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 展

 

'신들의 거주지 - 안나푸르나, 칸찬중가'

 

Nude with Pandim_227x182cm_Oil on linen_2012

 

 

선화랑

 

2013. 4. 3(수) ▶ 2013. 4. 16(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184 | T. 02-734-0458

 

 

Nude with Annapurna_162x130cm_Oil on linen_2012

 

 

인사동 선화랑(대표 원혜경)에서는 2013년 4월 3일부터 2013년 4월 16일 까지 한국의 고갱이라 불리며 한국이 아닌 뉴욕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최동열 작가의 작품전이 2006년도 전시 이후 7년 만에 열린다.

 

이번 전시는 최동열 작가가2011년 봄, 네팔 히말라야 중부에 있는 안나푸르나 산맥을 트랙하고 베이스캠프 인 촘롱마을(Chhomrong 2100m)에서 그린 작품, 2011년 가을 칸찬중가 트랙 후 종그리(Dzongri, 4030m) 허트에서 머물며 그린 작품, 2012년 봄 안나푸르나 순환트랙 후 갸루 마을(Ghyaru,3900m)과 마낭(Manang)마을 위에 있는 프라켄 곰파(Praken Gompa, 3945m)에 머물며 제작한 유화작품들, 그리고 돌아와 한국과 미국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Annapurna & Gangapurna glacier_130x162cm_Oil on linen_2012

 

 

최동열 작가의 이번 작품은 신들이 거주하는 성스런 산,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자연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세계를 섭렵하는 영혼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안나푸르나, 칸첸중가, 마체푸츠레, 판딤 등 신들의 거주지인 히말라야 산맥의 높은 봉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경험을 통해 보고 느낀바를 붓이 가는 데로 풀어 놓은 것이다. 독특한 풍경, 상징적인 인물(누드), 정물은 객관적인 대상의 재현과 정밀묘사를 거부하고 작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중간색이 과감히 생략된 화면은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기운이 가득하며 화면은 주로 난색, 붉은색으로 주조되어 있고 재치 있는 구성과 설정은 다양한 시공간과 시점이 함께 자리한다. 이는 지난 추억과 현실이 중첩되어 이상향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연과 인간의 소통하는 공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Nude & Annapurna_97x113cm_Oil on linen_2012

 

 

최동열 작가는 본래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었다. 집안이 거창하여 미술을 할 엄두를 못 냈다. 작가의 할아버지는 박영효와 우정국 사건 3일 천하 후 일본으로 넘어가 한국학교를 세우고 관서대학 법대를 나온 후 한국으로 돌아와 나중에 33인을 변호한 우리나라의 초대 변호사이고, 우리나라 첫 피아니스트였던 할머니는 나도향 씨의 누님이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장손인지라 경기중학교에 다니며 정치에 꿈을 두기도 했다. 경기중학교 졸업 후 열다섯 살에 검정고시로 한국외국어대학에 들어가 베트남어를 전공하고, 열여섯 살 때 해병대에 지원 입대 했으며 열일곱 살 때 베트남 전쟁에 첩보대원으로 지원하여 2년 동안 포로 심문 등 첩보 활동을 했다. 덕분에 전쟁의 어두운 뒷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제대 후 전쟁터에서 돌아와 대학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하게 느껴져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삶에 ‘올인’하겠다는 생각으로 공장에서 일하고, 술집에서 바텐더를 하고, 태권도 사범을 하기도 했다. 정신을 차린 후 시를 쓰다 그림으로 전향했다. 플로리다, 멕시코, 뉴올리언스, 캘리포니아, 뉴욕 등을 돌며 떠돌이 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고생을 하면 할수록 더 신나는 성격인지라 명랑하게 고생했다고 한다.

 

 

 

Nude with Kanchanjunga_65x53cm_Encaustic on wood_2013

 

 

미술계에 알려진 후 1987년 서울 전시로 금의환향했다. 그 시절 유행하던 한(恨)을 찾는다고 아내와 아홉 살 된 딸을 데리고 해남, 진도에서 작업을 하다가 겨울에는 설산을 그린다고 청평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브루클린 다리 아래 작업실과 워싱턴 주 올림픽 반도를 오가며 작업을 했다. 올림픽반도에서 연어 낚시, 등산, 정원 가꾸기 등 농부 일을 하다가 실크로드 여행 후 티베트, 네팔, 시킴, 라다크를 다니며 티베트 불교 벽화를 공부했다.

