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 展

 

'Works on Paper'

 

 

Untitled_62.5x50cm_Oil on Paper_1973

 

 

갤러리현대 신관

 

2013. 7. 11(목) ▶ 2013. 7. 30(화)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80번지 | T. 2287-3500

 

www.galleryhyundai.com

 

 

Untitled_92.5x57cm_Oil on Paper_1970s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

 

대표작 점화의 탄생 밑거름된 ‘종이작품’ 총망라

 

-일기처럼 작업한 뉴욕시절 종이 작품으로 구성한 전시: ‘작품세계의 전환점’

-추상미술의 태동 볼 수 있는 주요 사료

-광주시립미술관 순회 예정, 77년 이후 갤러리현대 기획한 다섯번째 대규모 김환기 전

 

갤러리현대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김환기(1913-1974)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화백의 ‘종이작업’에 초점을 맞춘 대규모 기획 <Works on Paper: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7월 11일부터 3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1977년 <김환기 회고전 1954-1970>, 1991년 <뉴욕시대 1966-69>, 1994년 <김환기 20주기 회고전>, 1999년 <김환기 25주기 추모전>, 그리고 2012년 4만 여명의 관람객을 모은 대규모 회고전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 김환기>에 이어 화백의 작품 세계를 깊이있게 다루는 다섯번째 대규모 전시이다.

 

 

 

Untitled_57x37cm_Oiil on Paper_1967

 

 

<Works on Paper: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서는 김환기의 만년작 점화가 탄생하기까지 그의 회화적 밑거름이 된 종이작품(Oil on Paper) 60여 점이 신관에서 전시된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뉴욕시절, 일기를 쓰듯이 작업한 이 작품들은 신문지, 한지 등 다양한 종이의 물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작가의 작품세계를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점화작업의 포트폴리오가 된 이 작품들은 Oil on linen과 Oil on cotton작품 못지않게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올해,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로 환기미술관 이어 두번째

이번 전시는 8월 28일부터 광주시립미술관으로 순회

이번 전시는 김환기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환기미술관에서 열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100주년 기념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종료후 8월 28일부터 9월 22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으로 순회한다.

 

이번 <Works on Paper: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새로운 시각으로 김환기 작품을 더욱 깊게 읽어내자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 만년 대표작으로 꼽히는 유화 점화의 탄생하기까지 중요한 밑거름이 된 작품이라 평가되는 수화의 종이작품에서 우리는 종이의 특성을 다른 어떤 작가보다도 가장 잘 이용하였던 김환기의 기법을 볼 수 있다. 작가 스스로 끊임없이 기초 체력을 단련하듯 회화력을 훈련했던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김환기 작품 전반에 녹아 있는 동양적 정서와 회화적 우수성을 더욱 깊게 이해하는 다시 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념하여 김환기의 Oil on paper 작품 100점을 엮은 국영문 도록을 출판한다.

 

 

 

Untitled_57x37cm_Oil on Paper_1968

 

 

김환기의 열정적인 종이 매체 탐구, 작품세계의 중요한 전환점

출품작인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뉴욕시절 일기를 쓰듯 작업한 종이작품은 50년대 프랑스 시절 종이 작품과는 달리 종이 그 자체의 물성을 즐기며 고유성을 살려 조형미를 추구한 것을 두드러진 특성으로 지닌다. 뉴욕시기에는 한지, 신문지, 보드, 갱지, 공책과 포장지에 이르기까지 재료 성질에 구애받지 않고 그 특징을 포용한 다양한 종이작업을 했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면서 샘처럼 솟아나온 빛깔과 질감, 형태와 구성의 하모니는 이후 펼쳐질 점화의 미학을 함축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종이작업의 내공 속에서,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메운 점화의 경건한 감동의 세계가 필연적으로 탄생된 것이다.

