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경 展

 

U-Topos

 

U-Topos12025_145.5x112.1cm_캔버스위 혼합재료_2012

 

 

갤러리 이즈

 

2013. 1. 30(수) ▶ 2013. 2. 8(금)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0-5 | 02-736-6669

 

www.galleryis.com

 

 

U-Topos12027_145.5x89.4cm_캔버스위 혼합재료_2012

 

 

박제경의 레이스, 또 다른 회화적 관능의 세계

조광제(철학, 미술비평)

 

한 작가의 작업 스타일을 일의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적어도 미술 작업의 창의성을 도외시하지 않는 한, 작가에게 일관되고 고유한 작업 스타일을 요구하는 것은 거의 원칙처럼 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특정한 어떤 그림을 보았을 때, 그 그림이 누구의 그림인가를 단박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형 작업의 가능성이 무진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한 이는 작가의 그 유독(惟獨)한 조형 방식이 관람자들에게 전혀 색다른 조형적 세계를 제공함으로써 특정한 감각의 영역을 느닷없이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미술 작업의 위력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미술사를 장식하고 있는 위대한 작가들은 예외 없이 이 같은 미술 작업의 전제를 충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기 나름의 고유한 작업 방식이 관람자들의 감각적 역량을 새롭게 끄집어 올려 그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의적이라고는 하지만 그저 기발함에 머물고 말면 감각의 폭과 깊이를 더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강력한 예술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진정으로 창의적인 것은 묘하게도 보편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칸트가 제시한 공통감(Gemeinsinn)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감각학적 공통감은 천재적인 창의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작가들이 알게 모르게, 때로는 자신 나름의 예술적 역량에 만족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끝없는 절망 속에 빠지기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서 작가 박제경의 회화 세계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회화적 레이스의 세계를 창안해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창의적이다. 그 창의성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달리 말하면, 레이스의 세계를 회화적으로 표현해서 보여준다는 것이 감각학적인 차원에서 빚어내는 의미와 효과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관한 평자의 분석이 작가인 그녀가 염두에 두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이란 일단 제시되고 나면 작가의 손을 떠난다. 심지어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인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작품의 고독’을 주장하면서 “작품을 쓰는 자는 한쪽으로 밀려나고, 작품을 다 쓴 자는 작품으로부터 쫓겨난다.”라고 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서 평자는 자유롭게 나름의 분석을 하고자 한다.

 

 

U-Topos12031_116.8x91cm_캔버스위 혼합재료_2012

 

 

