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서 展

 

 

 

바람이 길을 열다_70x36cm_한지섬유에 아크릴

 

 

JMA스페이스 인사아트센터 B1

 

2012 9. 5(수) ▶ 2012. 9. 10(월)

Opening 2012. 9. 5 pm 6: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인사아트센터 제1전시장) B1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출구/ 3호선 안국역 6번출구 | T. 02-720-4354

 

 

바람소리_53.5x45cm_한지섬유에 아크릴

 

 

바람이 길을 열다

 

순천만 갈대숲 사이, 바람

날개짓 소곤거림

잦아드는 숨소리

 

몸으로 말하고 싶었다

가까이 다가갈 엄두 내지 못하고

경계 이쪽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내 안의 용틀임

갈대를 이리 저리 흔들어

개펄로 집을 엮고

 

무엇이 못 미더워

흑두루미 두어 마리 아직

떠나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어슴프레한 청자빛 하늘에

바람이 길을 열고 있었다

 

                                    志苑  박미서

 

 

 

바람이 길을열다.들꽂사이로_63x48cm_한지섬유에 아크릴

 

 

바람의 ‘길’과 ‘결’과 ‘뼈’를 보는 심안

 

호병탁(시인·평론가)

 

  바람의 속성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으로,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바람에 의해 반응하는 사물들의 모양과 소리에 불과하다. 풀은 바람에 살랑이며 눕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뭇잎은 바람에 흔들리며 스치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은 형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본질로는 존재하는 ‘부재하는 실재’를 함의한다. 박미서의 사유는 이런 ‘있음의 없음’과 ‘없음의 있음’이라는 형이상의 세계를 천착한다.

작가는 이번 『바람이 길을 열다』의 여러 작품에서 비가시적이고 비가청적인 바람을 수천수만의 낙필을 통해 가시적이고 가청적인 것으로 형상화하여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같은 제목의 그림 ‘작품 Ⅰ·Ⅱ’에서는 미풍이 분다. “들꽃 사이로”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에서는 오종종 피어있는 들꽃까지 함께 살랑거리고 있다. 우리는 산들바람이라고 하지만 산들거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풀이다. 그러나 ‘작품 Ⅲ’에서는 바람이 다소 거세졌다. 풀이 눕는 모습이 확연하다. 마침내 작품 「바람소리」에서는 광풍이 분다. 나뭇잎이 흩어지고 잔가지가 부러진다. 거친 바람소리가 귀에 들린다.

 

 

 

바람이 길을열다.갯내음_63x48cm_한지섬유에 아크릴

 

 

  우리는 모두 길(道)을 간다. ‘길’은 비유되어 우리를 설레게 하는 ‘사랑의 뒤안길’이 되기도 하고, 우리를 부대끼게 하는 신산한 ‘인생길’이 되기도 한다. 예술에서의 길은 실제의 길이라기보다 ‘운명의 인생길’ 전부 혹은 일부를 암시한다. 교차로는 인생의 전환점을, 표지들은 운명의 갖가지 지표가 될 것이다. 박미서는 ‘바람’이 ‘길’을 연다고 말한다. 이때 작가가 말하는 ‘길’은 인생길은 물론 그것을 넘어서는 깨우침의 길, 즉 앞서 말한 ‘부재하는 실재’를 함의하는 한 차원 넘어서의 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언하면 ‘길’은 뜻 그대로 ‘도’다.

공자는 만물의 근원인 도(道)를 그림을 그리는 흰 비단, 즉 ‘흰 바탕’에 비유한 바 있다. 흰 바탕은 아직 선과 색채에 의해 어떤 존재나 형상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무’의 모습에 상응한다. 따라서 어떤 대상의 구체적 형상을 초월하는 순수한 형이상이라 할 수 있다. 색깔과 형상으로 나뉘고 구분되지 않은 ‘흰 바탕’은 선과 색채에 의해 구체적 사물의 존재가 그려질 때 비로소 무한한 가능태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는 어떠한 색도 형상도 없는 바람이 수천의 다른 모습과 소리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 상동(相同)관계를 갖는다. 또한 모든 색채와 형상과 소리가 그 존재근거로서 자신의 배후에 ‘흰 바탕’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이치와도 부합한다. 따라서 박미서가 감각적 형상을 초월하는 존재인 ‘바람’으로부터, 바로 그 감각적 형상의 존재이유가 되는 ‘흰 바탕’을 인식론적 근거로 하여 “바람이 길을 열다”라고 ‘바람의 도(길)’를 말한 것은 충분한 논리적 타당성을 획득한다.

 

 

기억.그흐린풍경사이로_94x69cm_화선지에 수묵담채

 

 

  예술가가 세계를 직관할 때 자주 그 세계는 일상의 상투적 모습을 탈피하며 갑자기 ‘낯선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새로운 감각적 형상의 발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소위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의 과정에 불과하다. 그것의 진정한 모습은 낯선 동시에 낯익은 모습이어야 한다. 왜냐면 일종의 경이감을 수반하는 낯선 모습은 이미 자신이 그것을 본래부터 명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와의 만남이 자신과의 만남이 되는, 즉 외부의 사물이 내면의 심상으로 투명하게 인식되는 순간이고, 그 순간 세계는 일상을 탈각하며 새로운 모습을 내보이게 된다. 이 순간이 바로 작가의 실제세계에 대한 직접경험에 의한 주객합일의 순간일 것이다.

