스트 대상 | Finalist for the 2014-15 Studio Residency Grant at WSW Studio Residency, Newyork

 

 
 

vol.20150121-안경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