 

미국의 비평가 배리 슈밥스키(Barry Schwabsky, 아트지, 1985)는 “사람들은 김환기의 종이작업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은 깨끗하지 않은 재료인 신문지에 그려졌는데, 그림으로 스미는 인쇄의 흔적들이 물감과 표면을 고정시킨다. 이로써 리넨에서 할 수 없었던 물감이 표면으로 침투되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라고 평했다.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은 기록에서 “바탕에 인쇄 기름 막이 형성된 신문지가 물기를 흡수하여 마르면서 마치 다듬질을 한 것처럼 팽팽해지고 안료의 색상이 한층 빛나는 것을 발견하고 환호하였다”라고 전하였는데 이 시기에 김환기가 종이 작품을 통해 얻은 작가적 발견은 그의 작품 세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를 통해 맑고 투명한 액체가 종이에 머금으며 마치 화면에서 서서히 새어 나오거나 뿜어나오는 듯 보이는 성질을 그대로 살린 기법이 특징적인 동양적 추상화 ‘전면 점화’가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태동 읽을 수 있는 중요 사료

한국 화단에서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수화 김환기는 일본, 프랑스, 미국 등 해외에서 두루 활동을 하며 한국 근현대 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 서양적 추상화의 기법을 사용하여 한국적 정서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구현해 냈다고 평가 받는 그는 특히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후대에 남긴 독보적인 존재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작업에 몰두하였다고 알려진 김환기 화백이 남긴 작품은 현재 천여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중섭 화백(총 5백여 점 이하 추정), 박수근(유화 기준으로 2백여 점, 총 1천여 점 이하로 추정)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규모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김환기의 작품 중 종이 작품들은 김환기 화백의 작품, 나아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추상 미술의 태동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이번 <Works on Paper: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물성을 이용한 기법의 새로운 발견, 종이 작품 이전에 비해 훨씬 화사해진 색감 등을 통해 김환기 작품의 변천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Untitled 5-VIII-70_41x55cm_Oil on Paper_1970

 

 

1967년 뉴욕, 수화 김환기에게 ‘종이’의 발견은 ‘점화’의 발견

 

1월 2일. Oil on Paper를 캔버스에 옮겨서 완성. 이 해의 첫 작품인 셈. 선(線)인가? 점(?)인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1월 23일. 나는(飛)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보자.

2월 20일. 종일 Oil on Paper를 정리하니 꼭 90점이다. 내일 현대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다. 밤새 아트 인터내셔널(Art International)과 스튜디오 인터내셔널(Studio International)을 뒤적이다. 예술도 역시 유행이다.

-  1968년 김환기의 일기 중에서

 

<김환기의 종이에 유채>

… 1968년대 뉴욕 타임스는 지질(紙質)이 오늘보다 훨씬 좋았다.

하두 종이가 좋아서 신문지에 유채를 시도한 김환기는 종이가 포함한 기름과 유채가

혼합되어 빛갈에 윤기가 돌고 꼭 다디미질한 것 과도 같은 텍스츄어가 나오는 것이

재미난다면서 한동안 종이에 유채작업에 몰두했다.

 

67년 말에서 68년 1,2,3월동안, 하루에 평균 10여장씩의 작업을 계속했다.

수화는 그 중에서 몇 장을 골라서, 하얀 백지를 사다가 배접을 해서 유리틀에 끼어 보았다.

자기도 놀라게 우수한 작품이었다. 작가는 신문지 위에 작업을 충분히 시도하고는

종이에 유채를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다시 캔바스 위에 작업으로 돌아갔다.

지금 그 배접을 하다말고 그대로 둔 40점을 꺼내서,

종이 보관을 위한 과학적인 과정을 거쳐서 배접을 시켜, 유리틀에 끼다.

종이가 유리에 닿지 않도록 막음 틀을 사이에 끼어서 그림과 유리 사이를 뜨게 하다.

그림은 어제 그린 것처럼 싱싱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

 

- 1990년 김 향 안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知天命) 50의 나이에 한국에서 쌓아온 모든 지위와 풍요와 안정을 버리고 뉴욕에 정착하면서 본격화된 김환기 예술의 투혼적인 여정은 종이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타고난 천성인 것처럼 그의 예술 생애는 지칠 줄 모르는 다양한 조형시도와 새로운 재료실험의 연속이었다. 평생의 창작 과정과 결과에서 일관되게 보여 지듯이 다채로운 재료들과 풍부한 조형실험의 결과들이 그대로 남겨졌다.

