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나 展

 

2011 갤러리 라메르 기획 - Flower No Flower

 

 

Flower No Flower_270x165cm_한지 먹 채색_2010

 

 

갤러리 라메르 1F

 

2011. 3. 9(수) ▶ 2011. 3. 15(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94 홍익빌딩 3층 | 02-730-5454

 

www.galleryLAMER.com

 

 

Flower No Flower_270x165cm_한지 먹 채색_2010

 

 

꽃 속에 담긴 우주 그 원리의 회화적 번안

꽃의 이미지를 존재론적인 미감으로 형상화하는 작가 안영나의 개인전이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다. 작가의 작품에서 꽃은 단순한 시각적 소재라기보다 세계, 우주, 사물 등을 사유하고 성찰한 결과로서, 작가 내면에서 퍼 올린 의미와 상징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다. 꽃을 통해 삶의 의미를 성찰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문자를 도입한 신작을 통해 관념적 사유를 한층 강화한다.

 

꽃과 우주

안영나의 꽃 작업

김백균 (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 )

 

유난히 늦게 찾아온 올 봄 안영나의 작업실에 다녀왔다. 안영나의 작업실을 나서는 오후, 봄기운 가득한 대기의 온기 속에서 벚꽃과 목련의 꽃잎이 흩날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내 머리는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안영나 작업이 빚어놓은 화면 속의 꽃과 눈앞에서 지는 봄꽃이 끊임없이 오버랩이 되어 그의 작업이 던지는 메시지가 계속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안영나는 꽃의 상징과 기호를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작업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의 꽃은 우리가 삶 속에서 늘 마주하는 벚꽃이나 목련 혹은 장미와 같은 특정한 꽃이 아니다.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꽃은 꽃이라고 여겨지는 이미지 혹은 관념에 불과하다. 그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한 어떤 특정 꽃의 재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꽃이라 여길만한 꽃의 보편적 특성을 담고 있다. 보편적이기에 관념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념적 보편에 의해 보이는 꽃의 이미지 너머에 있는 의미를 어떠한 단서를 통해 읽어 나가야 할 것인가. 나에게 있어 그의 작업의 요체를 간략하게 집어내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요즘 흔히 하는 말처럼 예술품 창작을 1차 창작이라 하고, 비평을 2차 창작이라 하며, 컬렉션을 3차 창작이라고 한다면 작가가 말하는 “꽃이 아름다워 꽃을 그린다”는 작가의 순박한 창작동기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너무 영악했기 때문이다. 내 머리 속은 끊임없이 작가가 꽃에 천착하는 또 다른 이유, 즉 작가 자신조차 의식화 하지 못한 암시적 의미를 비평의 눈으로 찾고자하는 오만한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오만한 의식이 벗겨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 조경으로 심어놓은 벚나무들조차 아직 어려서 그럴듯한 자태를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들고 날 때마다 아스팔트 위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그 고달픈 삶과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삶이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것임을 새삼 느끼곤 했다. 어느 날 나무의 크기에 비해 몇 송이 피지 않은 빈약한 이 벚나무의 꽃조차 꽃비로 쏟아져 내리는 그 모습을 본 그 한 순간, 아 꽃이 아름답다는 안영나의 한마디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름답다는 말은 수많은 가치를 지닌 말이다. 단지 형상이 아름답다는 형식적 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말에는 형식과 내용, 즉 존재와 언어가 하나로 통하는 삶의 진정이 배어나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진리가 서려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안영나의 작업이 진정 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느껴지는 한 순간이 있었다. 보편적 관념으로서의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꽃과 현실의 꽃이 하나의 의미로 관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꽃은 우주의 한 진리를 함축한 메시지를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고 느꼈다.

