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구 사진展

 

형(形)과 구(具)의 낯선 풍경

An Unfamiliar Landscape of Form(形) and Instrument(具)

 

고창 심원_42×60cm_피그먼트프린트_2010

 

 

전북예술회관 2층 6실

 

2011. 12. 16 (금) ▶ 2011. 12. 22 (목)

Opening 2011. 12. 17(토) PM 5:00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1가 104-5번지 | T.063-284-4445

 

www.sori21.co.kr

 

 

완주 봉동_100×150cm_피그먼트프린트_2010

 

 

"형(形)과 구(具)의 낯선 풍경"

 

작가노트

사진은 웃고 들어가 울고 나온다 한다. 셔터만 눌러 된다면 얼마나 쉽겠는가? 허나 나에겐 사진은 번뇌의 고문(拷問)이다. 하여, 사전의 음(音)대로라면 형구(刑具)는 ‘형벌·고문 따위에 쓰는 도구’란 뜻이 먼저지만, 한자로 형(形)과 구(具)를 대치하면 “형태(形態)와 기구(器具)가 있는 낯선 풍경”이 된다.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옛길과 개발에 따라 새로 난 두 길이 혼돈을 준다. 구(舊)길과 새(新)길, 고가도로와 터널 등 Y자로 길이 열리다가 다시 역Y자로 합치는 그 야릇함의 통증에 예약된 시간은 너무 초조하다.

그 동안 이 땅에 살아온 일상의 관습은 뇌리에 트라우마로 촉수를 세우고 문화적 환경에 하나의 적응하는 질문을 찾는다. ‘형과 구의 낯선 풍경’을 통해 ‘세상보기’는 과연 무엇인가? 이 세상 물체가 그냥 질량(質量)으로 남는 물체가 아니라 모두 상품(商品)이어야 하는 현대 이성(理性)을 돈이면 귀신도 부르는 현대판 수술대, 계산대 위에 놓고 나는 항상 너무 바쁘다. 마을 뒷산의 송신탑, 주변지역 혁신도시, 못받은돈 받아준다는 플래카드, 생계대책 주차금지, 베트남 필리핀 국제결혼 등 시골들판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교량처럼 나는 이 낯선 풍경에 서서 시간에 매달린다. 바로 시간이 돈인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우리들(?)의 행진곡을 들으며......

그간 근대화의 모습은 몇 년 사이, 전통적 풍경을 새로운 구조물로 하여 낯설게 만들었다. 서정적 풍경이 현대적 풍경으로 바뀌는 시공간(時空間)에서 우리의 인식도 많은 변화가 되고 서구적 원색과 패턴이 점차 들판을 덧칠해 옴을 본다.

 

 

전남 영광_42×60cm_피그먼트프린트_2011

 

 

사진은 보는 자의 시간적 또는 문화적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된다. 작품에 쌓인 시간과 의미는 생명체처럼 생성과 소멸을 윤회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닮고 기대고 부비며 유기적 상호작용을 하는가. 아직은 많은 부분이 흔적의 거즈(gauze) 밑에서 주름을 펴며 미래를 증식하고 변화하는 지금, 우주의 섭리는 고즈넉이 무위(無爲)의 행위로 나를 따르게 한다. 순수함에서 시작하여 차창(車窓) 너머 마음이 닿는 곳, 그 곳을 향하여 셔터를 만질 때 촬영놀음의 지속은 천진무구 무의식의 놀이터로 나를 인도한다.

찰칵! 찰칵!..... 찰라의 속음에서 깨우치는 나와 타자 사이의 균열감과 내면의 몸부림의 소리, 그 사이의 마찰음은 서로를 확인하고 갈망하는 포커스 또한 한 폭의 미지의 올가니즘(organism)이다. 이것이 우선 내가 촬영하는 확장자의 풍경, 중첩되는 상념들은 서서히 조화를 이루며 피로를 회복하고 무한한 깊이로 가라앉다가 다시 고요와 명상에 이끌려 수면으로 올라오면 그 순간은 얼마나 행복한 단초가 되는가? 하여, 사진은 곧 나의 의문이요, 물음이다. 시골 구석구석 들어와 있는 자본주의 산물은 아파트, 대형다리, 고가도로, 터널, 각종 전기통신 탑들, 공장, 농산물, 대량생산을 위한 시설들, 폐차장 등 시골 농촌에 밀려오는 자본주의 쓰나미.

촬영을 다니다 시골마을에 가보면 빈집들이 많다. 몇 분의 나이든 노인들만 남아 있다. 앞으로 시골에는 누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행사할 것인가? 이미 군(郡) 단위에도 산부인과가 사라진지 오래이다. 인간다운 원초적 삶은 근원적으로 파괴되고 생태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이 현실에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가 과연 누구를 위한 풍요로움인가? 얻는 만큼 잃는 것도 많다는 진실이 새삼 깨달음을 준다. 이 우주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 이제는 그만 교만해야지. 자연의 순리 앞에 과학은 무슨 의미일까? 삶의 뿌리인 농촌 풍경을 다시 감상하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삶의 지속이란 무엇일까? 를 뇌까려 본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이런 허접한 질문을 입안에 삼키며 셔터를 조심스럽게 만진다. 지금의 현실 앞에 송구스런 마음을 다시 주체하면서......