(중략)

김환기는 일찌감치 드로잉과 같은 종이작업에서 느끼는 ‘손 맛’의 각별한 매력 - 섬세하고도 율동적인 화면의 생동감을 보았고 붓이나 연필과 손이 일체가 될 때 나타나는 미세한 울림의 매력에 감탄했다. 또한 종이 꼴라주나 오브제 작업을 통해 발견하는 공간의 변화무쌍한 내러티브의 박진감에 이끌렸다. 이러한 과정은 캔버스 작업에서도 두터운 유화 등 마티에르의 질감에서 벗어나 안으로 스미는 듯 엷고 투명한 안료의 은은한 여운이 감도는 화면을 창조하게 도와주었다.

 

- 환기미술관장 박 미 정

 

 

 

Untitled_89x56cm_Oil on Paper_1970s

 

 

기획의 글 - 이번 전시에 앞서

 

갤러리현대 박명자

 

갤러리현대는 김환기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Works on Paper :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마련합니다. 1913년 태어난 김환기 화백은 동경에서 유학 후 한국과 파리, 뉴욕에서 활동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습니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제1세대로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셨던 김환기 화백은 추상에 한국적 서정성을 표현하며 우리미술의 정체성을 구현해 내셨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김환기의 만년작 점화(點畵)가 탄생하기까지 밑거름이 된 Oil on Paper 작품 70여 점이 전시됩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일기를 쓰듯이 작업한 이 작품들은 신문지, 한지 등 다양한 종이의 물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작가의 작품세계를 충실하게 담고 있습니다.

점화작업의 포트폴리오가 된 이 작품들은 Oil on Linen 과 Oil on Cotton 못지않게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1985년 2월, 『아트』지에서 비평가 배리 슈밥스키(Barry Schwabsky)는 "사람들은 김환기의 종이작업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은 깨끗하지 않은 재료인 신문지에 그려졌는데, 그림으로 스미는 인쇄의 흔적들이 물감과 표면을 고정시킨다. 이로써 리넨에서 할 수 없었던 물감이 표면으로 침투되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라고 평하였습니다.

 

갤러리현대는 1977년《김환기 회고전 1954-1970》, 1991년《뉴욕시대 1966-69》, 1994년《김환기 20주기 회고전》, 1999년《김환기 25주기 추모전》, 2012년 김환기 대규모 회고전 이후, 올해《Works on Paper :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개최합니다.

 

이 전시에 작품을 출품해주신 소장가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애호가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Untitled, 1960s, Oil on Paper, 58 x 37cm

 

 

김환기 종이작업의 세계 ‘페넬로페 베 짜기’의 숙명

 

박미정 (환기미술관장)

 

김환기는 1963년 가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한국 측 커미셔너 겸 작가로 참석하여 '명예상'을 수상하고 돌아오던 중, 현대미술의 중심지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점검해보자는 각오로 뉴욕으로 향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도착하였지만 다행히 한국전쟁 중 인연을 맺은 청년 브루노(Bruno)의 도움으로 맨해튼 북부의 아파트 한켠에서 과슈며 작은 유화 작업들을 곧 시작할 수 있었다. 뉴욕은 그가 수년 전 경험한 예술의 메카 파리와는 또 다른 세상이었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파리에서의 창작시간이 지중해의 푸른빛과 고국산천의 빛이 어떻게 다른지 느끼게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에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의 근원 을 향하도록 하였다면, 뉴욕의 분위기와 환경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세계로 닿는 예술적 승화로 거듭나기 위해 넘치는 창작 욕구와 창의적 발현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모색을 심화시켰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知天命) 50의 나이에 한국에서 쌓아온 모든 지위와 풍요와 안정을 버리고 뉴욕에 정착하면서 본격화된 김환기 예술의 투혼적인 여정은 종이작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타고난 천성인 것처럼 그의 예술 생애는 지칠 줄 모르는 다양한 조형시도와 새로운 재료실험의 연속이었다. 평생의 창작 과정과 결과에서 일관되게 보여 지듯이 다채로운 재료들과 풍부한 조형실험의 결과들이 그대로 남겨졌다. 그 중에서도 뉴욕시기에 돋보이는 장르가 바로 한지, 신문지, 보드, 갱지, 공책과 포장지에 이르기까지 재료의 성질에 구애받지 않고 그 특징을 포용한 다양한 종이 작업들이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샘처럼 솟아 나온 빛깔과 질감, 형태와 구성의 하모니들은 이후 펼쳐질 점화(點畵)의 미학을 함축한 조형미를 구성하고 있다.

