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가는 길-東風

 

차영규 김성묵 김태규 박영익 심원 조문규 주세권 주재환 최종용

 

차영규作_바닷가에 핀 꽃_101x76cm_한지성형위에 채색_2011

 

 

1부 강릉미술관

 

2012. 6. 27(수) ▶ 2012. 7. 3(화)

강원도 강릉시 교1동 904-14 | T.033-655-9600

 

 

www.gnmu.org

2부 (재) 한원미술관

 

2012. 7. 13(금) ▶ 2012. 8. 8(수)

오프닝: 2012. 7. 12(금) 오후 5시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449-12 | T.02-588-5642

 

www.미술관.org

 

 

김성묵作_무제_124.5x72.1cm_c-print_2011

 

 

동풍전 서문

존재의 심연 그리고 노스텔지아(Nostalgia)

 

 

長江 박옥생, 미술평론가,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1. 마음으로 가는 길(The way to the heart)

한반도의 개별 지역성은 우리 역사의 유구한 시간만큼이나 지층의 깊이와 독창성, 다양성이 공존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의 차이와 자연으로부터 배태된 흙과 바람과 물이 머금은, 축적된 인간 삶의 진솔한 호흡에서 빚어진 결과일 것이다. 동풍(東風)의 작가들은 강릉의 미술인들이 지역미술의 발전과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모인 일군의 그룹이다.

이들의 작품 속에는 현대미술의 동시대성과 이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고유한 생활의 향기, 내면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의 현대 미술에 있어서 부산, 대구, 광주, 대전과 같은 지역 미술은 그들만의 독창적인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 가고, 그들의 전통을 계승하고 또는 현대미술에 편입됨으로써 지역적 특성을 형성하고 있다. 전라도 지역의 남도의 문인화나,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극사실주의의 화풍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강원도의 현대미술은 박수근과 더불어 시작되고 또한 그와 함께 한국현대미술이 태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박수근의 짙은 향토적 서정성은 강원도의 거친 바람과 토양이 가진 삶의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간략하고 정제된 선들에서 시간과 공간이 정지된, 낯설고 서늘한 가슴을 저미는 민족적 애환이 스며들어 있다. 동풍의 화가들에게서도 지역이 가진 독창적인 삶의 정서가 녹아져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의 작품은 화려한 맨 살을 드러낸 듯 솔직하고 담담하며 조용하다.

강릉은 늘 푸른 산과 깊고 고요한 초록빛 바다가 인접해 있다. 이러한 강릉은 이방인들의 눈에는 늘 떠나고 싶은 여행과 휴식의 그리운 고향으로서 존재한다. 지역에 뿌리 내린 사람들에게는 산빛, 물빛이 체화(體化)되어 나의 이상이고 나의 깊은 사유이고 외로움 그 자체로서, 내 삶의 또 다른 존재방식이기도 했다. 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의 삶은 순수하고 소박하고 질박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풍부한 자연과 순수, 생명과 같은 살아 숨 쉬는 존재에로의 천착과 무한히 빠져 들어간 존재에로의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작품은 바다이며 산이며 또는 나의 마음이며 기원이며 원형으로 다가온다. 곧, 마음으로 향하는 길로서의 행위적 결과이며 고향이며 향수인 것이다.

 

 

김태규作_일상읽기-20120528_100.0x80.3cm_화선지 연필 수묵담채_2012

 

 

2. 차영규 작가와 안과 밖의 관계항

차영규, 김태규, 김성묵, 박영익, 심원, 조문규, 주세권, 주재환, 최종용 이 9인의 동풍 작가들은 재료가 가진 물성을 통한 내부와 외부의 성찰,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성, 자연을 통한 숭고의 표현과 같은 주제들로 드러나고 있다.

차영규의 작품은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고 그 물성이 신체와 만나는 순간의 즉시성(卽時性)을 통해, 물(物)과 정신이 교감하는 세계를 구체화 시키고 있다. 작가의 한지작업은 단색조 회화에 있어서의 한지가 표출하는 정신성과 맞닿아 있으며, 1980년대 후반에 일었던 수묵화 운동에 있어 새로운 물성에로의 고찰과 확장이라는 시대적 배경아래 존재하고 있다. 사실, 작가의 가변적인 한지로 성형한 꽃이나 자연의 형상들은 맑고 천진한 한국적 서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마치 분청사기나 막사발이 거친 듯 우연적이며 시원한 해학성을 유발하듯이, 한지 죽이 만나고 헤어지는 성형 과정 속에서 완성된 깊이 내재된 숙성된 피부와 명료한 형태에서 삶의 환희, 생의 찬란한 기쁨이 드러나고 있다. 이 속에서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순도 높은 정신의 결과를 만나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작품은 한지가 가진 물성의 핵심을 끌어내는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들의 의미들을 포착하고 그 내면의 시각을 손끝에 닿는 물성을 통해 외부로 끌어내는 작가의 작품은 나와 세계가 맺는 관계항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차영규가 외부세계의 본질을 정신을 닮은 한지의 물성의 통해 외부를 드러내고자 함이라면 주세권은 재료의 성질을 통해 내부세계인 나를 성찰하고 있다. 사실 작가의 작품은 청바지와 같은 바탕물성과 안료가 만나 우연히 펼쳐지는 세계의 궤적들을 쫒아가는 속에서 나를 찾고 있다. 우연히 만들어진 선과 형태에서 자신의 지난 과거 속의 한 기억들이 드러난다. 젊은 날의 추억은 불타오르거나 고요히 침잠하고 있는데, 이들의 표정은 기억 속에 내재해 있는 사건들이 과거에서 현재로 되살아난 것이다. 기억의 지층 속에 불연속적으로 조합되어 흐릿하고 강렬하게 변형된 형태들 속에서 지난 기억들의 뉘앙스나 느낌들이 가시화된다.

