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展

 

"공간연습"

 

 

대구,동성로_80x150cm_Ink-jet print_2010

 

 

갤러리 아트사간

 

2011. 7. 8(금) ▶ 2011. 7. 31(일)

Opening : 2011. 7. 8(금) PM 6:00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69 영정빌딩 3F | 02-720-4414

 

www.artsagan.com

 

 

대구,서문시장_55x150cm_Ink-jet print_2010

 

 

전시서문 -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사진평론가 김승곤

 

 김정수는 이번 ‘공간연습(Exercises for Space)’에서 종로 피맛골을 비롯해서 부산의 광복동과 초량의 차이나타운, 대구 서문시장, 통영의 중앙시장 등의 좁은 골목길에 늘어선 건물들을 앙각(仰角)으로 촬영한 사진의 일부를 잘라낸 다음, 그 복수의 이미지들을 다시 옆으로 이어 붙여서 만든 작품을 내놓는다. ‘유로 시티(Euro-City)’ 이후, 이질적인 공간과 사물들을 하나의 공간에 병치시켜 놓음으로써 내면에 잠재된 기억의 편린들을 가시적인 이미지로 재현한 '기억의 단편들(Fragments of Memory)’과 ‘콜링 투 메모리(Calling to Memory)’ 등에서 보아온 것처럼 복수의 이미지로 작품을 구성하는 기법은 그가 오래 전부터 보여 온 작업 스타일이다. 이들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기억의 재현과 동시에, 중세 이후 우리의 세계관을 지배해온 원근법적 사고를 해체시키고 자유로운 다원적 시점을 회복하려는 그의 일관된 의지였다.

 평면상에 그려진 2차원의 화상에서 3차원의 현실을 읽어내는 것은 화면 안에 설정된 소실점을 기점으로, 깊이를 가진 대각선상의 구도를 그려내는 원근법의 원리에 준거한다. 원근법 이전의 풍경이나 종교화에서는 물리적인 법칙이 아니라, 종교적인 주제의 상징적 중요성에 따라서 대상의 크기가 달라졌다. 현실 대상의 외관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사진은 원근법의 가장 완성된 형태로서, 발명 이후 물리적 세계의 질서에 대한 인식의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종교적인 사고의 회로를 각성시켜나가게 된다.

 인간의 망막에 들어오는 것은 단순한 2차원 상의 감각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단편적인 시각정보를 3차원의 현실로 인식하는 것은 경험으로 축적된 모든 감각기능과 뇌에서 실행되는 보정과 재구성 능력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자극이 망막에 들어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보이는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리작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학습과 경험을 통해서 획득되는 지적 능력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원근법을 발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인간의 세계에 대한 원근법적인 인식이 이처럼 생득적인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광복동_65x150cm_Ink-jet print_2010

 

 

 대상의 실재감을 정교하게 재현하는 수단으로써 원근법은 근대를 특징짓는 가장 근본적인 제도이자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된다. 원근법의 발명을 기점으로 자연의 질서를 관찰이 가능한 것으로 대상화시킬 수 있는 권력의 시선이 형성되었으며, 근대의 과학문명을 비롯하여 사상과 가치의 체계도 이러한 원근법적 시선의 구조를 바탕으로 성립되어 나왔다. 그러나 누가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소실점이 달라지는 원근법은 객관적이고 동일한 가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연을 대상화한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은 오랫동안 간과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원근법의 훈련을 받지 못한 어린 아이들의 그림에서 깊이감이나 입체감이 없이 단순한 선과 색채만으로 그려지는 것을 본다. 인쇄물도 티브이도 접하지 못한 원시적인 환경에서 생활하는 원주민들은 그림이나 사진에 나타난 상의 윤곽을 손으로 더듬어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영국 신사’의 얼굴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선천적인 장님이 성장한 후에 개안수술을 하고 시력을 되찾게 되었을 때, 생리적으로는 눈이 정상적인 기능을 가지게 되었지만, 외계의 현상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었다는 사례도 보고되어 있다.

 우리가 완전하고 합리적인 공간으로서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원근법적 세계는 이처럼 직접적인 경험이나 생리적인 지각 능력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 시대의 상징적인 제도이자 교의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는 원근법이 완전한 진실의 공간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시점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며, 연속된 시공간에서 잘려진 현실의 단층이 어떤 불순물도 개입되지 않은 상태로 재현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전제를 충족시키는 것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기준(視點)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또 그 기준의 정당성 자체가 수시로 달라지는 현대라고 하는 상황에서는 한 개의 소실점을 향해서 세계를 수렴시키는 원근법은 그 유효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서울,피맛골(종로)_55x150cm_Ink-jet print_2011

 

 

 김정수가 지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다. 현실 대상을 단편으로 분리(facet)시켜서 자의적인 조형 의지로 재구축한 그의 작품들은 우리의 지금까지의 ‘세계를 바라보는’ 안정적인 방식을 교란시킨다. 무수한 소실점을 갖는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시선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착란 공간 속에서 방황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의 다시점에 의한 다면체 구조는 고정된 시점에서 바라보는 원근법적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현기증과도 같은 강렬한 감각을 유발시키고 마는 것이다.