 

구체적인 자연대상이 사라지고 점, 선, 면들로 구성되는 순수한 추상에로의 변모에는 그의 커다란 손으로 부지런히 만져지고 다듬어진 화면 구성과 오브제 작품들인 종이작업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종이는 성질상 다른 재료들과 비교할 때 만지기 쉽고 가볍고 유연하다. 또한 무수히 많은 종류의 재질에 따른 다양한 디테일의 섬세한 과정과 결과를 한층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김환기는 일찌감치 드로잉과 같은 종이작업에서 느끼는 '손 맛'의 각별한 매력 - 섬세하고도 율동적인 화면의 생동감을 보았고 붓이나 연필과 손이 일체가 될 때 나타나는 미세한 울림의 매력에 감탄했다. 또한 종이 콜라주나 오브제 작업을 통해 발견하는 공간의 변화무쌍한 내러티브의 박진감에 이끌렸다. 이러한 과정은 캔버스 작업에서도 두터운 유화 등 마티에르의 질감에서 벗어나 안으로 스미는 듯 엷고 투명한 안료의 은은한 여운이 감도는 화면을 창조하게 도와주었다. 물론 50년대 파리시절에도 김환기는 많은 드로잉과 수채화 등 종이작업을 남겼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종이 작업이 주제를 보다 심화시키기 위해 또는 소재에 따른 효과를 각한 결과로서 의도적으로 선택되었다면 뉴욕에서의 종이작업들은 그 어떠한 목적도 염두에 두지 않고 종이 그 자체의 물성을 즐기면서 종이의 고유성을 살려 조형성을 추구하였다는 것이 보다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재료에 대한 완전한 배려는 보다 근원적인 동시에 포괄적인 미학의 세계 - 함축된 자연 형상과 내밀한 서정이 융합된 조형의 세계가 예술 혼으로 승화된 전면점화(全面點畵)에 이르도록 한 원동력인 것이다.

 

김환기는 지칠 줄 모르는 자신의 창작열을 그리스 도기(陶器)의 화제에 많이 등장하는 페넬로페의 숙명에 비유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아내인 페넬로페는 20년에 걸친 남편의 트로이아 원정 중 많은 구혼자들이 위협적으로 다가오자, 지금 짜고 있는 시아버지의 수의(壽衣)를 마치면 결혼한다고 약속하고 낮에 짠 천을 밤에 풀어 시간을 벌면서 정절을 지켰다. '페넬로페 베짜기'처럼 이유와 결말을 초월하여 받아들이며 묵묵히 작업하는 예술가의 '비장하고도 숭고한' 숙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메운 점화의 경건한 감동의 세계는 수많은 종이작업의 내공 속에서 그처럼 필연적으로, 자연스럽게 탄생하였다.

 

2013년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김환기가 세상에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환기미술관을 비롯한 많은 전시공간에서 그의 깊고 다양한 예술세계가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이번에 갤러 리현대 에서 소개하는 김환기의 종이작업들은 한지와 신문지와 보드지와 갱지 등 각기 성질이 확연히 다른 종이들 위에 펼쳐진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Untitled VI - 68_55x37cm_Oil on Paper

 

 

수화 김환기의 종이작업 (1967-73)

 

김현숙 (덕성여대 연구교수, 미술평론가)

 

1996년『월간미술』5월호에 발표된 앙케트 조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고 작가 1위로 수화(樹話)김환기(金煥基, 1913-1974)가 뽑혔다. 그 후로도 김환기에 대한 평가는 계속 높아져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 중에서도 수화 김환기의 그림에 감동하여 화가를 연모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뉴욕의 좁은 화실에서 김광섭의 시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어데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를 하루 종일 읊으며 점(點)을 찍었다고 하는데, 결국 화가는 별이 된 것일까. 실로 환기는 한국 미술사에서 별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환기처럼 화업의 전 시기의 작품이 사랑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현재 국민화가로 칭송받는 박수근(朴壽根, 1914-1965)과 이중섭(李仲燮, 1916-1956)도 같은 경우이기는 한데, 이중섭이 40여 년, 박수근이 50여 년, 김환기가 60여 년을 살았으니 붓을 잡은 시간이 두 작가에 비해 사뭇 길고 작품 양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중섭, 박수근의 작업이 구상화여서 대중들의 접근이 비교적 용이한 측면이 있는데 비해서 김환기는 초기부터 추상화를 시도했고, 반구상화를 거쳐 전면 추상화에 안착하였음에도 인기도가 높은 것은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하다. 특히 김환기의 말년작에 감동하는 계층은 미술가, 미술 이론가 등 미술 전문인을 포함하여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놀라울 정도이다.