 

 

Flower No Flower_145x70cm_한지 먹 채색_2010

 

 

봄에 나는 나이를 먹는다. 봄에 나는 세월을 느낀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변화를 느끼는 나의 촉각은 거칠고 무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는 자연의 순차적 흐름 속에 있다. 그래서 그 시간의 흐름은 차츰 일상으로 여겨지고 나의 감각은 계절이 주는 자극에 무감각해진다. 그러나 겨울에서 봄으로의 전환은 예상을 뒤엎는 반전 속에서 온다. 그만큼 명확한 의식의 자각을 동반한다. 삶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희망의 단서를 발견하는 기적과 같이 모든 것이 동토에 갇혔다고 생각되는 순간 새 생명의 순환이 준비되는 봄의 이치는 언제나 경이롭다.

누가 뭐래도 봄의 절정은 꽃이다. 나의 인식에 있어서 봄꽃이란 삶의 가장 극적인 경이의 표상이다. 화사하게 피어난 봄꽃은 마른 대지 거친 세상을 밝히는 등불처럼 온 몸으로 생명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 곳에 붙박이로 살아가는 식물만큼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것이 있으랴. 식물은 꽃으로 반전의 계절, 모든 존재가 깨어나는 그 생명의 시간을 알린다. 식물의 투쟁은 꽃으로부터 시작한다. 꽃은 씨를 만들어 번식 기능을 수행하는 생식 기관이다. 삶을 위해 모든 유혹의 기술을 발산했던 꽃이 시드는 것은 화사한 유혹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 양육의 시기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전주곡과 같다. 봄이 끝나는 것이다. 그 이후의 여름은 열매를 맺기 위한 양육의 시간 즉 견디기 어려운 인고와 인내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봄을 알리는 꽃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본질을 그리고 순간과 영원을 되돌아보게 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봄에는 왜 모든 것이 소생하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처절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왜 영원을 지향하는가? 이러한 질문의 답 안에 꽃이 ‘아름다운’ 의미가 스며있다. 그 안에는 유혹과 생식, 투쟁이라는 자연의 법칙과 절정과 환희, 숭고의 인문적 가치가 담겨있다. 안영나의 작업은 꽃의 기호와 상징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언어는 존재를 담지 못한다. 가까이는 들뢰즈나 가타리 같은 현대의 철학자에서부터 멀리 그리스의 철학자까지 기호학이나 해석학에서 형이상학까지, 근대 오감도와 종생기를 남겼던 이상(李箱)의 고민에서 노자나 석가모니의 사유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각자들의 고민은 언어가 존재를 담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가 신의 말을 인간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모습 속에 철학과 예술의 고민이 있다. 무한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색을 어떻게 하나의 표현으로 압축할 것인가. 철학과 예술의 근원적 문제는 결국 이 문제로 돌아서지 않겠는가. 안영나의 고민 역시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의 작업이 어떻게 하여도 표현되지 않는 존재를 ‘아릅답다’ 라는 말 속에 존재의 형식과 내용,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고 그것을 꽃이라는 관념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로 여겨지는 것이다. 잡히지 않는 의미를 잡고자 하는 시도, 결국 그것을 하나의 예술행위로 본다면 관념적 꽃을 통해 안영나가 표현하려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그 반전, 모든 존재가 자신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투쟁하는 삶의 경이, 일체 유혹의 기술로 생존을 모색하는 생명의 욕망, 즉 삶의 현상과 본질 같은 것이지 않나 싶다.

그의 꽃은 구체적 대상을 가지지 않는다. 재현(representation)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다는 이는 추상적 사유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꽃은 꽃의 보편적 관념에 기인하므로 구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그의 작품에서 꽃의 형상을 읽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꽃으로부터 떠나는 여행이다. 꽃을 그렸지만 꽃은 아니다. 공간중심의 시각으로 그의 작업을 축소하여 미시적으로 보거나 이를 확대하여 거시적으로 본다면, 그의 작업은 꽃의 속성이 사라진 미세한 세포들이 만들어내는 무질서를 만들어 내거나 혹은 저 광대한 밤하늘 우주의 한 모습으로도 보인다. 시간중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순간과 영원이 공존한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순간이다.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 단지 스쳐가는 찰나이다. 꽃은 투쟁의 가장 치열한 순간 존재의 절정을 암시한다. 그러나 시간을 좀 더 미시적으로 혹은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절정이지 않은 순간이 어디에 있는가. 삶은 순간순간이 절정이다. 삶 속에서 어디 한 순간 의미 없는 순간이 있었던가. 그 의미의 체계는 인위적 체계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 삶은 매 순간이 절정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우주와 절정에 가 닿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 속에 꽃은 어디에나 있다. 순간이지만 영원이 되고, 한 순간의 모습이지만 우주가 되는, 모든 존재와 합일이 되는 지점. 안영나의 꽃은 바로 그 지점을 향하고 있다.

