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作展

 

제30회 신작전 300호 초대展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2주년 기념

 

 

 

안동 문화예술의 전당 전관

 

2012. 7. 31(화) ▶ 2012. 8. 10(금)

경상북도 안동시 안흥동 373-4 | T.054-840-3611

주관 : 신작전회, 한국예총안동지회 | 주최 : 안동시 | 협찬 : 삼성SDI

 

 www.andongart.go.kr

 

30회전기념 특별 화집제작 - 500부 정도를 정가4만원에 판매 예정

하회마을관련 작품 소품(10호)展은 안동하회마을 탈박물관 2층에서 전시

 

 

 

 

구상회화의 바로미터, 신작전 창립 30년

 

구상회화의 중추를 이루는 <신작전>이 올해로 창립 30년을 맞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30년이란 세월 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우리 구상화단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근래 들어 개인전 위주로 작품활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사실 한국미술의 성장 배후에는 <신작전>같은 단체전에 의한 작품발표가 큰 구실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신작전>은 1983년 수명의 작가들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몇 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6년에 첫 전시를 가졌다. 이 단체는 첫 전시때부터 의욕적으로 3백호의 대작발표로 주목을 받았는데 전시에는 김배히,김병모,김일해,김진,남충모,손순영,송영명,송용,엄영일,이동근,이장우,이태길,장이규,장청욱,정승주,진원장,차일만,최낙경,홍윤표,구자승 등이 참여하였다. 서울갤러리에서의 창립전 이후 자리를 옮겨 대구 태백화랑과 그 이듬해에 다시 서울갤러리에서 정기전을 가지면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다. 소수에 불과하던 회원이 근래에는 큰 폭으로 늘어났고, 평소 회원들의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우리 미술계를 한층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30년을 맞이하는 이번 전시는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일환으로 유서깊은 안동에서 특별기획전으로 열리게 된다. 경북의 하회마을은 우리나라에선 최초로 마을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옥과 초가가 멋진 풍경을 연출해내는데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인류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할 가치가 있는 의미있는 장소로 평가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신작전>의 특별전은 창립 30년과 하회마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2주년 기념이라는 의미로 개최되는 셈이며, 뜻깊은 의미를 갖는 만큼 95명의 회원들이 그간 정성들여 준비해온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전시는 안동문화예술의 전당과 하회마을 소재의 안동탈박물관 두 곳에서 개최되는데 안동 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3백호의 대작이, 안동탈박물관에서는 소품이 각각 전시될 예정이다. 우리의 옛 정취를 잘 간직하고 있는 안동과 <신작전> 멤버들의 클래식한 화풍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 것으로 사료된다.

<신작전> 회원들의 작품은 대체로 근대회화의 도입과 함께 시작된 구상회화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좀더 정교하게 구분 짓자면, <신작전>은 해방후 구상화 중흥의 발판이 된 국전 출신 작가들이 창립멤버로 참여한 데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니까 <신작전>은 어떤 면에서 국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국전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리자 이를 통해 데뷔한 작가들중 일부 작가들이 정보도 교환하고 구상화를 발전시켜보자는 의도로 출범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거센 현대미술의 바람도 그들을 결집시킨 요인의 하나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으나 등용문이라곤 국전이 유일하던 시절에 ‘국전입상’은 큰 자랑거리였다.

개인의 작품세계가 새로운 시도로 참신성을 갖추어가야 하듯이 단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능한 회원을 영입하여 단체에 활력을 주고 꾸준히 현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고민한 것이 오늘날처럼 <신작전>이 장수할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구상회화의 새 양상

잠시 우리나라 구상화의 역사를 짚어보면,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오지호,김주경, 이인성에 의해 인상파의 풍토적인 접목이 있었고 일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된 향토색의 모색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동경유학파들로 결성된 ‘목일회’는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하기만 했던 서양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 미술이 일본에 의해 경유되어왔다면, 이종우의 ‘살롱 도톤드’의 입상 소식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뜻깊은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간접 이식된 사실화풍이 이종우의 파리유학과 더불어 고전미술의 직접 경험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이종우의 신고전 미술은 단편적인 시도에 그쳤을 뿐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해방후 구상화는 ‘목우회’, ‘구상전’,'신미술회','상형전'과 같은 주요 단체에 의해 계승되어갔으며, 국전을 통해 널리 확산되는 경향을 보였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적인 정조를 찾아나섰던 향토색 움직임은 박수근,윤중식,양달석, 이인성, 황유엽, 최영림, 박창돈,박항섭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된 바 있다. 한편 풍경화 방면으로는 이대원, 박고석, 이봉상, 이중섭과 같은 야수적, 표현적인 화가들이 우리 화단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그러면 <신작전>의 작가들은 우리나라 미술 지형중에서 어디쯤에 위치할까? 일단 <신작전>은 구상화이지만 일사불란하게 조형적 이념으로 뭉친 단체는 아닌 것같다. 이들 작가들이 구상화라는 범주에 속해 있지만 어떤 뚜렷한 조형이념을 표방하기보다는 개인의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같다. 각자의 스타일이  다를 뿐만 아니라 풍경에서부터 정물,인물까지 종목도 폭넓다. 따라서 <신작전>은 좁은 의미에서 ‘동인적 모임’이라기보다는 풍경화와 정물화, 그리고 인물화 등 사실적인 화풍의 유대성을 공유하는 작가들의 모임이랄 수 있다.

