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관 展

 

김진관_씨앗_185x145cm_한지에채색_2011

 

 

갤러리 팔레 드 서울

 

2012. 9. 11(화) ▶ 2012. 9. 20(목)

Opening 2012. 9. 11(화) pm 6:00

110-040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6 | T. 02-730-7707

 

 www.palaisdeseoul.net

 

 

김진관_겨울_160x120cm_한지에채색_2012

 

 

맑고 투명한, 여리고 소소한 그림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김진관의 그림은 정적이다. 그런데, 정적인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수런수런 소리가 들린다. 풀잎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며, 풀섶에 숨은 여치 우는 소리, 흙 알갱이를 밀쳐내며 개미가 떼 지어 지나가는 소리, 콩깍지가 터지면서 콩들이 흩어지고 부닥치는 소리. 그런데, 정작 그림에서 소리가 날 리가 없다. 그만큼 암시적이고 생생하다. 생생한 그림이 소리를 암시하는 것.

그런데, 생생한 것으로 치자면 자연도감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정작 자연도감에선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실체 그대로를 옮겨 놓은 듯 사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가 않는다. 소리가 나려면 소리가 지나가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조직이 지나치게 치밀한 그림, 불투명한 막으로 덮씌워진 그림이 그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극사실적인 그림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으로 와 닿는 이유이며, 박제화 된 그림이 현실의 형해며 표본을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리가 지나가는 길이며 바람이 흐르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선 그림의 조직이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헐렁해야 하고, 맑고 투명해서 그 깊이며 층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림 속에 공기를 머금은 깊이를 조성하고, 공기와 공기 사이에 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공기와 공기 사이에 층(차이)을 만들어야 비로소 그렇게 달라진 밀도감을 통로 삼아 공기가 흐를 수 있게 된다.

 

 

김진관_씨앗들_160x130cm_한지에채색_2012

 

 

작가의 그림은 맑고 투명하다. 그리고 사실적이지만, 의외로 극사실적이지는 않다. 여백의 경우에 거의 담채를 떠올리게 할 만큼 묽은 채색을 여러 번 중첩시켜 맑고 투명한 깊이를 조성한다(근작에선 아예 종이 그대로를 여백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모티브를 보면 의외로 한 번에 그려 미세한 붓 자국이며 물 얼룩과 색 얼룩이 여실하다. 미세 얼룩이 오히려 암시력을 증가하는 것인데, 이처럼 암시에 의해 보충되지 않으면 실제감은 어려워진다. 실제와 실제감은 다르고, 실제가 실제감을 보증해주지는 못한다. 그림은 결국 감이며, 실제가 아닌 실제감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그리는 것보다는 그리지 않는 것,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리는 것을 암시하는 것, 채우는 것보다는 비우는 것, 비움으로써 채워진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고, 그 만큼 결정적이다. 이 모두가 그저 수사적 표현이 아닌, 암시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이며, 그림 속에 암시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실질적인 계기이다.

 

 

김진관_마른풀_190x127cm_한지에채색_2012

 

 

그림은 결국 조직의 문제이다. 조직을 촘촘하게 짤 것인가, 아니면 느슨하게 짤 것인가. 느슨하게 짜야 비로소 공기가 흐르는 길이 열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가 열린다. 그리고 작가가 소지로 쓰는 한지는 그 조직이 느슨해서 이런 공기의 길이며 바람의 통로를 내는 데는 그만이다. 섬유조직이 허술한 탓에 오히려 통풍성이 뛰어나고 덩달아 암시적인 그림에 어울린다는 말이다. 여기에 작가는 엷은 채색을 여러 번 덧 올려 바른 중첩된 색층으로 하여금 이렇듯 느슨한 조직 사이로 충분히 스며들게 하고 깊이감이 우러나게 한 것이다. 종이와 채색이 일체를 이룬 나머지 마치 종이 자체에서 배어난 것 같은, 종이 속에서 밀어올린 것 같은 색층이며 색감의 느낌을 주는 것. 그리고 종이는 채색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소리마저도 이렇듯 뱉어낼 것이다.

