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닥섬유 展

 

자연의 시간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_90x120㎝_닥섬유_2012

 

 

갤러리 공유

 

2013. 2. 14(목) ▶ 2013. 3. 13(수)

전북 전주시 금암동 664-20 | T.063-253-5056

 

 

매화나무에 비 개니 새순 돋고_108x48㎝_닥섬유_2012

 

 

자연의 시간

 

 

자연의 시간(자연, 느림과 비움)

거대한 도시의 시계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간다. 우리네들은 그 속에 매몰된 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며 살아간다. 나만의 시간적 여유는 존재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아마도 ‘빨리빨리’는 도시의 시계가 만들어낸 병일 것이다.

자연적인 삶에서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사계절을 매 순간 느끼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을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란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은 느리게 사는 것이고, 스스로의 시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자연의 시간을 얻어 순응할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낙엽 한번 밟는 사이에 겨울이 찾아오고 복사꽃 한번 쳐다보는 사이에 봄이 가버리는 것은 자연의 이치 아닐까.

 

어떤 시인은 ‘대지는 가슴뿐인 신체’라고 했다. 대지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돌출부와 모난 부분이 다 마모되어 한 덩어리의 둥근 가슴만 남은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세월에 씻기고 깎여 엇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네의 자화상도 그것과 닮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십여 년 전 우연히, 나무가 많은 마당 넓은 집에서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식물들의 생장과정들을 이해하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마당에 나무와 꽂을 심어보고 계절을 통해 그것들이 살아나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예전에는 하찮아 보였던 미물들이 자연과 시간의 순리 속에서 원생적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의 시계 속에서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정서적인 충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자연적 생명력에 심취하고 교감하면서 계절의 순리를 따르는 생명력의 에너지 앞에서 비로소 나 자신도 그 흐름속의 일부분으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지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의 원초적 에너지와의 소통으로 감응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은 대상을 물질성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의 생성을 좌우하는 근원적 원리를 찾아가고자하는 동양적 예술관의 요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_89x74㎝_닥섬유_2012

 

 

닥섬유 작업과정

닥섬유는 동양고유의 품격성을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담고 있다. 오래전부터 닥섬유는 단순한 질료가 아닌 정신성이 투영된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의례서식을 기록한 축문지, 소지, 지전, 금줄 등에 사용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특유의 청결함과 순수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닥섬유는 최근에 한국적 미감의 전승과 더불어 특유의 후덕한 질감, 유연한 재질특성으로 인하여 현대적 조형 매체로 재조명되고 있다.

 

본인의 닥섬유 작업과정을 설명하자면,

먼저 캐스팅기법을 이용하여 다양한 질감의 닥섬유 형상들을 떠낸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시각적 아름다움의 표현과 더불어 촉각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데, 핸드메이드의 특유의 자연적 손맛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흙을 가지고 놀면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도시의 시계 속에서 얻은 스트레스의 잔재들을 해소 할 수 있다는 치유적 장점 때문에 닥섬유 작업에 더욱 몰입 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해본다. 그것은 닥섬유가 조형작업과정을 통해 재질의 원 상태에서 또 다른 상태로의 작업과정 자체를 작품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섬유질의 엉김 자체가 텍스튜어를 가짐으로써 작품의 마티에르가 되고 그 마티에르가 곧 작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닥섬유는 섬유질 특유의 유연성을 이용하여 수작업에 의해 이차원적이거나 삼차원적인 표현요소들을 모두 소화 할 수 있다. 부조의 형태로 만들어진 각각의 닥섬유 오브제들은 먼저 대지와 바위, 또는 작은 동산을 이루도록 구성한다. 이 공간은 본인이 삽과 호미를 들고 넓은 마당으로 나가서 흙과 자연의 향기 속에서 하루 종일 놀았던 한 덩어리의 조그만 둥근 대지의 본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대지들은 대부분 화면의 중앙부에 위치하는데, 이는 자연의 시간 속에서 모난 부분이 모두 마모되어 한 덩어리로 된 나만의 작은 가슴대지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 대지위에 올려지는 작은 나무들과 난초, 학과 거북이 그리고 새와 나비 등은 자연의 시계에 맞춰 사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생명력의 단편 들이다. 서양회화에서의 콜라주 기법과 유사한 닥섬유 오브제들의 재구성을 통해 회화적인 공간과 물리적인 인위적 시간 사이에서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통한 ‘느림의 미학’을 찾아보고자 했다면 너무 거창할까.

또한 대지와 자연의 시간을 주제로 한 작업과정이지만, 마치 음식을 직접 먹어보기 전에 눈과 향기로도 음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닥섬유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이미 우리의 정서에 육화(肉化) 되어있는 한국적 정서와의 교감을 이루어 통시적으로 그 숨결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전통이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정서에 녹아있는 것들이다. 닥섬유의 정서적 수용성은 여러 이질적인 감성들을 품어 안아주는 넉넉한 어머니의 품과 같다. 그것은 서로 극명하게 대극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전통과 현대, 생성과 소멸, 자연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을 대동세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일 것이다.  

본인은 금번 전시를 통해 우리 문화의 한 축을 이어온 한지 문화를 현대적 조형매체로서의 가능성으로 제시해 보고자, 닥섬유의 예술적 접근방법과 그 전망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보고자 한다.

 

작가  배상

 

 

이노행(_奴行)-고양이의 행실_48x108㎝_닥섬유_2012

 

 

매화향기 몸에 품고_90x120㎝_닥섬유_2012

 

 

매화향기 몸에 품고2_90x120㎝_닥섬유_2012

 

 
 

 

 
 

vol.20130214-김정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