<신작전>은 선배 세대의 소재적 향토성을 계승하면서도 양식으로서의 획일적인 구상성은 경계하고 있다. 같은 스타일이더라도 색대조, 모델링, 명료성과 같은 측면에서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다. 이전세대의 작가들과 달리 이들은 형태와 색상면에서 현대적인 감각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경우 극사실을 방불케 하는 정밀한 묘사를 도입하기도 하고 사물의 클로즈업, 대상의 변형, 단순한 구도, 명증한 형태감, 메카닉한 표면 등과 같은 기법도 기용하고 있다. 묘사에서 뿐만 아니라 기법과 효과면에서도 많은 공을 들여 구상회화의 갱신 내지 탈바꿈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신작전>의 새로운 징후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구상미술을 한단계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깃들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30년이란 긴 세월을 초심을 잃지 않고 단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작전의 성격

<신작전>에서 우리는 몇가지 특이사항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단체의 참여작가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으며, 따라서 <신작전>은 어느 한 지역의 작가들로만 결성된 모임이 아니라 전국적 규모의 단체라는 점이다. 참여작가들은 울산,진주, 과천,김제,문경,대전, 거제,대구,양주,창원,안동,광주,부산,울진,춘천 등에 걸쳐 있다. 참여작가가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이 단체가 지연이나 학연과 상관없이 구상적 화풍을 유지하는 화가들의 모임임을 나타내준다. 구성원들은 한국의 구상회화를 포괄하는 얼굴로 되어있어 <신작전>은 명실상부 ‘전국구’ 단체라고 할만하다.

둘째는 지역문화의 내실화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의 미술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쏠림현상이 심한 편이다. 화랑과 미술관이 서울에 집중되다보니 작품발표라도 하려면 서울에 올라와야 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신작전>의 경우는 한번은 서울에서 정기전을 개최하고 한번은 전국을 순회하며 전시를 여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대표적인 전시를 몇 개 들어보면, 대구 태백화랑전(1986), 부산 한광미술관전(1987), 전북예술회관전(1988), 제주문예회관(1991), 제주백상기념관전(1992),대전 및 대구,부산 초대전(1998),목포(2008),안동전(2012) 등등.  외부의 도움없이 단체를 이끌어온 것도 주목할만하지만 지역전시를 통해 미술문화를 균형있게 발전시켜온 것을 우리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 국외 작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들 수 있다. <신작전>은 해외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구상화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에 부심해왔다. 실제로 <신작전>은 제5회전,6회전,7회전,8회전,9회전 등 잇단 정기전을 통해 캐나다,영국,독일,일본 등지의 작가들과 함께 작품전을 열었다. 이런 전시가 집중된 80년대 말은 88올림픽개최의 열기를 타고 외국작가 국내전이 잦은 무렵이었는데 아마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외국작가와의 교류는 한동안 잠잠하다가 2천년대 들어와 재개되었는데 2002년과 2003년,2004년,2005년,2006년에는 소수의 일본작가들이 전람회에 참여하였고, 2000년과 2001년에는 브라질한일미술협회, 캐나다한일미술협회의 작가들이 정기전에 출품하여 재외거주 작가와의 교류도 꾀하였다.

넷째 내실있는 전람회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미술계의 불문율중 하나는 어느 단체전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쇠진해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인원이 늘고 규모가 팽창할수록 상대적으로 힘이 반감해버리고 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우려와 달리 <신작전>은 창립 30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초심을 지켜가고 있다.

<신작전>이 30년이나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들의 결속도 있었겠지만 침체를 방해하기 위한 ‘독특한 처방책’에 기인하지 않나 싶다. 한 예로 <신작전>의 작가들은 3백호나 되는 대작을 출품한다는 것이다. 말이 3백호이지 그만한 크기를 제작하려면 상당한 내공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버젓한 스튜디오를 갖추지 않고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3백호를 출품한다는 것은 전시를 친목이나 요식행위가 아니라 작가의 역량을 나타내는 무대로 이해한다는 표시에 다름 아니다.

<신작전>에서는 다른 단체에서는 볼 수 없는 이른바 ‘편집위원’ 제도를 두고 있다. 이것은 만약 회원들이 타작(馱作)을 출품할 경우에 대비한 장치이며 이 제도로 인해 구성원들은 매해 긴장감을 가지고 전시에 임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엄격한 룰의 적용이 <신작전>의 ‘젊음’을 유지해온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상미술의 바로미터

알다시피 2천년대 들어와서는 구상미술이 새롭게 재조명을 받고 있다.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더불어 그간 구상회화가 아트페어와 각종 전람회를 통해 뚜렷이 부각되었고 존재감을 입증시킨 바 있다. 혹자는 2천년대를 ‘구상회화의 르네상스’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절치부심 예술적 잠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애써온 구상화가들의 노력이 있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신작전>의 멤버들은 이런 기류의 복판에서 사람들의 높은 관심은 물론이고, 한국미술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때로는 소통의 징검다리가 되며, 아련한 향수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미술관 안에서 희미한 조명을 받고 있는 작품이 아니라 <신작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우리 곁에서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정겨운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아스라한 고향소식과 아름다운 산천과 사계절의 변화무쌍함, 그리고 싱그런 바람과 꽃향기를 전해줄 것만 같다. 세상에 드리워진 찬란함이 경이로운 생명을 키우고 있음을 이들 작품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필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창립 30회를 맞는 전시지만 앞으로 40년,50년 꾸준히 이어져 명실상부 우리 ‘구상미술의 바로미터’가 되고, 우리 미술사에 남는 단체전으로 길이 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新 作 展 會   會 長  이 남 찬

 
 

 

 
 

vol.20120731-신작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