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皮相) 展

 

'옵시스아트 그룹전 피상(皮相)'

 

 

 

OPSIS ART

 

2014. 3. 27(목) ▶ 2014. 4. 27(일)

Opening : 2014.  3.  27(목) PM 6:00 ~ 8:00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36 | T. 02-735-1139

관람시간 | AM 11:00 ~ PM 6:00, 월요일 휴관

 

www.opsisart.co.kr

 

 

전시작가 | 김소희 | 이제 | 이태욱 | 정진화 | 진민욱

 

 김소희_Birth_117x80cm_판넬에 혼합재료_2013

 

 

피상(皮相)

 

우리는 세계를 피상적으로 밖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피상적이라는 말은 대상 그 자체에 대한 표피적이거나 부분적 이해를 뜻하는 말이지만, 역설적으로 피상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를 인지할 수 있다. 우리에게 세계는 피상적으로만 상징된다. 어느 경우에도 세계 그 자체가 우리에게 인지되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세계를 추상화 혹은 개념화하여 인지하며, 추상화된 혹은 개념화된 세계라는 점에서 인식과 그 표현은 모두 피상적이다. 대상을 추상화하는 능력, 그 피상적인 인지능력 덕분에 인간은 세계를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시각은 모든 입체(세계를)를 평면화(물론 사진이나 회화와 같은 평면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하는 방식으로 추상화한다. 4차원의 입체적인 것들은 시각을 통과하여 지각되는 순간 평면화 된다. 평면에 깊이를 구성하는 방식이 원근‘법’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법칙이므로 관념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제_무제_48x65cm_종이에 목탄_2013

 

 

3D의 발명을 예로 들어보자.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끔 감각을 속이는 시도인 3D는 그 시도 때문에 시각 자체가 본디 평면화된 것임을 더욱 더 자각하게 해준다. 3D 영화는 입체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그 인위적인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우리의 시각이 평면적으로 추상화 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시각으로 재구성되는 평면화는 입체의 어떤 요소를 제거하거나 버리거나 추상화함으로써 인지된다는 점에서 피상적이다. 그러므로 인간 인지능력의 피상적인 특징은 바로 인간을 세계를 이해하는 존재로 만드는 동시에 주체마다 서로 다른 주관이 구성되도록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소통하려는 노력을 한다.

 

 

 이태욱_아까 옆에서 귤사던 아줌마-나는 천원에 열개 샀는데

아줌마는 우기고 우겨서 열한개 샀다_145x80cm_장지에 수묵채색_2013

 

 

서로 다른 주관으로 세계를 이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귀는 일이 어려운 것처럼, 세계를 가리키고 세계를 의미하며 지시하는 미술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 피상적임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열린다. 중요한 것은 피상적인 것을 조합하거나 통합하여 인지하는 이해의 방식이다.

 

 

 정진화_A fake kiss_70x70cm_한지에 먹_2013

 

 

이번 ‘피상’전은 어떤 방식이든 자기의 세계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닌 자기의 의식을 펼쳐 보여, 피상성을 더욱 피상적으로 밀고나가 자신의 주체성을 타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구성하는 작가들을 모으고자 노력하였다. 즉 ‘피상’전은 각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관통하는 내재적 주제 같은 특정한 기획의도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여러 작가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감각을 작품에 이입하는 능력을 지닌 작가를 모아 우리가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것일 따름이다. 따라서 모든 작품은 갈등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진민욱_Snowscape_110x110cm_비단에 석채, 분채, 먹_2012

 

 

진민욱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기생하는 모자(母子)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개체로 살아가 할 포유류가 개체로 분리 독립하지 못하고 서로 기생하게 되는 어떤 현실적 억압과 욕망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작금의 사회적 문제 안에 위치시키고 있다. 정진화는 여러 사회적 관계망에서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탐색해 나간다. 우리는 그의 감각과 제목에 의해 일그러질 수 밖에 없는 어떤 이유를 주관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제의 작업에는 삶의 매 순간마다 마주치는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 어떤 관조의 눈이 보인다는 점에서 나의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작업에 관조의 눈이 보임으로 쓸쓸함과 외로움은 한순간 삶의 의지가 느껴지는 따스함으로 전환된다. 이태욱의 작품에는 불편함과 부조화에서 오는 순간적 의식의 균형 상실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힘이, 김소희의 작업에는 아픈 내면을 직시하는 대범함과 이그러진 삶을 담담히 바라보는 그의 시선, 그리고 그 전체적 전경(全景)을 다시 그 밖에서 바라보는 관조적 쾌감이 있다.

김백균 / 중앙대 교수

 
 

 

 

 
 

vol.20140327-피상(皮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