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열 수묵화展

 

象外之象(형상 밖의 형상)

 

 

 

공 아트 스페이스

 

2013. 9. 25(수) ▶ 2013. 10. 1(화)

Opening 2013. 9. 25(수) pm5.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98-31 | T.02-735-9938

 

www.gongartspace.com

 

 

動靜互含(동 정 호 함)_화선지에 수묵_68.5x68.5cm_2013

 

 

沈流激石(침 류 격 석)_화선지에 수묵_107x74cm_2013

 

 

돈오(頓悟)의 필획

                                                    

김대열의 붓은 쾌속(快速)이다. 그의 그림 속 거의 모든 묵흔(墨痕)들은 빠른 움직임을 지니며 화면 밖으로 빠져나간다. 속력의 관성으로 남은 여운을 품은 채 그 묵적(墨迹)은 즉흥성과 생동감을 표출하며 흘러간다. 종이 위에 얹혀진 무정형의 형상들은 기존의 수묵화가 장점으로 삼고 있는 침잠하고 후퇴하는 내성적 기운을 풍기지 않는다. 의도된 가벼움과 얇음으로 화면 위로 부상하고 분출한다. 회화적이라기보다는 영상적이다.

오로지 지필묵이라는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만으로 ‘다른’ 수묵화를 그리기가 더욱 어려워진 현실이다. 김대열은 수묵문인화적 화풍에서 시작하여 굳건히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며 지금의 화면에 다다랐다. 그것은 이미 이형사신(以形寫神)이니 전신사조(傳神寫照)니 하는 형상의 재현 문제와는 다른 화론에 얽혀있다. 그림제목에 의해서 유감되거나 유추될 수 있는 산, 물, 바위와 같은 자연물의 흐릿한 형상 때문에 절대적인 추상의 자유로움에 한계를 갖고는 있지만, 그는 자신의 뜻과 신(神)이 만나는 장(場)으로 화면을 상정할 뿐이다. 때문에 자연물은 그의 의취를 드러내는 통로일 뿐, 그가 그 신(神)의 정체이자 진수인 신모(神貌)를 염두에 두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그의 그림 역시 사신(寫神)이고 전신(傳神)이다. 단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몸이 붓이 되어 그 신(神)을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매개하려할 뿐이다.

당대(唐代)의 장언원(張彦遠)은 《역대명화기(歷代名畵集)》에서 “무릇 생각을 움직여 붓을 휘두를 때에 스스로 그리는 것을 의식하면 곧 그림을 잃게 된다. 생각을 움직여 붓을 휘두를 때에 뜻이 그림에 있지 않아야 그림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북송(北宋)의 곽약허(郭若虛)는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에서 장언원의 생각을 발전시켜 이렇게 말한다. “무릇 그림이란 마음속에 있던 기운이 붓을 통해 신채(神彩)로 나타난 것이니, 붓놀림의 어려움을 잘 알 수 있다.…붓보다 먼저 뜻을 두고 뜻 속에서 붓이 움직이니, 그림이 끝나도 뜻이 남아서 물상(物象)이 정신에 온전히 조응한다.” 여기서 “뜻이 붓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고 할 때, 뜻이란 개념이 아니라 예술을 창작할 때의 생명상태, 생명이 펼쳐지는 기세를 뜻한다. 거의 무의식적이고 자동기술적으로 보이는 김대열의 일획일필(一劃一筆)은 그가 체득한 도(道)랄까 신운(神韻)일까 하는 것, 다시 말해 생명의 기운을 단속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때문에 그의 화면은 선적(禪的)인 뉘앙스를 짙게 풍긴다.   

 

 

水無常形(수 무 상 형)_화선지에 수묵_153x214cm_2013

 

 

직관적이고 개별적인 깨달음을 단색의 먹과 암시적인 필체로 남기는 선화(禪畵)의 특성을 김대열은 빠른 속도로 화면 속에 전개한다. ‘생각의 형체’와 ‘형체의 생각’이 서로 뒤섞이는 이런 찰나의 순간은 선과 면의 구별도, 윤곽선과 채색의 차이도 해체시키면서 그야말로 ‘번뜩이는’ 사고의 명멸(明滅)을 화면 속에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풀어 놓는다. 붓의 움직임을 양(陽), 먹의 고요함을 음(陰)이라 한다면, 그의 화면 속의 필묵(筆墨)의 음양합일은 화면 속에 리드미컬한 활력을 부여하면서, 음악적인 언어를 생성하고 있다. 화면 속의 빔(虛)과 참(實), 성김(疎)과 빽빽함(密)의 대립과 긴장은 소위 ‘기운생동(氣韻生動)’이 그가 도달하려는 동양회화의 궁극적 지점이자 정신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其昌)은 이 기운생동의 ‘기운(기의 리듬)’을 후천적으로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여행하여 가슴 속에 있는 속세의 티끌 먼지를 떨쳐버릴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이럴 때 기운생동은 예술(藝術)의 길 보다는 예도(藝道)의 과정 끝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가 “하나의 경험으로서의 예술(Art as an Experience)"을 제시하며 자기 자신만의 특수화되고 차별화되고 개성화된 체험, 즉 자기 만의 방식으로 도달한 길(道)과 깨달은 세상을 표현하는 것을 예술의 본질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 관점이 될 것이다. 인간 유기체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이런 경험의 재구성(Reconstruction of Experience) 과정은 바로 교육의 과정이라 말할 수 있으며, 수없이 이어졌던 수행(修行)과 수신(修身)의 갑작스럽고 직관적인 표현을 통해 김대열은 그 만의 돈오점수(頓悟漸修)식 화법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이건수 미술이론·월간미술 편집장

 

 

靑山見我(청 산 견 아)_화선지에 수묵_550x214cm_2013

 

 

水綠風暖(수 록 풍 난)_화선지에 수묵채색_214x153cm_2013

 

 

雲高氣靜(운 고 기 정)_화선지에 수묵_138x69cm_2013

 

 

水遠煙微(수 원 연 미)_화선지에 수묵_82x65cm_2013

 

 

石本無聲(석 본 무 성)_화선지에 수묵_91x63cm_2013

 

 

 
 

김대열

 

1952년 충남 청양생 |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 | 국립대만사범대학 대학원 (예술학석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미술사. 문학박사) | 개인전 13회 | 기획 단체전 다수 | 참여위원 및 회원 |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 불교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 한국미술협회 회원 | 한국불교학회 회원 | 한국종교교육학회 회원 | 한국선학회 회원 | 한국문화사학회 회원 | 동양예술학회 회원 | 현재 동서미술문화학회 회장

 

현재 |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

 

 
 

vol.20130925-김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