 

누군가 예술가가 되려면 전쟁터에 가든지, 감옥에 가든지, 아이를 길러보라고 조언한 작가의 말처럼 최동열 작가는 다양하고 드라마틱한 인생 경험을 통해 그 감흥을 있는 그대로 표현 할 줄 아는 예술가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진정한 작가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최동열 작가가 쓴 미학 에세이 ‘아름다움은 왜?’의 출판과 함께 철학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미학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

 

 

 

Annapurna 53x65cm_Oil on linen_2012

 

 

작가노트

 

안나푸르나, 마체푸츠레, 칸찬중가, 판딤....

히말라야산맥의 높은 봉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얼굴과 같이 매일 시간마다 표정이 변한다.

이 산들이 보이는 마을에 사는 원주민들은 이 봉우리들에 올라갈 일이 없었다. 신들의 거주지로서 하나의 수호신으로 모시며 살아온 것이다. 좋은 일에 감사하고 나쁜 재앙에 권장하는 상대가 되어온 것이다.

 

이번 전시에 보이는 작품들은 재작년 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랙의 촘롱마을(Chhomrong 2100m), 가을의 칸찬중가 트랙의 종리 허트(Dzongri, 4030m), 작년 봄 안나푸르나 순환트랙의 갸루 마을(Ghyaru,3900m), 프라켄 곰파 (Praken Gompa, 3945m)에 머물며 제작한 유화작품들과 돌아와 한국과 미국에서 한 작품들을 모은 작품들이다.

 

2주 살다 트래킹 퍼밑 때문에 육삼마을(1780m)로 하산하여 3일 동안 내려가 있을 때의 구름 한 점 없던 날씨는 어디가고 돌아온 종리(4030m)에는 30년만의 기록으로 쉬지 않고 내리는 폭설로 3일 동안 작업할 수 있는 기간은 총 한 시간으로 아랫마을에서 벼루었던 칸찬중가를 겨우 스케치 할 수준이었다. 다음날 아침 6시 물감, 비옷, 나일론 등산잠바, 뜨거운 차든 보온병, 물들은 카멜백, 땅콩, 마른 과일, 쵸코렛 섞은 비닐 봉지 둘, 접은 워킹 스틱을 싼 배낭 매고 왼손으로 캔버스 를 들고 오른 손으로 워킹스틱 움직이며 눈 덮인 길을 올랐다. 며칠 동안 아무도 오르지 않아 어제 내가 남긴 발자국 위에 새 눈이 쌓여있다. 계곡 따라 올라가며 눈 쌓인 언덕 위로 점점 하얀 얼굴을 드러내는 칸찬중가를 보며 ‘넌 오늘 죽었다’하며 계곡을 따라 올랐다. 눈이 깊어 푹푹 빠져 올라가는데 시간이 걸렸으나 장갑 낀 손이 멍멍해 지는 추위와 드디어 하는 기대감으로 신나게 올랐다. 만년설 덮힌 칸찬중가, 판딤, 텐징가, 조포네 봉우리 등으로 360도 전관이 보이는 곳에서 살짝 내려가 트래킹 루트에서 숨겨진 나의 야전 작업실이다. 이 폭설과 추위에 누가 방해를 하겠나만은... 워킹스틱 둘 눈 위에 세우고 캔버스 기대고 물감과 붓들을 그 앞에 널려놓고 배낭 커버를 내 앉을 자리 눈 위에 깔고 그 위에 나일론 등산잠바 놓고, 서서히 어젯밤 종리허트 아낙네가 준 보온병을 열어 차를 마시며 해에 비친 칸찬중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안개가 아래에서 올라 오기 시작하여 등산잠바에 앉아 작업을 시작하였다. 장갑 낀 손에 느낌이 오지 않아 손가락 움직이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추위에 빨리 마르는 알키드 오일이 잘 움직이지를 않는다. 칸찬중가 얼굴이 작업 한지 30분도 되지 않아 올라온 안개에 가려져 만년설 아래의 계곡은 반 기억, 반 추상으로 추위로 끈끈한 물감을 액션 페인팅으로 움직였다.

 

얼마나 지났나? 안개는 10m 이상이 보이지 않게 짙게 끼다 이슬비와 작은 눈으로 변해 캔버스의 물감과 합쳐 붓 움직이기가 힘들어져 멈추니 캔버스가 젖어있다.

물감을 쌓아 배낭에 넣고 남은 차 마시고 젖은 캔버스를 왼쪽 손으로 들고 오른 손으로 워킹 스틱을 사용하며 종리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깊은 안개를 지나니 좁쌀 같은 작은 눈이 내린다.

