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lo Exhibition

 

이창렬 展

 

Lee, Chang Ryul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2014. 11. 25(화) ▶ 2014. 11. 30(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무학로 180(지산동 1137-3) | T.053-668-1566

 

www.ssartpia.kr

 

 

 

 

 

‘비움을 이야기하다’ 이창렬 展

 

양 준 호 (미술사박사)

 

비움을 만들다

 

이창렬의 이번 전시는 옆으로 14m 세로가 3m 정도의 대형 설치작업과 20점 정도의 작업을 선보인다. 설치작업은 요소요소로 분절된 전체와 관련이 있으면서도 별도로 고찰할 수 있는 구성 부분들을 모두 모아 벽면에 디스플레이Display를 한다.

문풍지가 붙어 있는 문살에서 작업의 기본구조로 삼았다. 거의 크기가 비슷한 상자를 조합 배열해 조형한다. 몇 군데 도자기가 들어 있고, 그리고 각기 작품은 바깥을 마무리하는 틀의 형태가 있는데 일부가 잘려져 있어 독자적인 구성 방식이다. 그렇지만 색조는 강렬하다. 화면의 붉은색이거나 흰색과의 대비가 눈에 들어오고, 형태의 완결보다는 새로운 구성 변화에서 작가는 의미를 찾는다. 이런 구성은 어릴 때 문풍지가 발려있는 창호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다. 문풍지의 안쪽과 바깥쪽이 존재하는데 안쪽의 안온(安穩)함을 작가는 요구한다. 색채이론가 요하네스 이텐은 붉은 방이 실제로는 위험요소로 인식하기보다 심리적 안정을 줄 경우가 많다는 실험 사실에 비추어보면 붉은색도 편안함을 줄 수도 있다.

 

그림의 구성요소가 가진 모든 “틀을 다 깨어보자. 액자가 그림의 일부라고 하지만 그림과 동떨어져 보인다. 액자 틀을 잘라 형태의 변화를 꾀했다. 형태가 정사각형 모양이 아닌 여러 가지 모양이 나온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회화의 요소를 새롭게 규정하고 만드는 일은 쉽지가 않다. 오랜 시간 만들어온 회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자신의 형태로 만들려고 시도한다. 그의 작업은 지난(持難)한 노동의 결과물인데 작업 공정이 복잡하고 일이 많다. 회화, 조각, 공예가 가미 된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물질의 욕망을 나타내는 바코드라는 도구도  구성요소로 함께 결합한다. 그림 안의 작은 상자, 기물, 틀도 작가의 손으로 만들고 대부분이 작가의 노동에 의존한다. 작업은 큰 계획을 위해 순서를 정교하게 설정하고 그 속에 시계의 톱니처럼 모든 것을 부분 부분으로 과정을 만들어 완성하여 결합하는 형태여서 분업화된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한다고 보면 된다. 구상은 계획적이면서도 진행 과정에서 셀 수 없는 다양한 형상을 생성해내기 때문에 의미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일종의 설계도를 현실화한 것이다. 생각의 모형도이다. 화면구성의 원리를 생각하고 그 원리들의 관계를 만들어 처음에 그릇을 만들고, 그 그릇을 담을 상자를 만들고 그 상자들을 구성, 배열하고 그 상자들이 연결된 형태를 조립해 간다. 상자를 연결하는 전체적인 틀을 만든다. 일반적인 회화가 가지는 구조와는 다른 형상들이다. 기존 회화의 구조를 해체하고 부분들을 모아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비움을 만든다. 작업의 결과물 전체를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처음 설치하게 되는데 그 크기와 구성에 기대된다.

 

 

 

 

가벼움은 비움의 시각적 실현

 

