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용 展

 

JANG HYE-YONG 24th SOLO EXHIBITION

 

엄마의 정원_72.7×60.6㎝_캔버스+아크릴_2011

 

 

2011. 12. 6 (화) ▶ 2011. 12. 30 (금)

초대일시 : 2011. 12. 6 (화) PM 3:00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556-2번지 | T. 043-264-5545

 

www.shinmuseum.org

 

 

엄마의 정원_90.9×72.7㎝_캔버스+아크릴_2011

 

 

초대의 글

 

자신만의 색을 찾아 달려온 장혜용 40년을 회고하는 뜻 깊은 전시를 개최하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오방색의 기묘한 조화와 강력한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한국화 추상작업의 백미로 꼽혀온‘얼 시리즈’를 시작으로 인간 본연의 심성을 자극하는 이상적인 대자연의 풍경을 담고 있는‘무릉도원’, 인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인간이 지속적으로 갈망하고 추구해오고 있는 사랑의 표현의 종결지인‘엄마의 정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현대개념미술과 미니멀의 홍수 속에서 확고한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구축하고자 몸부림치는 완성도 높은 장혜용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인생의 깊은 의미를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2011년을 과거로 보내는 마지막 달, 어머니의 마음으로 인생을 안착해 가고있는 작가의 최근 작품들이 여러분의 1년을 평안히 마무리하게 하는 기회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귀한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11년 12월 6일

신미술관 관장 나신종

 

 

꽃들의 합창_53.0×45.5㎝_캔버스+아크릴_2011

 

 

마음의 정원, 이상향으로서의 정원

 

고 충 환 | 미술평론

인형극장엔 인간 대신 인형들이 주인공이다. 인형들이 인간 대신 희로애락을 연기한다. 인형들이 인간을 대리하고 인간의 삶을 흉내 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인간을 대리하는 인형들의 흉내를 따라 울고 웃는다. 인형들의 흉내에 동화되기 때문이며, 비록 재현된 현실이지만 그 현실을 현실로서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특히 유아에게 현실 자체와 재현된 현실은 구분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그 대상을 인형극으로부터 드라마나 영화로 확장시켜놓고 보면 어른들의 경우 역시 크게 다르지가 않다). 그렇게 동화되는 장이며 인간과 인형이 일체화되는 장을 현실인식의 장에다 비유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따지고 보면 이처럼 현실로서 믿어 의심치 않는 현실은 사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조종된 것이다. 여기서 보이는 현실을 의식의 장이라고 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이며 보이지 않는 현실, 나아가 보이는 현실을 가능하게 해주는 어쩌면 더 궁극적일지도 모를 또 다른 현실이 무의식의 장에 해당한다. 이처럼 무의식이 의식을 끊임없이 간섭하고 조종하기 때문에 무의식이 의식보다 더 본질적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의식은 보이고 무의식은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무의식은 의식에 비해 간과되기가 쉽다. 그 무의식에 부쳐진 비유적인 이름이 정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이런 정원 하나씩을 가꾸고 있다. 그 정원은 영국식 정원처럼 무성할 수도, 일본식 정원처럼 인공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정원에는 억압된 욕망과 소망, 원형적인 그리움과 이상향 같은, 더러는 현실원칙에 위배될지도 모를 것들이 깃든다. 그러므로 작가 장혜용이 자신의 근작에 부친 주제 <엄마의 정원>은 보이는 정원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정원이며 무의식의 정원, 마음속의 정원이며 내면 풍경의 표상처럼 보인다. 그 표상형식 속에다 작가는 억압된 욕망과 소망, 원형적인 그리움과 이상향을 심어 놓은 것이다. 그 정원에는 꽃밭이 화사하다. 그 꽃밭에 새가 깃들고 나비가 날아든다. 그리고 여인(아마도 작가의 자화상일 듯싶은)이 이 정경과 어우러지는데, 여인의 소망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꽃들은 형형색색으로 피고 도무지 시들 것 같지가 않다. 서양에는 바니타스가 있고 동양에는 화무십일홍이라는 격언이 있듯 꽃은 시들기 마련이며, 경우에 따라선 그 처연함으로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적어도 작가의 정원은 이 처연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꽃들이 만발하고 새가 노래하고 나비가 춤을 추는, 흡사 삶의 정점의 순간에 멈춘 것 같은, 그리고 그 멈춤은 영원할 것만 같은 그림이다. 그러므로 그 정원은 실존적 정원이라기 보다는 욕망의 정원이며, 현실인식의 반영이라기 보다는 소망의 반영처럼 보인다.

