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展

 

 

내 마음의 풍경_72.7x60.6cm_oil+acryilc_2011

 

 

이즘갤러리

 

2011. 12. 9 (금) ▶ 2011. 12. 18 (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 399-13 2F | T. 070-7503-3896

 

 

내 마음의 풍경_53.0x45.5cm_oil+acryilc_2011

 

 

시간을 여윈 공간의 자유로움

 

박용은 서양화가이다. 그는 캔버스에 유화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다. 그러나 박용의 작품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공간구성이다. 단순하면서도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도로 표현되는 공간은 언제나 화면의 중심에서 전체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극히 평면적이고 무심히도 시공을 초월하고 있으며 시점을 비껴나 있는 공간은 집 두어 채, 하늘, 산, 나무 등이 가장자리에 미미하게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소재의 조형들에 의해서 화면은 나누어지되 절제되어져 나타남으로써 상징적이며 기호화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그의 작품 내 공간은 입체적인 원근감을 유도하거나, 배경으로 작용하는 서양화적 의미의 공간이 결코 아니다. 그의 공간은 공간 그 자체로서 의미적이다. 비어있으나 가득 차있는(滿) 시간을 떠나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스쳐 지나온 많은 이야기를 그려내는 박용 자신만의 공간이자 그의 온전한 삶 그 자체이다. 마치 오랜 화선지 위에 일필휘지로 그려지고 있는 한 편의 수묵화처럼 다가오는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불현듯 불가(佛家)의 천수경 한 구절이 구름 피어나듯 떠오른다. “무상심심미묘법 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 百千萬劫難遭遇(위없이 깊고 깊어 미묘한 불법,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워라.)” 그렇다. 삶의 수많은 곡절과 사연에 얽힌 세상의 이치를 어떤 구체적 말로 묻고 묘사한다 할지라도 정확할 수는 없다. 다만 미묘한 삶의 경지를 알고자 하는 자의 간절한 결기로 도전해보는 것이다. 경을 외우기 전 개경게(開經偈)를 먼저 독송하듯 그의 그림 앞에서도 형상의 수수께끼를 푸는 지혜를 구하며 작가의 우주를 탐색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작가 박용은 엄밀한 뜻의 구속적 경계를 세우고 궁극적인 의미를 전하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어차피 작품은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일 수밖에 없다는 박용은 작품 속 형상들을 그려낼 때 부분적 형상조차도 사물의 정확한 대상으로 구체화하고 있지 않다. 보이는 대로 본다 한들 다 담아낼 수도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도 없다고 한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치감치 알았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대학원에 진학할 시기부터 형상을 버리는 작업을 해 왔다는 박용은 나를 버리면서 비로소 나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산을 그리고자하는 자는 산을 볼 수 있지만 산 안에서 살아가는 자는 산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닌가!

 

 

내 마음의 풍경_53.0x41.0cm_oil+acryilc_2011

 

 

노랑 혹은 갈색 계열과 희뿌연한 흰색 계열의 색이 조화를 이루고, 먹빛의 검은 선은 마치 띠를 두른 듯 언뜻언뜻 공간 속 시간을 간단한 선으로 처리하며 공간을 제어한다. 그 안의 시간과 공간은 서로 교차하며 흔적을 남기고 끊길 듯 다시 이어진다. 이어 공간위로 슬며시 드러나는 조형들은 공간의 가장자리에서 집의 형태로 나무와 산의 대략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마치 작가 박용의 얼굴이 여러 형태로 나타난 듯하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도 둘 또는 여럿이다. 가끔은 집도 나무도 거꾸로 물 위에 비추듯 그렇게 마주하기도 한다. 작가의 심상의 거울에 맺힌 상들이라 그런지 모든 형상들은 한 때의 순간들이 갇혀버린 시간의 화석 같은 이미지이다.

그런데 그 시간의 화석 안에 갇혀 있는 온갖 형상들은 그림과 틀의 경계인 가장자리로부터도 포획당하지 않으려는 듯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자유롭다. 구도의 획일성으로부터 시간의 형식으로부터 탈피하는 형상들은 그래서 기존의 현실공간과 달리 자유롭게 부유한다. 세계의 반복적인 질서를 드러내는 흰 선의 구획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한계를 확장해나가며 형상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 가장자리는 이러한 의도가 손끝으로 강하게 전해진 탓인지 날이 서듯 날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수많은 반복 속에 겹겹이 쌓아올린 물감을 가장자리까지 밀고나감으로써 생긴 마지노선일 뿐이다.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반복적 행위의 결과로 맺은 마띠에르 효과는 의외로 둔탁하지 않고 날렵하기까지 하다. 아크릴과 유화물감을 섞어 만들어 낸 화면은 당연히 상당한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 번에서 수백 번 수직과 수평으로 그어대는 나이프와 빗, 그리고 붓질로 자연스럽게 밑 색이 드러나고 자연스레 떨어져나간 색들은 시간의 흐름을 희석해준다. 물감을 지속적으로 캔버스 위에 올리고, 다시 내리는 인고의 시간은 물감의 두께가 말해 주는 것 이상으로 시간의 영속성을 담아낸다. 시간의 횡적, 종적 운동이 종횡무진 펼쳐진 화면 위로 쌓인 흔적인 화면 속 일상은 무상하다 못해 무심하다. 그럼에도 화면으로부터 번져오는 색의 화음은 밝고 따뜻하다. 그의 그림을 위안삼아 삶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삶의 비속한 지층을 화면의 중량감 안에서 한껏 털어내고자 하는 끝없는 탈색과정에서 작가는 고된 노동과 대면했을 수도 있다. 화면의 공간 위로 쉼 없이 가로 지르며 오고 갔던 작가가 남긴 흔적의 질감이 결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것은 이처럼 우리 앞에 놓인 세계와 우리의 삶이 슬픈 것만도 행복한 것도 아닌 탓이다. 일상에서 출발하여 일상을 넘어선 탈속의 덤덤함이 묻어나는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 삶이 매일 만들어가는 일상의 지문을 떠올려보자. 그의 그림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자유로움을 느끼려면 우리는 아마도 시간이 쌓고 있는 중력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 때 비로소 우리 마음의 풍경에서 날고 있는 새와 함께 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 속의 풍경이되 이미 현실의 미진(微塵)을 밀어낸 범속하지 않은 그 곳에 서서 평소 우리가 잊고   있는 희망을 기다리는 일이야 말로 그의 그림을 보는 중요한 이유가 되리라.

 

변상형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교수, 미학박사)

 

 

내 마음의 풍경_53.0x33.3cm_oil+acryilc_2011

 

 

 

내 마음의 풍경_45.5x38.0cm_oil+acryilc_2011

 

 
 

■ 박 용 (朴龍 | Park, Yung)

 

개인전 26회및 2인전5회  | ART FAIR 참가총20회

현재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대전시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대전광역시 초대작가 | 한국미술협회,창형전회원

 

 
 

vol.20111209-박용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