이번 작업의 특징은 도자기에 구멍을 뚫은 투각(透刻)을 한다. 이전의 작품 안에 배치되어 들어간 도자기가 몇 종류의 다른 모습이 있었다. 거푸집을 만들고 성형을 하는 기본적인 방식으로 전에는 도자기가 완성한 것을 사용하였고, 또는 초벌만 구워 물감으로 입혀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번 작업처럼 뚫어새김 한 경우는 없었다. 뚫새김(透刻) 작업은 무게가 눈으로나 실제로 무게의 가벼움과 시각적인 투명도를 살리지만, 용도는 제한하게 된다. 제한된 용도 때문에 더 가벼운 상상을 하게 한다. 뚫린 형태의 새로운 조형 내용은 내부를 바깥에서도 보이게 하여 내부에 담으려는 것이 달라지는데, 빛과 공기의 흐름을 담으려는 조형 의지이다. 결국, 비워내니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으로 가벼운 만큼의 빈 곳을 만든다는 것은 그릇이 담는 기구라면 담을 수 있는 것을 비워낸 것이다. 담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창렬은 작업은 가벼움에 대한 감성이다. “나는 무거운 게 싫어요. 가벼운 것이 좋아요.” 차인(茶人)들이 찻잔의 품위를 따질 때 ‘무겁게 보이지만 실제로 잡으면 가벼운 찻잔을 좋은 찻잔’이라 한다. 작은 그릇이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냐고 하지만 그것도 무게가 있다. 그에게 작은 그릇이 무겁게 보이고 느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더 가볍게 하려고 투각을 한다. 얼마나 더 가벼워야 할까? 쓰임새를 바꿔야 정도의 가벼움이란 무엇인가? 어떤 물체 자체가 가진 기능에 대한 거부까지 생각하는 가벼움을 궁금하게 한다. 그는 비움을 강조한다. “성자들이 말하는 道의 비움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삶의 가벼움이랄까? 예를 들어 여름날 더위에 지쳐 있다가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느끼는 시원함”과 같은 군더더기 없는 사소함이나 가벼움을 원한다. 그래서 사소함에 대한 감성을 작업과정의 ‘비움’이라는 방법론으로 도입한다.

 

 

 

 

일상을 바라보면서 찾은 자유

 

호이징하는 놀이와 임무를 구별하는데, 임무는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행동으로 정의하면서 이것을 노동이라고 한다.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자발적 행동으로 스스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재료 하나를 다루는데도 재료끼리 서로의 호흡을 원한다. 작업과정은 자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완숙한 장인적인 모습이고 단일화한 과정의 반복과 반복된 노력이 숨어 있거나 그것을 반복한 흔적을 조금만 남기고 지워버리기도 한다. 지워버려서 흔적들이 남은 개별적 상자를 서로를 연결한다. 연결에도 의미를 찾는다. 재료와 재료를 접착하는데 그냥 접착제만 믿고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완전히 하나를 이뤄 결합한다는 다른 재료끼리의 연결성으로 하나 된 합성을 시도한다. 서로 다른 재료이지만 나열하면 차별성이 없이 함께하는 완결성을 추구한다. 작업들의 나열 속에는 부분이 있다.

 

모인 개별 대상에 색을 입히는 작업도, 칠하고 지우고 또 칠하고 갈아내고 또 칠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시간과 누적된 행위가 함께한 물감의 남은 흔적이 작업의 결과물이다. 표면의 색이 결국에는 그냥 단색처럼 보이지만 어떤 색도 미묘한 깊이 변화를 안고 있다. 색들은 하나의 얇은 종이를 그 위에 부착하는 방식과 같이 떨어질 수 없는 밀착된 형식의 색칠이다. 그리고 그 색은 아래의 색이 위에 색과 투명성을 가진 것으로 설정하여 색조에 층의 깊이를 낸다. 하나의 색조도 색조의 무게나 색조의 투명도 변화로 시각적인 단계를 만든다.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화면과의 밀착성은 수고로운 노동의 행위 속에 세월의 누적을 느끼게 한다. 마치 문종이 너머에 빛이 들어오고 두꺼운 종이와 아주 얇은 종이의 느낌을 물감의 질료로 재현한 듯하다. 사물의 속내에 다가서는 노력이다. 작가는, 마치 문종이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모습이 종이의 두께를 보게 하는 것처럼 반투명하거나 투과되어 서로가 숨을 쉬어 전달하는 공간에서 세월의 호흡을 한다.

 

한 요소가 다른 요소와 결합할 때 관계한 개수의 곱으로 경우의 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카오스 이론인 나비효과처럼 부분의 관계들이 맺는 수많은 다양한 변화를 작가는 단일할 듯한 작은 요소들에서 만들어 간다. 사소함은 중요한 일을 만들어낸다. 주자의『근사록』의 주제는 나의 주변을 먼저 살피면 길이 보인다고 한다. 작가는 “바라는 것은 커다랗고 무거운 것이 아니고 작고 사소하면서 가장 편안한 모습의 그림이 되고 싶다.”라고 한다. 작가는 부단히 일상 속에서 일상을 바라보면서 일상의 의미를 생각한다. 긍정적인 의미의 사소함. 시시하고 하찮은 것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사소함이 쌓이면 거대한 의미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작업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노동에서 놀이로 전환하는 그의 작업은 즐거움은 사소한데 있고, 사소한 모임이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自由)는 ‘스스로 이유를 찾는다.’는 뜻도 있는데 작가는 작업이란 목적과 수단을 같이 할 수 있는 자유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Vol.20141125-이창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