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존립 展

LEE, JOHN LIP

 

 

 

정원-너를위해_130.3x80.3cm_캔버스에 유채_2012

 

2012 월간미술세계 기획 이존립 초대전

 

인사아트센터 1F

 

2012. 7. 18(수) ▶ 2012. 7. 24(화)

opening 2012. 7.18(수) 6pm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 | T.02-736-1020

 

www.johnlip.com

 

 

정원-너를향해_130.3 97cm_캔버스에 유채_2012

 

 

Lee Johnlip,s garden

“The balance of nature is my perception. Trees, birds, flowers and people are floating in space, place holds the most comfortable. And the original figure found in everyday life, for what is happening in reality, concentric eye stare or, in the memory to find out what's going down like the inner aperture of the eye is pushed it will not pull the show. Cloudy or clear memories of picking an unknown and that the results given the composition of colors on the canvas and work until after you are born with every life. Wake up and recognize the work and my presence on the direction of my life to realize. Pureness, purity and comfort so obtained is my aesthetic,” Lee John Lip.

 

자연에 대한 조화야 말로 나의 인식의 정점이다. 나무, 새, 꽃 그리고 사람들이 부유(浮遊)하다 가장 편안한 공간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 본래의 모습을 일상적인 삶속에서 찾아내기 위해 동심의 눈으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거나, 추억 속에 침잠해 있는 내밀한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心眼의 조리개를 밀었다가 당겨 보기도 한다. 흐리거나 선명한 기억들을 채집하여 그런 결과들을 미지의 캔버스에 색과 구도를 부여하고 나면 비로소 작품은 하나하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작품은 깨어나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나의 인생에 방향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얻어진 순수함과 깨끗함과 편안함이 나의 美學이다.

 

 

정원-산책_295.1x162.1cm_캔버스에 유채_2012

 

 

 

이존립 - 정원에서 보내는 생의 행복한 순간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이존립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행복하고 낭만적인 생의 한 순간을 만끽하는 장면을 선물처럼 안긴다. 그것은 정원에서 보낸 하루의 일기와도 같고 그곳에서 보내온 그림엽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림이 무척 예쁘고 장식적이며 달콤하다고나 할까. 다분히 문학적인 그림이다. 문학적이란 그림을 보면서 어떤 사연, 내용이 자꾸 연상된다는 얘기다. 특정한 사연을 도상화 하고 있는 그림, 그림책과도 같다. 그림 하나하나가 사연과 이야기를 열매처럼 매달고 있으며 그 장면 하나로 인해 여러 상념과 사연을 부풀려낼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근대 이전의 그림은 모두 문학적인 그림들이었다. 특정한 텍스트에 기반 한 이야기그림들이었다. 서구의 경우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에 나오는 일화가 그림의 내용들이었고 영웅담이나 전설들이 그림으로, 조각으로 형상화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 역시 신화나 불교교리, 유교경전의 내용이 이미지로 풀려나왔다. 따라서 전통시대의 그림이란 결국 특정한 텍스트에 기생하는 것이었다고 말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당시 이미지는 읽은 그림들이었다.

반면 현대미술은 미술에 붙은 이야기를 배제하고 오로지 미술 그 자체만을 다루려고 하였다. 따라서 문학은 미술에서 추방되고 이제 미술은 미술 내적인 문제나 시각적인 것만을 대상으로 하면서 주제나 내용이 지워졌다. 이른바 현대미술의 보편적인 작품 제목이 된 ‘무제’가 바로 그것을 반영한다. 미술은 오로지 눈으로 보는 그 상태, 그 자체만을 즉물적으로 확인시키는 다소 난해하고 건조한 것으로 되었음도 부정하긴 어렵다. 그래서인지 미술에서 추방된 문학성, 이야기성을 여전히 그림 안으로 호출하는 경우를 자주 만난다. 이존립의 경우도 그런 예라고 볼 수 있다.

 

 

정원-소나기_72.7x65.2cm _캔버스에 유채_2012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독, 사랑, 낭만, 행복 같은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입에 붙게 만드는 그림을 그린다. 다소 상투형의 이미지이자 설정이지만 무척 정감 있는 풍경이다.  그는 모종의 행복한 순간을 형상화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저렇게 여유 있고 호젓하며 나른한 한 때를 보내는 한 때가 추억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행복한 지락의 한 순간을 기념하고 기억한다. 그림 속 공간은 한결같이 숲속이고 공원의 한 풍경이다. 나무와 풀과 꽃이 가득한 공간이다. 현란한 색채와 다기한 형상을 지닌 온갖 꽃과 풀들이 색 면과 간추려진 도상으로 번안되어 그려져 있다. 그것은 식물을 단순하게 약호화 하고 기호화하고 있다. 너무도 다른 식물의 여러 자태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간추려서 색채와 이미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식물계를 추려 이미지로 만드는 과정에서의 도상의 독자성이 요구되고 설정 자체가 주는 클리쉐적 이미지연출에서 자유로웠으면 한다.  

