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현 展

 

The shaded scenery

 

The shaded scenery 01_150x120cm_Archival pigment print_2010

 

 

갤러리 룩스

 

2012. 3. 28(수) ▶ 2012. 4. 10(화)

Opening : 2012. 3. 28(수) PM 6: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5 인덕빌딩 3F | 02-720-8488

 

www.gallerylux.net

 

 

The shaded scenery 02_150x120cm_Archival pigment print_2011

 

 

The Shaded Scenery

글 : 강정석

 

‘개발의 그늘’이란 테마는 근대 산업사회의 폐해를 비판하는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된지 오래다. 사진학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개발과 재개발의 흔적과 잔해를 날카롭고도 유려하게 포착한 에드워드 버틴스키(Edward Burtynsky)의 일련의 작업을 필두로 화려한 개발의 외피 이면에 놓인 산업사회의 살풍경은 여러 사진작가들의 렌즈가 향하는 장소가 되어 왔다. <가려진 경관>이라는 타이틀 아래 일상화된 개발의 풍경을 담아낸 정지현 작업의 문제 틀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사진학의 한 테마로서 ‘개발의 그늘’은 산업사회의 스투디움(studium), 요컨대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창조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개발문화를 적시한다.

개발을 위해 파헤쳐진 벌건 흙더미 위를 뒤덮은 그물 막, 공사 중인 아파트 건물의 회색 빛 콘크리트 벽에 둘러쳐진 가림 막, 새롭게 조성된 공원과 운동장에 덧씌워진 인조잔디. 정지현의 렌즈는 개발의 시작과 경과, 결과의 현장을 훑는다. 여기에 위장된 군사시설과 복원 중인 문화재 가림 막 이미지를 병렬함으로써 개발의 그늘이라는 렌즈의 초점은 분단의 그늘과 근대화된 전통과 맞물려 시대의 그늘이라는 문제로 수렴된다.

이러한 일련의 이미지 작업을 통해 정지현이 주목하는 것은 근대화된 풍경 자체가 아니라 그 풍경 속에 표상된 색채이다. 작가는 묻는다. “개발의 색깔은 왜 녹색인가?” 이 질문을 통해 작가는 근대의 상투화된 개발 논리에 내장된 은폐와 위장의 메커니즘을 읽어낸다. 개발로 파헤쳐진 벌건 흙과 그 위에 지어진 회색 콘크리트 더미의 대조되는 색채 이미지는 자연의 죽음을 상징한다. 이러한 자연의 죽음의 근저에는 인간을 위한 자연의 이용이라는 이름으로 자연 남용과 파괴를 정당화하는 근대의 인간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작가의 변에 따르면, 녹색의 가림 막은 인간중심주의적 개발 논리에 따른 자연의 죽음, 공존해야 마땅할 존재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위장하고 은폐하기 위한 장치이다. 따라서 이 위장과 은폐의 장치가 만들어내는 광경은 자연에 죽음의 그늘을 드리우는 가리워진 광경(The Shaded), 자연과 인간이 생명이라는 존재의 통합성을 분유(分有)하지 못하는 분절된 경관(Scenery)에 다름 아니다.

다시 바르트를 빌어 말하자면, 언뜻 보기에 정지현의 사진에는 푼크툼(punctum), 즉 관람자의 감성에 충격적인 잔상을 남길만한 요소가 엿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지현의 사진 이미지가 딱히 이면이라거나 은폐되어 있다고 말하기 힘든, 매일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익숙한 일상의 광경을 담고 있다는데 있을 것이다. 잔상을 남길만한 충격은 익숙함이 아니라 낯섬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공사 중인 ‘토건국가’의 시민들인 우리에게 그러한 광경이 충격적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바로 일종의 푼크툼이 없다는 점은 역으로 정지현의 작업에 중요한 함의를 부여한다. 근대 자본주의의 문제를 일상생활과 공간의 차원에서 재조명하는 ‘일상생활비판의 사회학’을 창시한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익숙한 것이라고 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다.”는 헤겔 정신현상학의 명제를 자신의 출발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과연 우리는 일상화된 개발의 풍경이 우리의 삶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는가?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된 개발의 풍경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자연 파괴가 가져올 미래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무수히 들어왔다. 하지만 개발이 팍팍한 눈앞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개선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우리는 개발의 그늘에 너무 무감 해져버린 것은 아닐까? 일상화된 살풍경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정지현의 렌즈는 개발의 그늘과 그 색에 이미 무감 해져버린, 그래서 이미 인공화된 자연의 색과 개발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비판적으로 되돌아 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스펙타클 화된 이미지의 푼크툼이 아니라 정신적 성찰의 푼크툼을 제공한다.

