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영 展

 

 

오름 - 이어지는 삶_90x60cm_한지에 혼합재료_2011

 

 

갤러리 이즈

 

2011. 8. 10(수) ▶ 2011. 8. 16(화)

Opening : 2011. 8. 13(토) PM 4:0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00-5 | 02-735-6669

 

www.galleryis.com

 

 

오름 - 성장의 길 I_90x60cm_한지에 혼합재료_2011

 

 

오름을 오르다 - 비움의 회화 언어

김 성 호 (미술평론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작가 박수영의 근작은 십여 년 전 방문했던 제주도에 대한 강렬한 체험에 기인하고 있다. 20대의 관광객으로서 혹은 이방인으로 맞닥뜨렸던 제주는 작가에게 고단했던 당시의 현실을 추스르게 하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재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제2의 고향이다. 첫 방문 이래 그는 지금도 제주를 드나들며 육지와 섬 사이의 이주와 정주를 거듭하며 지내고 있는중이다. 그런 까닭에 제주의 사람들에게는 한낱‘육지 것’이었을 뿐이었던 이방인으로서의 박수영의 삶은 육지와 섬 사이의 유목을 거듭하면서 어느덧‘섬사람’으로 체화되고 있는 중이라 할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제주에 처녀성을 바치고 순수한 여인으로서 느끼는 오르가슴’을 제주를 형상화한 작품들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예술창작에 녹여내기에 이른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제주의 다채로운 풍광들 중에서 유독‘오름’들로 가득하다. 측화산(側火山)혹은 기생화산(寄生火山)으로 불리는‘작은 화산’인 이‘오름’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제주도만의 풍광일 뿐만 아니라, 그에게 예술의 본성을 모색하게 해준 주요 소재이자 테마이다. 봉긋봉긋한‘오름’들을 부감법(俯瞰法)의 투시로 관찰하고 있는 녀의 작품 안에는 앞서 살다간 이들의 무덤들과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의 집들이 혼재한 채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그것들의 외양은 무척 간결하다. 있지만 없는 듯 작은 상자 모양과 그릇 모양으로 표현되어 풍광 속에 놓여 있다. 한편,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어슴프레한 오름들 사이에는 희미하게 드러나는 작은 길들이 드리워져있다. 때로는 희뿌연 나무들이 집 옆을 지키고 있기도 하다.

 

 

오름 - 꽃이지다_90x60cm_한지에 혼합재료_2011

 

 

풍경화 아닌 풍경화 - 채움과 비움

박수영의 작품들은‘풍경화 아닌 풍경화’이다. 그런 관점이 가능한 까닭은 시선의 대상인 풍경들이 그의 내면 안에서 심적 풍경으로 치환되어 관념화된 추상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와 앉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추상은 그녀에게 깊은 수준으로 체화된 어떠한 관념으로부터 비롯된다. 필자가 보기에 그러한 관념은‘채움과 비움의 사이에 대한 사유’로 보인다. 무소유와 비움의 사유란 비단 세월의 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살 날’보다‘살아온 날’이 많고‘계획할 미래’보다‘기억할 과거’가 많아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강렬한 체험들로부터 이러한 사유를 깨닫기도 한다. 작가 박수영에게서도 예외는 아니다. 필경 강렬한 제주의 삶이 근간이 되었을‘채움과 비움’이라는 -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한편으로는 묵직한 - 주제의식은 그녀의 작품에서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그의 작품에 표현된 집과 무덤은‘산자와 죽은자’혹은‘존재와 부재’라는 상징적 개념의 이중대립을 화해시킨다. 그러니까 그녀는 집과 무덤이 상기시키는 각기 다른 환유(換喩)적 속성이라는 것이 실상은 같은 개념이라는 것을 피력한다. 삶, 존재의 개념을 환유하는 집이란 한편으로 죽음, 부재의 개념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두가 출타중인 상태의 집이란 채움으로부터‘소여된 부재의 공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승을 떠난 후 형성되는 주검의 공간인 무덤이란 사자(死者)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충만한 존재의 공간’이다.

집이나 무덤은 안과 밖 사이에 자리한 최초의 경계인 어머니의 자궁이 현실계에 자리 잡은 두 가지 형식의 공간이다. 그것들은 다르지만 서로 같다. 그것들은 공통적으로 타자의 세계로부터 나의 세계를 분리하는 경계의 지점이자. 비움과 채움을 한꺼번에 실현하는 한 몸이다. 출품작 중〈오름-숨다〉라는 제명의 작품은 집 안에 집이 중복되어 있는 관념화된 추상형태를 보여줌으로써 마치 집이 흔들리는 듯 보인다.