자각가 연출한 배경 안으로 젊은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 청춘의 사랑과 동경, 그들의 낭만적인 젊음의 한 때가 보는 이들에게 홀연 그 시절로 회귀시킨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행복한 순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애틋한 추억의 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이 인물들은 작가가 만든 배경에 등장하는 배우들과도 같다. 무대가 된 정원에서 하나씩의 에피소드를 만들어가는 청춘남녀의 모습 말이다. 이 연정이 가득한 장면은 세속의 도시와는 분리된 자연공간이다. 인간은 늘 자연 안에서 행복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자연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잔인하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면서 생존을 위협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온갖 은혜를 베풀기도 하는 양의적 존재다. 인간은 그 자연 안에서 삶을 영위해왔고 행복하고자 했다. 본연의 자연뿐만 아니라 인위적으로 가설된 정원 안에서 그 꿈을 실현하고자 했으며 이를 그림으로 구현해왔다. 풍경화나 산수화는 그런 욕망의 소산이다.

 

 

정원-소풍_112x194cm_캔버스에 유채_2012

 

 

최초의 정원은 식량 생산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되고 정처없으며 위험한 방랑을 끝내고 정착, 정주의 삶을 영위하면서 밭을 가꾸고 재배를 하면서부터 인간의 삶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되었고 자연이 그런 식으로 관리되고 재편되면서 정원이란 개념도 생겨났을 것이다. 프랑스의 원예가인 질 클레망에 의하면 채소밭이 최초의 정원이란다. 유럽의 시골에서는 정원이라는 단어가 다름아닌 채소밭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 나머지는 다 풍경이 된다. 이 풍경이 어떤 구성의 대상이 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공원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최초의 정원은 자연 안에 울타리 처진 땅을 지칭했다. 정원이란 단어는 울타리 쳐진 땅(라틴어Hortus conclus)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Garten에서 파생되었다. 울타리를 두른 땅은 채소와 과일, 그리고 꽃과 동물, 생계수단 등 정원의 소중한 재산을 보호하는데 적합했다. 어느 시대든 그런 것들을 잘 지켜내야 가장 좋은 정원이었다. 그 정원이 다름아닌 낙원의 기원이다. 낙원(paradis)은 페르시아로부터 발원하는데 울타리를 두른 땅이란 페르시아어‘pairidaeza’가 파라다이스가 되었다. 불모의 땅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 자신의 거주 공간 안에 그 자연을 모방하고 불모성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나무와 풀, 분수를 만들면서 정원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낙원 혹은 정원이란 무엇보다도 성채이자 보호구역이었다. 오늘날 공원은 도심 속에 구현된 파라다이스이다. 그 인공의 자연, 인위로 가설된 공원/정원 안에서 사람들은 애초에 자연 속에서 살았던 한 때를 추억한다. 아니면 수시로 자연 안으로 달려가 도시에서의 가혹하고 궁핍한 삶을 희석시키고자 한다. 그러니 여전히 풍경이나 이 같은 정원그림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존립이 가설한 정원, 공원 안에는 여자 혼자 거닐며 풍경에 취해있거나 꽃그늘에 앉아서 책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더러 긴 나팔과도 같은 악기를 부는가 하면 머리 위에 핀 꽃을 올려다보는 장면도 있고 우산을 쓰고 따가운 햇살을 피한 체 그늘에 앉아 쉬고 있기도 하다.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이 그 숲 속에서 함께 자전거를 타거나 밀담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 한가하며 평화로운 상황이 연출되어 있다. 이 목가적 내음이 물씬거리는 장면은 작가에 의해 상상되어진 이미지다. 아마도 작가는 이런 상황이 지극한 행복의 이미지라고 보는 것 같다.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인물산수화를 떠올렸다. 우리의 전통적인 그 그림들은 한결같이 자연 안에서 가장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한편 지극한 생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존립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한 순간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위안을 삼고 있고 그 위안을 타자와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이 작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정원)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 작가 이존립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까지 26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행복 동심 꿈이 있는 작품초대전, 홍콩호텔아트페어, 부산국제아트페어, 아천미술관 개관 9주년기념전, 한국구상미술의 흐름전, 한국미술의 빛, 중·일·한 엑스포개최도시 미술교류전, 은암미술관 개관기념전, 전국 중견작가 초대전, 한·중 정예작가 대작전, 한국미술대표작가 100인의 오늘전 등 다수의 단체전 및 기획초대전에 참여했다. 전남예술상, DAF 특별상, 전남청년작가상,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 전라남도미술대전에서 대상 및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전라남도미술대전, 광주시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무등회, 선화색, 그룹새벽, 중작파 회원이자 전라남도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vol.20120718-이존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