그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는 안정된 원근법적 세계를 해체하고, 다양한 시점들을 모자이크해서 서로 반발하고 충돌하는 다이나믹한 공간을 출현시킨다. 복수의 조형물을 하나의 평면으로 늘어놓는 것은 사진의 단안적인 공간의 틀을 깨고 다시점에 의한 새로운 균형과 조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가 보여 온 실험적인 방법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정서적인 내용을 가시화하는 일에서 시작된 그의 관심은 이제 실재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원근법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가 구사하는 화면 구성상의 기법은 이제 시각과 심리적인 효과나 단순한 감각 레벨에서의 인식의 해체에 그치지 않고, 단안(單眼)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는 근대적인 사고와 가치의 체계를 무력화시킴으로써 현실에 대한 인식의 구도를 해체시킴으로써, 어떤 것으로도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서 의식의 벡토르를 확장시키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그의 사진들에서는 불가사의한 느낌을 주는 기하학적인 건축물들은 개별성과 구체성이 최대한 소거(消去)되어 있고, 타이틀을 제외한다면 그 사진에서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밖에는 읽어낼 수 없다. 견고한 무기질의 건축물은 광각렌즈와 강한 광선에 의해서 극단적으로 심도가 과장되고, 단순화된 면과 형태, 절제된 선들이 예리한 각도를 이루며 위쪽으로 화면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실 디지털 이미징을 구사해서 시각적인 스캔들리즘을 만들어내는 수준의 시도는 최근 현대미술의 장면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정수가 다른 것은 그가 제작의 과정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나 얄팍한 손재주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사진의 광학적인 성질과 편협하게 보이는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충직하게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통영,중앙시장_75x150cm_Ink-jet print_2011

 

 

 

 

 대형 카메라와 은염 필름에 의해서 기록된 이미지들은 작품의 제작과정을 거치는 동안 대상의 외관과 원래 놓여 있던 공간의 질서가 해체되지만, 대상이 가진 물리적 성질 자체를 훼손시키고 있지는 않다. 그의 사진에서 우리는 현실 대상과 빛과 광학적 화학적인 반응들, 그리고 클로즈업이나 망원시(望遠視), 부감과 앙각 촬영 같은 카메라의 고유한 시각과 전통적인 어법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새로운 비전을 획득하려는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은 광선과 자연의 질서에 의해서 결정된 위치에 널린 한정된 범위의 현상, 다시 말해서 물리적 대상의 표면의 선택적 재현이다. 비록 그 자체가 아무리 완결된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시공간의 일부를 잘라내는 사진은 처음부터 현실의 불완전한 단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잘려진 시공간을 다시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인위적인 프로세스를 거쳐서 출현된 불가능한 공간은 보는 사람의 지각을 혼란에 빠트리고 현실에 대한 안정된 인식체계의 기반을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리는 조형물의 형태의 균등한 볼륨과 단순화된 화면, 리드미컬한 배열 같은 요소들이 통일감과 조화와 균형의 감각을 이끌어내는 것은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빛과 그림자, 양감을 가진 형태와 광학적인 원근법 등 사진을 성립시키는 고유한 속성과 원리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딥틱이나 트립틱 같은 표현양식에서 분절(分節)된 이미지들은 독립된 요소로서 분할되지 않고 통일된 전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이 성화나 제단화(祭壇畵)와 같은 유일성을 가진 종교적 상징물에 쓰이는 것과 동일한 형식이라는 점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무수한 소실점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고, 허구와 실제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과학적 이성과 합리적인 가치체계는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의 작품은 마치 스핑크스처럼 우리에게 익숙하고 난해한 수수께기를 던진다.

 

 

Untitled_90x280cm_Ink-jet print_2009

 

 

 

 

■ 김 정 수 (Kim, Chung-Soo)

 

일본 오사카예술대학 사진학과 및 예술전공과 졸업 | 대구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대구예술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 | 한국미술협회 | 환경미술협회 | 한국교육미술협회 회원

 

개인전  | 2011  갤러리아트사간, 서울 | 2009  APG갤러리, 후쿠오카, 일본 | 2007  케논갤러리, 부산 | 2006  케논갤러리, 부산 | 2005  대백갤러리, 포항 | 2003  고토갤러리, 대구 | 2002  프린츠갤러리, 교토, 일본 | 2001  타임스페이스갤러리, 서울 | 1999  아트센터, 오사카, 일본 | 1998  코닥포토싸롱, 서울 | 1997  이시스갤러리, 교토, 일본 | 1996  코스모갤러리, 오사카, 일본 | 1992  동아갤러리, 대구 | 1991  동아미술관, 대구 | 1990  조선일보미술관, 서울 | 1982  현대갤러리, 대구

 

단체전  | 뉴욕, 동경, 오사카, 교토, 난징, 서울, 부산 등지의 국내.외 기획전 다수

 

기타 활동  | 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 역임 |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 역임 | 하남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 역임 | 한.일사진트리엔날레 운영위원 역임 | 무등미술대전 운영위원 역임 | 국제동아싸롱 심사위원 역임

 

 

 

vol.20110708-김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