 

점화(點畵)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1970년 제 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일 것이다. 뉴욕으로부터 발송된 이 그림의 포장이 벗겨진 순간은 50이 넘은 나이에 미술대학 교수, 미술협회장 등 사회적 명예와 안락한 삶을 등지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던 자를 심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 성패를 운운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노장 김환기의 도전은 화업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으며, 당시 한국의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이 그림과 김광섭의 시 '저녁에' 의 상호 교감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졌지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전에 점화가 시도되었고, 바로 이 전시회에서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Oil on Paper 그림이 그 탄생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목면 천 위에 유채의 점을 가득 찍은 그림으로 동양화의 발묵법을 연상시키는 번짐 효과가 두드러진다. 젯소 칠이 가미되지 않은 목면은 두툼하고 투박하여 물감의 흡수와 번짐에서 한층 중후한 맛이 있다. 이처럼 재료의 성질과 효과를 치밀하게 파악하여 선택하는 경우는 대체로 실험적 성격에 해당하는 이전 경로가 있기 마련이다. 직공법으로 말한다면 김환기는 Oil on Paper에서 점화 탄생의 비법을 체득하였다. Oil on Canvas는 Oil on Paper의 재연이거나 그 다음의 시도였다고 해도 지나친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반구상에서 전면 추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종이와의 만남은 매우 우연적인 듯하지만 결과는 거의 운명적이었다. 미술가들의 작업현장을 세심하게 들여다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가난한 미술가들에게 값 비싼 재료는 큰 부담일 뿐 아니라 심한 경우는 동가식 서가숙 하면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이 담뱃갑의 속지인 은지를 모아 은지화를 그리게 된 일화를 사례로 든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인데, 최악의 여건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에 대한 열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미술가들은 값싼, 혹은 버려진 재료를 나름대로 발명하거나 발견하곤 한다. 이중섭의 그림 대다수가 종이를 바탕재로 사용한 이유도 가난 때문인데, 그 결과가 부정적이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데에 삶과 예술의 묘미가 있다.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이다.

뉴욕으로 이주한 김환기 역시 무척 가난했으니 작품 재료값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터이다. 그런 화가의 눈에 어느 순간 폐지의 수순을 밟을 일만 남은 뉴욕 타임즈지가 들어왔다. 낡은 전화번호부 책도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글씨가 인쇄된 누런 종이들이 바탕재가 된 그림들이 마치 드로잉처럼 하루에도 수 점씩이나 완성 되어갔다.

 

화가는 바탕에 인쇄 기름막이 형성된 신문지가 물기를 흡수하여 마르면서 '마치 다듬질 한 것처럼' 팽팽해져 안료의 색상이 한층 빛난다는 것을 발견하고 환호하였다. 환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Works on Paper: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출품된 그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색 잔치라도 벌어진 것 같은 종이 그림의 색감은 분명 그 이전의 색과 달리 훨씬 선명하고 화사하다. 

 

1967년 10월 13일 화가의 일기장에는 "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일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自信) 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 차다" 라는 내용이 적혔다.

김환기가 신문지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하였기에 "나를 발견하다"라고 까지 했는지 정확히 알기는 쉽지 않으나 이후의 작업 변화상을 연역적으로 대조하여 파악하면, 신문지 작업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전환점이 예고되었고, 그 전환은 발묵 효과가 두드러지는 점화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문지 작업을 통하여 새로운 발견을 얻은 후 화가는 한지를 구매하여 바탕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Oil on paper의 점화를 캔버스 작업으로 옮겨 완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1970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그 이후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점을 둘러싼 사각형이 끝없이 확장되는 점화는 하늘의 별, 때로는 우물 속에 울려퍼지는 음향의 파장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라는 동양의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의 기호로도 보인다. 창덕궁을 비롯한 궁이나 엣 건축물의 연못 구조를 비롯해서 어렵지 않게 천원지방의 기호를 발견할 수 있으며,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는 중국의 천단(天?) 건축물 내부도 사각형 안에 원을 배치한 도형으로 꽉 차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환기의 점화를 보며 무수한 별이 빛나는 우주의 운행을 유추하는 것도 본능적으로 우주 상징의 기호를 감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호의 형태 및 의미가 점화를 구성하는 전부였다면 작품의 예술성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환기의 점화가 관객을 흡인하는 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묵화와도 같은 발묵 효과 때문이며, 우주적 스케일로 감지되는 이유는 수많은 우주의 기호, 다시 말해 원을 둘러싼 사각형의 연속 형태와 발묵의 융합 효과에있다.

