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래 展

 

"손으로 빚다"

 

삶_45x35cm_석고

 

 

장은선 갤러리

 

2011. 9. 28 (수) ▶ 2011. 10. 4 (화)

Reception : 2011. 9. 28 (수) PM 4:00~6:00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11 | T. 02-730-3533

 

www.galleryjang.com

 

 

삶_60x30cm_석고

 

 

조각가 민성래 선생은 한지 위에 우연히 포착된 크로키 같은 한 장면처럼 인체를 빚어낸다. 근거가 부실한 난해함, 혹은 관념이 우세하는 예술 보다는 날 것이 풍기는 풋내와 같은 감성을 선호하는 작가는 투박한 듯, 손맛이 느껴지는 작업들을 만들어낸다. 회화적인 그의 부조는 난해하지도 지나치지도 않다. 인간 내면의 심리를 육체의 외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는 작품 속 여인들의 몸뚱이, 보일 듯 말듯한 표정, 한 인간의 뒷모습에서 삶의 모습을 담아낸다. 그는 육신 너머로 보이는 인간의 내면의식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와 일체화 되는 것이며 그것이 곧 삶과 직결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의 완성된 작품에서는 작가 손으로 창조하는 조형물로서 육신 너머 관련된 모든 살아있는 피, 뼈, 살에 대해서 작가만의 연민과 성찰의 노력이 돋보인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몸뚱이의 움직임을 표현한 것 이지만 그 안에는 한 꺼풀 벗겨진 우리의 삶이 있고 관람객들은 그것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육체와 의식이 하나로 통합되어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신작20여점을 선보인다.

민성래 선생님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동 대학원을 졸업. 10회의 개인전과 금호미술관 개관기념 초대전, 예술의전당 개관기념 초대전, 한국 조각전, 평택 국제 아트 페스티발, 서울미술대전 한국 현대조각 2010 등 다수의 초대전, 단체전에 참석 하였으며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삶_37.5x42.5cm_한지

 

 

어느 날 문득, 아빠를 보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라기 보다는 참으로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듦의 동의어는 노쇠이기 보다는 성장이라고 아빠의 삶이 우리에게 담담히 얘기하는 걸 들을 만큼 나 또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게다. 딸에게 이렇듯 인생에 대한 두려움 보다 희망을 보여주는 아빠께 참으로 감사하다. 아빠가 보여주는 그 희망은 내게 세상의 그 어떤 먼 성자가 들려주는 희망보다도 깊이 울리며, 그 결을 보고 만질 수 있을 듯 실재적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당시 아빠의 사랑은 내게 너무나 주관적인 추상화 같았다. 멀찍이 서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그것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보이는 듯 하지만, 가까이 대면해 보면 그 뜻을 이해하기에 너무 난해한 추상화. 아빠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은 없지만 그 당시 일상 속에서의 아빠는 편안하고 즐거운 사랑의 존재로 느껴지기 보다는 나를 긴장시키는 무서운 존재로 더 많이 다가오곤 했다. 그건 아마도 아빠의 예민한 성격과 더불어 아빠가 주고자 하는 사랑과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 혹은 내가 받고 싶은 사랑과 다름에서 오는 갈등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세상의 모든 시작하는 사랑이 어렵듯 돌이켜보면 아빠와 그 딸인 나 사이의 사랑도 처음부터 쉬이 커간 건 아닌 듯 하다.

 

 

삶_60x30cm_석고

 

 

세월은 흐르고 아빠도 이젠 이순(耳順)의 나이인 예순을 넘기셨다. 한 때, 아빠의 사랑은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기엔 무언가 마음 놓이지 않는, 마냥 편치만은 않은 사랑이라고 여겼지만 어느 날 문득 아빠 앞에서 마치 있는 대로 다리를 뻗고 자연스레 쉬고 있는듯한 나를 발견했다. 아빠의 사랑이 어느 샌가 참 편안한 내 누울 자리가 되어 있었던 게다. 이순(耳順), ‘귀가 순해진다’라는 말의 의미가 학문적으로 어떻게 풀이되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혹 다른 이들의 목소리, 마음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귀와 마음이 열린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기적인 ‘내 나름대로의 사랑’-내가 주고 싶은 사랑, 혹은 내가 볼 때 너에게 필요한 사랑-을 하고, 그렇기에 때로는 상대방에게 원치도 않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이들을 향해 열린 귀와 마음은 ‘내 나름대로의 사랑’을 ‘네 모습 그대로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듯 하다. 아빠의 사랑이 그렇게 변화해왔듯이……

 

