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향 서권기 展

 

-제 45회 한국화회전-

 

김선영_푸른 명상 II_84x88cm_견, 채색_2011

 

 

갤러리 엘비스

 

2012. 7. 11(수) ▶ 2012. 7. 28(토)

Opening : 2012. 7. 11(수) PM 5:00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65-18 쟈스미 빌딩 B1 | 02-3443-7475

 

www.gallerylvs.org

 

 

박민희_숲길을 걷다_111x94cm_한지에 혼합재료_2011

 

 

"가슴 속에 청고고아(淸古高雅)한 뜻이 없으면 글씨가 나오지 아니한다.

문자향(文字香.문자의 향기)과 서권기(書券氣.서책의 기운)가 필요하다."

- 추사 김정희 -

 

추사 김정희는 <화론>에서 그림을 그리는 자의 기본 선결 조건으로 바로 문자향서권기를 강조했다. 10개의 벼루의 밑창을 뚫고 1,000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며 글쓰는 일에만 전념한 노력형 천재 추사 김정희, 그는 실존했던 ‘문자향서권기’ 그 자체였다.

문자향서권기의 길을 가고 있는 38명의 한국화 작가들의 전시 <문자향서권기>전이 신사동 갤러리 LVS에서 2012년 7월 11일(수)부터 28일(토)까지 열린다.

 

 

박소영_아홉 혹은 아홉 아닌 - 오카피_60x80cm_수제 한지에 수묵담채, 은세공_2012

 

 

한국화와 문자향 서권기

제45회 한국화회전에 부쳐

손병철 물파공간관장/철학박사

 

한국화회가 ‘문자향 서권기’를 주제로 45회째 전시를 연다고 한다. 한 해도 빠짐없이 반세기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의 풍상을 지켜온 줄기찬 그룹 활동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1967년 창립전을 가진 한국화회는 그 앞 세대 동양화가들에 의해 1960년 창립된 묵림회(墨林會)의 필묵정신을 계승하고 있다(실제로 묵림회 회원 가운데 일부는 한국화회의 중심 멤버로 흡수되었다). 한국적인 전통 수묵 정신을 견지하면서도 시대 조류에 뒤지지 않는 새로운 현대의 조형 형식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그룹은 같은 문맥을 이루고 있다. 60년대 국전을 통한 한국화단의 새로운 형식의 출발과 추상 운동에 지대한 공을 세운 묵림회와 80년대 수묵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한국화회는 20세기 후반을 장식한 현재진행형의 의미 있는 그룹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함에도 21세기 벽두인 지금, 여기에서 돌이켜 보면 그 반세기 역사는 진보가 아니라 아쉽게도 퇴보의 용두사미의 격이 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어. 전, 후 두 그룹만을 두고 왈가왈부할 것은 못 된다. 수묵예술을 논하기 이전에 필묵 정신의 쇠퇴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지난 세기의 급변한 문화 환경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지필묵(紙筆墨)이라는 도구로서의 필묵만이 아니라 극동 예술의 핵심인 필묵 정신 즉, 서화예술정신이 쇠미해진 것은 전반적인 서구문명의 범람으로 전통의 단절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가장 큰 원인은 필묵 정신의 근간인 시서화(詩書畵)의 해체에 있었다. 직업이 분화되면서 시(詩)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다음은 서(書)와 화(畵)가 분리 되었다. 시인과 서예가와 화가라는 직업이 각각 생겨나면서 시인은 서화를 모르고 서, 화가는 시를 모르며 마침내 화가는 서예와 무관한 것처럼 각자 절름발이 필묵 예술가가 되고 말았다. 80년대 수묵운동의 실패 원인도 필자의 견해로는 먹에 물을 탄 것처럼 ‘수묵’의 먹만 있고 ‘필묵’의 붓이 빠진 데 있다고 분석한다. 음(陰/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된 양(陽/붓)으로서의 필력 부재에 있다. 서예의 근간인 쓰기는 버리고 회화의 바탕인 그리기 즉, 칠하기만 남은 것이다. 서양의 페인팅과 무엇이 다른가, 수묵의 형식이 아니라 필묵 정신의 결핍에 그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박소현_오리가족 1206_90x60cm_한지, 수묵_2012

