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작가조명

 

미완예찬 展

 

김용수_판도라의 정원_Acrylic on canvas_ 162x228cm_1997

 

 

경남도립미술관

제5전시실

 

2013. 5. 9(목) ▶ 2013. 8. 21(수)

Opening : 2013. 5. 9(목) PM 17:00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1-2 | T. 055-254-4600

 

 

참여작가 | 김용수 | 김진성 | 노태범 | 안재덕 | 황인학

 

김용수_untitled_Acrylic on canvas_122x245cm_1998

 

   

『지역작가조명 - 미완예찬』은 경남지역작가 중 젊은 시절 왕성한 활동으로 예술창작의지를 불태우다 40대 중반 전후로 단명한 작가들의 예술세계와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전시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는 경남지역출신으로 40대 전후로 단명한 작가 중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확고히 개발한 다섯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용수, 김진성, 노태범, 안재덕, 황인학의 작품 중 기법과 형식, 그리고 내용적 측면에서 각 작가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진성_사랑_철,알미늄메타라이징_50x50x55cm_1989

 

 

 경남도립미술관은 경남지역미술사 연구를 위한 지역작가 발굴을 위해 지역작가조명전을 기획해오고 있다. 경남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다가 작고한 작가를 비롯해 한국현대미술에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긴 작가를 선정하여 진행하는 회고전 형식의 전시였다. 출생년도를 기준으로 순차적으로 진행해온 이 전시는 현재까지 약 20회 정도 개최하였으나 경남지역 출신의 뛰어난 작가들이 많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작가분들이 전시에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일찍 세상을 등진 이유로 작품들이 제대로 보관되거나 정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자료를 정리하기가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어 올해 특별한 전시를 기획했다. 이름 하여 『미완예찬』. 경남지역작가 중 젊은 시절 왕성한 활동으로 예술창작의지를 불태우다 40대 중반 전후로 단명한 작가들의 예술세계와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지역작가조명전 - 미완예찬』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는 경남지역출신으로 40대 전후로 단명한 작가 중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확고히 개발한 다섯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용수, 김진성, 노태범, 안재덕, 황인학의 작품 중 기법과 형식, 그리고 내용적 측면에서 각 작가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김진성_이상한가방2_알루미늄_80x30x35cm_1989

 

 

김용수는 1962년 출생으로 경상대학교 미술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작업 활동을 하던 중 2001년 마흔을 앞두고 요절한 작가다. 그는 1985년부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으며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제1기 청년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의 “98 젊은모색”전을 비롯해 표 갤러리, 박여숙 갤러리의 개인전 등 큼직한 전시들을 펼쳐 보였다.

그의 작품은 백색의 바탕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메운 흑색 띠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색채를 배제시킨 이유는 가능한 한 화면에 최소한으로 절제된 내용을 담아 내고자하는 미니멀리즘의 의도의 연장선에서 파악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티브들이 때로는 열려진 형태로서 화면의 전면적 평면성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흰 부분과 검은 부분의 구분에 의해 입체적인 공간으로 보이는 시각적 환영을 창출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균일한 두께와 간격으로 반복되는 선으로 재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선이 흰색 바탕을 말하는 건지 검은색 바탕을 말하는 건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배경과 그림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이다. 기계적인 선긋기 작업에 의해 색채나 표현을 배제하는 태도는 궁극적으로는 미술을 통해 자기를 버리려는 자세와도 통할 것이다.

 

 

노태범_부-생명_한지,혼합재료_127.5x112cm_1999

 

 

김진성은 1952년 경남 마산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수학시절을 막 끝낸 1983년에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희망적인 첫 출발을 시작했고 1984년에 첫 개인전(미술회관)을 시작으로, 86년에 제2회전(윤갤러리)을, 1987년과 1989년에 각각 제3회전(현대미술관, 압구정동)과 제4회전(인공갤러리)을 가졌다. 홍익대학교 교수로서 그리고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는 1991년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했다.  

그의 작품의 중요한 특징은 쇠라는 물체를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형상으로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도록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원래의 형태에 변형을 가하거나 변형된 것으로 여겨지는 형태를 만들어 낸다는 점인데, 예컨대 판을 찢고, 비틀어 늘어뜨리고 볼트를 박고 정을 박거나, 구멍을 뚫어 놓거나, 판을 가볍게 겹치거나, 때로는 핸들 모양을 박아 넣거나 하는 것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의 작품은 과거의 개인적 역사적 경험과 많이 닿아 있다. 전쟁이 끝난 후 군인들이 드나들던 고향의 마구간과 야산에서 보았던 폭격 맞은 형상들, 부엌으로 들어갈 때 마다 딛고 내려가던 계단들, 양떼를 풀 먹이던 시절 군인들이 만들어 놓고 간 토치카의 흙 담들과 큰 형수의 깨진 편물기계가방 등이 모두 어렸을 적 고향마을의 주변세계에서 보았던 생생한 기억들이다. 그의 조각들은 이러한 기억들을 토대로 한 새로운 형태의 풍경화이다.