우선 박제경의 회화적 기법에 관해 살펴보자. 레이스는 코바늘을 이용해 빠른 손놀림으로 실을 꿰어 여러 문양들을 만들어내는 전통적인 수예 기법의 결과물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서 온갖 다양한 문양을 만들어내는 기계레이스가 대종을 이룬다. 그런데 박제경은 실 대신에 물감을, 코바늘 혹은 편물 기계 대신에 그녀만의 독특한 붓을, 레이스 본이나 컴퓨터 대신에 밑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두뇌의 손놀림을 활용한다. 박제경의 이러한 독특한 작업 방식은 ‘거미줄 잣기’(spiderweb spinning)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거미가 집을 짓기 위해 꽁무니에서부터 자동으로 얇고 질긴 투명한 실을 만들어내어 순식간에 직조를 해나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제경의 ‘거미줄 잣기’는 잭슨 폴록의 흩뿌리기(dripping)와 비교된다. 그 핵심은 잭슨 폴록의 흩뿌리기와 마찬가지로 온갖 다양한 조형적 가능성을 지닌 순수 감각적 본능을 한껏 발휘하는 박제경 나름의 회화 기법이라는 데 있다. 잭슨 폴록의 흩뿌리기와 마찬가지로, 박제경의 거미줄 잣기는 즉흥적인 감각을 본능적으로 통제하는 데 그 나름의 특성을 지닌다. 여기에서 ‘본능적인 통제’는, 앞서 자아 올려 캔버스에서 펼쳐지는 선들의 유희에 의해 뒤이어 자아올리는 선들의 유희의 속도와 방향 및 밀도가 저절로 결정될 때, 그 선들의 자발적인 조형적 유희에 작가가 손놀림이 올라타고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 박제경의 본능적 통제에 의한 거미줄 잣기는 어떤 조형적 직조를 하려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방향으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박제경의 ‘거미줄 잣기’ 기법을 염두에 두고서, 그 내용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망사(網絲)라고 번역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레이스는 일반 옷감과는 달리 이른바 ‘시스루’(see through)를 가능케 하는 특이한 직조 형태이다. 시스루는 몸, 특히 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사이사이로 언뜻 비치는 보일 듯 말 듯 한 속살은 옷을 아예 다 벗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몸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제공한다. 레이스의 시스루는 관능 자체가 아니라 관능의 세계로 유인하는 ‘관능에의 유혹’이다. 열어 보이면서 차단하고 차단하면서 열어 보이는 레이스의 시스루가 갖는 열림과 닫힘의 동시적인 이중성이야말로 관능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회화사를 통해 수도 없이 취급되어 온 것이 바로 관능이다. 관능이야말로 감각의 원천이라 여겼고, 따라서 관능의 세계 속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회화의 주제적인 본령인 양 취급되어 온 것이다. 예컨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서 암암리의 관능이 없다면 과연 명작으로 취급될 것인가. 구스타브 클림트의 <키스>에서 적절한 관능을 놓칠 수가 없고, 에곤 실레의 <꿈속에서 보다>에서 너무 노골적인 탓에 관능을 벗어버린 관능을 놓칠 수가 없다.

 

 

U-Topos12032_116.8x91cm_캔버스위 혼합재료_2012

 

 

그렇다면, 열림과 닫힘의 동시적인 이중성을 통해 관능을 노출하는 레이스를 회화적으로 구현한 박제경의 그림은 과연 관능적인가? 그녀의 그림에는 몸이 없다. 살은 더더욱 없다. 몸과 살이 없이는 그 자체로 결코 관능적으로 현존할 수 없는 레이스로 구축된 덩어리가 뜬금없이 공중, 그러니까 캔버스의 허공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럼으로써 오히려 잠재적인 관능성을 발휘한다. 두 연인이 한껏 강렬하게 정사를 치루고 난 뒤 주인공들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저 어지럽게 무질서하게 주름져 있는 침대 커버는 얼마나 관능적인가. 옥외 광고판인 양 도심에 높이 걸린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침대 광고 게시판>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박제경은 레이스를 관능적이게끔 하는 몸 또는 살을 삭제한다고 했다. 그 대신 레이스 자체가 덩어리를 형성하여 몸 또는 살이 되는 지경을 구축한다고 했다. 이는 일종의 절편음란증적인 도착이다. 절편음란증의 주체는 여자의 속옷을 예사로 훔친다. 고립된 공간에 들어가 그 훔친 속옷을 애무하면서 성적으로 흥분한다. 박제경은 관람자들에게 몸과 살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 대신 몸과 살을 애매하게 감쌈으로써 관능을 불러일으키는 상태에 있는 몸 덩어리를 닮은 레이스 속옷들만을 관람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는 관람자들을 은근히 절편음란증의 주체 상태로 유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이러한 유인 작업은 과연 성공적일까? 작품들을 구분해서 보자. 어떤 레이스는 분명 몸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속옷이다. 다른 레이스는 더 이상 속옷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소 무정형하게 덩어리져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레이스는 마치 감각적인 흥분에 의한 것인 양 난분하게 흐트러져 있다. 만약 이 작품들의 계열을 절편음란증에 의거해서 성적으로 흥분을 일삼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면 무리한 해석일까?