 

 

 

또 다른 문제는 문기(文氣)의 망각이다. 필묵의 다른 말은 문필(文筆)이었는데, 자고로 시, 문을 모르고서는 문기를 논할 수 없고 서(書), 자(字)를 연마하지 않고서는 기운생동의 세(勢)와 필력을 찾을 길이 없을 것이다.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무엇인가.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운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옛사람들이 일컬었던 시서화 삼절(三絶)의 필묵정신이다. 추사가 “난초 치는 법은 예서(隸書) 쓰는 법과 같으니 문자향 서권기가 있는 다음에야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난초 치는 법은 그림 그리는 법으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린다”고 경계한 것을 봐도 그 의미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서화동원(書畵同源)을 논하지 않는다 해도 한국화가라면 시서화를 두루 겸해 흉중에 문기를 길러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의(寫意)의 본 뜻도 여기에 있다. 좋은 글씨와 격조 높은 그림을 그리려면 시, 서를 가까이 하고 독서를 통해 인격을 도야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비록 시대는 변했어도 지금의 독서인이나 지성인이라 하여 못 갖출 것도 없다. 오늘에 있어서도 그리는 것보다는 ‘쓴다’를, 쓰는 것 보다는 ‘친다’는 개념의 액션을 강조한 추사의 말에 주목할 일이다.

예로부터 화(畵)는 회(繪)와 다른 개념이다. 회사후소(繪事後素)의 회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벽화기법에 가깝고 화는 종이와 붓이 사용되고 나서 생겨난 서화 형식이다. 그래서 화(畵)는 획(劃)으로도 쓰인다(석도(石濤)의 ‘일획론’ 참고). 선(線)과 획(畵)은 또 어떻게 다른가? 선(line)은 점의 집합이라고 정의하는 서구적 개념이라면 획(stroke)은 서법이나 화법에서 말하는 법, 즉 문기나 서권기가 내재한 선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인문정신 베인 선을 의미한다. 그리고 근,골, 혈, 육의 생명체를 닮은 획법의 선 말이다. 그래서 추사는 “가슴 속에 청고고아(淸古高雅)한 뜻이 없으면 글씨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맑고 높은 뜻이 없으면 좋은 글씨를 쓸 수 없고 필력을 먼저 얻지 않고는 높은 화품의 경계에 이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적어도 극동의 서예와 필묵화 예술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문인사대부의 여기로 여겨졌던 문인화가 서양미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대표적인 형식이다. 오늘날 문인화는 이름만 남아있을 뿐 한, 중, 일 그 어느나라에도 자취를 감추었다. 문인이 아닌, 서예를 모르는, 적어도 독서인이 아닌 자의 소위 ‘문인화’는 진정한 의미의 문인화가 아니다. 그래서 극동의 서화 예술에서는 문자향 서권기, 즉 문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송윤주_산중(山中)_91x91cm_Ink, Pigment on korean paper_2011

 

 