 

 

정읍 북면_100×150cm_피그먼트프린트_2011

 

 

단절과 그 너머에 있는 소통

 

박 남 준(시인)

사진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사진에 대해 생각하며 묻고 정의하여 말했을 것이다. 사진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진은 단순하게 다만 피사체가 되어 눈앞에 다가온 모습을 담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진은 움직이는 시간을 정지시키며 쉬지 않고 변화하는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진은 순간순간 멈추어 있는 현재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과거에의 기록일 수밖에 없는가. 그러나 그 기록을 토대로 내일을, 미래를 움직이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 흘러가버린,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담은 것이라고 치부해버릴 수가 있겠는가. 전쟁의 참혹한 현장, 천재지변 등과 같은 자연재앙의 현실 문제를 다룬 사진은 기록과 고발을 동시에 담은 것이다. 또한 계절이 변하는 모습, 동식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 한 송이의 꽃이 피기까지 그 건너온 시간을 담은 사진은 그것이 비록 수많은 시간 속에 지극히 짧은 어떤 한 부분과 단편적인 것일지라도 자연의 역사를 기록한 서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꾸 뒤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그가 강을 건너온 것은 옛날이었다. 옛날은 다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스스로 늙고 자폐되었다. 언제였던가. 꿈결처럼 다가왔던 저편의 강가 그때 비로소 강가에 이르렀을 때 꽃과 나무와 새들의 시간이 과녁처럼 가슴을 뚫고 멀어져 갔으며 낡고 바래여 희미해졌던 전생의 아수라 같은 삶들이 너무나 완강한 흑백으로 뚜렷해지던

 

누가 등 뒤에서 부른다. 강으로 이르는 길이 저기쯤일 거다.

 - 졸시, <흑백사진을 찍었다>

 

 

충남 논산_42×60cm_피그먼트프린트_2011

 

 

안테나, 전신주, 송신탑, 논과 밭 사이에 솟아있는 작은 농촌마을의 아파트, 교각, 비닐로 덮인 밭, 그 너머 공장건물, 철커덩 쿵덕궁 다시는 방아찧는 소리도, 쏟아지며 날아오르는 참새들의 날갯짓도 돌아오지 않을 버림받은 방앗간, 흉물스러운 폐가, 고물상, 비닐하우스, 논 바로 옆에 있는 골프연습장, 구멍가게, 결혼광고현수막, 을씨년스러운 시골장터..... 여기 전시된 사진작품의 배경으로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작가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의 사진 속에 담긴 풍경, 또는 대상들이 이 전시장으로 걸어 나와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가. 작가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전신주와 송신탑과 교각 등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연배우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상징하는 것은 소통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주인공들의 메타포를 통하여 우리에게 단절과 그 너머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장르의 문화예술행위는 특정, 불특정 타인이나 대상과 소통하기 위한 열망이며 그 소통을 통하여 메시지나 동감 또는 감동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메시지나 동감 또는 감동은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거나 동반하는 것이다. 변화는 움직이는 상태이다. 내면의 고요한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든지, 변화를 일으켜 피를 끓게 하는 분노와 같은 역동적인 운동성을 고무진작 시키는 것이든지, 독자, 시청자, 관객들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형구의 사진이 이야기 하고자하는 것은 퇴색되어가고 낡아져가는 풍경을 통해 송신탑과 전신주와 교각과 길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서 단절이 아니라 소통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겠다. 그의 사진 중에 골프연습장 옆에서 논에 모내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서로 어긋나고 단절되어있는 풍경인가.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작가는 이 어긋나 있는 현실을 보여주며 시골 간이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촌로들의 모습을 또한 보여준다. 둘은 꾸며낸 가상의 풍경이 결코 아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일어나고, 공존하여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차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는 다름이다. 다르다는 것은 틀렸다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적인 분별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게 될 때 비로소 어떠한 가치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의 오늘을 인정하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곧바로 떠올리게 되는 기다림- 다시 말하면 작가는 이 전시회의 작품을 통하여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소통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충남 장항_42×60cm_피그먼트프린트_2011

 

 
 

이형구

 

개인전 | 2011 | 형(形)과 구(具)의 낯선 풍경’전북예술회관, 전주

 

단체전 | 2011 | 13월의 농촌풍경 전북예술회관, 전주 | 2009 | 쌀, 주차금지 대한의사협회, 학생회관, 전주 | 2007 | ‘2006 면소재지’풍경 - 8인의 시각 사진전, 전북예술회관, 전주 | 2004 | 곰소 전주시의사회, 삼성문화회관, 전주

 

사진집 | 2011‘형(形)과 구(具)의  낯선 풍경’신아출판사, 전주

 

 
 

vol.20111216-이형구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