그것은 한편으로 불안한 현대인의 삶의 정체성을 반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안과 밖, 비움과 채움의 경계에 대한 그녀의 회회적 질문이 된다.

‘노오란 유채꽃 위에 죽은 자의 무덤들이 빈집처럼 떠돌고 / 산 자는 그 위에서 밭을 일구고 살아간다.’

(작가노트 중에서)

그녀의 작품에서 이러한 비움과 채움은 이분법적 나눔을 허락하지 않는 동양의 일원론적 자연의 본성과 닮아 있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의 본성은 도가(道家) 사상의‘무위(無爲)’또는 장자(莊子)가‘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고 부른 무한한 자유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의 작품은‘자연의 재현’보다는‘스스로 그러하다’는‘자연의 본성 표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끊임없이‘풍경화 아닌 풍경화’가 되고

자 한다.

 

 

오름 - 하늘을 꿈꾸다_90x60cm_한지에 혼합재료_2011

 

 

오름 오르기와 올레 찾기 - 읾음과 비움

그의 작품들에서 오름의 한켠에 영혼처럼 자리잡은 하얀 집들은 더러는 군집으로 더러는 개별체로 자리하면서 서로를 이어주는 가냘픈 끈들을 붙잡고 있다. 그 끈들은 다름 아닌‘올레’이다. 집 대문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인‘올레’는 그녀의 작품 속에서 집과 집, 집과 마을, 집과 오름을 이어주고 연결한다. 자연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은 채 오름과 오름 사이에서 자연스레 형성되어 너와 나의 집을 잇고 있는 이‘올레’는 청유형의 인사말이자 소통의 매개체가 된다.

‘집과 무덤’이 삶과 죽음을 환유함과 동시에 나, 너, 그, 그녀, 그들(그녀들)이라는 자아와 타자를 은유한다면, 올레와 오름은 그 자아와 타자 사이의 소통하는 매개체를 은유한다. 올레는 마을로 떠나는 길이자 떠나온 나의 집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익숙하지만 때론 낯설기도 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광이,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적 삶이 작가에게 익숙한 올레를 낯설게 만든다. 특히 작품의 분위기를 휩싸고 있는 어슴프레함, 희미함이 이와 같은 익숙함에 대한 낯설기를 가속화시킨다.

생각해보자, 어둠과 희미함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풀, 나무, 논두렁, 바위 등 자연의 개별적 주체들을 낯설게 만들어낸다. 어둠과 희미함이 충만한 공간은 우리의 익숙함을 비워내는 것이다.

‘나의 들숨과 날숨이 정확히 기억되는 길.../ 그 길을 지나면 또 다른 길이 이어지고/ 나는 내 머리보다 더 높이 있는 / 바당을 바라보고 길을 잃는다.’(작가노트 중에서)

‘길을 잃는다’는 작가의 발언은 길이 매개하는 나와 너의 소통의 좌절을 의미하기 보다는 하나의 길이 아닌 여러 길이 열려 있음을 비로소 자각하게 된 어떠한 인식을 드러낸다. 길을 잃는 경험, 그것은 여러 길을 찾는 경험에 다름 아니다. 마치 그것은 들뢰즈와 가따리의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이 창출하는 열린 공간에 비견될 수 있다. 사방팔방으로 열린 고원의 공간은 박수영의 오름의 공간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오름을 오르고 올레를 찾아가는 화가의 인생 속에서 그녀가 발견한‘길을 잃어버린다’는 자각은‘잃음’이 아니라‘비움’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상실(喪失)’이라는 피동적 결과이기 보다는‘소여(掃如)’라는 능동적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소여는 그녀가 지속적으로 모색하는 중심적 회화 언어가 된다.

 

박수영의‘비우기’라는 회화 언어

작가 박수영에게서 소여, 즉 비우기라는 회화 언어는 여백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언어에 다름 아니다. ‘오름 - 194843’이라는 제명의 조각적 설치작품은 적절한 예가 된다. 이 작품은 집의 형태를 다중으로 중첩시켜 만든 투과체의 조각이다. 작가는 하나의 집 내부에 또 다른 집들이 집적되는 형상을 통해서 채움의 형식을 지속적으로 부여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끝없이 비움의 내용을 드러낸다는 역설적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처럼 별 다른 여과장치 없이 간결하고 깔끔한 그녀의 조형 형식은 비우기라는 주제의식을 효율적으로 드러내기에 제격이다. 평면 회화들에서도 이러한 조형 형식은 잘 드러난다. 그녀의 회화가 일견 한국화처럼 보이는 까닭은, 이러한 비움의 형식이 효율적으로 잘 드러난 결과이다.