45회 한국화회 전시 주제와 관련하여 문기와 더불어 한 가지 더 강조할 것은 기운의 문제이다. 사혁의 6법 중에 서양화법에 없는 것 두 가지는 ‘골법용필(骨法用筆)’과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골법에 의하지 않고는 기운생동의 최고경지에 닿을 수 없는 법이다. 골법은 서구의 붓과 판이하게 다른 원필(圓筆)의 용법, 즉 중봉(中鋒)의 법에 따른다. 특히 서법에서 중시하는 중봉은 어디까지나 원칙을 말하는 것이지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예로 추사체는 중봉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파격으로 독보적이다. 다만 원칙을 알고 용필하는 것과 그 이치를 모르고 운필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추사는 유년시절 서예 학습에 있어 안법(顔法)이 아니라 구법(歐法)에서 득력하였다. 70년대에 이르러 중봉의 문제인 ‘몰골법(沒骨法)’에 대한 비평으로 화단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지금 반성적으로 돌이켜 본다 해도 비평의 논점에 대해 동의할 부분이 없질 않다고 본다. 한국화 혹은 수묵화에 있어 골법의 부재는 곧 필묵 정신의 포기를 의미하며 기(氣)의 리듬(韻)을 망각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필은 운필의 속도와 기의 운율을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21세기 한국화단과 서, 화계가 제반 어려움에 봉착되어 있다고 해도 생명의 리듬이 순환하듯 시대의 변화를 따라 필묵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그 희망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최근 하나의 희망적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지난달 새로운 개념의 세계적인 컬렉터가 한국을 다녀갔다.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굴지의 독일 제약회사 베링거 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의 대표(CEO)가 바로 그다. 21세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 시대를 맞아 아시아적 가치의 미술품 컬렉션에 발벗고 나섰다. 특히 한, 중, 일 극동의 서예와 수묵화 그리고 아랍의 캘리그래피 형식의 미술품을 전문으로 수집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20세기 초 그 많은 예술사조가 서구에서 탄생하고 명멸했다면 21세기는 바로 아시아 시대이며 새로운 예술의 탄생과 더불어 그 생명력의 핵심은 필묵 정신에서 비롯된 선과 문자의 예술인 서예(calligraphy)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전통서예와 지필묵에 국한된 극동 예술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필자가 추천한 한국작가는 이응노, 남관, 김환기 등의 작고 화가를 비롯해 현재 이와 같은 개념과 조형정신으로 치열하게 작업하고 있는 10여명의 원로, 중진 화가와 물파(物波/Neowavism)그룹의 현대 서예가들로 모두 15명에 이른다.

 

 

신영상_율(律)5012_123x85cm_종이에 먹, 색_2012

 

 

한류(韓流/K-Wave)가 그렇듯 21세기 세계 미술계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트랜드가 바뀌고 있음이다. 2차 컬렉션부터는 서체 추상(CalligraphicalAbstract Art)과 문자 추상 외에도 점차 개성 있는 수묵화로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게다가 20세기 서구미술에 있어 서예의 영향을 받은 거장들(로버트 마더웰, 마크 토비, 프란츠 클라인, 사이 톰블리, 한스 하르퉁, 비씨에, 마숑, 안토니 따삐에스, 베도바, 가울, 호른, 브뤼닝 등)의 이미 수집한 걸작들과 함께 21세기 아시아 작가의 새로운 컬렉션 작품들을 망라한 세계 순회전시와 더불어 장차 새로운 컨셉의 미술관 설립을 계획하고 있어 우리 필묵 예술가들에겐 희소식이자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제2, 제3의 베링거도 대기하고 있다. 물심양면(物心兩面)의 이원적 분리가 아니라 심물지기(心物之氣)의 합일된 경지의 필묵이라야 기운생동의 서화예술이 가능하리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자 신념이다. 생명력이 없는 예술은 아름답지도 오래가지도 못한다. 감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서예와 문인화의 현대적 해석을 통한 새로운 필묵예술운동을 주창해온 지난 15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듯하다. 45회 한국화회 전시를 축하하며 필묵 정신의 확산과 분발을 거듭 기대한다.

2012. 6. 28 인왕산 육수재(六水齋)에서

 

 

차동하_축제 11 #2_50x63.5cm_닥종이에 채색_2011

 

 

하수경_춤추다_91x116.5cm_먹, 황토, 아크릴릭 캔버스_2011

 

 

 

 

■ 참여작가

 

신영상, 한영옥, 정정자, 홍정희, 강영수, 조은경, 박소영, 이민주, 하수경, 박소현, 허  진, 최진주, 이인애, 임현락, 신하순, 강재희, 김형률, 류인선, 박민희, 변명희, 차동하, 김선영, 송근영, 이주원, 조은령, 이광수, 신영호, 서기환, 박소영, 정희석, 윤기언, 송윤주, 엄기원, 조인호, 하대준, 장현지, 선호준, 김초윤

 

 

 

vol.20120711-문자향서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