난 아빠의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세월의 힘만으로 이뤄졌다 여기지 않는다. 가는 시간과 더불어 이순(耳順)을 향한 아빠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이끌어낸 건 아빠의 끊임 없는 자아성찰과 쇄신에 대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이는 아빠의 작품세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듯 하다. 내 눈에 비친 아빠의 작품들은 모두 그 시선이 내면을 향해있는 듯 하고, 자기성찰적이기에 또한, 필연적으로 한국적이다. 하지만 ‘자기성찰적, 한국적’이라는 큰 틀 안에서 아빠의 작품은 아빠의 사랑이 변화한 모습처럼 그 모습을 달리해오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어느 때 보다 세상과 사람을 향한 아빠의 따뜻한 눈길과 연민이 잘 묻어나오며, 그 따뜻한 눈길을 대변하듯 아빠의 흙 만짐이 보다 세심하고 고와졌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하고, 쉬이 상처 받고, 방어하는 우리의 모습이 작품 속 여인들의 몸짓과 표정에 반영되어 있으되, 그 모습 속엔 냉소나 나무람이 없다. 그들은 깊어진 아빠의 사랑을 닮아 마치,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며 오히려 우리를 조용히 다독거리는 듯 하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빠 작품 속의 그녀들을 보며 자신 스스로를 보는 시선이 좀 더 따뜻해지고, 내가 아빠의 삶을 바라보며 느낀 인생, 사람에 대한 희망과 위로를 느꼈으면 하는 바이다.

2011년 9월

큰 딸 민귀선

 

 

삶_30x40cm_석고에 채색

 

 

처음 전시 서문을 쓰게 되었을 때는 막막했다. 소위 예술을 논하기에 아는 것도 없고 글재주도 없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주제가 ‘아버지의 예술세계’라면 더욱 막막하고 약간은 민망하기도 하다. 평범한 가족답게 나와 아버지는 아직 생활의 공간에서 서로 더 익숙한 까닭이다. 밥 먹고, 자고 기거하는. 왠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자주 제작하던 높은 머리의 두상처럼 정신적이고 우미한 부분은 아버지 마음 속에서만 벌어지는 섬세하고 개인적인 세계 같아 그냥 봐도 모르는 듯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내게 원한 것은 내가 항상 알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었다. 딸과 아버지라는 육친의 관계를 통해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과 당신이 손으로 빚어내는 육신을 병렬하자 나는 한결 편안히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한으로는 한결같이 인체조소라는 분야에 매진해 왔다. 새로운 것을 거의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요즘의 시대에 아무도 새롭다고 말하지 않는, 주류에서 다소 비껴난 분야. 그러나 아버지의 수 십 년도 인류가 육체를 묘사하기 시작한 수 천 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수 천 년이 지났는데도 인간의 육체는 변치 않고 존재하며, 인간은 여전히 모든 방편을 통해 스스로를 묘사하기를 계속한다. 인간의 육신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영원한 물음을 가장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아이콘인 것이다.

 

내가 아는 작가로서의 아버지는 인간의 육신이 내포한 이런 초월적인 보편성과 근원성을 가능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정직한 방법론으로 풀어내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같은 소재와 모티브를 긴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채택하기도 하고, 대체로 사실적인 묘사방식을 유지한다. 아버지가 최근 즐겨 사용하는 구도는 인간과 자연 속 생물의 단순한 배치를 통한 비유, 혹은 암시이다. 그리고 이 모든 방식은 결코 필요 이상 난해하지 않으며 완성된 작품은 어느 정도 전통적인 미술품의 기능-장식적 가치-을 유지한다.

 

여기에 보다 깊은 사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근거가 부실한 난해함, 혹은 관념이 우세하는 예술을 혐오하는 아버지의 개인적 성향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더 정확히는 충분히 곰 삭히지 않은 날 것이 풍기는 풋내와 어떤 종류의 과장된 감성을 깐깐한 아버지의 미감이 감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런 풍조에 대한 혐오감을 공공연히 내보이곤 했던 것이다.

 

 

삶_39.5x25cm_한지

 

 

실제로 인체조소라는 분야는 해부학이라는 복잡한 지식과, 그것을 묘사하기 위한 매우 실질적인 기술, 그리고 상당한 육체적 노동을 기본으로 요구한다. 인체라는 소재가 너무나 보편적이기에 일반 사람들은 석굴암의 불상이 들숨과 날숨이라는 운동적인 요소를 표현했는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발목이 사유하는 자세에 어울리는 형태인지까지 기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뼈와 근육의 움직임을 언어로 사용하는 작가라면 그러한 것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체조소는 나를 포함한 문외한부터 1%의 예민한 감상자까지 모두 넉넉하게 포용할 수 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사람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폭 넓은 관객층을 초월하여 어필하는 감성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꾸준한 노력과 성찰이 필요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아버지의 작품을 볼 때 마다 아버지가 얼마나 앞뒤가 일치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의 삶은 역할에 따라 분리되지 않고 항상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일관된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성찰은 탐미적, 지적 탐구에서 그치지 않고 생장(生長)의 순환 속에 유전자를 이어가는 한 세대로서의 역할에까지, 분명한 의지를 수반하여 이어졌다. 아버지는 당신의 손으로 창조하는 조형물로서의 육신 너머 당신과 관련된 모든 살아있는 피, 뼈와 살에 대해서 항상 연민과 성찰의 끈을 놓지 않고자 노력해왔다.