주세권이 우연성에서 기억의 부분들을 결합하고 그 추억의 의미들을 새로운 삶으로 되살리는 것이라면, 심원은 한지에 번지는 먹의 검은 속성과 우연성을 통하여 번짐의 흔적에서 드러나는 무의미에 관하여 보여준다. 그가 보여주는 작품은 엑스레이나 투사된 사물의 흔적과 같이 흐릿하여 추상을 넘나드는 규정할 수 없는 부재된 의미와 숨겨지거나 지워진 의미들을 제시한다. 검은 빛 먹 속에 감춰진 순간으로 획득한 부재(不在)의 상황에서 오랜 현존의 또는 흑백 사진 속에 찍혀진 대상이 화면을 뚫을 것 같은 시간의 흔적과 같은 아우라(Aura)가 포착된다. 시간의 부재에서 시간의 회귀, 의미의 부재에서 의미의 회귀를 경험하게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데리다(Derrida)는 초월적인 기의의 부재는 의미작용의 영역과 유희를 무한하게 넓힌다고 말하듯이, 작가의 화면에서 우리는 無에서 有로 이행하는 무한히 생성하는 사유로의 의미작용을 보게 된다.

김성묵은 뚜렷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구조적인 집에서 풍경으로의 확장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들은 은밀한 자아가 무궁한 세계로의 몽상을 경험하고, 자아가 존재하는 내부와 외부 세계를 성찰하는 명료한 시선과 성찰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집 구조물 그 자체에서 집이 있는 풍경과 그 집을 담은 외부세계로서의 물(풍경)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사진의 풍경과 이미지로서의 집의 만남, 다시 회화로서의 변환 작업들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나의 부조리한 단면, 삶의 모순, 외부세계와의 어색한 만남 등에 관한 은유일 수 있다. 사실 그가 “풍경의 은유” 시리즈에서 보여주듯이 현실과 이상이 괴리된 내밀한 고독 속에서 외부세계 곧 나와 관계하는 존재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부의 발견은 나의 성찰이며 나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에는 강릉의 숨 쉬는 바다와 자연이 깊숙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그에게는 부조리로 다가오는 어색한 작은 구조물로서의 나와, 세계와 호흡하는 자연으로서의 외부는 숙명적 만남이며 필연인 것이다.

주재환 또한 자아를 닮은 견고한 세계로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수채화로 일관되게 그려나간 배 위에 묶여진 밧줄의 형상에서 자신의 존재론적인 성찰이 이입(移入)되었음을 알게 한다. <세월-해풍>, <세월-기다림>과 같은, 거친 밧줄의 묶여짐에서 벼랑 끝 인간 삶의 엉켜진 운명과 구조들이 투영되고 있다. 삶의 구구절절한 리얼리티가 하나의 고리 속에서 녹아져 있는 것이다. 이 속에서 소금기 머금은 바다의 거친 바람을 느끼게 한다. 거친 파도의 물결처럼 쉼 없이 달려가는 시간의 흔적들과 그 시간 속에서 하루의 삶을 가꾸어나가는 작은 인간의 기도들이 보인다. 거친 바다가 아니라면 거친 뱃노래가 아니라면, 절망과 희망이 교묘하게 공존하는 삶의 진정한 리얼리티의 감성을 길러내지 못했을 법도 하다.

자아 바라보기는 김태규에게 있어서 낯선 타자들을 그려냄으로서 자아를 경험한다. 그는 일상의 모습들을 포착하고 화면에 마치 무수한 삶의 이야기를 함의하고 있는 듯 인간의 모습들을 숨김없이 그려나간다. 그의 필선은 간결하고 속도감 있으며, 인물 행위가 유기적인 움직임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반복되는 유기적인 연속성 안에 존재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레비나스(Levinas)가 말하는 것처럼 주체의 존재가 타자의 존재에 의해 그 의미가 성립되듯이, 작가는 이방인과 같이 낯선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삶, 환경, 세계 내에 존재하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에 관하여 성찰하고 있다. 작가가 그리는 인물은 타자이면서 곧 자아인 것이다. 사실, 작가의 작품에서 섬처럼 혼자 떠있는 외로운 인간 군상의 모습이 담담히 드러난다. 고독한 내면으로 침잠하고 있는 실존으로서의 인간 본성이 드러나고 있다.