 

 

엄마의 정원_50×50㎝_캔버스+아크릴_2010

 

 

사실 이런 소망으로 치자면 전작에서의 <무릉도원>에서 그 실체가 더 분명해진다. 따지고 보면 형식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엄마의 정원>과<무릉도원>은 차이보다는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 형식이나 주제의식이 상호 삼투되고 심화되는 경우로 보인다. 무릉도원이 이상향이라고 한다면, 엄마의 정원(작가자신이 마음속에 품고있는 정원)은 그 이상향의 또 다른 버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이상세계를 그려 보이는가. 그 세계는 형식적으로 평면화의 경향성과 이에 다른 의미비중의 균등한 분배로 나타난다. 즉 그림에는 여인이 있고, 꽃이 있고, 새가 있고, 나비가 있다. 이처럼 비록 외관상 구분되는 소재들이 있지만, 이 소재들은 다만 소재로서만 구분될 뿐, 사실은 그림 자체의 자족적인 원리 속에서 똑같은 의미와 비중을 부여 받는다. 그리고 그 의미와 비중은 모티브와 모티브를 나누고 구분하게 해주는 가장자리 선을 걷어내면 더 잘 보인다(가상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가정해 볼수는 있다). 소재가 아니라면, 눈에 띠게 차이를 의식한 경우는 아니라는 말이다. 아마도 차이보다는 무차별성을 의식하고 적용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나비와 내가 혼동되는 장자몽이나, 자와 타를 구분하는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혼연일체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지향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여인은 꽃밭 속에 파묻히고, 꽃향기에 취해 허물어지고, 종래에는 그 자신이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난다. 그렇게 여인도, 새도, 나비도 꽃밭 속에 동화돼 또 다른 꽃으로 만개되는 경지와 차원 이상으로 무릉도원(그리고 이상향으로서의 정원)을 표상하기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무릉도원은 한마디로 모든 구분과 차이가 의미를 획득하기 이전의 무차별적인 세계다. 작가의 그림에서 무차별적인 세계는 이처럼 모티브와 모티브에 분배되는 균등한 의미비중으로서 나타난다(그리고 가장자리 선을 걷어내면, 아예 소재자체의 차이마저 가늠할 수가 없는 지경으로 암시된다). 그리고 이런 무차별적인 세계는 다채로운 색채를 도입한 경우보다는 무채색의 모노톤 화면에서 더 결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모티브와 모티브의 구분을 넘어, 모티브와 배경화면이 서로의 경계 너머로 혼성되면서 유기적인 전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무릉도원을, 이상향으로서의 정원을 무차별적인 세계며 비전으로서 예시해놓고 있는 것이다.

 

 

신의 정원_90.9×72.7㎝_캔버스+아크릴_2011

 

 