레이스와 덩어리는 본성상 전혀 이질적이다. 레이스는 본성상 덩어리인 몸 또는 살을 감싸면서 동시에 보여줄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덩어리가 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레이스는 본성상 결코 증기화(氣化)될 수 없다. 레이스는 본성상 몸 또는 살을 감싸는 것이기에 공중에 흩날리는 증기와 같은 것으로 될 수 없다. 그런데 박제경은 레이스로 된 덩어리를 만들어 레이스가 그 자체로 실체임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 실체적인 덩어리가 해체되어 증기로 되는 모습을 만들어 레이스가 그 자체로 비실체적인 이미지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컫자면, 박제경은 레이스라고 하는 여성적인 관능의 매체가 실체와 이미지를 오가면서 관능의 세계를 맴도는 지경을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박제경은 다시 기묘한 효과를 자아낸다. 그것은 몸 또는 살이 지닌 관능적인 본질을 드러내는 효과이다. 레이스가 감추고 있는 몸을 넘어서서 아예 레이스로 변환된 몸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아예 덩어리처럼 된 레이스에 함축된 몸은 어떤 몸이겠는가? 그 몸은 관능의 위력에 공격받아 성적으로 응축된 긴장된 몸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다면 아예 증기처럼 공중에 흩날리는 레이스에 함축된 몸은 어떤 몸이겠는가? 그 몸은 성적 흥분으로 절정으로 치달은 몸이 아예 그 자체로 감각적인 살이 되어 사방으로 흘러넘치는 몸이라 할 수밖에 없다.

박제경의 레이스의 회화적 세계는 분명히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해석을 유도해 내는 강렬한 회화적인 조형 장치들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색채와 선의 날카로운 대비와 격렬한 조화가 다소 부족한 것 같고, 레이스를 형성하는 그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선들이 전반적으로 보아 아직 관능의 열기에 덜 젖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녀의 이른바 본능적 통제에 의한 ‘거미줄 잣기’에 역점을 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세하기 이를 데 없는 그 ‘거미줄 선들’을 자아내느라 미친 듯 집중하여 희열의 시간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 이렇듯 화려한 선들의 향연을 구축해 내는 장면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 고도로 집중된 작가 박제경의 본능적 통제에 의한 ‘거미줄 잣기’의 회화 작업의 시간이야말로 관능적인 회화적 감각에 한껏 젖어 있음에 틀림없다.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대면하고 있다.

 

 

U-Topos12034_90.9x72.7cm_캔버스위 혼합재료_2012

 

 

 

 

■ 박 제 경  Park, Je-Kyoung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

 

개인전  | 2013.01  갤러리 이즈 기획전 | 2011.10  교하아트센터 | 2011.01  SK벤티움 기획전 | 2010.11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기획전 | 2009.12  율 갤러리

 

단체전  | 2012.12  크리스마스 버드전, 성남아트센터 | 2012.03  가설의 정원, 토포하우스 | 2012.02  2월 기획전, 자작나무 갤러리 | 2012.01  1주년 개관기념전, 경민현대미술관 | 2011.11  Pixel on Canvas전, 대구 EXPO | 2011.07  한.네델란드 국제 초대전, 시티홀 퀄큼 전시장 | 2011.05  개관 기획전, 경민현대미술관 | 2011.05  우수작가 초대전, 송스 갤러리 | 2011.04  정예작가 초대전, 영 아트 갤러리 | 2010.12  박제경.김소연 2인전, SK벤티움 | 2010.05  코리아 아트 페스티발, 프라임 갤러리 | 2010.03  "작은그림 꿈을꾸다", 서울 미술관 | 2009.12  옌타이 중.한 국제 미술 교류전, 중국 산동 문경화랑 | 2009.11  "젊은 정신", 한전 프라자 갤러리 | 2009.07  "그림, 내게로 오다", 아이 갤러리 | 2002~2004.08  신공예전, 한국공예문화진흥원

 

 

 

vol.20130130-박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