이로써 그림을 들여다보면 어느 듯 자신이 우주의 한 점으로 수렴되고, 그 미미한 점들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발산하며 부유하는 자유로운 기운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젊은 날의 환기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성이 발견된다. 일본에서의 유학시절에도, 파리에 가서도, 그리고 미국으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세계를 잠식해버린 서양문화에 동양의 정신과 문화로 대항해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문화적 민족주의자로서 스스로를 담금질 했던 환기가 한국이라는 하나의 점에서 탈출하여 우주적 비전과 스케일을 확보하게 된 것은 1960년대 말경 종이로 점화를 시도하던 즈음이었음은 매우 흥미롭다. 환기의 각성은 종이의 물성과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신문지 작업을 하면서 "나를 발견"한 후 환기는 작업을 위해 화선지를 구매했고, 다시 캔버스 틀을 짜고 천을 맨 후 유화로 그 작업을 옮겼다. 이 과정은 신문지-화선지-캔버스로의 단순한 이행이상의 의미가 있다.

환기의 작업 일지에는 캔버스 틀을 짜고 천을 매는 노동의 강도에 고통스러워 하는 내용이 여러 번에 걸쳐 토로되었다. 반면에 신문지나 화선지로 작업을 할 때에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음이 확인된다.

1970년대 초에 화가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으므로 고된 작업이 힘들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해도 캔버스 작업에 비해 종이 작업의 편이성과 유연한 물성이 화가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했던 것은 분명하다. 

 

본 전시를 통해서 종이의 부드러운 포용력과 유연함이 점화의 탄생과 전개에 토대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큰 수확일 것이다. 나아가서 색의 향연과 기호들의 자유로운 유영에 동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 될 것이다.

 

 

 

Untitled 1 - II - 68_55x37cm_Oil on Paper_1968

 

 

작가일기

 

1967

10월 13일. 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중에서 나는 나를 발견한다. 내 재산은 오직 ‘자신(自身)’ 뿐이었으나 갈수록 막막한 고생이었다. 이제 이 자신이 똑바로 섰다. 한눈팔지 말고 나는 내 일을 밀고 나가자. 그 길밖에 없다. 이 순간부터 막막한 생각이 무너지고 진실로 희망으로 가득차다.

 

1968년

1월 2일. Oil on Paper를 캔버스에 옮겨서 완성. 이해의 첫 작품인 셈. 은(銀) 바탕에 색점(色鮎)으로 끝냈는데 칸(Kahn)이 와서 반추상(半抽象) 2점 가져가다. 팔아오기를 기대. 밤에 A, B, 2점 하다. 포도주를 혼자 마시다. 나이 먹을수록 쓴 술을 좋아하게 되나보다. 선(線)인가? 점(?)인가?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 칸이 다시 가져 온 홍계배경(紅系背景)을 황색으로 고치다. 미국인의 취미를 알겠다. 이담엔 자기의 침대를 짜르라지.

 

1월 23일. 나는(飛) 점(?), 점들이 모여 형태를 상징하는 그런 것들을 시도하다. 이런 걸 계속해보자.

 

1월 25일. 오늘도 무척 춥나 보다. 추운 날이다. Oil on Paper 5점하다. 어제보다 능률이 난 셈이다.

 

1월 26일.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모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1월 28일. Oil on Paper 2점하다. 빨간 바탕에 노랑 삼각형점(?). 이제까지의 내 빛깔이 아니다. 밝은 빛을 좀더 해봐야겠다.

 

2월 1일. 어제 하던 일(Oil on Paper)을 끝마치고 새로 5점을 했으니 가장 다작(多作)한 날인가.