눈에 하얀 꽃 봉우리처럼 쌓인 로더덴드럼 숲을 지나 눈 오는 나의 허트로 돌아왔다. 텐트로 찼던 트래커 허트 앞마당과 트래커 허트는 텅 비어있다. 고산증 적응하다 폭설로서 올라가지 못하고 갇혀있다 다 하산 한 것이다. 그녀가 웃으며 반긴다.

 

2주 동안 궂은 날씨로 고생하다 하산하고 다시 올라와 또 오는 눈 맞으며 내려오는 내 모습이 우스운 모양이다. 배낭과 작품 내 방에 풀고 부엌으로 가서 늦은 아침하고 차를 마시는데 그녀가 뭐라고 하며 부엌에서 쫓아낸다. 내 방으로 돌아가 하나 있는 나무 창문 열고 들어오는 빛 비치는 벽에 캔버스 눕히고 물감을 꺼내 작업을 시작하였다. 아래 계곡부분이 너무나 엉성하게 처리가 되어있고 설산 위의 푸른 하늘이 너무 민민하다. 옆방 부엌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목욕을 하는 모양이다. 끝났다며 얇은 나무판자 벽을 통해 불러 캔버스를 들고 부엌으로 가니 그녀의 긴 머리가 젖어있고 티셔츠 바람이다. 장작불이 흙과 돌로 만든 아궁이에 타고 있으나 양 창문이 열려있어 추워 초등학생같이 작고 마른 그녀 보는 내가 추워진다. 주는 차 마시며 장작불 앞에 몸 말리는 그녀 옆에 앉아 내 몸과 작업을 말렸다. 습기, 고산, 추위는 유화 작품 마르기에 삼극이라 하산 일주일전 작업을 끝내야 할 뿐만 아니라 계속 장작불 앞에서 말려야 한다. 내 방으로 돌아가 계곡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눈에 보이는 계곡보다는 그림을 살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여 하늘도 오리버 초록색으로 덮으니 생각했던 방향에서 너무나 멀리 떠나 그럴듯한 모습으로 형성되어간다.

 

앞 설산의 험한 모습과 인디안 노랑, 오리버 초록, 마젠다의 조화가 칸찬중가의 얼굴을 살려주는 것이다. 깊은 안개 속에서 보지 않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려서, 내려오면서 드디어 그림 하나 망쳤구나 하였던 것이 너무 보이는 데 치중하지 말라는 하나의 조언 작품이 된 것이다. 하지만 만년설의 얼굴만큼은 험한 아름다움 지니면서...

 

왜 음식과 잠자리 편한 아랫마을에서 올려보며 그리던지 트랙하며 사진 찍어 돌아와서 하지 않고 이런 고행을 고집하는 것일까?

 

 

 

Nude with Kabul(Dzongri)_162x131cm_Oil on linen_2011

 

 

사랑하는 방법론의 차이일 것이다.

히말라야 산 깊숙이 들어와 칸찬충가, 안나푸르나, 판딤, 마체푸체레를 정면으로 쳐다보면 오래 전에 잃었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포근함과 파도처럼 몰려오는 원초적인 사랑에 들떠 하얗게 분장한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강렬한 청년으로 돌아온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뿐만 아니라 젊음에 따라오는 가슴을 짜는 외로움, 어정쩡한 불안정, 어리석음과 즐겁게 헤매는 습관도 되찾아 히말라야가 뿜는 정기를 열렬한 사랑놀이의 상대로 작품에 담을 수가 있었다. 물론 재작년 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나의 히말라야 사랑놀이는 불 완성 상태로 세련된 점이 모자라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본능적이라 너무 다듬어진 것 보다는 어정쩡하고 어색해야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

 

작년 봄 안나푸르나 순환트랙 중 마낭(Manang)마을 위에 있는 프라켄 곰파(Praken Gompa, 3945m)에서 짐 풀고 작업할 때이었다. 밤새고 눈보라 치는 반 동굴의 암자침실에서 자고 맑은 아침에 눈떠 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 3과 강가푸르나의 얼굴들을 보며 나는 남은 삶을 히말라야의 얼굴을 그리기로 약속을 했다.