나아가 사실주의도 여러 질이다. 즉물적인 사실주의가 있고 암시적인 사실주의가 있다. 즉물적인 사실주의는 자연과학의 인문학적 전망과 관련이 깊고, 암시적인 사실주의는 감각적 경험이며 예술의 특수성에 관련이 깊다. 문제는 자연현상에 대한 물적 증거와 표상형식이 아니라, 어떻게 자연현상을 감각적으로 추체험하고 자기 경험으로 거머쥘 수 있느냐는 것이며, 그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백은 이런 암시적 사실주의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여백에도 여러 질이 있다. 그저 텅 빈 공간이 있고, 오히려 꽉 차 있는 텅 빔 곧 충만한 텅 빔이라는 모순율의 경우가 있다. 비어있어야 담을 수가 있고 찰 수가 있다. 바로 관객에게 할애된 몫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매번 똑같은 것을 담지 않는다. 상황논리에 따라서, 저마다 다른 것을 담고 매번 다른 것으로 채운다. 의미를 결정적으로 세팅하지 않는 것, 의미를 붙박이로 붙잡아두지 않는 것, 의미의 망을 느슨하게 짜 헐렁한 망 사이로 설익은 의미들이 들락거리게 하는 것, 그려진 의미가 미처 그려지지 않은 의미를 불러오게 하는 것이 모두 여백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작가의 그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김진관_자연_177x116cm_한지에채색_2012

 

 

작가는 말하자면 자연을 그리고 생명을 그리고 생태를 그리지만, 그것도 꽤나 세세하게 그려내지만, 정작 이를 통해서 자연이며 생명이며 생태의 의미를 결정화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어떤 결정적인 의미며 정의로 한정하지도 환원하지도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계몽주의가 아닌, 자연을 매개로 한 경험이며 추체험임을 알기 때문이다. 해서, 그저 그림과 더불어 바람결을 느낄 수만 있다면, 공기의 질감을 감촉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경험된 것을 추체험으로 분유할 수만 있다면 그 뿐이다. 소박할 수도 있겠고, 그 만큼 결정적인 경우로 볼 수도 있겠다.

그림 속에 공기의 길이며 바람의 통로를 내는 일, 헐렁하면서도 결정적인 감각으로 자연의 숨결을 암시하는 일, 그래서 마치 내가 그 숨결과 더불어 호흡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지는 일은 소박함이 아니고선 이를 수도 이룰 수도 없다. 여기서 소박함이란 무슨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태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대상의 물적 형식 외의 영역과 범주에 할애된 몫이며(대상을 느슨하게 잡는다?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 몫이 잘 표현돼야 비로소 대상의 물적 형식 자체도 더 잘 드러나 보일 수가 있게 된다. 모든 존재는 관계의 망에 속해져 있다. 문제는 모티브 자체가 아닌, 모티브와 여백과의 상호작용이며 상호간섭이다. 모티브도 존재고 여백도 존재다. 여백은 더 이상 여백이 아니다. 공기며 바람이다. 공기가 지나가는 길이며 바람이 흐르는 통로다. 그 실체감이 희박한 존재(여백)를 포착해야 비로소 상대적으로 실체감이 또렷한 존재(모티브)도 포획할 수가 있게 된다.

 

 

김진관_콩과 팥_120x140cm_한지에채색_2012

 

 

다시, 소리로 돌아가 보자. 어떤 사람은 봄에 밭에다 귀를 대고 있으면 새싹이 움트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대단한 귀를 가졌다고도 생각되지만, 그저 귀의 문제라기보다는 예민한 감수성의 문제로 보인다. 작가의 그림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알고 보면 그림은 고사하고 실제 자체도 여간해서 그 소리를 들어보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둔감한 감수성에는 거의 불가능한 경우로 봐도 될 것이다. 결국 관건은 실제로 소리가 들리는지 유무보다는 감수성의 문제이다. 자연을 대하는 주체의 감수성과 태도의 문제이다. 그리고 감수성과 태도에 관한 한 작가가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우리도 들을 수가 있게 된다. 여하튼 이처럼 실체감이 희박한 것들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느릿느릿 걸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의 산책자처럼 할 일없이 걸어야 하고, 칸트의 무목적적 만족에서처럼 목적의식을 내려놓고 걸어야 하고, 장자의 소요유에서처럼 개념 없이 걸어야 한다. 소리통이 잡소리로 가득 차 있으면 다른 소리가 들려올 공간이 없고 틈이 없다. 더욱이 이처럼 여린 것들이 내는 소리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작가의 투명하고 맑은 그림은 이처럼 소소하고 여린 것들이 내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나도 언젠간 작은 씨앗이 움트면서 내는 소리를, 실체감이 희박한 것들이 실체감이 또렷한 것들을 밀어 올리면서 내는 소리를, 그 여리면서 치열한 소리를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김진관

 

1979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 1987 중앙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 1991 금호미술관 (서울) | 1993 동서화랑 (마산) | 1996 금호미술관 (서울) | 1998 미술회관 (서울) | 2002 공평아트센타 (서울) | 2005 인사아트센타 (서울) | 2006 정갤러리 (서울) | 2008 북경 문화원 (중국) | 2009 인사아트센타 (서울) | 2010 장은선갤러리 (서울) | 2011 갤러리 자인제노 (서울) | 2012 팔레드 서울 (서울)

 