작가는 의외로 많은 재료와 조형 방법을 구사한다. 종이, 먹, 옻칠을 바탕으로 삼는 것은 물론, 색연필과 아크릴을 혼용하고 농묵, 담묵, 마블링, 점묘법 등을 뒤섞는다. 이러한 혼용의 조형 방법을 구체성을 의도적으로 결여한 단촐한 준법( 法) 속에 녹여내어 비우기의 주제의식을 극대화한고, 그럼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그 비움의 공간 속에 저마다의 사유를 풀어놓으며 교감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남겨진 논의가 있다면, 작가 박수영도 고민하고 있듯이, 비움 혹은 여백의 회화 언어를 보다 더 숙성시키기 위해서, 지금의‘익숙한 조형언어’들로부터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에 관한 구체적인 조형적 방법론에 관한 모색일 것이다. 공통의 언어로 독창적인 글쓰기가 쉽지 않듯이 공통의 회화언어로 어떻게 독창적인 회화를 창출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오늘을 사는 화가에게는 언제나 골치 아픈 과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오름 - 그리고 남은 이야기_90x60cm_한지에 혼합재료_2011

 

 

작가노트

바람섬 제주.

섬을 드나든 십여년.

아름다운 바람소리만 간직 하고 싶은 그곳은

근현대사의 쓰라린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반 세기 이전

제주에는 타민족이 점령군으로 있었고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는 아름다운 땅 곳곳에

헤아리기 힘들만큼 진지를 쌓고 비행장을 닦고

무수히 많은 땅굴을 파헤쳐 놓았다.

이 식민의 산물을 짓기 위하여

수많은 제주민 들이 처참한 노역과 죽임을 당하였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4.3사건은 제주민들 에게

같은 겨레로 부터 크나큰 고통을 주었다.

낮에는 토벌대, 밤에는 산사람 들 에게 서

무고한 백성들이 희생 되었고

가해자는 어디로 가고 모두가 피해자인 속 에서

갈등과 대립의 시간들이 이어져 왔다.

섬사람 들에게‘육지 것’일 수 밖에 없는 나는

이방인으로서 섬을 떠돌며 작업을 한다.

수많은 오름과 바당.

그 속에서 가라앉지 않는 삶과 죽음에의 고통과

오랜 동안 소외된 변방민 으로 살아 온 섬사람들의

헛헛한 마음은 섬 안의 또 다른 섬으로 떠돈다.

오늘도 나는 바람섬의 오름을 떠돌며

고통의 돌길과 슬픔의 둔덕을 올라

오름 위에서 아픔 끝에 순수한,

오르가즘을 느낀다.

제주의 봄은 슬프다.

노오란 유채밭 위에 죽은 자의 무덤은 빈집으로 떠돌고

산자는 죽은 자의 집 위에 밭을 일군다.

유채 만발한 오름에 오르면

바람결에 상여소리 묻혀 온다.

종일 방에 틀어박혀 파도소리와 씨름 한다.

간간히 비행기 들고 나는 소리와

해안 길 지나는 차 소리 만이 유일한 움직임 이다.

어둠 내리는 바당 에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칸델라가 눈 아프다.

어둠에 묻힌 바당 의 파도는 보이지 않아도,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쉴 새 없이 제 몸 부딪쳐 온다.

새벽,

잠에 설치운다.

 

 

 

 

■ 박수영

 

1999  강남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 2000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학과 졸업

 

개인전  | 2011  네 번째 개인전‘섬, 그리고 남은 이야기 - 오름’展, 갤러리 IS | 2010  세 번째 개인전‘오름 - 길을잃다’展, 안산문화예술의전당 -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 2009  두 번째 개인전‘작은이야기’展, 수원시립미술관, 경기도 교원복지센터 | 2007  첫 번째 개인전‘새야 새야’展, 수원시립미술관)

 

단체전  | 2010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 일본 아시아 시립 미술관 | 한국미술의 빛,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 2009  서울 인사 아트 페스티벌, 서울미술관 | 'Art Collection' 전, 공평아트센터 | 연꽃 페스티벌, 경기도 시흥 관곡지 | 2009  ‘淸風萬人扇’전, 뽈리갤러리, 수원시미술관 | 2005  12월의 감성전, 갤러리 가이아 | 1999  갤러리 그림시 젊은 작가전, 갤러리 그림시

 

경력  | 2011  <2012 갤러리이즈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선정작가 | 2010  제23회 대한민국 회화대전 특선, 인사동 한국미술관 | 2009  제21회 모란현대미술대전, 성남아트센터 | 1999  신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8  경기미술대전,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 1997  전국대학미전, 특선)

 

현재  | 신미술협회 추천 작가 | 광명공업고등학교 미술 교사

 

 

 

vol.20110810-박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