 

 

 
 

최동열

 

1951 부산 출생 | 1972 도미

 

개인전 | 2012 수성아트피아, 대구 | 2011 김재선 갤러리, 부산 | 현대미술센터, 시애틀 | 2010 인당박물관, 대구 | 예화랑, 서울 | 2009 부산아트센터, 부산 | 필립강갤러리, 서울 (도화전) | 2008 부산아트센터, 부산 | 필립강갤러리, 서울 (납화전) | 2007 필립강갤러리, 서울 (납화전) | 2006 김재선갤러리, 부산 | 선화랑/필립강갤러리, 서울 | 2005 필립강갤러리, 서울 | 2004 선화랑, 서울 | 2000 갤러리 인, 서울 | 1997 샘터화랑, 서울 | 1995 갤러리 언타이틀드, 서울  | 1994 박여숙화랑, 서울 | 1991 박여숙화랑, 서울 | 1990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 1889 드본갤러리, 홍콩 | 버지니아 밀러 아트 스페이스, 마이애미 | 1987 아메리칸 이미지 갤러리, 뉴욕 | 1986 브리지워터 갤러리, 뉴욕 | 1985 세인트막스 갤러리, 뉴욕 | 1984 비엔빌 갤러리, 뉴올리언스  | 1979 뉴올리언스대학교 미술관, 뉴올리언스

 

그룹전 | 2011 Cologne Art Fair. Cologne, Germany  | Korea Internatinal Art Fair(KIAF), COEX, Seoul, Korea  | Art Gwangju, KDJ Convention Center, Gwangju, Korea  | Asia Top Gallery Hotel Art Fair (AHAF-Seoul), Grand Hyatt, Seol, Korea  | Seoul Open Art Fair (SOAF), COEX, Seoul, Korea  | Asia Top Gallery Hotel Art Fair (AHAF-Hong Kong), Mandarin Oriental Hotel, Hongkong  | Korea Galleries Art Fair , COEX, Seoul,  | 2010 대구아트페어 | 2009 화랑미술제 | SOAF | ART DAEGU | KIAF | ARTO/ AHAF  | 2008 화랑미술제/ SOAF/ ART DAEGU/ KIAF | 싱가포르 국제 아트페어  | 2007 ART DAEGU/ SOAF/ KIAF | 2006 SIAC, COEX, 서울 | 2005 “우리 시대를 이끈 미술인 30인” 서울옥션센터, 서울 | 현대미술센터, 시애틀 | 2004 상하이 국제 아트페어, 상하이 | 한국문화원, 뉴욕 | 1995 시애틀 아트페어, 시애틀 | 1993 “리사이클링 특별미전-순환과 창조” 대전엑스포 재생조형관, 대전 | 1989 버지니아 밀러 아트스페이스, 마이애미 | 1988 디 로렌티 갤러리, 뉴욕 | “베스트 오브 뉴욕” 사아치&사아치 개관전, 뉴욕 | 1987 “이스트 빌리지” 롱아일랜드미술관, 뉴욕 | “ 80년대의 미술” 아메리칸 이미지 갤러리, 뉴욕 | “부싯돌-뉴욕” 가나화랑, 서울 |  “K.I.D.A" 모코토프 갤러리, 뉴욕 | 1986 “미래의 예술” 아트 엣 인더스트리, 뉴욕 | “이스트빌리지의 대표화가” ABC노리오 갤러리. 뉴욕 | “휘트니박물관전” 언더그라운드. 뉴욕 | ‘리빙스톤파“ 노세노 갤러리, 뉴욕 | ”머리들“ 모코토프 갤러리, 뉴욕 | ”자유의 전시“브리지워터 갤러리, 뉴욕 | 1985 “극소전” 나우 갤러리, 뉴욕 | “부활” 폴라알랜 갤러리, 뉴욕 | “현대 원시파” ABC 노리오 갤러리, 뉴욕 | “이스트 빌리지” 세이디 브롱프맨 센터, 몬트리올 | “현재, 과거, 미래” 세인트막스 갤러리, 뉴욕 | 1984 “한미 감수성” 애머슨 미술관, 시라큐스 | 1978 “본능파-뉴올린즈 추상표현주의자” 트리오 루 로얄, 뉴올리언스

 

작품소장 | 국립현대 미술관, 과천 |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 한림미술관, 대전 | 대전엑스포 재생조형관, 대전 | 계룡산 자연사박물관, 공주 | 인당박물관, 대구 외 다수

 

저서 | 2013 미학 에세이<아름다움은 왜?> 디자인하우스 | 2007 자서전<돌아온 회전목마> (도)여성신문사 | 1994 자서전<들개와 선임하사> 디자인하우스

 

 
 

vol.20130403-최동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