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展

 

사유 그리고 은유

 

사유 그리고 은유_64x49.5cm_종이 혼합재료_2012

 

 

그림손 갤러리

 

2012. 4. 11(수) ▶ 2012. 4. 24(화)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64-17 | T. 02-733-1045~6

 

www.grimson.co.kr

 

 

  

사유 그리고 은유_61x47cm_종이 혼합재료_2012

 

 

Tea bag으로 숙성하는 사유(思惟)와 은유(隱喩)

 

하계훈(미술평론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라는 순간은 시간과 공간적 측면에서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모멘텀이며 이 두 영역을 연결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현재가 있기 위해서는 과거가 축적되어 왔었어야 하고 그것은 현재를 형성하는데 기여하면서 다시 미래의 진행 방향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현재가 과거의 축적된 결과라면 과거의 노력과 경험의 축적된 양과 시간은 현재에 대한 완성도와 신뢰도를 방증할 수 있다. 즉 학문과 예술에서 현재의 성과는 과거의 노력과 경험을 증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를 반영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시간과 경험의 축적은 가시적일 수도 있고 비가시적일 수도 있는데 시각적 표현을 수행하는 작가들은 이러한 축적된 시간의 경험을 가시화하여 작품 속에 투영시킨다.

박선희의 작품은 이러한 축적된 시간과 공간이 생성시키는 사유의 깊이를 읽기에 적합한 형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줄곧 비구상적 이미지의 은유적 표현에 집중해 온 작가는 약 10년 전부터 차를 우려내고 남은 티백이 보여주는 미세한 조형의 변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박선희의 작품을 작가 자신의 음료에 대한 기호나 특정 상표의 차가 상징하는 의미로 애써서 핵석하려고 한다. 하지만 박선희가 티백을 자신의 작품의 주재료로 선택한 우선적인 이유는 티백이라는 음용을 위한 식품으로부터 도출되는 상징적 의미보다는 그러한 기능이 이루어진 이후에 잔류물로 남는 티백이 갖게 되는 조형성 때문이다. 작가는 백색의 티백에 내용물이 물과 작용하면서 미묘한 황색 얼룩의 뉴앙스를 남기는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사유 그리고 은유_64x49.5cm_종이 혼합재료_2012

 

 

박선희의 작품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재료의 특수성도 있지만 이러한 재료를 반복적으로 집적시키고 다양화시키며 조형적 탐구를 수행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재료의 물성과 작가의 의식 사이의 상호작용을 시간과 공간의 연장선에서 증식시켜 나아간다는 점이다. 티백을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서 말리고, 그렇게 건조된 티백의 내용물을 제거한 뒤 티백 종이를 바르게 펴서 다시 접어 사각의 틀 안에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창조된 티백 모양의 오브제가 태어난다. 이러한 오브제의 미묘한 색채와 형태를 분류해가면서 전체 이미지를 형성해나가는 작업은 극도의 인내심을 유지하는 작가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작업으로서 이것은 지극히 힘든 예술적 노동, 혹은 노동의 예술적 승화인 것이다.

19세기 비엔나 미술사학파의 일원이었던 알로아즈 리글(Alois Riegl)은 예술의지(Kunstwollen)라는 개념과 함께 작품과 작가 사이의 관계나 시대의 주류 미술로서 유행하는 형식이 아닌 비주류(minor) 미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시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리글의 관점 가운데 일부는 박선희의 작업 정신과 유사한 면을 찾을 수 있으며 구체적인 작업을 통해 이 점이 설명될 수 있다.

박선희의 작업은 자칫 단조롭고 고된 노동과 다름없고 작업의 결과로 초래되는 물리적 피로와 고통이 다음 단계의 창작행위에 발목을 잡는 부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선희의 작품에는 제조적(productive) 노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창조적(creative) 예술의지가 담겨있으며 창작의 완결 부분에서 발생하는 예술적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수반된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제조적 노동행위와 차별성을 드러낸다. 박선희의 작품에는 형식상의 완성을 위한 장시간의 작업에 내재된 사유와 성찰의 과정이 작가의 작업 순간순간에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사유 그리고 은유_61x47cm_종이 혼합재료_2012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작된 작품을 통해 박선희가 관람객과 소통하는 방식은 지극히 민감하면서도 직접적이기보다는 암시적이고 상징적이다. 관람객들은 우선 작품의 재료에 대해서 새로운 호기심으로 다가서지만 이렇게 제작된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작품을 잉태하여 탄생시키게 된 시간과 그 노력에 담긴 사유의 흔적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박선희의 작품은 첫눈에 즉각적인 감흥을 유발하기보다는 숙성된 사유와 관조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신적 교감을 유도하는 시간을 거쳐 관람객과 작가의 인식상의 접점을 형성한다.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작품 그 자체뿐 아니라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설치환경과 조명의 미세한 효과 등도 섬세하게 수반되어야 한다.

최근의 미술계가 시장 지향적이거나 국제적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주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만 작가는 이러한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10년 동안 동일한 재료를 파고들며 조형적 탐구에 몰두하여 왔다는 점도 박선희의 작품을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티백을 다듬고 그것을 가지고 화면을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작가의 미감과 삶에 대한 성찰을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작업이 시간의 축 속에 두텁게 축적되어 온 결과가 오늘날의 박선희의 작품들인데, 그것은 곧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작가의 굳은 조형의지와 이를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성실한 작업의 결과물인 것이다.

 

 

사유 그리고 은유_64x49.5cm_종이 혼합재료_2012

 

 

사유 그리고 은유_61x47cm_종이 혼합재료_2012

 

 
 

박선희

 

성신여자대학교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21회 국전 문공부 장관상 수상. 27회 특선

개인전 7회 | Today's Korean Painting (CASO museum , Osaka) | Playing with Chi Energy ( House of shisedo / Japan) | Sanghai Art Fair (Sanghai mart / China) | 2007 GIAF(세종문화회관) | INDIA-KOREAcontemporary art Exhibition(Montage ART Gallery / India) | MBC 개국기념 한국미술 대표작가전.(비포드시티 예술촌아트센터 / 미국) | 한국미술의 Vision2009 (세종문화회관) | 한국의 빛 초대전 (밀라노 아트센터) | 동양화 새천년- 한국현대회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 Asia Top Gallery Hotel Art Fair 2009 (그랜드 하얏트,서울) |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 일본) | 서울아트바젤전 (바젤 ,스위스) | 한국 미술의 새 물결 (갤러리 타블로 , 바젤스위스) | 2012 아트 뉴욕 코리아 아트 페스티벌 (Hutchins Gallery, 뉴욕) | 2012 GIAF 광화문 국제아트 페스티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현재 |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vol.20120411-박선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