새로운 감흥이 나는 것 같다. 예술(창조)은 하나의 발견이다. 피카소가 이 생각에 도달했다는 것은 참 용한 일이다. 그렇다. 찾는 사람에게 발견이 있다. 일을 지속한다는 것은 찾고 있는 거다.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아름다운 세계(자연)가 아닐까. 3점 했는데 두 점만은 맘에 든다. 나는 이 두 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2월 19일. 봄바람인가. 햇빛은 나나 추운 바람이 드세다. 합지(合紙)사러 울워스(Woolworth)에 갖다 오는데 높은 빌딩창에 햇살을 보니, 참 그리운 것은 햇살뿐이다.

우연히 바람 속에서 생각하다. 우리는 언제 돌아갈 것인가? 내후년 봄(1970년)에는 돌아가자.

 

2월 20일. 종일 Oil on Paper를 정리하니 꼭 90점이다. 내일 현대미술관에 가기 위해서다. 밤새 아트 인터내셔널(Art International)과 스튜디오 인터내셔널(Studio International)을 뒤적이다. 예술도 역시 유행이다.

 

3월 7일. 어제 밤새 종이 일(콜라주)하고 아침 8시 30분 기침(起寢). 고단하나 더 잘 수가 없다. 해가 창에 들인다. 오늘 내 작품 13점 경매하는 날. 65년 상 파울로(San Paulo)에 갔던 것.

 

5월 1일. 오늘의 미술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또 가질 수 있는 모든 형태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5월 20일. 30” x 25” 끝내고 오브제(Object)에 채색하다. Tasca 영 행방불명을 확인하다.

 

7월 2일. 작가가 늘 조심할 것은 상식적인 안목에 붙잡히는 것이다. 늘 새로운 눈으로, 처음 뜨는 눈으로 작품을 대할 것이다.

 

1970

2월 11일. 한국일보사로부터 내신來信, 한국미술대상 전람회 1회에 출품 의뢰. 출품하기로 맘먹다. 이산怡山 김광섭 시 <저녁에>를 늘 맘속으로 노래하다. 시화대작을 만들어 ‘한국전’에 보낼까 생각해보다.

 

6월 7일. 아침 9시 반 전화소리에 깨다. 조세형(한국일보 워싱턴 주재기자)으로부터 내가 ‘한국전’에 대상을 탔다는 보고다. 11:30 사社로부터 축전이 날아오다. 상보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축하감사의 뜻을 몇 자 적어 띄우다. 아버지 떠나신 지 27년째 되는 제삿날이다. 모처럼 해가 나는 날.

 

6월 23일. 82” x 60” 시작. #178, #177 아침, 모처럼 청명. 잊고 지냈던 강신석姜信碩씨가 주간

(週間)한국에 내 기사를 뜯어 편지속에 보내오다. 마산에서. 편지의 구절에,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앞바다 돗섭에 보리가 누렇다 한다. 생각나는 것이 많다. 부산에서 향鄕과 똑딱선을 타고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가던 때...... 맨하튼...... 지하철을 타고 뻐꾸기 노래를 생각해 본다.

 

1972

9월 14일. 요 며칠은 틀 꾸미기에 지친다. 화제란 보는 사람이 부티는 것. 아무 생각 없이 그린다. 생각한다면 친구들, 그것도 죽어 버린 친구들, 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 생각뿐이다. 서러운 생각으로 그리지만 결과는 아름다운 명랑한 그림이 되기를 바란다. Poindexter 에 나가서 Poster를 가져오다. 서울, 동경, 파리에 약간 발송.

 

1973

1월 1일.

Happy New Year. 얼마 만의 햇빛인가! Rack Land  를 처음 나가보다. 이 땅은 어디를 가도 넓고 아름다운 自然이다. 해를 받으며 향鄕과 한참 거닐다 들어오다. 來日은 Bear Mt.에나 나갈까?

1월 16일.

창밖, 해가 나고 다사로운 날씨다. 한 번 나가지 못하고 종일 Studio에 있다. Orange 로 Oil on Paper 한점하고 stretcher 하나 만들고 Canvas까지 매다. 밤에 Ultra 로 Oil on Paper 하나 시작. 좋은 생각을 해내다. 곂치는 그림. 실은 오래전에 생각했고 두어점 만들기로 했던 일. 고용古用틀을 만들자.

 

 
 

 

 
 

vol.20107113-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