안영나는 꽃에 대한 관념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문자를 도입한다. 문자는 그 자체로 이미 강한 상징적 기호체계를 지닌다. 의미를 지닌 문자를 의미 없는 배열로 보여줌으로서 그 상징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관객을 위한 안영나의 배려이다. 동시에 문자는 그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단서이기도 하다. 논리화된 의식을 따라 그의 작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순간 서로 다른 상징들 속에서 어떠한 의미의 긴장을 읽도록 하는 장치인 셈이다. 그것은 관념과 실체를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는 것으로, 안영나는 자신의 작품세계가 관념적 세계이며 관념화 되어 있음을 명확히 보여줌으로써 실체에 집착하고자 하는 의식을 차단하는 것이다. 안영나는 그동안 많은 작가들이 매달려 왔던 실체와 실재에 대한 환상을 허물고 관념을 관념으로 바라보자고 제시한다.

그의 작업 주제가 꽃에 관한 것이지는 하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관한 것이다. 꽃이나 우주 역시 인간의 의식 속에서 피어나는 의미들이다. 그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 꽃이라는 이미지에 투영된 인간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그의 작업은 미시와 거시, 파괴와 창조, 구체와 추상, 순간과 영원, 불완전과 완전 같은 개념적 대비를 통하여 매 순간 우리의 삶이 삶의 절정임을 보여준다. 꽃의 절정은 우주의 절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꽃은 어디에나 있다.

 

 

 

 

■ 안영나

 

1986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 1984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 1980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강의경력  | 1992-  서원대학교 교수 | 1992   단국대학교 강의 | 1986-1991  서원대학교 강의 | 1986-1991  청주대학교 강의

 

수상  | 2000  야도 스튜디오 참가 및 오픈 스튜디오, Saratoga Springs, New York | 1999  폴록-크레스너 재단상 수상, 863 Park Avenue, New York, NY | 1993 대한민국 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1992 동아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1991 중앙미술대전, 호암 갤러리, 서울 | 1990 대한민국 미술대전,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

 

개인전  | 2001  한국 문화원, 워싱톤 디시, 미국 | 1999  공평아트센터, 서울 | 1997  가산 화랑, 서울 | 1995  서호 갤러리, 서울 | 1992  덕원 갤러리, 서울 | 1991  예향 갤러리, 서울 | 1991  무심 갤러리, 청주

 

해외전  | 2001  잉크 하모니, 죠지 메이슨 대학, 미국 | 2000  듀셀도르프 한국 미술전, 시립 미술관, 듀셀도르프 | 스트라스부르크 아트페어, 엑스포지션 드 스트라스부르크 | 1999  리네 아트 페어, 젠트 벨지움 | 1998  살롱 콩빠례죵, 에스파스 에펠 브랑리,파리 | 스트라스부르크 아트페어, 엑스포지션 드 스트라스부르크 | 1997  로마 아트페어, 피에라 디 로마, 이태리 | 리네 아트페어, 프랑드르 엑스포, 벨기에 | 1994  한 일 현대미술 교류전-대화하는 풍토, 후바나시 시민갤러리, 일본 | 1990  한국 젊은 여류작가전, 베를린 시립미술관, 베를린

 