작가의 그림은 대개 페인팅(엄밀하게는 아크릴화로서, 똑같은 수성이란 점에서 종전 먹그림을 확장하고 재해석한)이지만, 꽃잎 부위와 같은 특정 모티브에서 부분적으로 콜라주를 도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 평면이지만, 더러 배경화면에 정형 비정형의 마티에르를 도입해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촉각적인 경험에로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러 원형 캔버스와 같은 변형 캔버스를 도입해 형식적인 변화를 꾀한다. 그런가하면 평면이면서도 조각적인 매스를 암시하는 여인의 초상 등 형식실험을 통해서 그림의 표현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사실 이런 형식실험으로 치자면 작가는 전작에서 아예 입체표현을 선보인 적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특정 형식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작가정신의 발로며 표출로 볼 수 있겠다. 이외에도 작가의 그림은 평면화와 단순화의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아마도 사물의 본질을 추출하고 축약 표현하려는 조형의지와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작가는 회화의 기본요소로서 특히 선과 색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인데(선과 색 그리고 평면과 같은 회화의 형식요소에 한정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더니즘적 환원주의?), 원색과 파스텔 톤의 간색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장식적이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모티브를 감싸는 가장자리 선이 모티브의 다채로운 색채와 어우러져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의 경우에 이런 간색이나 다채로운 색채는 사실 전통적인 오방색에서 유래하고 변주된 것이다. 그형(선)과 색의 어우러짐은 사실 수묵으로 그려진 <얼> 시리즈에서 그 계기가 예시되고 이미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 경우로 볼 수가 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수묵 고유의 발묵 효과가 다소간 정리되면서, 화면 구성이 눈에 띠게 간명해졌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재료상의 변화와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그림을 그릴수록 동심으로 돌아가 자유로운 태초의 인간으로서의 나 자신으로 몰입되는 순간을 느끼게 된다, 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본능에 충실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도 했다. 아마도 천진하고 단순한 그림, 거리낌 없는 원색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그림, 그 화려하고 장식적인 색채들의 정원 속에서 자와 타의 구분이 없어지고 나와 너를 나누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림, 그럼으로써 무릉도원이며 이상향의 표상 같은 그림, 그리고 그 그림과 더불어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지워지고 오롯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바램일 것이고, 작가의 그림은 그 바람이 이미 일정정도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엄마의 정원_40.9×31.8㎝_캔버스+아크릴_2011

 

 

 
 

■ 장혜용 (Jang, Hye-Yong)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한국화 전공) |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한국화 전공)

 

개인전  | 23회 (동산방화랑, 금호미술관, 예술의전당, 국립현대미술관 등)

 

초대전·단체전  | 380여회 | ‘88 현대 한국화전 (호암 미술관) | 서울 현대 한국화전 (서울 시립 미술관) |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 현대 미술관) | 동과 서의 만남전 (독일 뮨스터시 문화국 초대) | ‘93 FIAC (프랑스 파리) | 몬테칼로미술제 초대 | 서울 600년 기념 국제 현대 미술제 (국립 현대 미술관) | ‘95 한국미술‘질·량·감’전 초대 (국립 현대 미술관) | ‘96 MAC2000참가 (PARIS) | 서울미술대전 초대 (서울 시립 미술관) | 아세아 평화미술제 초대 (일본) | 미술의 시작전 (성곡미술관) | MANIF 서울 국제 아트 페어 특별상 수상 기념전 (예술의 전당) | 상해 국제 아트 페어 (중국) | SFAF (한국미술 열흘장) (예술의 전당) | 한국·이집트 수교 10주년 기념 교류전 (카이로) | 한·일현대미술교류전 (일본 센다이) | LA 아트페어 (LA, 미국)

 

수상 경력  | 국전 특선 및 입선 수회 | 1984 파리 국제 위원회 장려상 | 1994 제 3회 한국미술 작가상 | 2000 MANIF!6 서울 국제 아트 페어 특별상 | 2007 제 1회 에이스아트 그랑프리 수상 | 2007 청석 학술상 수상 (청주대학교) |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 웨인즈버그 초대교수 (미국 펜실베니아) 역임 |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 역임 |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역임

 

작품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 외교통상부 | 국회의사당 | 서울시립미술관 | Waynesburg College (USA) | 대전시립미술관 | 인천지방검찰청 | 대전과학기술원 | 동안교회 | 전쟁기념관 | 여전도회관 | 청주대학교 등

 

현재  |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학장 (회화학과 교수)

 

 
 

vol.20111206-장혜용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