 

 

노태범_화합부_한지,혼합재료_180x270cm_2005

 

 

노태범은 1962년 경남 합천 출생으로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한국화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동양화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3년부터 광주예술대학교에서 한국화과 교수를  시작으로 2003년에는 모교인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한국화 교수로 부임한다. 그는 한국화의 전통제재가 원초적으로 가지는 평면성과 표현성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는데, 그러한 열정적인 창작과 함께 진행된 건강 악화로 2008년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그의 작품은 한지, 종이 점토, 토분을 사용하며 전통제재가 원초적으로 가지는 평면성과 그 표현성을 극복하고자 한 다양한 시도의 과정이었다. 또한 그는 부적(符籍)의 평면성과 입체성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암각화와 같은 질감을 드러내면서 상징적인 기호와 선을 이용하여 현대적 감각을 표현했다. 전통 회화 방식은 기본적으로 평면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스티로폼을 시너로 녹여내어 부조를 만들고 그 위에 종이 점토(pater mash)로 재질감을 내는 작업에 몰입하였다. 더불어 선사시대의 암각화를 떠올리게 하는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부적이 갖는 무속성(巫俗性)을 고형화(Concrete form) 하였다. 그는 현대미술이 각 장르의 재료, 형식, 내용의 측면에서 그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생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 결과 전통적인 한국 회화의 이미지를 넘어서 현대 미술의 맥락에서 그의 작품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안재덕_기억의초상_Oil on canvas_ 130x162cm_ 1989

 

 

안재덕은 1956년 경남 진양군에서 6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대구 계명전문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진주 동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했다. 1977년 예로미술학원전을 개최하였고 1980년 경남도전에서 〈계절이 남긴 일기〉로 금상을 수상하였다. 이태리 유학 중 귀국하였다가 병을 발견하였고 힘든 투병생활 중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결국 1992년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그의 작품은 고독한 유년의 한 서린 기억, 삶의 스산한 풍경, 2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공부하던 당시의 체험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강렬한 색채와 굵은 붓터치는 추상표현주의의 형식에 기인하는 듯 하지만 그는 그가 머물렀던 장소의 기억과 재현의 끈을 놓지 않고 작업했다. 인상주의 이후 지속된 밝고 강렬한 색채와 닮았으면서도 추상표현주의의 음울하고 깊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구상과 추상의 줄타기를 시도하는 것이야 말고 회화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삶의 기억과 캔버스와 붓 그리고 색채에 집중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작품에서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그의 기억은 그래서 우리의 뇌리에 더욱 오래 남는다.

 

 

안재덕_기억의 언저리-이국풍경_Oil on canvas_73x91cm_1991

 

 

황인학은 1941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했다. 1959년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만화를 약 10년 간 그렸다. 1968년 경남실업고등기술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했고 1971년 결혼을 한다. 1973년부터 한국미술협회 마산지부회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아마도 이때를 전후하여 본격적인 미술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1978년 마산 동서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1985년 제6회 개인전을 치르고 생을 마감한다. 결핵을 진단받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마지막 개인전을 치르기 위해 진동면 바닷가 비닐 아틀리에에서 마지막 예술혼을 불사른 그를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진다.

그의 작품은 동판부조 작품으로 거대한 수족, 과장된 유방, 드러난 성기 묘사 등으로 인해 일견 그로테스크해 보이지만, 다시 바라보면 어떤 끈끈한 감성의 체취가 풍겨나고 있다. 과감한 성기의 노출이나 농염한 일련의 성적 코드에도 불구하고 결코 작품의 본질이 성(性)적인 차원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얽혀 있는 인간 군상끼리의 유대관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을 매개로 한 형식은 이중섭과 현재호의 형식적 영향 아래에서 자신의 예술성을 날 것으로 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더불어 인간 군상의 유대관계의 묘사가 사각 동판의 구성적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재현된 형상이 아닌 부조에 두드러져 드러난 이미지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형식적 완결성이 나체와 성기라는 소재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존재와 생명 자체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도록 해준다.  

 

 

황인학_사람1_동판부조_31x36cm_1982

 

 

전시장을 둘러보면 주제나 형식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없어 산만하고 밋밋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전시를 작품과 전시 형식에만 집중한다면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완예찬』이라 명명한 이 전시는 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의 예술의지를 남김없이 불사르고 운명을 달리한 예술가의 처절한 삶을 상상해보길 희망한다. 경제적 이득과 결과만이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인간 본연의 삶을 지키고자 했던 다섯 작가의 인생을 곱씹어 본다면 전시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황인학_사람3_동판부조_36x49cm_1982

 

 
 

 

 
 

vol.20130509-미완예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