국내전  | 1999  서울화랑미술제, 예술의 전당, 서울 | 제33회 한국미술협회전, 예술의 전당, 서울 | 제59회 청주 미술협회전, 예술의 전당, 청주 | 충북작가전, 청주 예술의 전당 | 분분합합, 종로갤러리, 서울 | `99봄의 소리-200인의 작가 작은 그림展, 선화랑, 서울 | 1998  서울 판화 미술제, 서울 예술의전당 | 분분합합, 종로갤러리, 서울 | 디딤,내딤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 예우대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 섀미전, 종로갤러리, 서울 | 갤러리 호반-오늘의 충북 미술, 갤러리 호반, 청주 | 김복진 미술제, 예술의 전당, 청주 | 제32회 한국미술협회전, 예술의 전당, 서울 | 제58회 청주미협전, 예술의 전당, 청주 | 제20회 Aspect전, 예술의 전당, 청주 | 한국화 126인 부채그림전, 공평 아트센터, 서울 | 1997  한국화 유사와차이, 학천화랑, 청주 | 분분합합, 종로갤러리, 서울 | 제19회 Aspect전, 예술의 전당, 청주 | 제31회 한국미술협회전, 예술의 전당, 서울 | 제57회 청주미협전, 예술의 전당, 청주 | 1996  서울대학교 50주년 기념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 후소회 60주년 기념전, 예술의 전당, 서울 | 분분합합I, 서경갤러리, 서울 | 분분합합II, 종로갤러리, 서울 | 제18회 Aspect전, 예술의 전당, 청주 | 인터넷 미술전-차세대의 제안, 예술의 전당, 서울 | 1995  분분합합, 종로갤러리, 서울 | 한국 지성의 표상전, 공평아트센터, 서울 | 한 일 현대미술 교류전-미래의 예감, 예술의 전당, 청주 | 1994~1989  Aspect전 | 새미전, 덕원갤러리, 서울 | 분분합합, 서경갤러리, 서울 | 현대적 방법의 양식과 제안전, 서호 갤러리, 서울 | 한 일 현대미술 교류전-대화하는 풍토, 후바나시 시민갤러리, 일본 | 1993~1989  그루터기전 | 1993  한 중 미술교류전, 예술의전당, 서울 | 서울예고 40주년 기념전, 예술의 전당, 서울 | 문인화 정신의 표출전, 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 작은 그림 모음전, 송산화랑, 청주 | 종이연에 띄운 화가의 마음, 서호 갤러리, 서울 | 흙에 그린 화가의 마음, 아미 갤러리, 서울 | 대한민국 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분분합합, 단성 갤러리, 서울 | 1992  동아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 16인의 여음전, 이콘갤러리, 서울 | 분분합합, 홍갤러리, 서울 | 1992  한 일 현대미술 교류전, 국립청주박물관, 청주 | 1991  새봄 91전, 대전 현대화랑, 대전 | 91의식의 확산전, 경인 미술관, 서울 | 중앙미술대전, 호암 갤러리, 서울 | 20인의 여류작가전, 아트뉴스 갤러리, 서울 | 분분합합, 백송화랑, 서울 | 1990  한국화 시각의 다변화, 동덕 미술관, 서울 | 토탈-백십사, 토탈 미술관, 서울 | 서울 묵연, 서울 갤러리, 서울 | 90像-10人전, 관훈 미술관, 서울 | 대한민국 미술대전, 국립 현대미술관, 서울 | 1989  한국화-새로운 형상과 정신II,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 한국화 신형상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 8人의 像, 백악 미술관, 서울 | 1988  한국화-새로운 형상과 정신I, 서울 갤러리, 서울 | 人像 1988, 상문당, 서울 | 1987  일천구백팔십년전, 관훈미술관, 서울 | 크로키전-방배동 사람들, 관훈미술관, 서울 | 현대 한국화 단면전, 전북 예술회관, 전주 | 1986  한국화 제3세대전, 중앙청 전시장, 서울 | 1988~1985  形如形전, 제3갤러리, 관훈미술관, 서울 | 1985  한국화-새로운 세대의 의식과 표현, 제3갤러리, 서울

 

 

 

vol.20110309-안영나 展