 

 

The shaded scenery 03_150x120cm_Archival pigment print_2008

 

 

<작가노트 >

The shaded scenery

1.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는 - 눈에 띄지 않는 풍경에 대한 고찰이다. 2000년 이후 점점 거세지는 도시화의 중심에는 아파트가 있으며 서울과 대도시 주변부는 점점 이를 세우기 위한 물적 토대가 되어 가고 있다.

파헤쳐지는 공사장 한 켠에서, 세워지고 있는 아파트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지나치기 쉬운 가림 막들을 보면서 빨간색도 노란색도 아닌 굳이 초록색 비닐 천을 씌워 놓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친환경적 건설이라는 구호아래 덮개만 ‘Green’이면 친환경적인 것이 되는 걸까. 개발이라는 것 자체가 파괴의 한 부분인 것을 ……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시선을 회피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나의 시선이 개발현장에서 점점 더 확대되어지게 된 것은 불탄 남대문을 가리기 위해 그것의 형상과 똑같은 - 사진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 가림 막을 둘러 싼 것이었다.

그것들이 우리의 눈을 가리거나 - 항시 존재하고 있었지만 내가, 우리가 그 존재 자체를 무시했던 - 아니면 그 자체로서 새로운 것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낯선 풍경을 낯설지 않게,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있지 않았으면 좋았을 풍경을 익숙하게 만들어 버린 색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럼 나를,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드는 색은 무엇인가?

2. 앙상한 가지만 남은 공원의 푸르디 푸른 인조잔디는 절대 그 색을 바꾸지 않는다. 어쩌면 실제의 잔디보다 더 그 색이 완벽할지 모른다. 가상이라 여기지 않는 가상의 공간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 절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바로크풍인지 로코코풍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공의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상의 공간이 너무 익숙해져서 현실화되어 버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3. 위장된 풍경이 두드러지게 잘 나타나는 곳이 군사시설이다. 유일하게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분단국가이기 때문이다. 휴전선 부근 뿐만 아니라 서울시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위장과 접근 불가의 팻말로, 眞景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가리고 시선의 회피를 강제한다. 또한 노출되었다 하더라도 준전시 상태에 놓여 전쟁 불감증에 걸린 우리에게는 그다지 불편한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4. 건설현장이다. 도로를 포장하기 전에 땅을 다듬고, 그 다듬은 자리를 흉하게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초록색 망을 덮고 있는 장면이다. 초록색 망, 그것이 빨간색일 수도 있고, 까만 색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건물을 짓는 공간에서도 가림 막과 가림 망에는 예의 초록색이 등장한다. 그런데 왜? 굳이 초록색으로 가려서 덮는 것인지...... 무수한 대중의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모든 개발이란 파괴 속의 창조,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도시화라는 개발 과정에서 녹색 자연은 회색의 콘크리트 인공물로 대체된다. 녹색이 자연의 생명력을 의미한다면, 파괴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벌건 흙은 푸르른 생동감의 상실에 신음하는 자연의 속살이며, 회색의 아파트는 자연의 죽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개발의 과정에서 자연의 죽음은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한 것이라는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진보관에 의해 당연시된다. 파괴된 녹색 자연 위로 드러난 자연의 속살인 벌건 대지를 녹색의 그물과 차단 막으로 가리는 것은 자연의 죽음이 인간의 삶을 위한 것이라는 상투화된 개발 논리에 내장된 파괴의 논리, 함께 존재하는 것들의 사라짐에 대한 인간 본연의 두려움을 위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정지현 Joung, Ji-Hyun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를 전공했고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순수사진을 전공

 

개인전  | 2012  The Shaded Scenery 展, 갤러리 룩스, 서울

 

단체전  | 2006  사진집단 ‘포토청’, 우리사회의 틈에 대한 사진적 해석, 세종문화회관 | 2009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순수사진전공 단체전, ‘시간의 부드러운 틈’, 갤러리 룩스 | 2009  NEW FACE ARTIST 단체전, 갤러리 신상 | 2009  서울 포토페어, 코엑스 | 2009  사진집단 ‘포토청’, 匹夫匹婦, 문화일보 갤러리 | 2011  사진집단 ‘포토청’ 사진전, Part Ⅰ 人과 間, 갤러리 공간 415

 

 

 

vol.20120328-정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