 

 

박영익作_날카로운 풍경_130.3x162.1cm_장지에 채색_2012

 

 

3. 숭고, 그 푸른 바다 그리고...

김성묵, 주재환, 김태규 작가들은 모두 인간으로서의 실존적 본성을 성찰하는데 주목하고 있다면 박영익, 최종용 작가는 숭고한 자연의 가치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대상이 가진 풍부한 사유 속에 함몰된 상태, 몰입의 순간을 그려낸다. 그 화면들은 이완되고 극대화된 정서의 휴식과 위안을 던진다. 박영익은 넓은 화면을 푸른 바다나 넓은 하늘과 같은 정서를 환기시키는 추상으로서의 깊은 푸르름으로 끌고 간다. 이것은 실재의 대상 속에 숨겨진 확장된 본질의 세계이며 작가의 이성과 차가움으로 재구성된 세계이다. 구획된 평면은 응고된 자연의 풍부한 생명이 분산되는 감각의 세계이며, 기하학적 형태의 분절은 솟아오르고 내려앉은 마음의 궤적과 같은 축적된 골들이 지나가는 간극들이다. 면의 잘려나감과 만남으로 정리된 화면에서 푸른 대지의 싱그러운 향기와 절벽 앞에서의 두려움과 경이가 느껴진다. 추상이지만 산과 바다, 하늘과 같은 거시적인 대상을 재현하고 간략화한 듯 작품은 모더니즘의 평면성을 재확인하고, 모더니즘의 평면성을 차용하는 듯 보인다. 그 속에서 대상에게서 뽑아 올린 자연의 숨겨진 본질과 대면하고 있는 작가의 미적 관조의 순간을 보게 된다.

최종용 또한 넓고 먼 바다의 숭고한 신화를 화면으로 옮긴다. 그는 동해의 신비한 바다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의 바다는 새벽안개로 가득한 고요의 바다이며 세계가 꿈을 꾸는 밤의 바다이다. 그의 바다에서 대지의 몽상에서 물의 몽상으로 나아가는, 풍부하게 잉태하는 시인의 몽상처럼 바슐라르의가 말하는 물질적 상상력의 단계를 볼 수 있다. 인간 내면에서 겪고 있는 영원한 고향, 어머니로서의 아니마(Anima)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를 위한 안락과 휴식으로서의 바다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문규는 갈필을 운용한 간결한 추상과 다양한 서법의 구사를 통해 세계의 본질적인 정신을 드러내는데 주목한다. 사실, 그의 서법은 봄날 흩날리는 버드가지처럼 획이 얇고 순간적이며, 날리듯 즉흥적인 유희가 있다. 남성적인 강인함보다는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춤을 추듯 날렵한 가운데 비수와 같은 무섭고 강직한 쇳기어린 골(骨)이 엿보인다. 정제된 청신한 맛과 내면의 감정이 숨김없이 분출하는 표현성이 뛰어나다.

 

이렇듯 재료의 물성을 통해 내면을 드러내는 차영규에서 부터 재료의 실험과 우연성을 드러내는 주세권,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해체와 의미의 무한 열림에 관한 제시의 심원, 자아와 그를 둘러싼 환경의 정립과 모순에 관한 관계들에 주목하는 김성묵, 인간 삶의 리얼리즘을 주목하는 주재환, 타자를 통해 자아를 성찰하는 김태규, 모더니즘을 재현하고 그 의미를 새롭게 정리한 색면 추상으로서의 박영익, 바다를 통한 물질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최종용, 한문, 한글의 서법들을 두루 운용하며 세계의 본질을 들추어내는 조문규, 이들 9인의 작가들은 내밀한 화가의 내면과 화가를 둘러싼 자연, 사회, 구조들의 외부와 유기적인 관계 맺기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 그 관계항 속에서 존재하는 외부세계로서의 지역적 자연과 풍토가 작품 속에 깊숙한 심연에서의 인연의 동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듯하다. 그것은 향기 짙은 노스텔지아로 다가온다. 산과 바다의 자연이 지친 현대인의 되돌아갈 고향이고 그리움이고 원형이듯이, 동시대미술로서의 강릉의 미술이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현대미술의 한 지점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해 본다. (2012.6)

 

 

심원作_이중음 2-27_45×53cm_캔버스에 먹_2011

 

 

조문규作_채근담구_200x135cm_화선지 위에 먹_2012

 

 

주세권作_기억의조각_85x140cm_청바지천_2012

 

 

주재환作_세월-기다림Ⅱ_130x95cm_water color on paper_2012

 

 

최종용作_Nature_91.5x91.5cm_Oil on canvas_2010

 

 
 

 

 
 

vol.20120627-마음으로 가는 길-東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