그룹전 | 1981   제2회 정예 작가전 (서울신문사, 롯데화랑) | 1981,82중앙미술대전 장려상 (중앙일보사, 호암갤러리) | 1983   제2회 청년 작가전 (국립현대미술관) | 오늘의 채색화전 (예화랑) | 1985-97오늘과 하제를 위한 모색전 (동덕미술관, 미술회관) | 1985,86 한국화 채묵의 집점 Ⅰ,Ⅱ (관훈미술관) | 1986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  Figuration Critique전 (프랑스 그랑팔레) |  아시아 현대 채묵화전 (미술회관) | 한국화 12인전 (미술회관) | 하나의 압축 - 한국화 현황 (아르꼬스모 화랑) | 1987    생동하는 신세대전 (예 화랑) | 3 인전 - 세 사람의 색깔그림 (동산방 화랑) | 33인전 (미술회관) | 1988    채묵, 80년대의 새 물결 (동덕 미술관) | 88 현대 한국 회화전 (호암 갤러리) | 1989,91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89 현대 한국화전 (서울시립미술관) | 43 인전 (조선일보 미술관) | 1990 예술의 전당 개관전 (예술의 전당) | 한국현대미술의 21세기 예감전 (토탈갤러리) | 1991 움직이는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 서울 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2 90년대 우리미술의 단면전 (학고재) | 92 현대회화초대전 (가산화랑) | 92 현대한국화전 (서울시립미술관) | 92 한국 현대미술전 (예술의 전당) | 92 ICAA 서울 기념전 (예술의 전당) | 1993 현대미술전 (예술의 전당) | 한․중 미술협회 교류전 (예술의 전당) | 비무장지대 예술 문화 작업전 (서울시립미술관) | 한국 지성의 표상전 (조선일보 미술관) | 1994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인사갤러리) | 94 한국의 이미지전 (미국 LA 문화원) | 1995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 작업전 (동산방 화랑) | 한국지역 청년작가 찬조 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6 오늘의 한국화 그 맥락과 전개 (덕원미술관) | 한국 지성의 표상전 (공평아트센타) | 한국 현대미술 독일전 (유럽순회전) | 1997 도시와 미술전 (서울시립미술관)  | 인터넷 미술전 - 제4회 차세대 미술전 (예술의 전당) | 21세기 한국미술의 표상전 (예술의 전당) | 한국미술 시점과 모색 (상 갤러리) | 1998 아세아 현대미술전 (일본 동경도 미술관) | 1999 한국화의 위상과 전망 (대전 시립미술관) | 역대 수상작가 초대전 (호암 갤러리) | 2000 그림으로 보는 우리 세시풍속전 (갤러리 사비나) | 풍경과 장소전 (경기도 문화회관) | 5월-채색화 3인전 (공평아트센타) | 2001 변혁기의 한국화 투사와 조명 (공평아트센타) | 21세기한국미술 그 희망의 메시지전 (갤러리 창) | 동양화 새천년전 (서울시립미술관) | 2002 공평아트센타 개관10주년전 (공평아트센타)  | 전환기 한국화현상과 전망전 (갤러리 가이아) | 2003 아트 서울전 (예술의 전당) | 박수근을 기리는 작가들 전 (박수근 미술관) | 가일 미술관 개관전 (가일미술관) | 2004 한국 현대미술의 진단과 제언전 (공평아트센터) | 한국화 2004년의 오늘 (예술의 전당) | 2005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한국화 대제전 (인천 종합문화 예술회관) | 소나무 친구들전 (목인 갤러리) | 2006 정독풍월전 (공평아트센타) | 한국화 만남의 공유 (율 갤러리) | 한․중 현대 회화전 (대전롯데백화점) | 2007 힘 있는 강원전 (국립춘천박물관) | 한국 인도교류전 정 갤러리) | 현대 한국화의 교류전 (가나공화국) | 2008 광화문 국제아트페스티벌 (광화문 미술관) | 한국현대회화 2008 (예술의 전당) | 한․중 포럼, 한국의미 특별전 (카이로 오페라하우스 전시장) | A&C 아트페어 서울전 (서울 미술관) | 2009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 (예술의 전당) | 현대미술의 비전 (세종문화회관) | 2010 한국미술의 빛 (예술의 전당) | 디스플레이 전 (갤러리 DY) | 현대미술 비전 (세종문화회관) | 2011 ICAA 서울 국제미술제 (조선일보 미술관) | 현대 한국화 조형의 모델 (아카스페이스) | 반달아 사랑해전 (미술공간 현) | 예스 희망을 믿어요 (우림화랑) | 아시아 미술제 (창원 성산아트홀) | 2012 브릿지 갤러리 1주년 기념전 (브릿지 갤러리)

 

현재 |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Email | jkwkim@sungshin.ac.kr

 

 
 

vol.20120911-김진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