 

나는 아버지가 예술가가 아닌 가장으로서 역할에 당신을 길들이는 것이 대단히 힘든 일이었음을 종종 생각한다.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천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게 곧잘 어깨 숨을 쉬게 만드는 불편한 긴장을 유발하는 사람이었고 그 예민함과 주변 공기까지 짓누르는 듯 한 무거운 기운은 내게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당신의 본디 천성을 아무런 방해 없이 한껏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곱슬 장발 정도였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장발 남자를 찾을 수 없던 그 시절 나는 힐끔거리는 남들의 시선이 창피했지만 외국 사람처럼 흰 피부와 뾰족한 코, 깡마른 체격의 아버지에게서는 털끝만큼도 남들을 의식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고 언제나처럼 당당하고 빠른 그 걸음에 아버지의 웨이브 장발은 마치 솜 뭉치처럼 어깨에서 들썩이곤 했다.

 

 

삶_40x40cm_한지 | 삶_40x40cm_한지

 

 

어린 시절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나기까지 내가 아버지를 접하는 공간은 주로 육신의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서 키웠으며 내가 아버지를 마주하는 공간은 항상 밥상 앞이었다. 아버지의 이상과 꿈은 항상 아버지 서재의 수북한 책들, 누드사진들, 유토(油土)와 손수 만든 책상, 그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것들에 있었다. 그 긴 고독을 생각할 수 있게 된 지금 예술가로서의 아버지를, 내가 알던 아버지의 나머지 절반을 이해해 드리지 못한 것이 무척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최근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나와 언니를 앉혀 놓고 신나게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말씀하시던 와중에 최소한 당신의 작품이 자식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꿈이라며,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사랑스러운 말씀을 하셨다. 올해 아버지의 춘추 63세, 인생의 황혼이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눈을 반짝이며 꿈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그리고 세월 따라 쇠하는 육식에 반비례하여 점점 아름다워질 것, 그것이 내게 준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본이 유전자의 화석처럼 내 안 어딘가에 박혀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아버지의 작품에서 현현하는 육신이건, 혹은 이 숨쉬는 공간에서 함께하는 육신이건.

 

피, 뼈와 살은 영원하다. 그리고 변치 않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진심으로. 전시회 축하 드려요.

사랑하는 둘째 딸 지영 올림.

 

 

 
 

■ 민성래

 

1949 生 | 197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 1980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 1984 제1회 개인전 (청년작가회관, 서울) | 1986 제2회 개인전 (두손화랑, 서울) | 1992 제3회 개인전 (덕원화랑, 서울) | 1995 제4회 개인전 (조선화랑, 서울) | 1997 제5회 개인전 (사비나 갤러리, 서울) | 2001 제6회 개인전 (조성희화랑, 서울) | 2003 제7회 개인전 (노암갤러리, 서울) | 2006 제8회 개인전 (모란갤러리, 서울) | 2008 제9회 개인전 (장은선갤러리, 서울) | 2011 제10회 개인전 (장은선갤러리, 서울)

 

초대전  | 1989 | 금호미술관 개관 기념 초대전 (금호미술관, 서울) | 세종문화회관 11주년 개관기념 초대전 (세종문화회관, 서울) | 1990 | 예술의전당 개관기념 초대전 (예술의 전당, 서울) | 1992 |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 | 1993 | EXPO93 촉각 초대전 (EXPO 기념관, 대전) | 93조각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서울정도 600주년 기념 초대전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 | 1996 | 인간 해석전 (사비나갤러리, 서울) | 1997 | 97 한국조각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Wing갤러리 개관 기념 초대전 (Wing갤러리, 서울) | 2001 | 가족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 인간해석전 (사비나 갤러리, 서울) | 2002 | 평택 국제 아트 아트 페스티발 (평택호 예술관, 평택) | The Nude전 (사비나 갤러리, 서울) | 2004 | 갤러리 한 개관기념 초대전 (갤러리 한, 서울) | 2010 | 서울미술대전 한국 현대조각 2010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현재  |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

 

 

 
 

vol.20110928-민성래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