박미서가 이번에 보여주는 수묵에는, 일반적으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하늘이 보이지가 않는다. 한 예로 「기억, 그 흐린 풍경 속으로」를 보자. 추수 끝난 들판에 연기 오르는 모습은 우리 눈에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의 들판과는 판이하다. 우측상단에 약간 내비치는 논두렁이 없었다면 이것이 도대체 무얼 그린 것일까 고민해야 될 지경이다. 상투적인 모습을 벗어난, 낯설지만 또한 익숙한 풍경, 이것이 바로 주객합일의 일치를 이루며 세계가 그 현묘한 진정성을 작가에게 내보여준 풍경이다.

‘흰 바탕’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미서의 그림에서 ‘흰 바탕’은 언어의 의미와 무의미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흰 바탕’은 여러 의미의 틈에서 의미화 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확연히 드러낸다. 아니 의미(형상)는 오히려 무의미(흰 바탕)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위의 작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림의 중추다. ‘흰 바탕’은 채색되지 않은 그 자체로서 그림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운무’로 표현되는 다른 수묵들에서의 ‘흰 바탕’의 역할 또한 마찬가지다.

 

 

나를 가르치는건 언제나시간.결_326x131cm_화선지에 수묵담채

 

 

  ‘흰 바탕’이 그림 상단에 깔리면 그것은 하늘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박미서의 그림에는 하늘이 없다. 그러나 단 하나의 특별한 예외가 있는데 그래서 또한 낯설다. 「날다」를 보면 이 그림은 구 할 이상이 온통 하늘이며 ‘흰 바탕’ 대신 은은한 농담의 수묵으로 덮여있다. 상당히 낯설지만 역시 우리 눈에 익숙한 하늘임에 분명하다.

우측 하단에 표표히 날고 있는 새 몇 마리가 그림에 의미를 부여한다.

고찰의 대웅전에 ‘앙상히 결만 남은 목재’를 보고 ‘바람의 뼈’가 허공에 거대한 ‘적멸의 집’을 짓고 섰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다. 박미서의 대작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결」을 보자마자 이 시구가 뇌리를 쳤다. 「설악 운해」, 「산·운해」 같은 깎아지른 연봉들도 붓의 궤적은 마찬가지지만 이 그림에는 아예 병풍 같은 절벽이 화폭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물론 거명한 그림들은 하늘이 없다.) 붓은 달리고 멈추고, 맺고 풀리고, 서고 가기를 한없이 반복하며 이 그림에 무수한 구멍과 돌기, 갈라진 선과 틈, 떨어지고 이어지는 균열, 넓어지고 좁아지는 간격들을 새겼다. 작가의 원숙한 기량이 터진 물꼬처럼 쏟아져 내려 깎은 절벽은 한마디로 웅혼하다.

미서는 이 모든 것을 시간의 ‘결’로 보고 있다.

바람은 원래 비가시적인 것이지만 ‘바람’이 ‘길’을 ‘열’ 때, 그것은 가시적인 것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바람의 ‘결’이라 말할 수 있다. 작가의 심안은 오랜 세월 바람이 깎아낸 ‘결’이 바로 ‘바람의 뼈’로 남아 있는 것을 인지한다. 단청은 날아가고 앙상한 결만 남은 고찰의 목재가 이제 ‘바람의 뼈’로 서있는 것처럼, 박미서의 절벽 또한 바람이 수억 년간 깎아낸 거대한 ‘바람의 뼈’로 허공에 영원한 적멸의 집을 짓고 서있지 아니한가.

 

 

 
 

■ 박미서

 

이리남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 |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 졸업 |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졸업  |  1986년 연지회 창립전을 시작으로 작품활동 시작 | 개인전13회

 

수상 | 제1회 이리시 미술대전 은상 | DIFA'99 한국디지털미술대전 초대작가상 | 전국서화백일대상전 특선, 장려상, 동상 | 익산예총 창작예술대상 | 목우공모대전 특선

 

역임 | 전국서화백일대상전 심사위원 | 한국서도협회 전북지회 서도대전 심사위원 | 온고을 미술대전 심사위원 | 갑오동학미술대전 심사위원 | 한국예총 익산지부 수석부 지부장 | 한국미술협회 익산지부 지부장 | 한국미술협회 전북지회 한국화분과 이사 | 한국미술협회 전북여성위원회 감사 | 이리남성여자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

 

현재 | 전국서화백일대상전 초대작가 | 한국서도협회 전북지회 초대작가 및 이사 | 아트회 회원 | 전북문인협회 회원 | 전주문인협회 회원 | 문예가족 동인 | 전북대학교, 원광대학교 평생교육원 한국화 출강

 

저서 | (박미서의 글과 그림)사람이 살아가는 길 옆에

 

Email | parkmisuh@hanmail.net 

 

 

 
 

vol.20120905-박미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